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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김영광,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한이 있어도 볼은 막는다”

U-20대표팀 훈련 중에. 성경일,정성룡,김영광,정조국(좌로부터 시계방향)


2003년 8월 23일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2002년 광양제철고를 졸업한 김영광은 고려대행이 유력한 듯 보였으나 막판 전남행을 선언하며 프로무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2년 10월에 열리는 U-20 아시아선수권에 대비해 박성화 감독 체제로 본격 출범한  U-20 대표팀(당시 U-19 대표팀)에 뽑혔다.

U-20 대표팀에는 김영광 이외에도 고교 시절부터의 라이벌 염동균이 주전 골키퍼를 노리고 있었다.
김영광과 염동균은 공교롭게도 함께 전남으로 입단, 소속팀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사이.

어차피 팀의 주전 골키퍼는 1명이고, 재능면에서 남다른 이 2명의 선수는 서로 경쟁하면서 주전 자리를 꿰차야 하는 비정한 현실 속에 놓여있다.

“처음에 동균이와 같이 전남 입단이 결정되면서 둘 중에 한 명은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팀훈련 이외에도 저녁훈련, 새벽훈련을 항상 꾸준히 하며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노력했죠.”

두 선수 모두 전남에 소속되어 있고, 전남이 골키퍼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 초창기 U-20 대표팀 훈련에 두 선수가 모두 합류한 이후에는 두 선수 중 한 명만이 U-20 대표팀에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소속팀 전남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이후 박성화 U-20 대표팀 감독은 “실력은 두 선수 모두 훌륭하다. 그러나 일단 큰 대회 경험이 많은 김영광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겠다”고 밝히며 김영광을 중용했다.

김영광은 2002년 3월 13일에 열렸던 U-20 대표팀의 공식 첫 경기 일본전 출전을 시작으로 U-20 아시아선수권 1차 예선, 중국과의 평가전, 유럽전지훈련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U-20 대표팀의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아시아선수권을 2개월여 앞둔 2002년 8월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과 9월 아시안게임대표팀 및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김영광은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고, 그의 빈 자리에는 염동균이 대신 기용됐다.

박성화 감독은 두 선수를 모두 차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동안 김영광을 충분히 지켜봤으니 이제는 염동균도 관찰해보려는 의도라고 밝혔지만, 김영광으로서는 큰 위기감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아시아선수권에 나가지 못하는가라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여기서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결국 다시 기회를 얻었죠. 그 때 김풍주 코치님과도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고 각오를 새로 다졌구요. 만약 대표에서 탈락한 시점에서 그냥 포기했더라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을 거에요.”

“그 기간에 운동 열심히 하고, 몸을 완벽히 만들어놨기 때문에 다시 뽑힐 수 있었고, 게임에서도 자신감있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예전에는 골을 허용한 뒤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곤 했었는데, 그것도 그 때 이후로 많이 고쳤어요. 지금은 실점을 해도 바로 잊어버리고, 다음 공을 잘 막자라고 내 자신을 컨트롤하죠.”

결국 2002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린 U-20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하게 된 김영광은 결승전까지 총 6게임에서 1실점만을 허용하며 한국의 우승에 큰 공헌을 세웠고, 관계자들로부터 대회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AFC에서 선정한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

박성화 감독 또한 김영광의 활약을 크게 칭찬하며 “베스트 11에 한국 선수가 3명이나 포함된 상황이라 그랬던 것 같다. 영광이나 (이)종민이 정도면 충분히 뽑힐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팀이 우승했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선정됐으면 좋았을텐데라는 기분 정도는 있었지만, 특별히 실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우승한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그 이후 U-20 대표팀은 UAE 4개국대회와 잉글랜드 전지훈련을 거치며 2003년 3월에 열릴 세계선수권을 준비했고, 김영광 역시 주전 골키퍼로서 더욱더 듬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세계선수권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라크 사태로 인해 대회가 11월말로 연기되면서 U-20 대표팀도 각자의 소속팀에서 경험을 쌓으며 개개인의 기량 향상에 힘쓰고 있는 상황.

아마도 11월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지금까지의 U-20 대표팀과는 다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몇 개월에 불과하지만 프로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새롭게 부상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침체에 빠지는 선수들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많은 U-20 대표팀 선수들이 프로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고 있고, 대회가 연기됨에 따라 이 선수들이 보다 많은 경험과 실력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으로선 다행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기된 것이 더 잘됐다고 봐요. 그 때는 애들 경험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출전해도 예선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랑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지금은 프로무대에서도 많이 뛰고 있고, 애들이 보다 성숙해 있으니까 좀 더 여유있게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U-20 대표팀이 소집되지 않아서 애들 본지도 오래됐어요. 보고 싶네요. 다들 바쁘고, 프로에도 가 있고, 그러다보니 연락도 자주 못하죠. 빨리 모여서 훈련하고 싶어요. 같은 또래들이라 모이면 재미있거든요.(웃음) 소속팀에서는 다들 선배들이라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웃음)”

쉽지 않은 프로무대

2002년 K리그에 뛰어든 김영광은 전남의 베테랑 골키퍼 박종문에 가려 한 게임도 뛰지 못한 채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러나 김영광은 이것에 실망하지 않고, 호시탐탐 출장기회를 엿봤다.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박종문 골키퍼의 경험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팀훈련 이외에도 개인훈련을 충실히 하며 기량을 연마했다. 그리고 프로 2년째인 올해부터 서서히 출장기회를 잡아나가고 있는 상황.

“박종문 선배님은 프로에서 오래 계셨고, 경험도 많으신 분이에요.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죠.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겠다 등등..골키퍼에 관한 조언도 많이 해주세요.”

“입단 첫 해에는 기회가 없었지만, 꾸준히 개인훈련 하면서 기다리니까 두 번째 해인 올해부터 기회가 오더라구요. 프로 데뷔 첫 게임이 지난 5월 24일 부천전이었는데, 경기 당일날 아침에 알았어요. 그 전날 이야기해줬으면 몸풀 때도 좀 더 신경써서 풀고, 저녁에 이미지 트레이닝도 할텐데 조금 아쉬웠죠. 저는 경기 전날 항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든요.”

“어쨌든 이런 준비 없이 갑자기 게임을 뛰려니까 조금 당황됐어요. 프로경기가 대표팀 경기하고는 또 다르더라구요. 엄청 긴장이 되는데, 들어가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요.(웃음) 경기는 1-1로 비겼는데, 첫 게임치고는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감격적인 데뷔게임 이후 1달여 동안 또다시 벤치 신세를 지게 된 김영광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은 6월 22일 성남과의 원정경기.

주전 골키퍼 박종문이 어깨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김영광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김영광은 여러차례 멋진 선방을 보여주며 코칭스태프를 만족시켰다.

“성남전이 있기 3일전쯤에 종문 선배님이 어깨가 좋지 않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성남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연달아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어요. 경기에 계속 출전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붙었어요. 처음에는 경기에 나서면 많이 떨리기도 했고 그랬는데 말이죠.(웃음)”

김영광은 성남전을 포함해 7월 12일 대구전까지 6게임 연속 출장했고, 이후 8월 3일 전북전 출장까지 올 시즌에만 8게임에 출장하며 본격적으로 박종문과 주전경쟁을 펼치게 됐음을 과시했다.

8게임에서 총 10실점으로 경기당 1.25점의 좋은 실점율.

“프로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몸관리에요. 프로는 그야말로 최고가 모이는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하고, 자기 몸관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해지더라구요. 누가 혼내는 것도 아닌데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이상하고, 불안하고 그래요.(웃음) 조금씩이라도 꼭 개인훈련을 하죠.”

“경기에 출전할 때에는 여러 준비를 통해 최선의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죠. 예전에 김풍주 코치님께서 경기에 앞서 선수 파악이 중요하시다면서 여러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었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각 선수별로 페널티킥이나 프리킥 찰 때 선호하는 방향을 체크하죠. 그리고 오른발을 주로 쓰느냐, 왼발을 주로 쓰느냐도 체크하고, 헤딩이 좋은 선수, 중거리슛이 좋은 선수, 문전에서 바로 슈팅타이밍을 가져가는 선수, 한번 접어서 슈팅하는 선수 등을 파악하죠. 또한 크로스를 올릴 때 낮게 올리는 선수, 높게 올리는 선수 등도 생각해놓구요.”

그렇다면 김영광이 겪은 K리그의 스트라이커들은 어떤 느낌일까? 다른 골키퍼들과 마찬가지로 김영광 역시 까다로운 공격수들로 외국인 스트라이커들을 꼽았다.

“골키퍼로서 가장 까다로운 공격수는 예상하지 못한 위치, 상황, 타이밍에서 슛을 날리는 선수들이에요. 드리블로 치고 들어오다가 달려드는 스텝 그대로 툭 슛을 날리거나 슛을 감아서 차거나 찍어서 차는 경우에는 막기가 힘들어요. 오히려 힘 좋은 선수들이 날리는 대포알 슛 같은 경우가 더 막기 쉽죠.”

“그런 면에서 샤샤나 뚜따, 마그노 같은 선수들이 까다롭죠. 뚜따 같은 경우 2골을 허용했는데, 슈팅 타이밍이 무지 빨라요. 그래서 타이밍을 잡기가 무척 힘들죠. 마그노 같은 경우에도 어떤 곳에서도, 심지어 각이 없는 위치에서도 슛을 날려요. 순간동작도 엄청 빠르고, 골키퍼를 읽고 플레이한다는 느낌이에요.”

U-20 대표팀과 전남에 이어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입지를 굳히다.

프로무대에서의 좋은 활약을 발판으로 김영광은 올림픽대표팀에도 합류했다. 출범 초기 박동석(안양)과 김지혁(부산)의 경쟁구도였던 올림픽대표팀에 김영광이란 새로운 변수가 나타난 셈.

김영광은 지난 4월 코스타리카전에서 벤치를 지켰으나 이후 프로무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지난 7월 14일 아인트호벤과의 평가전에 주전으로 투입됐다. 그리고 7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일본 올림픽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주전으로 기용되어 침착하게 골문을 지키며 올림픽대표팀에서도 확실하게 입지를 굳혔다.

“최근 2경기에서 뛰었지만 아직까지 주전자리가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계속 긴장하고 열심히 해야죠. 아인트호벤전 같은 경우 만약 K리그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긴장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프로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일본과의 경기는 지금까지 제 경험 중에서 가장 큰 경기였어요. 처음 경기 시작하기 전에는 긴장된 것도 사실인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니 떨리지는 않았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사실 원정경기인지라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비가 오는 가운데 경기를 했기 때문에 볼이 미끄러워 까다롭긴 했어요. 태욱이형이 선제골을 넣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게 비겼죠. 실점 순간을 돌이켜보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크로스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중간에서 커트하기 위해 나가는 순간 발이 하나 앞으로 나오는 것을 봤는데, 거기에 볼이 맞고 굴절되며 들어갔죠. 병국이형이 먼저 커트하려고 했던 것인데 운이 나빴던 거죠.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운재와 올리버 칸을 뛰어넘고 싶다.

김영광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골키퍼는 이운재(수원)와 올리버 칸(독일, 바이에른 뮌헨)이다. 지난 해 U-20 대표팀 훈련과 FA컵이 남해에서 동시에 열린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대표팀 오전훈련을 끝마친 김영광이 점심 휴식시간을 이용해 FA컵에 출전한 수원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김영광이 위치한 곳은 경기가 잘 보이는 관중석 중앙이 아니라 수원 골문 바로 뒤였다. 김영광은 경기 내내 수원의 골문 뒤에서 이운재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이운재 선배님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하며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단 김풍주 코치님이나 조병득 코치님(전남 GK코치)이 가르쳐 주신 것에 이운재 선배님이 하시는 것을 접목해 따라하려고 노력하죠.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등도 유심히 살피고..”

“이운재 선배님 외에도 올리버 칸을 존경해요. 그리고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도 좋아하구요. 카시야스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게 잘하더라구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칸이 최고라고 생각하죠. 플레이 자체도 훌륭하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칸의 매력인 것 같아요.”

40세까지 현역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

2003년은 김영광에게 있어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K리그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주전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11월에 열리는 U-20 세계선수권은 김영광이 앞으로 선수생활을 하는데 있어 크나큰 경험이 될 것이다.

“일단 올해 목표는 전남이 K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과 주전자리를 확보하는 거에요.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뛰고 싶고, U-20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구요.”

“궁극적으로는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가 되고 싶고, 40세가 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신의손(안양)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 분이 44세이신데 그 나이에는 보통 배나오고, 완전 아저씨가 되어야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여전히 현역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저도 40세까지는 현역에서 뛰고 싶고, 그 이후에는 지도자 공부를 해서 프로팀 감독이 되고 싶어요.  골키퍼 출신 프로팀 감독이 거의 없는데,  꼭 이뤄보고 싶어요.”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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