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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김진규, “김태영의 뒤를 이을만한 파이터형 수비수”


2004년 5월 8일 KFA 홈페이지 기사...


드디어 고대하던 U-20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게 된 김진규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당초 U-20 대표팀의 중앙 수비라인은 임유환-김치곤 콤비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김진규 역시 많은 경기에서 출장했지만 그 경기들 역시 대부분 두 선수 중 한명이, 보다 정확히 말해 김치곤이 소속팀 사정으로 대표팀 합류가 불가능한 경우였다.

물론 박성화 감독은 김진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다양한 경기경험을 통해 발전을 꾀하길 원했지만, 그것은 좀 더 먼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 다가온 세계선수권은 진검승부의 장이었고, 김진규는 임유환과 김치곤의 뒤를 받치는 귀중한 백업멤버의 개념이었던 것.

그러나 2003년 중반 한양대를 중퇴하고 교토 퍼플상가로 건너간 임유환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대회를 앞두고 심각한 컨디션 저하를 보이기 시작했다. 박 감독은 세계대회가 시작할 때까지는 임유환의 컨디션이 정상궤도로 올라올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빗나갔다. 세계대회를 위해 UAE로 출국한 뒤에도 임유환의 컨디션은 정상으로 진입하지 못했고, 김진규는 주전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유환이형이나 치곤이형이나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모자르지 않은 좋은 수비수들이에요. 제가 매일 장난식으로 ”형들은 내 우상이야“라고 말하곤 했죠. 유환이형은 머리를 잘 쓰는 플레이를 해요. 스위퍼를 섰을 때도, 그리고 4백을 써도 머리를 잘 쓰고, 전체적인 수비라인을 조절하는 것이 뛰어나요. 또한 치곤이형은 일단 전술 이해도가 뛰어나고, 상대 공격수의 플레이를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사실 저도 평가전 등을 많이 뛰긴 했지만, 이 형들이 뛰는 것을 보고 많이 배웠죠.”

기막힌 카운터어택으로 강호 독일을 2-0으로 꺾다.

U-20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이 처음 맞붙을 상대는 ‘전차군단’ 독일이었다. 호기롭고 배짱이 두둑한 김진규이지만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한 세계대회 첫 게임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파워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김진규이지만, 독일 선수들은 그런 김진규보다 더욱 강력한 신체를 갖고 있었다. 김진규로서는 부담스러웠던 상대.

“처음에 경기장에 들어갈 때는 '자 들어가자!' 이러면서 기운차게 들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그라운드를 밟고 경기를 뛰려고 하니 쉽지 않았어요. 전반전에는 정말 발을 제대로 떼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긴장했던 거죠. 세계대회의 무게감은 역시 보통이 아니더라구요.”

“더군다나 독일애들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 동안 아시아나 남미팀들과도 경기를 많이 해봤는데 이 선수들은 수비가 밀치고 그러면 밀려나거든요. 그런데 코너킥 상황에서 제가 몸으로 강하게 부딪쳤는데 꼼짝을 안하는거에요. 또 쳤는데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돌을 치는 줄 알았어요.(웃음) 힘에서 안된다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전반에는 독일애들이 힘있게 나오고 우리가 풀어나가는 것이 잘 되지 않으니까 전방의 (김)동현이나 (정)조국이에게 길게 찼어요. 특히 동현이는 힘에서 걔네들과 맞설 수 있거든요. 그리고 후반전에 들어서자 독일애들이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부터는 숏게임으로 나갔죠. 그러다보니까 찬스가 났고, 2골을 넣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팀의 2번째 골은 사실상 김진규의 작품이었다. 독일의 프리킥 상황에서 볼을 획득한 김진규는 바로 역습에 나섰고, 이종민과의 주고 받는 패스를 통해 순식간에 독일 문전까지 진입했다. 그리고 골키퍼가 접근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쇄도하던 이종민에게 연결했고, 이것이 골로 연결되며 승부에 쐐기를 박은 것.

“정말 기분 좋았죠. 예전에 제가 공격수를 봤던 적이 있잖아요. 그래서 흐름을 알아요. 그 상황에서 독일 수비수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내가 나가면 되겠다라는 판단이 들었고, 종민이형이 있길래 주고 받는 패스로 전진했죠. 마지막 순간에 종민이형이 다시 패스를 줘서 골키퍼와 1:1로 맞서는 찬스가 왔어요.”

“솔직히 제가 결정짓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수비수는 막말로 뜰 기회가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기회 아니겠어요.(웃음)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거 못 넣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볼을 드리블해서 들어가는데 진짜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맴돌더라구요.그 상황에서 옆에서 종민이형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줬죠. 다행히 종민이형이 골을 넣어줬구요.”

전반이 끝나고 교체됐던 파라과이전, 그리고 논란이 일었던 미국전

독일전에서 기분좋은 승리를 거둔 한국은 파라과이와 2차전에서 만났다.
이 경기에서 김진규는 스스로 고쳐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던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인해 전반 45분만을 소화하고 교체되고 말았다. 전반 파라과이 선수와의 몸싸움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김진규가 흥분했던 것.

“전반 내내 이상하게 게임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열받아있는데, 파라과이 선수 중 하나가 (오)범석이를 걸어서 넘어뜨린거에요. 그래서 제가 달려가서 그 선수를 밀치면서 꺼지라고 했죠.(웃음) 그러면서 서로간에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던 것이에요. 사실 그렇게 흥분한 것은 아닌데.. 그런데 감독님은 제가 계속 뛰기 어렵다고 판단하셨는지 전반 끝나고 교체하셨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분들에게 ‘김진규는 너무 거칠다’라고 인식된 것 같아요.”

1승 1패로 맞이한 미국전에서 한국은 무승부만 기록해도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소 석연치 않았던 판정으로 전반 초반에 2골을 내준 한국은 이 상황에서도 16강행이 가능한 상황인지라 소극적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미국 역시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인지라 마찬가지로 경기에 임했다.

공격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양팀의 경기는 관중들의 비난을 받았고, 한국의 축구팬들 역시도 분노섞인 반응을 보였다. 16강 진출이 우선이냐,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그 자체가 우선되느냐에 대한 갈림길이었고, 박 감독의 선택은 16강 진출을 우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갔고, 많은 팬들이 그렇게 올라가서 뭐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FIFA에서 주관하는 세계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감독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결국 감독은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을 뿐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경기내용은 만족스러웠다’라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파라과이전 사건도 있고해서 솔직히 미국전에서는 감독님이 저를 안뛰게 하실줄 알았는데 뛰게 됐어요. 운이 좋은가 봐요. 전반 초반 주심의 판정은 이해가 안됐어요. 2차례 페널티킥이 주어지면서 순식간에 0-2가 됐죠. 그리고 이후 두 팀 모두 득점 욕심없이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했어요. 그때는 우선 16강 올라가는 것이 당면과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우리 팀 내부에서는 반응이 반반이었어요.”

“일단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고 말하는 형들도 있었고, 큰 대회 나와서 쪽팔린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형들도 있었어요. 둘 다 맞는 이야기들이죠. 선수들 입장에서는 우리 실력껏 해서 이 벽을 못넘으면 할 수 없지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감독님은 감독님 입장이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감독이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감독은 일단 성적으로 말하는 것이니까요.”

너무나도 아쉬웠던 일본과의 16강전 - “이런 팀에게 져야하나”

우여곡절 끝에 16강에 진출한 한국을 기다리고 있는 팀은 일본이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4연승을 거두고 있었던 터라 김진규를 비롯한 선수단 전원은 자신감에 충만한 채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전체적인 경기내용에서 한국은 주도권을 잡은 채 경기를 풀어나갔고, 전반 막판에 터진 최성국의 골로 승부는 그대로 한국으로 기우는 듯 보였다.

“솔직히 일본에게는 자신 있었어요. 그리고 16강전을 준비하면서도 형들도 모두 ”일본에게는 무조건 이겨야한다. 진짜 지면 안된다“라고 계속 이야기했고,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던 형들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한번 8강에 가보자고..”

“전반부터 우리 플레이가 나왔고, 성국이 형의 골까지 터져 완전히 우리 페이스였어요. 우리는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마음대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죠. 그런데 후반 중반에 접어들면서 ‘체력이 딸리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경기 흐름상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일본 역시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고...”

그러나 쉽게 끝날 듯 보였던 승부는 일본이 후반 중반 투입한 사카다 다이스케(요코하마)에 의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그 동안의 경기에서 한국의 수비진에 철저히 봉쇄됐던 사카다를 후반 조커로 투입하는 변화를 꾀했다.

“후반 중반이 넘어서면서 일본에서 사카다를 투입시키더라구요. 제가 사카다를 잘 알고 있는데, ‘쟤가 들어오면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카다가 어떤 스타일인가 하면 전반부터 같이 뛰면서 부딪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선수에요. 그런데 후반 20분이 넘어서면서 들어왔잖아요. 그 때 우리는 힘이 거의 빠진 상태였고,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결국 사카다에게 한방 먹고 연장까지 가게 됐죠.”

“동점골 당시 (오)범석이가 미끄러졌어요. 잔디가 깊은데다가 역동작에 걸려서 그랬던 것이죠. 지려고 하면 다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솔직히 연장에 가서도 자신있었어요. 후반 막판에 (정)조국이도 들어와서 (김)동현이와 투톱을 이뤘는데, 힘과 결정력이 있는 애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몇 차례 좋은 찬스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쳤고, 사카다에게 또다시 골을 허용하고 패하고 말았어요.”

“그 순간은 정말 세상살기 싫었어요. 이런 팀에게 져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계속해서 이겼던 팀이고, 분석도 많이 했고, 질 이유가 없는 팀이었거든요.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끝나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억울하더라구요. 지금까지 2년여 동안 고생했던 순간들도 떠오르고...눈물이 그냥 흘러나왔어요. 남자는 울면 안된다고 하지만 울지 않을 수가 없었죠. 너무 허무했어요.”

2003년 전남으로의 입단

사실 김진규는 자신이 전남에서 뛰게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내심 집에서 가까운 포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카우트에 적극적이었던 전남이 결국 김진규를 획득하는데 성공했고, 첫 시즌이었던 2003년 김진규는 18세의 신인답지 않게 11게임에 출장하며 프로데뷔골까지 기록하는 등 프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U-20 대표팀과 프로무대에서 모두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준 것.

“솔직히 전남으로 갈줄은 생각못했어요. 제가 그만큼 하는 줄도 몰랐고..(웃음) 그냥 프로팀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감독님께 전했을 뿐이죠. 2학년때인가 세레소 오사카에서 제의가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가기보다는 국내 프로팀에서 좀 더 배운 뒤 해외로 나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포항으로 가고 싶었어요. 일단 집에서 가깝고, 제 또래 애들을 많이 키워준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전남에서 저를 잘 봐주셨는지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섰어요. 저 역시도 전남행에 대해 불만은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들였죠. 그리고 이제 프로팀에 들어갔으니 목표를 잡고 경기에 뛰었죠. 처음에 20게임을 뛰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3월 30일 프로데뷔전을 치르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프로에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더라구요. 게임을 치르면서 점점 더 자신감이 붙었죠. 비록 목표달성에는 실패했지만, 11게임을 뛰었고 만족스런 한해였어요. 5월 21일 부천전에서는 프리킥으로 골도 넣었구요.”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무대에 뛰어든 김진규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훈련 프로그램부터 시작해 경기의 템포, 파워, 경기운영능력 등 모든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런 면에서 어린 나이에 프로 1군 무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김진규로서는 행운아라고 할 만 하다.

“일단 훈련프로그램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게임 자체도 아마추어는 단순하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프로에서는 여기저기 패스웍으로 경기를 만들어나갈 줄 알죠. 물론 경기템포에서도 차이가 나구요. 또한 아마추어는 후반 들어 힘이 떨어져서인지 경기가 많이 처지는 면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지난 시즌을 뛰면서 뚜따(당시 수원)가 가장 까다로웠어요. 이번 시즌에 뚜따가 한국을 떠나 정말 행복해요.(웃음) 작년에 뚜따한테 걸려서 죽을 고비가 몇 번 있었거든요.(웃음) 파워 있지, 드리블 좋지, 슈팅력과 헤딩력까지..스트라이커로서 갖출 것을 다 갖춘 선수였던 것 같아요. 그 외에 다른 공격수들과는 모두 해볼만 해요.”

김진규의 목표점이자 가장 존경하는 수비수 김태영

김진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김태영 선수처럼 되고 싶다”라고 말하곤 했다.
소속팀 선배인 김태영은 플레이 자체도 김진규와 비슷한 부분이 많을뿐더러 철저한 사생활 관리와 성실성, 리더쉽 등 외적인 면에서도 배워야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모로 비슷한 스타일이시죠. 평소에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동계훈련 갔을 때도 태영이 삼촌이 ”이런 부분은 이렇게, 저런 부분은 저렇게 하면 좋다“라는 식으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런 부분은 고쳐서 저렇게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돼요. 운동장에서 어떻게 해야하고, 사생활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많이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나이차가 많이 나서 제가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분이지만, 옆에 있으면서 많이 배울겁니다.” (전남에서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배를 삼촌이라 부른다고 한다.- 편집자주.)

무릎부상으로 인한 수술과 재활

2004년초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어 카타르 8개국대회에도 참가했던 김진규는 자신보다 3-4살 많은 형들과의 경쟁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고 특유의 승부근성으로 적응해나갔다. 김호곤 감독도 김진규에게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04년 2월 중순, 카타르대회가 끝난 뒤 있었던 울산에서 훈련에서 김진규는 무릎부상을 입어 팀을 이탈하고 말았다. 2002년 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을 입은 것처럼 올림픽 아시아최종예선과 K리그 개막을 앞두고 또다시 닥쳐온 시련이었다.

무엇보다 올림픽대표팀도 대표팀이지만 이장수 감독 부임과 함께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힘쓰고 있던 소속팀 전남의 전력손실이 컸다. 어느덧 김진규는 팀의 주전급 수비수로 발돋음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울산대와 연습게임 도중에 킥을 하는데,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조금 오더라구요. 그리고 한번 부딪쳤는데 통증이 왔고, 마지막으로 킥을 했는데 통증이 강하게 왔어요. 그냥 주저앉았죠. 그 당시에는 무릎이 다 펴지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이후 치료하면서 경과가 좋았어요. 뛰어도 되고, 공을 차도 통증이 없었죠.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없을 거라고 말했는데, 대신 MRI는 한번 찍어보자고 하더군요. 저는 안찍어봐도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대표팀 최주영 선생님께서 그래도 사람 몸은 모르는 것이니까 찍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검사를 받고, 밑에서 최 선생님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이 전화를 받는데 얼굴표정이 심각하시더라구요. 전화를 끊으시면서 선생님이 무릎인대가 찢어졌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스트레스가 확 몰려왔죠. 아시아대회처럼 또 이렇게 되나라는 생각도 들고...사실 재활로 고쳐도 된다고 했는데, 대신 재활하다가 혹시라도 더 찢어지면 수술을 해야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렇게 되면 기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바로 말했어요. 그럴바에는 지금 빨리 수술해서 정규시즌을 1게임 더 뛰는 것이 낫다구요. 원래는 한국에서 수술하려고 마음먹고 구단에 이야기했는데, 이장수 감독님께서 확실하게 독일에서 하라고 말씀하셔서 독일을 갔다 왔죠.”

독일에서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이후 김진규는 재활프로그램을 받아서 국내에서 본격적인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이제는 100% 회복되었고, 근육테스트 등 여러 검사에서도 정상치를 회복했다. 실제로 지난 5일 부천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무실점에 일조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뛰려니 너무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말이다.

지난 U-20 대표팀의 한을 풀겠다 -  막내에서 최고참으로

2003년 12월 8일, 일본과의 U-20 세계선수권 16강전에서 골든골로 패한 뒤 울음을 터트렸던 김진규는 다시 한번 세계무대로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만 19세로 아직 U-19 대표팀 연령에 속해 있는 김진규는 형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팀으로 다시 한번 세계로 향할 꿈을 꾸고 있는 것.

당시에는 팀의 막내였지만, 이제는 고참으로서 팀을 이끌어가야하는 책임이 있다. 박성화 감독과 이광종 코치, 그리고 박주영(고려대), 백지훈(전남)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새로운 인물들.

“이제는 제가 거의 대장이죠.(웃음) 예전에는 형들에게 애교도 떨고 그랬는데, 이제는 제가 고참이니까 까불지 말고 좀 더 의젓해져야 될 것 같아요. 애들이 잘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건 아니다라고 이야기도 할 줄 알아야 하구요. 예전에 처음 소집됐을 때 저는 마침 U-20 대표팀이 소집되어서 합류를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훈련에서 만났을 때 애들하고 서먹서먹했었어요.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먹을 것을 사서 돌리기도 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그랬죠.”

지난 U-20 대표팀에서 팀의 막내로써 박성화 감독에게 많이 혼났던 김진규. 이제 팀의 고참이 됐으니까 대우가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슬쩍 물어봤다.

“박 감독님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세요. 선수는 선수 대우를 해주실 뿐 고참이라고 봐주시는 건 없어요. 만약 제가 프로선수다, 올림픽대표팀에도 갔다왔다 이런 것을 갖고 여기서 건방을 떨면 감독님 같은 분은 경기 못뛰게 하시죠. 이 팀에서 제가 열심히 하면 경기를 뛰는 것이고, 건방 떨고 그러면 경기 못뛰는 거죠. 저도 그런 것은 싫어요. 그냥 열심히 할 뿐이에요. 감독님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감독님의 전술적인 스타일도 잘 알기 때문에 좋은 호흡을 맞춰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저번 팀에 비해 수비라인의 안정감은 많이 떨어져요. 소집해서 훈련한 기간이 거의 없었잖아요. 수비는 개개인이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력이거든요. 지난 U-20 대표팀도 처음에는 형편없었어요. 초창기에는 수원과 연습게임에서 7골을 내주기도 했어요. 오랜 훈련을 통해 갈수록 팀웍과 수비조직력이 갖춰지면서 좋아진 것이죠. 이번 팀도 훈련을 통해 맞춰나간다면 발전할 거에요. 다만 감독님께서 대표팀에서도 계시기 때문에 우리팀 훈련시간을 많이 가지실 수 있을지 걱정스럽긴 해요.”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

올해 김진규는 2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먼저 소속팀 전남에서 활약을 펼쳐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며, 또 하나의 목표는 다시 도전하는 U-19 대표팀을 아시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끌어 내년에 열리는 U-20 세계선수권 티켓을 획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제가 프로선수이니까 K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 하겠죠. 부상으로 인해 초반 스타트가 늦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일단은 10게임 출장을 목표로 잡았어요. 물론 팀이 우승하는데 일조하고 싶구요. 그리고 올해 열리는 U-20 아시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세계대회 티켓을 따고 싶어요. 아시아대회 우승도 우승이지만 일단은 세계대회 티켓을 딸 수 있을 정도면 만족해요. 중요한 것은 세계대회이니까요.”

“사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제가 축구로 성공한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하지 못했어요. 중고등학교때까지는 그냥 축구가 좋아서 한거에요. ‘프로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고..’ 이런 꿈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청소년대표에도 뽑히고, 프로무대에서도 뛰게 되고, 그 과정에서 꿈도 하나둘식 생겨났어요.”

“U-20 대표팀에서 뛰다가 ‘올림픽대표 형들이 잘하긴 하지만 나도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들어갔죠. 지금은 국가대표 상비군이라도 한번 뽑히고 싶어요. 프로무대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게임도 뛰고, 그러다보면 국가대표 선발도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닐거에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에요. 국가대표든, 해외진출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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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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