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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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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페예노르트 한국 마케팅 담당 김영완씨, “유럽구단에서 배운 것 한국에서 접목하고파”


2004년 7월 6일 KFA 홈페이지 기사...


송종국이 뛰고 있는 네덜란드의 명문클럽 페예노르트에는 한국 마케팅을 담당하는 한국인 직원이 한 명 근무하고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영완 씨(33세).

상업적인 부분에 밝은 네덜란드 클럽답게 페예노르트는 송종국의 영입과 동시에 한국 마케팅을 전담할 사람을 찾았고, 적임자로 선택된 사람이 김영완씨였다.
김씨는 2002년 리버풀 대학의 ‘Football MBA Industry’ 코스를 이수했으며, 2002 월드컵에서는 FIFA 마케팅 인턴쉽을 통해 경험을 쌓은 재원.

페예노르트에서 근무하게 된 것도 송종국 영입과 동시에 김씨가 먼저 한국 내 마케팅을 위해선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었고, 페예노르트는 김씨의 축구 마케팅에 대한 공부와 경험, 적극적인 의지를 높이 평가해 담당자로 임명한 것이었다.

한국내 축구시장의 한계로 인해 당초 구단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마케팅 수익을 올리지 못해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김씨는 오는 11월 페예노르트와의 계약이 만료 되는대로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페예노르트의 한국 내 마케팅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며, 유럽 명문클럽에서의 실무경험을 한국에서 접목시키고 싶다는 의욕도 강했기 때문.

다음은 지난 6월 중순 국내방송사와 TV중계권 협상을 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김영완씨와 만나 나눈 이야기들이다. 김씨는 인터뷰를 통해 페예노르트에서의 마케팅 업무, 그리고 송종국 및 페예노르트 구단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줬다.


- 기본적인 것부터 물어보자. 먼저 축구를 좋아하게 된 시기나 계기가 있다면.

결정적인 계기는 없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팀 경기는 물론 월드컵과 같은 국제대회를 밤을 새우며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해외축구를 많이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경기 하나하나가 소중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였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수업도 빠져가며 친구들과 경기를 봤었다.(웃음)
넓은 잔디에서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매진하고 돌진하는 그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 축구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시기는 언제인가?

정확하게는 1999년 초이다. 98년부터 직장을 다녔는데, 그 때는 일반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벤처기업에서 해외 마케팅을 담당했엇다. 그런데 워낙 이전부터 축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축구 자체를 업으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실질적으로 축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여기 저기 찾아보던 중에 영국 리버풀 대학에 ‘Football MBA Industry’ 과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건 바로 나를 위한 코스이다’라고 생각해서 지원했다.

정확하게 2000년 12월부로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름대로 준비해서 2001년 4월쯤에 지원해서 합격소식을 듣고, 9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당시도 30-31살 정도였으니 내 나이가 적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월급쟁이로 살 것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벤처 붐이 있었지만, 반대로 노동환경적인 면에서는 워낙 열악하기도 했다. 늘 밤 12시까지 그리 재미있지도 않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옛날부터 좋아했던 축구를 업으로 삼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지금 와서는 현실이란 벽과 부딪치기도 한다. 취미가 업으로 바뀌는 순간 겪어야 하는 문제라고 해야할까.

- 리버풀 대학 입학은 한국인으로서 처음이었나?

내가 세번째였다. 내가 2001/02 시즌에 다녔는데, 내가 다니기 2년 전인 99/2000 시즌에 권성진 씨가 다녔었다. 지금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마케팅을 담당하시고 계신데, 리버풀대 3회 졸업생이시다.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현재 FC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조성대씨가 계셨다.

내 뒤로는 KBS의 송전헌 기자님이 4번째셨고, 이번 시즌에는 MBC 축구해설위원인 서형욱 씨와 최선호라는 친구가 수강했다. 지금까지 전부 6명이며, 얼마전 서울에서 리버풀대 동문회도 했다.(웃음)

- 그 곳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들은 무엇인가?

일단 가장 좋았던 것은 잉글랜드 자체가 축구가 사회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고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공부 과정도 물론 재미있고 좋았지만, 잉글랜드에서 축구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어차피 그 과정을 이수하는 모든 학생들이 축구를 업으로 삼으려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만나면 무조건 축구 이야기뿐이었다.

코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단 우리나라로 치면 산학협력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이론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실무적인 부분에 많이 중점을 뒀다.
예를 들자면 초청강연이 있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케팅 디렉터나 FIFA의 대변인 등 축구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접 실무에 가장 근접한 이야기들을 해줬는데, 이런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좋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축구에 둘러싸여 지냈던 시간인 것 같다.

- 최근 축구 마케팅 관련 유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솔직히 지금 입장에서는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꿈과 이상이 있기 때문에 지원을 하게 되지만, 졸업하고 나서의 현실이 가장 큰 문제이다.

사실상 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취업하게 되는 경우가 현실적인데,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에서 취업해 2-3년간 실무를 더 익히고, 국내에 돌아와 그 배운 것을 접목시키고 싶다는 것이 큰 목표인데, 일단 해외 취업 자체가 자국 사람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과 관련되지 않고서는 어렵다.

만약 한국에 취업해 실무적으로 써먹으려고 해도 시장 자체가 워낙 협소하다보니까 쉽지 않고...
구단만 하더라도 비록 시민구단이 3개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구단들은 인사과정이 아무래도 모기업과 연관되어 있고, 구단에서 뽑더라도 여러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코스를 준비하는 분들께는 도전을 말리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미래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너무 현실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 리버풀대 졸업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는가?

개인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2002 월드컵 직후였는데,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관계로 한국인 1명, 일본인 1명이 월드컵 기간에 FIFA에서 마케팅 인턴쉽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인은 2명이어서 서로 경쟁을 했지만, 한국인은 나 혼자인지라 경쟁이 없었다.(웃음)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뒤 선수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안정환 선수가 잉글랜드 블랙번으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준비를 많이 했었다.

리버풀 대학 교수님에게도 부탁을 했고, 블랙번 담당자에게도 메일을 보내서 안정환 선수가 오게 되면 분명 일본이나 중국처럼 한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안정환 선수의 블랙번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송종국 선수가 페예노르트로 이적이 확정되었고, 나는 페예노트트와는 아무런 인맥도 없었지만, 무작정 웹마스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력서와 함께 ‘나는 이런 사람이고, 한국시장은 이렇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있을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마케팅 디렉터와 연결이 되었는데, 근 한달 동안 한국시장에 대한 리서치를 요구하더라. 한국 프로축구, 한국의 전반적인 축구산업, TV 중계권, 송종국을 이용한 마케팅은 어떤 것이 가능한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은 뒤 페예노르트와 계약을 하게 됐고, 1년이 지나고 재계약을 했다. 아마 오는 11월말까지가 페예노르트에서의 마지막 생활이 될 것 같다. 11월말에 계약이 끝난 이후에는 한국에 돌아오려고 한다. 구단이나 스포츠 에이전시, 마케팅 에이전시, 일반 기업체의 스포츠마케팅팀 등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 그렇다면 이제 페예노르트는 그만둔다는 이야기인데, 이유가 무엇인지.

사실상 한국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마케팅 수익이 거의 소진된 것 같다. 간략하게 페예노르트와 아인트호벤이 한국시장에서 어떻게 마케팅 수익을 얻었느냐하면, 먼저 페예노르트는 ITV와 2년 계약을 하면서 80만 달러를 받았다.

그것이 1차 수익이었고, 2003년 한국 투어 매치(부산)를 통해 40만 유로를 벌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흥행은 참패했지만, 외국클럽의 경우 투어 매치를 할 때 개런티에 대한 지급보증을 받고 오기 때문에 이미지 손상이란 측면 외에는 손실이 없다. 그리고 카파코리아와 유니폼 머천다이징 계약을 하면서 2만 유로를 받았다.

계산해보면 약 13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그 외에 일반기업체, 특히 네덜란드에 법인을 두고 있는 대기업 위주로 스폰서 유치 작업도 했지만 아무래도 네덜란드 시장에 대한 한계가 있었다. 네덜란드 시장이 워낙 국소적이다보니까 기업으로서는 큰 마케팅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이다.

또한 모바일이나 인터넷 등의 시도도 많이 했지만, 모두 결렬됐다. 아직 국내 스포츠 컨텐츠 사업 자체가 수익까지 연결되는 고가 컨텐츠가 되지 못하다보니까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아인트호벤의 경우에는 특별히 한국 마케팅 담당자를 둔 것은 아니었고, 스포츠 에이전시인 스카이콤에서 독점적인 마케팅 권한을 얻었던 케이스이다. MBC와 KBS 공동으로 1년 계약을 하면서 TV중계권료를 90만 달러를 받았는데, 현금은 50만 달러였고, 나머지는 광고를 통해 보전 받은 형태였던 걸로 알고 있다.

이밖에 피스컵 우승으로 200만 달러를 받았는데, 물론 이것은 아인트호벤 선수들의 노력의 댓가이긴 하다. 초청받은 자체는 한국 선수 및 히딩크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에 앞서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가지면서 대전료도 받았을 것이다.
총 금액을 계산해보면 최고 300만 달러 정도 되는데, 그 중 200만 달러(피스컵 우승)는 엄밀히 말하면 제외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렇게 두 팀을 합치면 4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일본과 비교하면 사실 격차가 크다. 일본 같은 경우는 매년 네덜란드 전체 중계권(전경기)이 300만 유로 정도에 타결되었으며, 페예노르트는 오노 신지가 워낙 독보적인 선수이다보니 일본기업이 연간 30만 유로 정도의 오피셜 스폰서로 참여한다.
유니폼 머천다이징도 워낙 발달되어 있고, 이번 매치 투어로도 60만 유로를 받았다.

사실상 유럽구단들에 있어서는 일본이 해외시장의 중심으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도 나름대로의 수익은 얻었고, 페예노르트나 아인트호벤 역시 좁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올렸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 사실 송종국을 영입하면서 경기력 외적으로 페예노르트가 기대했던 부분도 컸을 것 같은데.

2년 정도 구단에 있으면서 지켜봤다. 일부 팬들은 마케팅 자체만을 위해 종국이를 영입했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유럽 구단들이 그렇지는 않다.

첫번째로 보는 것은 선수로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느냐이다. 이 포지션이 비어있는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선수가 누구냐가 제일 중요하다. 2002 월드컵 기간을 전후로 해서 종국이가 오른쪽 윙백으로서 워낙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때마침 페예노르트 부동의 오른쪽 윙백인 브렛 에머튼이 뉴캐슬로 이적하는데 거의 동의한 상태였다. 그래서 종국이가 영입된 것이다.

그런데 에머튼의 뉴캐슬행이 틀어졌다. 페예노르트에서는 이적료에 대해서 한번에 내지 않고, 나눠서 지급하더라도 은행지급보증을 해달라는 요구였는데, 뉴캐슬은 그렇게는 못하겠다였다.
그래서 결국 에머튼은 뉴캐슬로 가지 못했는데, 종국이나 에머튼이나 모두 오른쪽 윙백과 측면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가 마케팅 수익의 측면이었다. 사실 종국이를 영입하기 1년 전에 오노 신지를 영입하면서 엄청난 재미를 봤다. 그 당시 오노가 오자마자 UEFA컵에서 우승했고, 일본내 TV중계권 수입에다 관광객이 엄청났다. 특히 오노가 1-2년차였을 때는 많은 일본인들이 투어를 오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의 엄청난 축구열기를 보고나서 ‘이거 돈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종국이는 취약 포지션을 메울 실력과 마케팅적인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수였던 것이다.

사실 종국이를 영입한 뒤 내 나름대로 구단에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한국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으며, 축구문화 자체가 경제적인 이익을 낼만한 규모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수익 자체를 일본처럼 크게 얻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 등의 조언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페예노르트를 비롯한 외국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자신들의 취약 포지션을 메울 수 있느냐와 이 선수를 키워서 다른 팀에 팔 수 있느냐 등에 대한 기대치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조건이고 선수들이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 선수의 능력과 다른 팀에 팔수 있을만한 발전 가능성에다가 마케팅 수익이 부가적으로 가능하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월드컵 이후 일본, 중국, 한국 선수들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것 같다. 네덜란드 리그는 외국인 선수 규제가 없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모두 모이는데, 실질적으로 마케팅 수익이 나는 곳은 일본과 중국, 한국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구단 역시 아무래도 처음에는 일본과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네덜란드 구단을 비롯한 유럽구단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클럽 운영 자체가 기업 비즈니스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망은 빨리 접고, 잘 대처해서 지금 상황에서 최대의 수익을 얻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인다.

예를 들어 TV중계권 계약도 금액적으로 최소 100만 유로 이상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니까 재빨리 가격을 내려 협상했다.
모르겠다. 빅리그의 유명클럽들이라면 자신들의 자존심상 그 이하는 안된다고 협상을 파기할 수도 있겠지만, 네덜란드 클럽들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빨리 빨리 환경에 맞게끔 접근한다.

- 이번 한국방문 역시 TV중계권 문제로 온 것 아닌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ITV와의 TV중계권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TV중계권 협상을 위해 왔다. 한국시장을 생각해서 페예노르트와 아인트호벤이 협의해 공동으로 중계권안을 마련했다.

여기서 금액을 말하긴 힘들지만, 한국의 현실에 맞춰 굉장히 낮게 책정됐다.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웃음)

한국의 방송권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시청률이나 광고수익, 편성 문제 등으로 볼 때 아직 매력적 포인트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한국 선수가 속해 있는 클럽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네덜란드리그에 대한 인지도 자체가 떨어지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많다.

- 구단에서의 압박이나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한국기업과 비교할 때는 새발의 피다.(웃음)  한국의 기업문화는 위에서의 압박이 대단하지 않나. 눈치를 봐야한다는 것도 크고..

그런데, 페예노르트의 결재 라인은 정말 심플하다. 모든 부서에 있어 소위 중간 보스의 개념이 희박하다. 부서의 최종보스에게 늘 다이렉트로 전달된다. 내가 우리 부서의 디렉터에게 이야기를 하면 디렉터가 회장과 이야기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라인이 워낙 짧다보니까 특별한 압박같은 것은 없는 편이다.

일단 나를 믿었던 것 같고, 현실이 이런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인트호벤과 비교했을 때 아인트호벤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는데, 페예노르트는 그렇지 않았다면 나 자신도 그렇고, 구단에서도 문제를 삼았을 테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그래도 개인적인 욕심이나 아쉬움 같은 것은 있다. 솔직히 마케팅을 하는데 있어 나 스스로가 일본과 조금 비교가 되니까 말이다. 일본까지는 안되더라도 하나하나 가능성있는 요소들을 조금씩 조금씩 해보고 싶긴 한데, 현실에 부딪치니까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그런 면이 있다.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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