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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신무광 기자, "한국축구와 함께 해온 일본 최고의 한국축구전문가"


2003년 4월 3일 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지난 3월 11일, 일본 최고 권위의 스포츠 저술상인 미즈노 스포츠라이터상 대상의 수상자로 한국축구를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재일교포 3세 신무광(31) 씨가 선정됐다.

신무광 씨는 지난 2000년 아시안컵 이후부터 2002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한국 국가대표팀을 밀착 취재했던 결과물로 <히딩크 코리아의 진실>이란 책을 출간했고, 이것이 2002년 일본 최고의 스포츠 저술로 평가받은 것이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프리랜서 신무광씨는 1997년부터 한국축구계를 취재하기 시작했고, 이후 일본의 축구 전문지 <사커 다이제스트>와 일본내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인 <고단샤>에서 발행하는 각종 잡지에 꾸준히 한국축구소식과 심층 취재기사를 기고해 왔다.

단행본으로는 '히딩크 코리아의 진실' 외에도 'With Korea-월드컵 성공에의 길',  그리고 홍명보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의 일본어판을 썼다.

한국 국가대표팀 대부분의 국제경기를 직접 현장 취재하면서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한국축구 전문가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음은 콜롬비아전 취재와 쿠엘류 감독 인터뷰를 위해 내한한 신무광 씨와 나눈 한국축구 및 일본축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이다.


- 먼저 미즈노 스포츠라이터상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한다. 이 상에 대한 설명과 수상소감을 말해달라.

1990년부터 창설되어 매년 스포츠 관련 보도와 평론, 논픽션 등을 대상으로 해서 주는 상이다. 지금까지 카리스마 있고 명망 높은 프리랜서들이 대부분 수상을 해왔기 때문에 내가 그런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당연히 기쁘기도 했다.(웃음)

한국 축구가 있었기에 이 상을 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마무리에도 항상 쓰는 것이지만 내 어색한 한국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정성껏 답변해줬던 한국의 축구 선수들과 관계자, 그리고 취재활동을 많이 도와줬던 한국 기자분들과 '붉은악마' 서포터들에게 감사드린다.

- 최우수상 수상에 진통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사실 수상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심사위원 사무국에 전화해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무국에서는 "지금까지 심사를 하면서 올해처럼 격론이었던 것은 처음"이라며 "작품의 좋은 부분 이외에 부정적인 부분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인쇄미스나 일본어 표현이 어색한 면, 히딩크 감독의 인터뷰가 너무 적다는 등의 약점이 있어 최우수상에 부적당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격론 끝에 마지막에 심사위원이셨던 소설가 무라카미 류씨가 이 작품으로 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사무국 사람에 의하면 무라카미 씨는 "부족한 면이 많지만 스포츠 논픽션이란 읽으면서 재미있고, 흥분되고, 드라마틱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신무광씨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무엇보다도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그라운드에서 취재하고 있다는 현장감, 힘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심사위원도 "요즘 기자들은 책상에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현장에서 쓰고 있는 글이라는 느낌이 풍겨온다.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이런 기자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일본 스포츠 기자계에 있어 좋은 일"이라고 극찬을 해서 황송할 정도였다.

-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책 자체는 2000년 아시안컵부터 시작해 2002년 월드컵 4강까지 한국축구의 행보를 담고 있다.  홍명보, 유상철 등 몇몇 선수들과 박항서 코치 등의 이야기를 종합해 히딩크 감독의 한국 대표팀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조명했다. 현장취재도 많이 했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이런 것들을 종합했다.

내용 자체는 한국 축구팬이라면 특별히 새롭게 여길 만한 부분은 없다.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술하면서 나름대로 내 의견을 내놓거나 인터뷰를 중간중간 배치하는 형식이었다.
결국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선수들이 자신들의 힘을 믿었고, 감독이 선수들을 믿었고, 선수들도 감독을 믿었고, 국민들도 선수를 믿었고, 선수는 국민에게 보답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믿음들이 합쳐져 4강까지 갔다는 것이다.

- 축구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초등학교 5학년때 82 스페인 월드컵이 열렸다. 자연히 리트바르스키, 브라이트너, 루메니게, 슈마허(이상 서독),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마라도나(아르헨티나), 지코(브라질), 플라티니, 티가나(이상 프랑스) 등의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 일본에서는 <캡틴 츠바사>라는 축구만화가 큰 인기였는데 나 역시도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이런 영향으로 인해 중학교까지 축구선수생활을 했고, 고교와 대학에서는 럭비를 했다. 이후에도 축구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다.

- 축구 관련 프리랜서 일을 하기 전에는 격투기 등 다른 분야도 많이 취재했다고 들었다.

1994년 3월에 대학을 졸업한 뒤 4월부터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일본에는 언론 사 소속 기자 외에 프리랜서가 많은데 보통 3-4명의 프리랜서가 모여 편집 제작실 같은 것을 운영한다.

잡지사에서 편집 제작실에 일을 맡기면 우리가 일을 해주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잡지에서 30페이지 분량을 맡기면 우리 나름대로 취재를 통해 30페이지 분량의 취재기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 것이나 해야하니까 격투기도 했고, NBA(미국 프로농구)도 취재했다. 격투기 같은 것은 아직도 하고 있다. 축구만으로는 생활이 안되기 때문이다.(웃음)

물론 그때도 축구는 했었는데 94년부터 96년 5월경까지는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는 것보다는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가공해서 기사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 한국축구에 관심을 갖게된 시기는 언제였는가?

아무래도 1996년 5월 31일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결정이 컸다. 이번 수상도 사실상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없었다. 아무 것이나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나 자신만의 테마도 없었다.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된 이후 '한국 축구에 대한 취재, 이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곧바로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원에 문의해 대한축구협회 전화번호를 받았다. 전화를 했더니 받은 사람이 송기룡 씨(현 홍보국 차장)였고, 나는 "일본에 사는 신무광이라고 합니다. 재일교포입니다. 이번 공동개최를 계기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국축구를 일본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한국에 인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송기룡 차장님께 연락하면서 많은 조언을 받았다. 1997년 8월에는 송 차장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한국 서포터들이 일본 축구를 답사하려고 가니까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나 역시 한국에 인맥이 없던 터라 많은 사람을 만나 나 자신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이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힘닿는대로 도움을 줬다. 당시 만났던 사람이 붉은악마 초대 회장이었던 신인철 씨였다.

그리고 2개월여 뒤인 1997년 9월 28일 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을 앞두고 붉은악마가 일본에 원정을 왔고, 신인철 씨의 부탁으로 붉은악마를 도와주며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들과 만나 같이 지내면서 한국축구가 가진 문제점, 예를 들어 4강 제도와 학원축구, 대표팀 위주의 관심과 프로활성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또한 황선홍은 어떤 선수이고 홍명보는 어떤 선수라는 등 각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축구를 배워나갔다.

붉은악마 친구들은 이후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따뜻하게 맞이해줬고, 지방을 갈 때도 그 지역 붉은악마 회원들이 환대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국 기자들도 알게 되었고, 많은 축구관계자들을 알게 되면서 한국축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 일본 내에 한국축구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팔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실 그랬다.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축구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소식을 듣고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으니 이것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계속 나아갔다.

1996년 12월부터 사커 다이제스트 잡지에서 '한일 축구 격투사'라는 제목으로 한국 축구 이야기가 매주 연재됐는데,  한국 축구 소식은 그 옆에 자그맣게 실렸다.

처음에는 자그맣게 실렸던 한국축구 소식이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2페이지로 늘어났고, K리그와 한국 선수 인터뷰 등이 실렸다. 그 기사를 보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와서 이런 것을 해보자, 또 다른 출판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다뤄보자라고 하면서 점점 영역을 확대했다.

그리고 2001년 이후, 그러니까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이후 일본에서도 한국축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체질개선을 꾀한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 한국축구를 소개하면서 자긍심이나 성취감 같은 것도 많을 것 같다.

일본에서 한국축구를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은 취업이 제한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 사회의 책임도 있지만 재일교포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면도 있다. 나 역시 고교나 대학 시절 '나는 재일교포니까 여기까지 하면 된다. 여기까지밖에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한국축구는 일본에서 신무광이란 이름으로 스포츠 언론계에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내가 쓴 기사를 보고 부모님이나 가족, 재일교포 친구, 후배들이 자랑스러워 해준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들은 내가 다케히로라는 일본이름이 아닌 신무광이란 이름으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고, 나를 통해 일본에서 한국축구를 알게 된 점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한 일이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뻤고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이렇게 자리를 잡음으로써 다른 재일교포들도 보다 영역을 넓혀 프리랜서 쪽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특히 한국축구는 내 일이고 기쁨을 많이 느끼고 있으니 재일교포 후배들 중에서도 한국축구 전문가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일본의 축구 프리랜서 상황은 어떤가.

원래 일본은 축구에 지속적인 관심이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고 스포츠 신문도 야구 위주이다.

그런 상황에서 J리그가 생기면서 사커 다이제스트, 사커 매거진 등의 기존 축구 잡지가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바뀌었고 다른 잡지도 많이 생겼다. 잡지가 많이 생겼다는 것은 그것을 제작할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축구라는 것이 사람마다 각각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그만큼 독자들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것이고, 그런 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축구 프리랜서 기자도 많이 늘어났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 축구 전문지 이외의 잡지에서는 축구를 거의 다루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축구전문지 외에도 스포츠 종합지, 만화잡지, 심지어 여성잡지와 패션잡지 등에서도 축구특집 같은 것을 다룬다.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축구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시키는 것보다는 경험 있는 프리랜서에게 시키게 된다.

축구전문지의 경우도 편집부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기사를 소화해 내지만, 모자란 부분은 프리랜서에게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시장이 크기 때문에 많은 프리랜서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 그렇다면 프리랜서들의 경우 모두 축구취재로만 생활할 수 있는가?

현재 일본 내에는 100명 이상의 축구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축구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도 병행해야 생활을 할 수 있다. 나 역시도 격투기 등의 취재를 하곤 한다. 축구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역시 작은 것부터 시작했고,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시각과 독특한 글을 갖고 있기에 그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나 같은 경우 그런 독특함이 없었기 때문에 철저한 현장 취재를 선택했다.(웃음)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 한국의 축구팬들은 일본 축구전문지에서 볼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에 부러움을 표시하곤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이 더 전문적이다라는 것보다는 일본이 좀 더 다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는 많은 프리랜서가 있고, 기자들이 있다. 스스로 많은 조사를 통해 발표해야 하며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팬들도 그 기사를 보고 "저 기자는 안된다, 이 기자는 괜찮다"라고 평가한다.

더군다나 프리랜서의 경우 이름이 곧 상품이다.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연구를 해야하고, 현장에 가야하고, 남이 하지 않는 부분을 파헤쳐야 한다.

- 일본도 스포츠 일간지의 경우 주기별로 부서 로테이션을 하는가?

그렇다. 일본 신문들도 부서별로 로테이션을 한다. 축구부를 맡았다가 다른 부로 옮길 때가 되면 두가지 부류로 나뉘어 진다.  지시대로 그냥 다른 부서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신문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잡지를 하다가 프리랜서로 가는 경우도 있고.

- 한국을 자주 접하면서 한국 축구언론에 대해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한국의 신문기사는 일본 신문기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만 축구잡지의 경우 다소 약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한국 잡지의 경우 매일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유가 있음에도 현장에 많이 나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예를 들어 쿠엘류 감독이 부임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한 명 정도는 밀착취재를 하며 현장에서 계속적인 취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신문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잡지에서 해줘야 하는데 그런 면이 일본보다는 다소 약한 것 같다. 신문과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 사람들은 신문을 보게 마련이다.

차별화가 중요한데, 이것은 결국 기획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좀 더 색다른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고, 기획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리랜서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어느 분야든 프리랜서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리랜서는 자기 자신이 영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을 어떻게 파느냐, 어떻게 기획을 해서 출판사나 잡지에 제출하느냐가 중요하다. 프리랜서들이 많이 생기면 다양한 시각이 생기게 되고, 글 하나 하나에 자기책임을 느끼게 된다. 한국에도 프리랜서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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