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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김영광,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한이 있어도 볼은 막는다”


2003년 8월 22일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U-20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김영광(20). 어느덧 U-20 대표팀뿐만 아니라 올림픽대표팀의 주전 골키퍼까지 차지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84cm, 80kg의 신체조건을 가진 김영광은 사실 골키퍼로서 좋은 체격조건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요즘 젊은 골키퍼들의 상당수가 180cm 후반대이거나 190cm를 넘어서는 상황이기 때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광이 가장 촉망받는 골키퍼로 손꼽히는 이유는 순발력이 뛰어나며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적인 강인함은 그를 지도했던 GK코치들이 한결같이 칭찬하는 부분이다.

유소년대표팀 시절 그를 지도한 바 있는 박영수 국가대표팀 GK코치는 “영광이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선수이고, 하려고 하는 의지와 승부욕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무서울 정도이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나를 더 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인지라 기대가 크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성수 올림픽대표팀 GK코치 역시 “순발력과 파이팅이 좋다. 적극적인 성격과 사고를 가지고 있어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김영광을 평가했으며, 김풍주 U-20 대표팀 GK코치 역시 “지난해에 비해 한결 듬직해졌다. 이제는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한 것 같다”며 제자의 급성장에 흐뭇해했다.

볼보이에서 골키퍼로

김영광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전남 해남동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정식 축구부는 아니었고, 클럽식으로 가볍게 축구를 맛보는 정도였다.

“클럽식으로 축구를 하다가 순천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잠시 축구를 그만뒀었죠. 그런데 축구를 하다가 그만두니까 정말 허전하더라구요.(웃음) 다시 하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어요. 더군다나 전학갔던 순천중앙 초등학교가 축구로 유명한 학교였거든요.”

순천중앙 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간 김영광은 좋은 체격조건으로 인해 스트라이커로 뛰게 되었다. 그러나 골키퍼와는 달리 스트라이커로서의 재능은 인정받지 못하며 점차 포지션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체격조건 보시더니 스트라이커로 세우셨는데, 조금 지나자 윙으로, 다시 미드필더로, 중앙수비수로...서서히 아래로 내려갔죠.(웃음) 그러다가 최종적으로는 볼보이가 내 포지션이 됐어요.(웃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영광은 골키퍼 인생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쌓게 되었다. 현재 K리그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호 씨와의 만남이 바로 그것. 당시 임종호 씨는 순천중앙 초등학교 골키퍼를 지도해주곤 했었고, 그 과정에서 김영광의 골키퍼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던 것이다.

“임종호 선생님은 정식 GK코치는 아니셨고, 1주일에 3번 정도 오셔서 지도해주셨어요. 제가 볼보이로서 공을 줍고 있는데, 저를 보시더니 스트레칭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이것저것 조금씩 시켜보시더니 골키퍼로서 괜찮아 보이니까 한번 해보라고 하셨죠.”

“처음에는 골키퍼로 밀린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하다보니까 골키퍼가 저한테 맞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께 골키퍼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축구를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부모님 허락받으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죠.(웃음) 골키퍼가 정말 나한테 맞는 것 같다고 애원하면서요.”

간신히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김영광은 본격적으로 골키퍼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초등학교 상비군에 뽑히는 기쁨을 맛봤다.

이후 순천 매산중에 진학한 이후에도 유소년대표로 활약하며 골키퍼 유망주로 손꼽히기 시작했다.

“축구 시작하면서 나한테 재능이 없나하는 생각도 했었고, 골키퍼를 시작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는데, 대표에 뽑히니까 그런 기분들이 한꺼번에 다 날라갔죠. 골키퍼하기를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에요.”

평생 기억에 남을 98 U-16 아시아선수권 예선 및 본선

본격적으로 축구 엘리트의 코스를 밟기 시작한 김영광은 매산중 3학년 시절인 1998년,  U-16 아시아선수권 예선 및 본선에 참가하며 국제경험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회는 김영광으로서는 자신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해줬으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도 여럿 만들어준 대회였다.

본선대회에 앞서 열린 예선에서 중국, 대만과 함께 7조에 소속된 한국 U-16 대표팀은 중국 청두에서 힘든 경기를 펼쳐야 했다. 한국은 대만을 6-0으로 이긴 상태였고, 중국 역시 대만을 6-0으로 이기며 두 팀이 아시아선수권 본선티켓 1장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운명의 한판은 1998년 5월 20일 열렸다. 청두에 모인 5만여 중국 홈팬의 열광적인 성원은 어린 한국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5만여석이 꽉 차서 중국을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형들도 마찬가지였구요.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줄곧 밀렸죠.(웃음) 슈팅수가 중국이 30여개고, 우리는 3개였던걸로 기억해요.(웃음)”

“당시 중국 가기 1주일 전에 손가락이 부러졌었어요. 그런데 대회 때문에 기브스를 하지 않고 받침대로 받쳐서 붕대를 감았죠. 연습할 때는 풀어서 테이핑하고 연습하고, 끝나면 다시 붕대 감고...많이 불편했죠. 공을 막으면 뼈가 손가락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김영광은 중국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냈고,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두 팀 모두 1승 1무에 득실까지 똑같은 상황이라 아시아선수권 본선 진출팀을 가려내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해야하는 상황. 여기서 중국은 제비뽑기가 아닌 승부차기로 결정할 것을 제의했고, 한국 역시 동의하면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당시 중국 골키퍼가 193cm였고, 저는 178cm였어요. 아마 중국 측에서는 승부차기를 하면 자기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봐요. 그래서 승부차기가 시작됐는데 우리 1번 키커가 넣지 못했어요. 불안했죠.(웃음) 그런데 중국 3번 키커가 제가 무서웠는지 밖으로 차버리더라구요.(웃음) 그리고 5번 키커의 슛을 제가 막아내서 결국 우리가 이겼죠.”

“좋아서 난리가 났죠.(웃음) 경기내용에서는 중국이 좋았는데 우리가 이겼으니까요. 게임 끝나자마자 비도 내리고, 중국 관중들은 박수를 쳐주더라구요. 아무튼 제 개인적으로도 손가락이 다친 상황에서의 힘든 경기라 평생 잊혀지지 않은 경기에요.”

어렵게 조 예선을 통과한 뒤 카타르 도하에서 U-16 아시아선수권 본선이 열렸고, 김영광은 최성국, 주광윤, 김두현, 김동진, 김영삼, 한정화 등과 함께 카타르로 향했다.

한국은 일본, 오만, 방글라데시, 바레인과 함께 B조에 속했고, 일본과 오만, 방글라데시를 차례로 연파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조 1위를 결정짓는 최종전에서 바레인에게 3-4로 패하며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영광은 오만과의 2차전에서 실신을 하는 등 힘든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분위기는 좋았어요. 그런데 오만과의 2차전에서 경기 중에 실신을 했죠. 볼을 잡으러 점프한 상황에서 오만 공격수가 허리를 숙여버렸고, 거기에 걸리면서 목부터 그라운드에 떨어졌어요. 바로 정신을 잃었죠.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그 경기 이후 조금은 위축된 부분도 있었기에 바레인과의 최종전에서 실점을 많이 허용했던 것 같아요. 그 경기에서 3-3으로 비기기만 했어도 세계대회 진출이 훨씬 수월했었을텐데 아쉬워요.”

바레인에 패하며 조 2위로 4강에 진출한 한국은 홈팀 카타르에게 1-2로 패하며 3/4위전으로 밀려났고, 거기에서 바레인에게 또다시 패하며 세계대회 진출권을 놓치고 말았다. 만약 바레인과의 예선 경기에서 3-3으로 비겼다면 조 1위로 4강에 진출, 태국과 맞붙는 만큼 세계대회에 진출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았었던 만큼 김영광으로서도 아쉬워할 만한 대목.

광양제철고에 진학하다.

순천 매산중을 졸업한 김영광은 주저없이 광양제철고로 진학을 결정했다. 광양제철과 프로팀 전남에서 후원하고 있는 학교인지라 여러 가지 운동여건이 좋다는 장점과 함께 프로팀 연고학교이기 때문에 프로진출이 수월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또한 U-16 대표팀 시절 감독이었던 기영옥 감독이 있다는 점도 광양제철고로 진학한 이유 중 하나였다.

김영광은 동기생인 임유환(현 교토 퍼플상가), 장경진(현 전남 드래곤즈) 등과 함께 광양제철고를 전국최강팀 중 하나로 이끌었다.

특히 골키퍼 김영광과 중앙수비수 임유환, 장경진이 버티는 수비는 단연 고교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뭐 제 앞에 청소년대표 수비수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안전했어요.(웃음) 일단 저희 학교의 패턴이 1골 넣고 이기는 거였죠. 시합에 나가서 우리가 1골만 넣으면 이긴다는 생각이었고, 비겨도 승부차기에서 이긴다라는 생각이었죠.(웃음) 예전에 전국체전에 나가서는 결승까지 총 4게임을 치렀는데, 2번째 게임을 제외하곤 전부 승부차기로 이겼어요. 수비가 원체 탄탄하니까요.(웃음)”

광양제철고하면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한 기영옥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모두들 기영옥 감독을 무서워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옥 감독을 존경하고 졸업한 뒤에도 따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기영옥 감독님이 무섭고 엄하셔도 잔정이 많으신 분이세요. 무섭게 혼내시더라도 우리를 위해 그러신다는 것을 모두들 알기 때문에 졸업한 뒤에도 자주 찾아 뵙고 그러는 거죠.”

광양제철고 출신들은 모두 그러하듯이 김영광 역시 기영옥 감독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동계훈련 중에 연습게임을 했어요. 그 경기에서 전반 끝날 무렵 크로스가 올라왔는데 제가 위치선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어이없게 실점을 했거든요. 그 당시 제가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감독님께서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이 봐주시고 계신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실수를 한 다음에 감독님이 나오라고 하시더니 지금 당장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삭발하고 오라고 하셨어요.(웃음) 이발소에 흙 묻은 유니폼을 입고 가서 삭발하고 왔죠.(웃음) 더 웃긴 것은 갔다와서 후반전에 또 경기에 뛰었어요.(웃음) 삭발한 상태로 말이죠. 상대 선수들도 웃겼던지 황당하게 쳐다보더라구요.(웃음)”

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볼은 막는다.

앞에서도 언급됐듯이 김영광의 근성, 승부욕은 남다르다. 고교 동기이자 U-20 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동료로서 김영광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던 임유환은 “영광이는 정말 지독해요. 예를 들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상대 프리킥 찬스에서 공이 골대 쪽으로 휘어 들어갔는데, 머리를 골대에 부딪치면서도 끝까지 볼을 막아내더라구요. 머리가 깨지든 어쨌든 일단 볼은 막고 보겠다는 정신을 가진 녀석이에요”라며 혀를 내두른 바 있다.

김영광 본인도 “저번에도 연습하다가 골대에 머리를 받아서 찢어졌어요. 얼굴만 5군데 정도 찢어졌었죠.(웃음) 위험한 순간에는 딴 생각이 안들어요. 일단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설사 부상을 당해 교체되더라도 막을 것은 막고 교체되야죠”라며 강한 승부근성을 드러냈다. 이런 점이야말로 김영광이 골키퍼로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일 것이다.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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