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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 곽태호 대리③, “96 아틀랜타 올림픽을 준비하며”


2003년 12월 15일 KFA 홈페이지 기사...


아틀랜타 올림픽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올림픽대표팀 역시 더욱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회를 석달여 앞둔 96년 5월 7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와 덴마크, 벨기에, 러시아를 거치며 클럽들과 평가전을 치렀으며, 잠깐의 휴식 후 6월 8일부터 24일까지 북아일랜드와 노르웨이에서 또다시 유럽 클럽들과 실전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7월 6일과 9일 국내에서 콜롬비아 올림픽대표팀과 2차례 평가전을 치른 뒤 대회 장소인 미국으로 건너갔다.
우리는 첫 게임이 열리는 워싱턴에 여장을 풀었고, 사우디 아라비아 올림픽대표팀(2-0승) 및 워싱턴 대학선발팀(10-0승)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올림픽 본선에 대비했다.

와일드 카드 합류로 인한 약간의 불협화음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비쇼베츠 감독은 3명의 와일드 카드 선수를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전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선 필요한 조치였고, 감독님은 황선홍, 하석주, 이임생 선수를 선발했다.

기본적으로 젊은 선수들에게는 목표로 삼는 선배들이 있기 마련인데, 황선홍을 비롯해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선수들은 올림픽대표 선수들 대부분의 목표였다. 지금 올림픽대표팀 아니면 언제 같이 뛸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선배들이기 때문에 존경의 대상이었고,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선발에 대해 선수들의 동요가 약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라이벌 일본의 경우 그 동안 고생했던 올림픽대표 선수들만으로 대회에 임하는 것이 팀웍 면에서나 여러 면에서 낫기 때문에 와일드카드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더욱 동요가 있었다.

올림픽대표 선수들은 “우리끼리도 잘하고 있는데, 꼭 불러야하는가?”라는 불만이 있었고, 더군다나 자연적으로 기존의 주전 선수 3명이 후보로 물러나야하기 때문에 그 선수들도 불만이 있었다. 더군다나 또래 선수들끼리 거의 2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호흡을 맞춘 상황에서 선배 선수가 합류함에 따라 선후배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도 있지 않겠는가.

오랜 세월 동안 선수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물리치료실(지금 대표팀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에서 선수들이 나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팀 전력에 보탬이 된다면 협회나 감독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대회규정에서도 3명의 와일드카드를 인정했고, 다른 팀들도 보강을 했다. 우리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올림픽을 앞둔 시점이 아닌 그 이전에도 고참 선수들이 합류했던 경우가 몇차례 있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 했듯이 고참 선수들과 비쇼베츠 감독 사이에 문화적 차이로 인한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다.

한국에 머물렀던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비쇼베츠 감독 역시 훈련이 끝난 뒤,  고참 선수들이 후배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감독님 생각은 “왜 선수가 선수에게 지시를 하는가? 훈련이 끝난 뒤 감독, 코치가 이야기했으면 끝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고, 반면 고참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안되는가? 훈련과 관련된 조언들을 해주는 등 선배 입장에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인데..”라는 것이었다.
이런 부분 때문에 감독님과 고참 선수들과의 관계가 약간 껄끄러워지기도 했었다.

아쉬웠던 96 아틀랜타 올림픽 본선

미국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고 올림픽 본선이 다가오자 선수단 전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2년여 동안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고, 역대 대표팀 사상 가장 많은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치렀고, 훈련기간도 가장 길었다. 정말 선수들, 스태프 모두가 열심히 했다.

그리고 7월 21일, 아프리카의 다크호스 가나와 본선 첫 번째 경기를 치렀다. 우리는 황선홍, 하석주, 이임생 등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선수들을 모두 투입하며 승리를 노렸다. 황선홍-최용수 투톱을 기대했던 많은 축구팬들에게는 아쉬웠겠지만, 최용수를 제외하고 황선홍이 원톱, 윤정환이 뒤를 받치고 나머지는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형태의 전술로 가나에 맞섰다.

가나는 전반 초반부터 공세를 펼쳤고, 벤치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선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가나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냈고, 전반 41분에는 역습을 통해 득점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석주 선수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돌파를 시도하는 순간 가나의 수비수가 강하게 태클,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주장 윤정환이 침착하게 차넣어 선취골을 뽑아냈다.

벤치에서 그 순간을 지켜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가 이겼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까지 올림픽 대표팀은 큰 스코어로 이기거나 진 적이 없었고, 1골을 먼저 넣은 이상 웬만하면 실점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가나전에서도 선취골을 넣은 후 더욱 수비에 치중하며 가나의 공세를 막아냈다. 결국 경기는 우리의 승리.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나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 동안의 긴장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자신감이 넘쳤다. ‘드디어 최초로 예선통과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모두들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애들 맛있는 거 사줘야지. 뭘 사줄까? 예산보다 좀 더 많이 써야겠다’ 등의 생각을 하며 즐거워했던 기억도 난다. 선수단 전체가 들떠있었다.
어쨌든 선수단 분위기는 매우 좋았고, 2번째 경기인 멕시코전 역시 자신감있게 나섰다. 2차전에서는 기대했던 황선홍-최용수 투톱이 선발투입됐고, 경기흐름 자체는 가나전과 마찬가지로 수비에 역점을 두고, 역습을 노리는 형태였다.

그러나 전반 16분과 35분, 공수의 중심인 이임생, 황선홍 선수가 잇달아 불의의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우리로선 전력의 큰 부분을 잃게 됐다. 자칫 하면 힘들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렇지만 선수 모두가 경기장에서의 투지나 근성이 다른 때에 비해 남달랐고, 벤치에 있는 선수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격려의 소리를 질러주는 등 팀 전체가 똘똘 뭉쳤다는 느낌이었다.

후반 중반에는 이원식이 회심의 슬라이딩 슛을 시도했지만, 골대 맞고 나오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결국 경기는 0-0으로 비겼고, 선수 및 코칭스태프도 비록 큰 만족은 못했지만 80% 정도는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도 2명의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물러난 가운데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1승 1무를 기록한 우리는 이제 조예선 마지막 경기 이탈리아전만 남겨두게 됐다. 이탈리아전에서 무승부만 기록해도 8강에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은 있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이미 2연패로 예선탈락이 확정된 상황.

그러나 다소 불길한 부분이 있었다면 황선홍 선수가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임생 선수도 다리가 부러졌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 이경춘 선수(당시 전북)를 급히 수혈하기도 했다.

어쨌든 주무로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해야할 일들은 많고 해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올림픽 조별 리그는 이틀 간격으로 열려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멕시코전 다음날 오전 회복훈련을 실시한 뒤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쇼핑시간을 마련해줬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을 풀어보라는 뜻이었다. 그 동안 한번도 관광이나 쇼핑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선수들도 즐거워했다.

그런데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이탈리아 선수들과 마주치게 됐다. 서로 잠시 눈싸움을 하고는 헤어졌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탈락이 확정된 탓인지 느긋하게 쇼핑을 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우리는 시합도 있고 해서 쇼핑은 하지 않고 음료수 사먹고, 아이쇼핑을 하며 가볍게 산보하는 정도였다.

당시에는 우리끼리 “쟤네들 떨어졌으니까 우리와의 경기에서 세게 하지는 않겠지?”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저녁에 이탈리아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보니 “3전 전패를 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한국전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 한국은 굉장히 안정됐고, 훌륭한 팀이다. 그러나 우리가 질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모여서 TV로 그 인터뷰를 봤다.

그리고 7월 25일, 이탈리아와의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한국에서 급히 합류한 수비수 이경춘 선수까지 투입하며, 8강 진출에 안간힘을 썼다.
당시 이탈리아 올림픽대표팀에는 알레산드로 네스타(현 AC 밀란), 파비오 카나바로(현 인터 밀란), 마르코 델 베키오, 다미아노 토마시(이상 현 AS 로마) 등 현재 이탈리아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반 24분 만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베테랑 스트라이커 마르코 브랑카(당시 인터 밀란)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불안감을 안겨줬다. 역시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온 이탈리아 축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1골을 먼저 내준 우리는 공격의 비중을 높이며 만회골을 노렸다. 그리고 후반 17분, 이기형이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내며 8강 진출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벤치도 그렇고, 뛰는 선수들도 그렇고 8강행이 임박한 것에 대한 흥분을 느꼈다. 시간은 어느덧 후반 37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이제 8분여만 견디면 대망의 8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후반 37분, 우리의 이러한 염원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 수비진영에서의 혼전 도중 브랑카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고 만 것.
이전 가나와의 경기에서도 팀의 2골을 모두 뽑아낸 바 있는 브랑카는 우리와의 경기에서도 2골을 기록, 이탈리아가 조예선에서 득점한 4골을 혼자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지난 2년여간 고생했던 순간이 절로 머리를 스쳐갔다. ‘이대로 끝이 나고 말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펑펑 눈물을 쏟는 선수들도 있었고, 나 역시도 속으로 많이 울었다.

너무나도 아쉬웠던 것은 아시아 예선에서도 당당하게 우승했고, 해외원정 등을 통해 경험도 많이 쌓았고, 올림픽 본선 첫 경기 가나전에서도 승리하며 첫 단추도 잘 꿰었고, 이제 이탈리아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올라가는 순간이었고, 후반 37분까지 그것은 가능해 보였고..그 마지막 순간에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너무 안타까우니까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탈리아전이 끝나고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는 10여분 가량 라커룸에서 문을 잠근 상태로 있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결국 코치분들께서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박수를 치시면서 “수고 많았다. 이제 그만 나가자”고 말씀하시며 라커룸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모두들 아무 말도 없이 창밖만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 여기까지 잘 따라워줘서 고맙다.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이제 경기는 끝났고, 너희들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앞으로 프로에 가서 활동도 해야 하니까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라. 다음에 국가대표팀에도 꼭 뽑히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나 역시도 선수들 방에 찾아가서 “지금까지 고마웠다. 쉬면서 재충전하자”라고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96 아틀랜타 올림픽대표팀 주무를 마치며

2년여 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올림픽대표팀은 내가 주무를 맡은 사실상의 첫 번째 팀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팀이었다.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왔기 때문에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얘네들이 지금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경우 코칭스태프와 사석에서 “애들이 이런 부분을 좀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했으면 하는 마음들입니다”는 식으로 슬쩍 이야기하기도 했다.

코칭스태프에서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상황들도 분명히 있고, 그런 부분을 내가 전달해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에서 내가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연결해줄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것 같아 뿌듯한 면이 있다.

이탈리아전을 마치고 올림픽대표팀이 해산하면서 비쇼베츠 감독님은 한국으로 오시지 않고, 곧바로 러시아로 떠나셨다. 올림픽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할 때 이미 한국의 짐을 모두 정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올림픽대표팀을 맡았고, 그 전에도 한국축구와 인연을 맺었던 분이신 만큼 일단 선수들과 함께 한국에 오셔서 여러 가지 마무리도 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었다.
나 역시 곧바로 러시아로 가신 점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내가 이 부분에 대해 말을 할 입장은 아니고, 단지 2년여간 한솥밥을 먹었던 팀원으로서의 개인적인 섭섭함이다.

헤어지면서 GK코치였던 세멘 알트먼(애칭으로 샘이라고 불렀음)은 눈물을 많이 흘렸었다. 당시 올림픽대표팀에는 러시아인이 3명이었는데, 감독님과 통역의 경우 견제도 많이 하고 의심도 많았지만 샘 코치는 그렇지 않았다. 항상 웃으면서 친근하게 어울렸기 때문에 헤어지면서 많이 아쉬웠다. 서로 더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점에 대한 아쉬움도 컸고..

김학범 코치님이나 조병득 코치님 등 다른 코칭스태프 분들과는 지금도 가끔 통화하고, 운동장에서 뵈면 인사하면서 옛날 이야기도 하곤 한다.
선수들과도 운동장에서 만나게 되면 지금도 안부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한다.

사실 올림픽대표팀이 해산하고 초창기에는 선수들간의 모임도 있었다. 초기에 나에게도 참석하라고 몇 번 전화가 왔었는데, 가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도 난다. 올림픽대표팀이 해산한 뒤에도 곧바로 다른 팀을 맡아 주무를 맡으면서 바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 따로따로 활동하고, 나름대로 바쁘게들 지내기 때문에 그 때 멤버들끼리 모이지는 않는 것 같다. 언젠가 한번 모두 모여 그 때 이야기도 나누면서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

아틀랜타 올림픽대표팀이 해산된 이후 나는 박이천 감독님이 이끄는 U-19 대표팀의 주무로 일하며, 1996년 U-19 아시아선수권을 준비하게 됐다.

-> 4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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