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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조세 아우구스투 피지컬 트레이너, “쿠엘류 감독을 믿고 한국행 결정”


조세 아우구스투 피지컬 트레이너와의 인터뷰는 매우 재미있었다.
처음 이미지는 상당히 냉철하고 무뚝뚝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인터뷰 동안
매우 열정적이고 낙천적인 라틴 계열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났다.
동작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크크..

인터뷰가 끝난 뒤 조세가 포르투갈 시절부터 해서 지금까지 해봤던 인터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깊이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나 역시 기분이
매우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쿠엘류 감독이 떠난 뒤 조세의 가벼운 행동에는 다소 실망스러웠고,
무엇보다 보스인 쿠엘류 감독이 떠난 뒤에도 한국에 남아있는 것이
새로 사귄 한국인 여자친구때문이라는 걸 알고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_-;
뭐 어쨌든 인간적으로는 좋았던 분...

2003년 9월 3일 KFA 홈페이지에 올라간 기사...


2002 월드컵을 통해 한국대표팀은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전방위 압박으로 세계적인 강호들을 차례차례 침몰시켰다.

사실 월드컵이 있기 전까지, 더 정확히 말해서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축구팬들은 한국축구에 대해 “체력은 세계최상급이지만 개인기와 전술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과 그가 데려온 레이몬드 베르하이엔 피지컬 트레이너는 한국의 약점 중 하나로 체력적인 부분을 꼽았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에 대해 “잘 뛴다. 그런데 정확히 후반 20분이 지나면 완벽하게 배터리가 떨어진다. 조직이고 뭐고 한순간에 무너진다”라며 체력적인 부분이 가장 큰 선결과제임을 밝혔었다.

결국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일명 ‘파워 프로그램’이라고 불리우는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오랜 기간 소화해야 했고, 이것은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당시 이 부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결국 월드컵을 통해 체력강화 프로그램의 성과는 입증된 바 있다.

그리고 2003년 한국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포르투갈의 움베르토 쿠엘류가 선임됐고, 쿠엘류 역시 국내 코칭스태프 인선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함께 일할 피지컬 트레이너의 선임을 서둘렀다.

결국 쿠엘류 감독은 유로2000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의 영광을 함께 했던 조세 아우구스투(55)를 피지컬 트레이너로 임명했고, 2003년 3월 조세 아우구스투가 한국에 입국함에 따라 한국대표팀의 코칭스태프 구성은 마무리됐다.

새롭게 피지컬 트레이너로 임명된 조세 아우구스투는 현역시절 축구가 아닌 농구와 카누 선수로 활동했으며, 특히 카누에서는 세계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정상급 기량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카누 지도자로 활동하며 스포츠과학과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공부에 전념했던 조세 아우구스투는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축구계에 뛰어들었다.

포르투갈 1부리그 세 팀, 2부리그 두 팀에서 피지컬 트레이너로 활약했으며, 유로 2000에서는 쿠엘류 감독과 손발을 맞춰 포르투갈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한국에 오기 전 5년 동안 포르투 체육과학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스포츠 트레이닝 방법론과 스포츠 영양학 등을 강의했던 조세 아우구스투는 쿠엘류 감독의 한국행 제의를 받고, 쿠엘류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과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에 대한 열망으로 한국행을 받아들였다.

조세 아우구스투는 “아직까지 대표팀의 소집기간이 짧아 본격적인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뒤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다음은 축구회관에서 진행된 조세 아우구스투 피지컬 트레이너와의 인터뷰. (2시간여에 걸쳐 통역을 해주신 김광일씨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 2003년 3월에 입국했으니 이제 한국에서 생활한지도 5개월여가 됐다. 한국생활에 있어 어려움은 없는가?

일단 교통체증이 심각한 것이 어려운 점이다.(웃음) 그리고 유럽과의 문화적 차이가 있어 처음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한국에는 선후배간의 서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해질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부분이 조금 제한적이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일할 때는 축구협회 회장님과도 어깨동무를 하고, 포르투갈 대통령과도 편하게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감독이 우선시되고, 코칭스태프는 약간 뒷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구단을 방문했을 때 모두들 쿠엘류 감독에게는 반갑게 인사하고 맞이하는데, 나머지 코치들과 나 같은 경우에는 그냥 예의상 인사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사회가 윗사람을 배려하는 습성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서로간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나.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부분들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 한국에 오기 전, 한국축구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는가?

히딩크 감독이 부임해 한국대표팀을 이끄는 과정을 지켜봤다. 2002 월드컵을 시작하기전 친선경기를 봤을 때만 해도 월드컵에서 그런 성적을 올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고 한 경기, 한 경기 치르면서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히딩크 감독이 유럽식 축구를 제대로 전수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부분에 대해 나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놀라며 기쁘게 받아주면서 한국축구가 많이 발전했음을 축하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결국 2002 월드컵의 성공은 이후 한국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만큼 한국축구의 수준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코칭스태프의 입장에서는 유럽에 진출한 좋은 선수들을 소집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쉽지만...(웃음)
어쨌든 2002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이 축구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 쿠엘류 감독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가?

1985년에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SC 살게로(SC Salgueiros) 클럽에서 피지컬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팀의 사령탑이었던 엔리크 칼리스투 감독이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됐다. 칼리스투 감독은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의하셨지만, 그 당시 나는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같이 팀을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포르투에 남았고, 칼리스투 감독의 후임으로 온 사람이 쿠엘류 감독이었다.

당시 쿠엘류 감독은 벤피카와 포르투갈 대표팀의 주장이었고,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였다. 1985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1개월 만에 살게로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걷게 된 것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쿠엘류 감독이 칼리스투 감독에게 나에 대해 물었고, 칼리스투 감독은 “포르투갈에서 최고”라고 나를 추천해 줬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쿠엘류 감독과 만나게 됐다.

아, 한 가지 참고로 더 이야기하자면 현재 칼리스투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어 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한국과 맞붙게 됐다.(웃음)

- 쿠엘류 감독이 같이 일하자고 말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우선 나는 쿠엘류 감독을 믿기 때문에 주저 없이 같이 일하겠다고 말했다. 쿠엘류 감독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다. 포르투갈에 있을 때 클럽에서도 같이 일해봤고, 대표팀에서도 같이 일했는데 그 때마다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일하는데 있어 믿을만한 분이었고, 인간적으로도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던 분이다.

쿠엘류 감독의 입장에서는 나를 선택한 것에 2가지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로 피지컬 트레이너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럿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어 일을 능률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을 원했을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이란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사람이 결국 나였던 것 같다.

- 그렇다면 낯선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쿠엘류 감독에 대한 믿음이었나?

그렇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 5년 동안 축구계와 떨어져 지냈다. 포르투 체육과학대에서 스포츠 트레이닝 방법론과 스포츠 영양학 등을 강의하는 교수로 활동했다. 그 사이에 다른 프로팀에서 제의가 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거절했다.

그러나 쿠엘류 감독이 제의했을 때는 그를 믿었기 때문에, 쿠엘류 감독 밑에서 일하게 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승낙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도 했다.

- 현역시절 축구선수로 뛰지는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축구선수로 뛰지는 않았고, 농구와 카누 선수로 활동했었다. 특히 카누에서는 국내대회에서 여러 차례 메달을 획득했으며, 세계대회에서 5위에 입상한 적도 있었다. 또한 지도자로서도 카누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이끌어냈고,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도 3위에 입상시킨 적이 있다.

- 그렇다면 축구 관련 피지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1980년부터 축구계에서 일하게 됐다. 어찌보면 축구선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피지컬 트레이너로 성공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프로팀 운영진 또는 지도자가 축구인 출신이 아닌 사람을 피지컬 트레이너로 선택하는 이유는 만약 축구선수 출신일 경우 감독이 팀을 잘 운영하지 못해 문제가 생겼을 때 감독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막기 위해 아예 축구인 출신이 아닌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 물론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와 관련된 부분을 많이 공부했지만 지도자 자격증까지 획득하지는 않았다. 최고의 피지컬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지 어중간한 지도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선수로서의 경험이 없을 경우 아무래도 지도자가 되기는 힘들다. 나 같은 경우 정식 축구선수로서 활동한 적이 없는데, 그런 경험이 없을 경우 지도자로서 힘든 부분이 많다.

카누의 경우 내가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었다. 축구도 마찬가지이다.

축구의 경우 어떻게 보면 온 국민이 지도자이다.(웃음) 너도 나도 팀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그러나 생각으로는 쉽지만 실제로 축구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지도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20년 넘게 축구계에 있으면서 매일매일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연구 중이다. 이것은 축구쪽과 피지컬 트레이닝쪽이 모두 동일하다. 그래야만 최고의 피지컬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

- 80년대 이후 축구계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클럽에서 일했나?

그렇다. 유로2000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일했지만, 그 전에는 계속 프로팀에서 활동했다. 포르투갈 1부리그 네 팀, 2부리그 두 팀에서 피지컬 트레이너로 일했다.

특히 파말리깡(FC Famalicao)이란 클럽이 기억나는데, 이 팀에서는 당시 U-20 세계청소년대회를 마친 페르난도 쿠투(DF, 현 라치오)가 FC 포르투에서 임대로 왔었다. 그런데 이 팀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3부리그로 강등되는 바람에 쿠투와 함께 3부리그에서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웃음) 아마 FC 포르투 회장이 가라고 해서 왔지 그렇지 않았다면 쿠투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웃음)

결국 거기서 견뎌내고 2부리그에 진입하고, 1부리그까지 재진입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드라마틱한 시기였다.(웃음)

- 원론적인 질문이다. 피지컬 트레이너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우선 여러 가지 훈련방법이 있다. 높은 강도의 훈련, 중간 강도의 훈련, 약한 강도의 훈련, 휴식...

피지컬 트레이너에게는 휴식과 높은 강도의 훈련...둘 다 중요하다. 생리학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운동량을 어느 정도 소화했을 경우 어느 정도 체력이 소모되는지에 대한 체크 등도 중요하다. 또한 볼을 가지고 훈련했을 때, 그 외의 훈련을 할 때 등등 각각의 훈련에 대한 조절을 해줄 수 있어 한다.

예를 들어 감독이 선수들의 전술적 이해도가 떨어져 이번 주에는 전술훈련을 3차례로 늘려서 하겠다고 주문했다고 가정해 보자.

3차례의 전술훈련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어떤 강도로 하는지 등을 지켜본 뒤 네번째로 내가 구상하는 체력훈련을 실시했을 경우 선수들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와 줄 수 있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3차례로 늘어난 전술훈련으로 인한 체력 소모량을 파악한 뒤 거기에 맞춰 체력훈련의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고 기존의 체력훈련 스케줄을 유지한 채 전술훈련의 비중을 높이게 될 경우 선수들의 컨디션 밸런스에 무리가 가게 되고, 결국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요일에 경기가 있었고, 일요일에 또다시 경기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감독은 하루에 오전, 오후 2차례로 훈련을 하고 싶다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목요일, 금요일에 2차례 훈련을 실시하는 것보다 목요일에 1번, 금요일에 1번, 토요일에 휴식을 취하고 일요일 경기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다는 식으로 조언해주면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해줄 수 있어야 한다.

2주간의 훈련기간이 주어졌고, 2주 후에 경기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첫째 주에는 감독이 어떤 지시를 해도 무시하고 체력적인 부분을 훈련시켜야 한다.

러닝, 크로스컨트리, 웨이트 트레이닝, 단거리 전력질주, 200m 거리에서의 전력질주, 저항력 운동 등등 모든 체력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한다. 이렇게 체력훈련을 중심으로 훈련을 실시할 경우 볼을 가지고 하는 훈련의 강도를 너무 높게 할 경우 효과가 떨어진다. 체력훈련 시에는 볼을 가지고 하는 훈련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

이와 같이 2주 훈련 중 1주째에는 피지컬 트레이너가 훈련을 주도하며 체력적인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고, 반대로 2주째에는 경기에 대비한 훈련이 주가 되는 가운데 거기에 맞는 체력훈련을 가미시켜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2주 후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체력훈련들이 부분적인 신체요소들을 강화시키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축구에 필요한 요소, 능력을 최대한 높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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