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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 곽태호 대리⑤, "99년 U-20세계선수권 및 2000년 U-19아시아선수권"


2003년 12월 23일 KFA 홈페이지 기사..


사실 199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U-20 세계선수권에 참가할 청소년대표팀은 내가 처음부터 주무를 맡은 것은 아니었다.

1998년 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 선수권(당시 박창선 감독)에서는 이해두 차장님(경기국)이 주무를 맡았고, 1999년초 조영증 감독님으로 바뀐 이후에도 2월 호주 전지훈련까지는 이 차장님이 수고를 하셨다.

내가 99년 청소년 대표팀을 맡게 된 것은 이해두 차장님이 당시 여자대표팀도 맡고 있었고,  세계대회가 열리는 곳이 나이지리아인지라 94 월드컵에서 과로로 쓰러졌던 이 차장님의 건강을 걱정한 축구협회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조영증 감독님이 U-16 대표팀도 맡고 있었는데, 내가 그 팀의 주무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조 감독님을 따라서 내가 U-20 대표팀도 맡게된 것이다.

선수들은 갑자기 감독과 주무가 바뀌니까 다소 동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 박창선 감독님과 조영증 감독님의 지도 스타일에도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팀 감독을 오래 했던 박창선 감독님은 카리스마가 있고, 선수들을 엄하게 가르쳤다. 선수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고, 경기 내내 벤치에 앉지 않고 터치라인 앞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스타일이셨다.

반면 조영증 감독님은 자율적인 것을 중시하고, 선수들을 부드럽게 다루셨다. 경기중에도 특별한 경우 아니면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누가 더 낫다고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지도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선수들이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있었다. 더군다나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었을테고, 새로 합류한 선수들도 있을테니 말이다.

어쨌든 조영증 감독님이 부임한 이후 선수단에도 변화가 있었다. 감독님 스타일상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보다는 자율적인 부분을 추구하셨다. 청소년기의 선수들은 여러가지로 돌발적인 상황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부 지도자들은 새벽까지 자지 않고 숙소를 지키는 등 규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조영증 감독님은 몇시 취침, 몇시에 아침식사, 몇시 훈련 등의 일정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그리고 훈련 역시 하루에 3-4번 하던 것이 1-2번으로 줄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어릴때부터 워낙 타율적이고 타이트한 훈련을 받아온 탓에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 결과 주무인 내가 보기에도 선수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다소 해이해져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지금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U-20 대표팀에 프로선수는 극히 드물었다.
이동국(당시 포항)과 김은중(당시 대전), 정용훈(당시 수원)만이 프로선수들이었고, 나머지는 대학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함께 생활하면서 대학 선수들은 이들 프로선수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당시만 해도 그리 대중적이진 않았던 CD 플레이어나 핸드폰 등의 여러 물건들, 즉 대학 선수들이 가지기 힘든 것들을 갖고 있는 모습을 무척 부러워하곤 했다.

선수들끼리 모여있으면 "프로에서는 어떤 것을 해주냐? 어떤 것이 좋냐?" 등등을 물어보고, 동국이나 은중이는 그 질문들에 대해 "프로에서는 청소도, 세탁도 안하고, 음식도 좋다. 숙소도 호텔급이고,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신나게 대답하던 모습들도 떠오른다.

나 역시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와..프로가 좋긴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틀랜타 올림픽대표팀도 그렇고, 이전 청소년대표팀들도 그렇고, 프로 선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처음으로 프로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악했던 나이지리아의 환경

나이지리아 세계 청소년대회에는 쌀 200kg를 공수하고, 대표팀 전용 요리사까지 대동하고 갈 정도로 축구협회에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 매 대회 때마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팀 역시 역대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특히 이동국-김은중 투톱은 최강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대회가 열리는 나이지리아는 모든 여건이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신용카드도 되지 않고, 달러도 안되고, 오직 현지 화폐만이 통용될 뿐이었다. 100달러 정도를 환전하면 현지 화폐로 한 뭉치를 주는데, 비행기표라도 사려고 하면 현금뭉치를 보따리로 갖다줘야할 정도였다.

나이지리아에서 나를 가장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은 음식문제였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호텔에서 제공하는 음식과 우리가 가져간 것을 혼합해서 먹었다. 그런데 호텔측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우리가 머문 호텔에는 모두 4개팀이 묵었는데,  이틀 정도 지나니까 아침 식사 재료가 바닥이 난 것이었다. 결국은 빵 하나와 계란 1조각, 우유 한잔이 호텔에서 제공한 아침식사의 전부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주방으로 가서 "이것을 아침식사라고 주느냐? 더 달라"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호텔측에서는 "미안하다. 음식재료가 다 떨어졌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럼, 언제 오느냐?"라고 따졌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회 끝날때까지 아침식사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다행히 점심은 우리가 준비한 재료를 바탕으로 찌개라든지, 여러 가지 우리 음식을 조리해 잘 먹을 수 있었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사다가 즉석에서 해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기본적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선수들이 아주 풍족하게 먹지는 못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또 명색이 호텔인데 물을 틀면 녹슨 물이 나오곤 했으며, 한번은 정전이 되는 바람에 그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안나와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요리사 혼자 식사준비하기에는 선수단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에 나 역시 음식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장도 보러가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도 하고...

멀리까지 와서 잘 먹지도 못하고, 여건도 좋지 않으니까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하나가 맞지 않으니까 다른 것까지 전부 뒤틀렸던 것 같다. 여러나라를 가봤지만 그렇게 열악한 곳은 처음이었다.

생활 환경이나 인권 상황도 좋지 않아서 경기장 앞에서는 경찰이 말을 탄 채 긴 채찍으로 관중들을 때리는 모습도 보았다.
도로를 나가도 차선이나 신호등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갑자기 차가 맞은 편에서 달려와서 모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현지에서 중계 방송을 하던 국내 모 방송국 아나운서가 중계 도중 "나이지리아에서 월드컵도 유치하려고 한다는데 누가 좀 말려주세요" 했다고 하던데,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내 생각에도 월드컵은 커녕 세계 청소년대회도 개최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쉬움이 컸던 99 나이지리아 U-20 세계선수권

대회를 앞둔 팀 분위기는 좋았다. 한국은 96년 아틀랜타 올림픽대표팀과 U-20 대표팀에 이어 이번 U-20 대표팀까지 연속해서 아시아 정상을 차지해 적어도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었다.

99년 나이지리아 세계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역대 청소년대표팀 중에서도 최강 투톱으로 꼽혔던 이동국-김은중을 중심으로, 주장이자 미드필드의 살림꾼이었던 김건형(당시 경희대), 지금은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설기현(당시 광운대)과 송종국(당시 연세대), 그 시절 천재 미드필더로 손꼽혔던 김경일(전남), 골키퍼 김용대(당시 연세대) 등 좋은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었고, 첫 게임 포르투갈전도 자신감있게 나갔다. 전반 내내 우리 선수들은 포르투갈을 맞이해 좋은 경기를 펼쳐나갔다. 비록 전반 27분 만에 히카르도 수자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흔들리기도 했으나 37분 주장 김건형이 동점골을 터트리며 만족스런 경기를 했다.

후반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페이스는 계속 되었고,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결코 주눅들지 않고 잘 싸우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좋은 결과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더운 날씨에 오버페이스를 한 탓일까. 선수들의 집중력은 후반 중반을 넘어서면서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었고, 미드필드는 완전히 장악당했다. 선수들의 체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선수들은 후반 40분까지 잘 버티며 무승부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후반 40분과 45분, 포르투갈의 신성으로 불리우던 시마우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결국 1-3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마지막 5분을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경기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시마우의 스피드와 개인기는 한국 수비진의 체력이 바닥난 후반 막판 결국 빛을 발한 것이었다.

두 번째 시합은 우루과이전이었다. 우루과이는 의외로 말리에게 일격을 당하며 우리와 같이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서로가 절대 패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경기였다.

그러나 경기 시작 3분 만에 우루과이의 스트라이커 체반톤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경기는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1골을 선취한 우루과이는 밀집수비를 펼치며 경기를 이대로 마무리하려고 했고, 우리는 동점골을 뽑아내기 위해 공세를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김경일의 슛이 골대를 맞추고, 이동국의 결정적인 찬스 역시 무산되는 등 지독히도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후반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우루과이 선수들은 노골적으로 시간끌기에 들어갔다.

우리 선수들이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넘어져서 뒹굴었으며, 코너에서 개인기를 이용한 볼키핑으로 시간을 끌었다. 이런 우루과이 선수들의 심리전에 말려 우리 선수들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했고, 서두름에 따라 공격은 더욱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경기는 0-1로 끝이 났고, 우리는 2연패를 당하며 사실상 16강 진출이 어려워졌다.

우루과이전이 그렇게 끝이 나자 의욕이 완전히 땅으로 떨어지며 그날 저녁부터는 일하기 조차 싫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조리사분 혼자 음식 만드시면서 고생하시니까 안갈 수도 없었다.
둘이서 저녁을 준비하면서 "에이..자식들 골 좀 넣지..2연패 당하고 무슨 낙으로 일하냐"라면서 씁쓸하게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2패를 당한 시점에서 우리는 3차전 말리전에서 반드시 대승을 거두고, 우루과이-포르투갈전이 한 팀이 크게 이기기를 바래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사실상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우루과이 대 포르투갈 경기는 지난번 세계 청소년 한국 : 미국 경기처럼 경기 내내  자기 진영에서 공만 돌리는 경기였다) 부담없이 마음껏 경기를 펼쳤다.

이범직(대구대), 신동근(청구고) 등 새로운 선수들도 투입했고, 힘든 상황이긴 해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반대로 말리는 예선 통과가 확정됐기 때문에 약간 느슨하게 경기에 임했다.

설기현의 골이 3분 만에 터지면서 경기는 쉽게 풀려갔고, 나희근, 설기현이 연속골을 터트리며 전반을 3-0으로 마쳤다. 후반 들어서는 잠시 방심한 탓에 2골을 내주며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동국이 후반 24분 쐐기골을 뽑아내며 4-2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나마 말리전에서 승리하며 1승을 거둔 것이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 청소년급에서는 세계 축구에 비해 우리 선수들이 기량면에서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효율적인 경기운영을 하지 못한 점이 패인이었던 것 같다.

2000년 U-16 대표팀 및 U-19 대표팀의 연이은 실패

1999년의 나이지리아 세계대회의 실패에 이어 2000년에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패배를 맛보며 기억하기 싫은 한해를 보내야 했다.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도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2000년은 한국 축구로서는 악몽의 한해였다.

먼저 2000년 5월에 있었던 U-16 아시아선수권(현 U-17 아시아선수권. 연령은 같음) 1차 예선에서 중국에 밀리며 본선에도 가지 못한 채 탈락하고 말았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중국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2-2로 비겼고, 골득실에서 중국에게 밀리며 2위로 내려앉은 것.

수중전으로 진행된 중국전은 경기내용에서는 우리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비로 인해 허용하지 않아도 될 골을 허용하기도 했다.

후반 종료 직전에는 정윤성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상대의 완벽한 파울로 인해 걸려 넘어졌음에도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았다. 일본인 주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는 정말 그 주심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결국 이러한 여러 가지 불운이 겹치며 U-16 대표팀은 1차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U-16 대표팀에는 정조국, 권집, 이호, 정병민, 남궁웅, 박주성, 한재웅 등이 있었고, 한달 동안 브라질 전지훈련까지 갔다오면서 전력이 괜찮았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어서 2000년 11월 이란에서 열렸던 U-19 아시아선수권(현 U-20 선수권. 연령 같음)에서도 세계선수권 티켓을 따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우리 멤버들은 이천수(당시 고려대), 박지성(당시 교토), 최태욱, 박용호, 김동진(이상 안양), 조재진(당시 수원), 김정우(당시 부평고) , 조병국(당시 연세대) 등 현 올림픽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아시아 선수권 최종예선 B조에 속한 우리는 첫 경기에서 중국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U-16 대표팀에 이어 또다시 중국에 덜미를 잡히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중국의 스트라이커 취보에게 후반 16분 결승골을 내준 것이다.

다행히 2차전에서 약체 파키스탄에게 7-0 대승을 거두며 안정을 되찾은 뒤 껄끄러운 상대 UAE에게도 천수의 2골과 병국이, 주광윤(당시 중대부고)의 연속골로 4-2로 승리했다. 그리고 조예선 마지막 경기 이라크와의 경기만 남겨두고 있었다. 당시 이라크는 2승 1무를 기록중이었고, 우리는 2승 1패였다. 우리로서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경기.

경기시작부터 우리는 계속적인 공세를 펼쳤고, 몇 차례 좋은 기회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끝내 이라크의 골문을 열리지 않았다. 결국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조 1,2위 팀에게 주어지는 4강 진출권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두 대회에서 연속적으로 실패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령탑이었던 조영증 감독님의 지도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했다. 훈련량이 적고, 선수들을 너무 풀어준다는 것이었다. 어린 청소년 선수들의 경우 일부 지도자들은 가끔 매를 들기도 하는데 조 감독님은 절대로 선수들을 체벌하지 않았다.

사실 조 감독님은 현대와 LG를 거치며 프로에서 오랜 기간 지도자 생활을 한 영향으로 선수들을 프로처럼 대해주셨다. 기본적인 스케줄 이외에는 선수들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놔두셨던 것이다.

이것은 예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팀의 크라머 감독님이 추구하셨던 코칭법과 흡사한 면이 있었는데, 그 때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 한국의 어린 선수들은 자율적인 훈련환경 속에서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하기에는 약한 부분이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2000년 아시아 선수권을 앞둔 U-19 대표팀에서 있었던 일인데, 선수들이 느끼기에 훈련량이 평소 소속팀에서 했던 것보다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저녁에 개인훈련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천수를 중심으로 해서 저녁에 개인훈련을 하는데, 감독님이 산책을 하다가 그 장면을 보았다.

그래서 감독님이 "너희들 왜 훈련하고 있냐?"라고 물었고, 선수들은 "훈련량이 부족한 것 같아 보충훈련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 감독님은 "스케줄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해 놓은 것이니까 개인훈련은 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했다.

감독님께서는 전체적인 스케줄에 맞춰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훈련량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하려는 생각이었는데 반해 선수들은 초.중.고교를 거치면서 워낙 강도 높은 훈련에 익숙해져 있어 이런 훈련법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한국축구의 훈련환경이 과도기라 이런 부분의 조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맺는 말

이후 나는 중국에서 열린 2002 아시아 유스 페스티벌에 참가한 U-14 대표팀 주무를 맡은 것을 끝으로 주무 업무에서는 손을 떼고, 경기 행정에만 전념했다.

2001년에 결혼을 했는데 아무래도 결혼한 이후에는 주무를 맡는 것이 힘든 점이 있었다.  총각일때는 주무 일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결혼한 지 2년이 넘고 아들도 생기고 가정이 생기니까 지금은 주무 업무를 하기가 어렵다.

이제 후배들도 많이 들어왔고, 그 친구들도 주무 일을 통해 대표팀과 하나가 되는 느낌,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선배들도 느꼈고, 나도 느꼈고, 후배들도 아마 느낄 것이다.
긴 내용 읽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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