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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여자대표팀 주장 유영실, “사상 첫 여자월드컵 본선진출의 숨은 주역”

2003년 7월 3일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2003년 6월 21일은 아마도 한국 여자축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1991년 여자월드컵이 시작된 이래 중국, 일본, 북한, 대만 등의 벽에 번번이 막히며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했던 한국 여자축구가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6월 21일 한국 여자대표팀은 통산 성적 5무 8패로 열세를 면치 못했던 일본과 3/4위전에서 맞붙었다. 아시아에 3.5장이 배분된 월드컵 본선직행 티켓의 마지막 1장을 놓고 다투게 된 것.

이 중요한 한판에서 한국은 후반 초반 1명이 퇴장당해 10:11로 플레이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1-0으로 승리하며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일궈냈다.

그리고 북한, 일본전 등 중요한 고비에서 골을 넣어준 황인선(INI스틸), 7골로 팀내 최다득점을 기록한 신예 박은선(위례정산고), 간판 골잡이 이지은(INI스틸), 첫 국제대회 참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선방을 기록한 골키퍼 김정미(영진전문대) 등이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몇몇 선수의 스타 탄생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보여준 축구는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고 있다기보다는 팀 전체의 응집력이 돋보이는 축구였다. TV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수 전체가 똘똘 뭉쳐있다는 느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강한 정신력이 브라운관 밖으로 배어 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팀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구심점에는 중앙수비수로 맹활약했던 주장 유영실(28, INI스틸)이 있었다.

원래 중앙 미드필더로 주로 기용되었던 유영실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중앙수비수로 변신, 안종관 감독이 새롭게 시도한 4백 수비라인의 리더로서 선수들을 컨트롤하며 팀을 이끌었다. 경기 외적으로도 팀의 주장으로서, 언니로서 후배들을 잘 다독이며 월드컵 본선진출에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축구에 있어 정신적인 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는 유영실은 오는 9월 미국에서 열리는 여자월드컵에서 남자가 이룩한 4강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여자축구 역시 4강 신화를 이룩한다면 국민들도 열악한 여자축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그녀의 소박한 마음이다.

이번 여자월드컵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예정인 유영실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대회. 11년 동안 국가대표로서 활약하며 한국 여자축구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유영실은 내년부터는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의 인생을 설계할 계획이다. 여자선수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감독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이 유영실의 목표.

그리고 이에 앞서 이번 여자월드컵을 통해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은 한국 여자축구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한 뒤 명예롭게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고 싶은 것이 유영실의 바램이다.

다음은 인천 INI스틸 숙소에서 가진 유영실과의 인터뷰.


- 먼저 월드컵 본선진출 축하드린다. 주장으로서의 소감을 말해달라.

사실 준비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있었고, 주장으로서 힘든 부분도 많았다. 훈련과정에서 트러블도 있었는데 그 과정을 컨트롤한다는 것이 어려웠고, 부담감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니 나중에는 선수들도 잘 따라왔다. 결국 선수들이 열심히 했고, 잘 따라왔고, 한마음이 됐기 때문에 월드컵 티켓을 딸 수 있었던 것 같다.

- 숭민이 해체되고,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대표팀 전체 분위기도 상당히 어수선해졌을 것 같은데.

나 역시 그런 걱정을 했었다. 나는 원래 INI 소속이라 그 상황을 겪지 않았으니 어려움을 피부로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숭민 소속이었던 선수들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컸으리라 짐작한다. 그래도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다.

사실 숭민 소속 선수들 중에 INI스틸로 둥지를 옮긴 선수들도 여럿 있다. 숭민과 INI스틸은 예전부터 라이벌이었고, 또한 팀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와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별 문제없이 잘 적응하더라. 대학시절과 대표팀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생활했었고, 성실하고 기본적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루 3차례 훈련을 하기도 하는 등 매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새벽, 오전, 오후, 야간까지 하루 4차례 훈련한 적도 있었다.(웃음) 그래도 안종관 감독님께서 강할 때는 강하게, 때로는 회복기간도 주시는 등 운동강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주셨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자세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안종관 감독에 대해 야속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었나? (웃음)

그렇지는 않다.(웃음)
강할 때는 강하시지만, 뒤돌아서는 잔정이 많으신 분이다. 감독님께서는 지금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여자축구에 몸담고 계신 분 중 한 분이시다.

그만큼 여자의 심리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순간순간 대처능력이 뛰어나시고, 배려도 많이 해주신다.
운동면에서도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고, 가능한 것을 가르쳐주시려고 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불만은 없다.

- 강도 높은 훈련을 견뎌내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훈련을 견디는 부분에서 선수들이 나약함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가 훈련에서 뒷전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선수들을 볼 때에는 선배로서, 주장으로서 정말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여자들이다보니 이런 면에 민감한 것 같다.

-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많이 활동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중앙수비수로 자리를 굳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그동안 미드필더로 많이 플레이하긴 했지만, 솔직히 내가 미드필더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미드필더 자리는 지구력과 스피드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한 부분들이다. 그래도 경기 운영능력이 있고, 패싱력이 있어서 미드필더로 계속 뛰었지만 그 위치에서 90분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수비를 보던 (이)명화 언니가 수비를 부담스러워 했다. 더군다나 이번 대회에서 4백라인을 주로 구사했는데 명화 언니가 그 시스템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더라. 그래서 명화 언니와 감독님과 함께 서로 상의한 끝에 내가 중앙수비로 내려오고 명화언니가 미드필더로 올라왔다.

- 중앙수비수로 변신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사실 학교시절부터 공격수, 미드필더, 스위퍼, 스토퍼, 측면 미드필더까지 각 포지션을 다해봤기 때문에 적응에 큰 문제점은 없었다. 예전 경희대 시절에는 팀에서는 미드필더를 봤지만 대표팀에서는 스위퍼를 봤었다. 그 시절에는 스위퍼 시스템을 썼는데 기동력이나 지구력이 떨어져도 센스는 있으니까 당시 이이우 감독님께서 아까워 스위퍼로 내렸던 것 같다.(웃음)

이후에도 11년간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경희대와 INI스틸을 거치면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 대회를 앞두고 몇몇 선수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합류하지 못했는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강선미, 이찬호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혹시 이것이 팀에 있어서 구멍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해줬기 때문에 그들의 공백을 잘 메꿀 수 있었던 것 같다.

- 곽미희나 김미정, 배정수와 같은 예전의 간판스타들이 여러 사정으로 합류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미희같은 경우는 축구에 대한 자질은 우수할지 몰라도 정신적인 면에서 강인하지 못했다. 부상 이후 선수생활의 기로에 섰을 때 그것을 극복했어야 하는데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미정이는 숭민이 해체된 뒤에 자기가 원하는 다른 팀으로 갔으면 계속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 그만둔 것 같고, 정수 역시 좋은 선수이지만 축구에 정말 욕심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좋아했다면 어떤 이유에서라도 계속 했을텐데...

- 처음 예선 조편성(홍콩, 태국, 싱가폴, 북한)이 확정됐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조편성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월드컵 본선행에 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홍콩의 경우 정보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중국 선수들이 뛰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접했었고, 태국 역시 홈팀인지라 우리가 이기긴 하겠지만 골득실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 북한의 전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조 2위 와일드카드를 노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골득실을 신경써야 했기 때문이다.

- 이제 아시아선수권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3/4위전까지 빡빡한 일정에 날씨까지 매우 무더워 체력적인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그런 부담 때문에 나는 예선 2차전 싱가포르전에는 출장하지 않았다. 3/4위전까지 치르면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파주 NFC에서 일하고 계신 김광용 요리사께서 동행하셔서 한국음식을 너무 맛있게, 영양가도 높게 잘 해주셨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큰 부담은 없었다. 김광용 요리사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웃음)

- 1차전 홍콩전부터 3차전 싱가폴과의 경기까지를 정리한다면.

일단 홍콩은 앞에서 밝혔듯이 요주의 대상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쉬운 상대였다. 시작하자마자 손쉽게 1골을 넣으며 여유있게 경기를 풀어갔지만, 아무래도 첫 게임이고 의외로 쉽게 첫 골이 들어가서인지 추가골이 쉽게 나오지 못하며 고전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아 내가 미드필드까지 올라가 공격지원을 했고, 후반 들어 무더기로 골이 터지며 8-0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2차전 태국전도 상대가 비록 홈팀이지만 별다른 부담없이 쉽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고, 3차전 싱가포르전은 체력안배를 위해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그 경기에서 상대가 약함에도 많은 득점을 올리지 못했는데, 안풀리는 게임을 벤치에 앉아서 지켜본다는 것이 정말 답답하고 힘들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다행스러웠던 것은 북한전이 예선 마지막 경기로 펼쳐졌다는 것과 3차전 싱가포르전이 끝난 뒤 4일간의 휴식기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전에 앞서 약체팀들과 경기를 하면서 감각을 끌어올리고 팀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도 얻을 수 있었고, 양팀 모두 3연승을 거두며 보다 여유있게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또한 충분한 휴식시간이 있었다는 점도 우리팀으로선 플러스 요인이었다.

- 이번 대회에서는 4백과 3백 시스템을 고루 구사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4백 시스템은 이전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북한과 일본전에서는 4백을 썼고, 중국전에는 3백이었다. 두 포메이션 모두 일자라인을 기본으로 하고 상황에 따라 내가 아래로 처지며 스위퍼 역할을 하기도 했다.

원래에는 3백 시스템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이것 저것 우리에게 어울리는 포메이션을 찾은 끝에 내린 결론이 4백 시스템이었다. 우리에게 4백이 가장 무난하고 어울리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감독님의 결론이었고, 우리 역시 4백을 가장 잘 소화했다. 그래서 결국 4백 시스템을 중심으로 대회를 치르게 됐다.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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