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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최성국, “마술적인 드리블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 도전”

U-20 아시아선수권 일본전 경기모습/축구협회 홍석균

2003년 3월 27일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2002년은 최성국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최성국은 U-19 대표팀과 월드컵대표 연습생, 아시안게임대표 등으로 뽑히며 그 어느 해보다 알차고 기억에 남는 한해를 보냈다.

그리고 이 해야말로 ‘축구선수 최성국’이 국내축구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된 해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U-19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최성국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 시작은 2002년 1월이었다.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U-19 대표팀(현 U-20 대표팀)이 처음 소집되고 나서 최성국은 난생 처음으로 주장을 맡았고 팀의 중심으로서 선수들을 이끌며 새로운 경험을 했다.

“사실 제가 주장으로 팀을 이끈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소속팀에서도 주장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대표팀 차출 등으로 밖에 나가있는 기간이 많아 한번도 해보지 못했죠.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로 애들한테 신경도 써줘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부담스런 면도 있었죠. 그래도 재미있고 애들도 잘 따라줘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2년 3월 13일, 일본을 상대로 U-19 대표팀의 공식 첫 경기가 펼쳐졌고 역사적인 첫 골은 최성국의 몫이었다. 경기 내내 현란한 드리블을 바탕으로 일본 수비를 휘저었던 최성국은 후반 5분, 왼쪽 측면을 돌파한 뒤 최종 수비수까지 제치는 등 3명의 일본 수비수를 농락하며 결승골을 뽑아냈다.

최성국이 왜 ‘리틀 마라도나’로 불리우며 ‘팀의 중심’으로서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원맨쇼였다. 일본 U-19 대표팀의 다시마 고조 감독마저 “일본선수들도 그의 플레이를 배워야한다”며 최성국을 극찬했을 정도였다.

“대표팀의 첫 공식경기였고, 더군다나 비중이 큰 한일전이었기 때문에 제가 꼭 골을 넣겠다기보다는 팀이 이겨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일본전에 앞서 준비했던 기간도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골을 넣어 이겼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고, 더군다나 공식 첫 경기이자 한일전이어서 더욱 기분 좋았죠.(웃음)”

“사실 그 전에는 일본이 앞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 경기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리고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그리고 아시아선수권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둔 뒤에는 기술면에서 한국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나 운영능력 같은 부분은 일본에게 배워야할 듯 싶어요. 이런 부분만 보완된다면 일본이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팀들도 무섭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본과의 2차례 평가전을 통해 최성국의 인기는 급상승했고, 이곳저곳에서 그의 팬클럽이 만들어졌다. 어린 선수인 만큼 갑작스런 인기상승으로 인한 여러 가지 우려되는 점도 있었고, 최성국에 대한 안티세력도 나타났기에 더욱 걱정스러웠지만 오히려 최성국 본인은 순수하게 기뻐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팬들이 저를 알아주니까 처음에는 정말 어리둥절했었고, 한편으로는 좋았죠.(웃음) 인기가 올라가면 잃는 부분도 있다는데 아직까지는 나쁜 점은 없는 것 같아요. 똑같은 사람인데도 팬들이 저를 알아주고 길을 지날 때도 알아본다는 것이 행복하고 고맙고 그래요.”

“저에 대한 안티세력이 있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왜 가만히 있는 나를 이렇게 싫어하고 공격하는 걸까라고 신경이 쓰였죠.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 일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똑같은 사물을 봐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지금도 저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분들께도 인정받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일본과의 평가전 및 월드컵대표팀 훈련생으로의 발탁

일본과의 2연전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낸 최성국은 젊은 신예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던 히딩크 감독의 눈에도 들었고, 결국 2002년 4월 코스타리카전에 대비한 대구전지훈련에 참가하게 됐다. 비록 J리거들의 공백을 대체할 훈련 파트너의 성격이었지만 최성국은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경쟁을 펼치며 경험을 쌓았다.

이후 4월 26일 열린 중국 U-19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는 등 상승세를 이어간 최성국은 월드컵을 1개월여 앞두고 정조국, 여효진, 염동균과 함께 월드컵대표팀의 훈련 파트너로 또다시 합류하는 영광을 얻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엔트리를 염두에 둔 23명의 선수들 외에 젊고 재능 있는 유망주를 추가로 선발, 선배들과 똑같이 훈련을 소화하게 하며 월드컵 이후의 한국축구를 대비하게 했고 최성국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한국 최고의 선수들, 그리고 최고 감독과의 훈련은 최성국에게 있어 크나큰 행운이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정식멤버로 한번 뽑히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결국 정식멤버가 아닌 훈련생으로 있게 됐지만 제가 열심히 하면 형들에게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고 제 자신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노력했죠. 사실 거기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됐어요. 형들과 같이 훈련한다는 것, 그리고 히딩크 감독님의 지도를 받은 것 등이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죠.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시기예요.”

“히딩크 감독님은 저에게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경험만 있으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죠. 핌 베어백 코치도 그렇게 이야기하셨구요.”

무엇보다 최성국은 선배들의 철저한 몸관리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프로란 무엇인가’라는 부분을 뼈저리게 느낀 것. 어린 나이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의 대선배들과 훈련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은 경기력 측면보다는 이와 같은 프로로서의 의식, 철저한 몸관리인 것 같다.

사실 그 점을 확실히 배우는 것이 당장의 경기력 향상보다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욱 값진 부분일 것이고.

“제가 아직 생각이 짧은 데 비해 형들은 많은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생각이 깊어요. 또한 무엇보다 자기관리에 철저하구요. 이것이 프로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훌륭한 선배들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아직까지 형들처럼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지는 못하지만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저 역시 조만간 철저한 프로로서의 모습으로 무장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명보형은 정말 본받을만한 선배였어요. 우선 주장으로서 듬직하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훌륭하시죠.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시고, 후배들을 다독거리거나 독려하시는 부분도 완벽하세요.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죠.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최성국은 월드컵대표팀에서의 합숙훈련에 이어 2002월드컵에서도 같이 동행하며 선수단과 희노애락을 같이 나눴다. 그리고 한국축구 역사에 남을 장면 하나 하나를 같이 호흡했다. 아마도 이 경험 역시 최성국의 훗날 축구인생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식멤버는 아니더라도 똑같이 생각하고, 같이 운동하고, 힘든 것도 같이 겪었어요. 형들이 신화를 이룰 때 우리 역시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죠. 형들도 기뻐하고, 저희도 기뻐하고 말이죠.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다는 것이 한 국민으로서도 기분 좋은 일인데 형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생활했는데 이런 좋은 성적을 내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어요.(웃음)”

“월드컵을 통해 최고 수준의 경기를 지켜봤죠. 신기한 것은 우리 경기가 있을 때마다 ‘형들이 개개인의 기량에서는 처질지 몰라도 전체적인 팀으로는 안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다들 세계적인 팀들인데 안되겠다라는 생각보다 이기겠다라는 생각이 드니 정말 신기했죠.”

정말 뿌듯한 이야기 아닌가. 대표팀의 막내가 어느 팀과 붙어도 한국이 질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최성국은 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의 힘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했던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최성국은 세계를 향해서도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축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특히 청소년급의 어린 선수들을 보면 월드컵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월드컵 무대를 직접 밟지도 않은 청소년 선수들이지만 이미 그들의 눈높이는 세계를 향하고 있다.

세계 어느 팀과 붙어도 해볼 만 하다라는 자신감이 선수 자신도 모르게 풍겨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한국축구의 역사는 2002월드컵 전과 그 이후로 나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예감이 들기도 한다.

아시안게임에서의 실패

월드컵이 끝난 뒤 아시안게임을 즈음해 최성국의 차출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U-19 대표팀의 박성화 감독으로서는 아시아선수권이 임박한 시점에서 팀의 핵심인 최성국을 내주기가 쉽지 않았고, 아시안게임대표팀의 박항서 감독으로서는 최성국의 합류를 절실히 원하는 상황이었다.

최성국 본인으로서는 군면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대표팀 합류를 원했고, 박성화 감독 역시 최성국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결국 합류하는 쪽으로 결정이 됐다. 다만 당초의 타협안은 박지성이 합류하는 시점인 8강까지만 최성국이 뛰고 아시아선수권이 열리는 카타르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8강전이 10월 8일이고, 아시아선수권 개막전이 15일인 만큼 기후 및 시차적응 등을 생각하면 이것도 빠듯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최성국은 결국 4강까지 치른 뒤인 11일에야 카타르로 향했고, 이것은 결국 무리한 일정이었다는 것이 곧 증명되었다.

각설하고 다시 아시안게임으로 돌아와서, 우승을 당연시했던 한국은 4강 이란과의 경기에서 덜미를 잡히며 동메달에 그치는 불운을 맛봤다. 군면제가 걸려있는 최성국으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체력적으로 큰 부담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군면제가 걸려있는 대회인 만큼 꼭 출전하고 싶었어요. 저로서는 큰 행운이었죠. 결국 결과가 그렇게 되면서 아쉬움이 컸지만 후회는 없어요. 열심히 했고 형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냈구요”

“4강전에서는 이란이 철저한 수비위주의 전술로 나왔어요. 한국축구는 상대가 수비에 치중했을 때 그것을 깨는 것이 약하다라는 말도 있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전적으로 수비에 치중하는 팀을 이기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어느 팀이든 말이죠. 장신 공격수가 있다면 좌우 크로스에 이은 헤딩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쉽지 않죠. 이란전도 그런 면에서 힘들었던 경기였어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강렬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마음이 약간 해이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최악의 컨디션으로 임했던 U-20 아시아선수권

2002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렸던 U-20 아시아선수권은 최성국에게 있어서는 악몽과도 같은 대회였다. 이 대회를 위해 10개월여 동안 준비해왔건만 최성국은 자신의 기량을 70%도 발휘하지 못한 채 마감해야 했다. 역시 계속된 강행군이 문제였다.

포지션 역시 새롭게 부상한 김동현의 영향으로 투톱이 아닌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섰다. 이 위치는 9월에 가진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통해 처음 시도됐던 것이고, 김동현-정조국 두 재능있는 공격수를 살리기 위한 박성화 감독의 고심 끝에 나온 시도였다.

“군면제 등으로 아시안게임대표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결과가 여의치 않아 정신적으로 많이 피로했었죠. 중동의 살인적인 더위에 대한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상태였구요.”

“왼쪽 측면 미드필더는 예전에도 해본 적이 있던 터라 부담은 없었어요. 다만 그 때 당시에는 정신적인 피로감, 현지 기후 등으로 힘들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저와 포지션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저로선 그 자리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피로가 누적될 대로 누적된 최성국은 조예선 내내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쳤고, 인도와의 8강전에서는 경기 중에 실신하며 팬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저로서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힘들었나봐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적응도 안되고 그랬던 것이 누적된 결과겠죠. 큰 문제는 아니었고 순간적으로 쓰러졌던 것 뿐이에요.”

이 대회에서 U-19 대표팀은 결국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뽐냈지만 최성국은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아쉽게 대회를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축구팬들은 최성국의 지나친 드리블과 패스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는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했다.

애당초 최성국의 단점으로 드리블이 길고 패스 타이밍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받아왔었지만 최악의 컨디션으로 인해 이와 같은 부분들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지적이 맞다고 생각해요. 저로서는 고치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쉽지는 않네요. 의도적으로 패스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되긴 하는데 어느 순간 옛날 버릇이 튀어 나오곤 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 1,2년 지나고 나면 좋은 플레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악의적으로 저를 비난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 상황만을 보고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 몇 게임을 보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저로서는 좀 그렇죠.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해줘야 하잖아요. 그래도 그 대회만 하고 축구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어찌 보면 최성국의 플레이 스타일은 기존의 한국축구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드리블과 개인돌파를 즐기는 그의 플레이는 한국의 축구환경에서 제대로 싹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현대축구의 흐름 자체가 빠른 볼컨트롤과 원터치 플레이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드리블과 패스의 비율을 얼마나 절묘하게 섞어 조화를 이뤄나가느냐는 앞으로 최성국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 세계무대에 도전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최성국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박성화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최성국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키핑력과 드리블이다. 이것은 성국이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는 조심해야 한다. 드리블에 대해 지나치게 제재를 가하고 압박을 가하면 성국이는 평범한 선수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제거된 마당이니 말이다. 적절한 컨트롤로 성국이의 장점과 팀 전체의 흐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성국이의 패싱력은 매우 뛰어나다. 가끔 연습경기에서 성국이가 지나치게 드리블이 많을 때 성국이에게 무조건 원터치 또는 투터치로 볼을 다룰 것을 명령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적시적소에 좋은 패스를 찔러주곤 한다. 성국이가 조금만 더 경험을 쌓아 드리블할 때와 패스할 때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선수가 될 것이다.>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며

아시아선수권이 끝난 뒤 청소년대표팀의 스포트라이트는 김동현과 정조국에게 집중되었다. ‘최고 스타’임을 자부했던 최성국으로서는 아쉬움이나 야속함도 느꼈을 것이다. 결국 한순간 열광했다가도 한순간에 냉정해지는 것이 인기인 것이다.

최성국은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고, 박성화 감독 역시 최성국에게 다시 한번 주장을 맡기며 한 단계 성숙해진 모습을 당부했다.

“결국 보여준 것만큼 모든 것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제가 못했고, 동현이나 조국이가 잘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시선이 집중된 것이죠. 동현이, 조국이가 잘해줬고 그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아요. 제가 아직 모자라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감독님도 지난 아시아선수권을 통해 느끼는 것이 많았을 것이란 말씀을 하셨어요. 저에게 느낀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애들도 잘 다독거려 세계선수권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보자고 이야기하시더라구요. 많이 느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003년을 맞아 U-20 대표팀은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1월에는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UAE에서 아일랜드, 프랑스, UAE와 경기를 펼쳐 1승 2무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3경기 2골이라는 빈공으로 팬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편 이 대회에서 최성국은 정조국-김동현 투톱 바로 아래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그 위치는 생소해서 처음에는 좀 낯설었어요. 그러나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저로서는 편한 위치더라구요. 힘든 게임을 했지만 저는 편안하게 나름대로 만족스런 플레이를 펼친 것 같아요. 득점력 빈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저와 조국이, 동현이에게 책임을 많이 물으시는데 어차피 지금은 준비과정이잖아요. 충실히 준비해나가면 세계대회에서는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UAE 4개국 대회가 끝나고 나서 U-20 대표팀은 곧바로 잉글랜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잉글랜드 전훈을 통해 최성국의 포지션은 최종적으로 결정됐다. 투톱 또는 쉐도우 스트라이커가 그의 몫이 됐다. 비록 세계선수권이 연기되는 바람에 본격적으로 시도할 기회는 당분간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 동안 박성화 감독은 정조국, 김동현 두 걸출한 스트라이커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 최성국은 왼쪽 측면 MF, 투톱 아래 공격형 MF로 위치를 변경해가며 최선의 조합을 위한 실험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박 감독의 최종선택은 정조국, 김동현 두 선수 중 1명을 희생하는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최성국을 전방에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잉글랜드 전지훈련을 통해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제 포지션이 결정됐어요. 지금까지 포지션 중에 가장 익숙하고 편한 위치죠.”

그렇다면 최성국 본인은 투톱 파트너로서 두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조국이 같은 경우 기동력은 떨어지지만 기술이 좋고, 특히 골대 앞에서의 골 넣는 준비과정이 매우 뛰어나요. 동현이는 기동력이 있고, 많이 뛰고, 파워와 제공권이 좋죠. 둘 다 장단점이 있고 스타일이 다른 선수예요. 모두 훌륭한 선수들이죠.”

앞으로의 목표 및 계획

이제 최성국은 고려대를 중퇴하고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최성국은 K리그를 선택했고, 그가 선택한 팀은 울산현대였다. 최성국은 본인이 U-20 대표팀의 이종민과 함께 가장 호흡이 잘 맞는다고 꼽았던 고려대 동기 김정우와 함께 울산행을 결정했다.

“우선 다른 팀들보다 저를 더 많이 원했고 믿었어요. 또한 감독 선생님이나 구단 관계자분들도 잘 알고 있었고, 알고 있던 형들도 많았죠. 제가 좋아하는 천수형도 있고.(웃음) 정우도 같이 오게 됐고. 여기로 오면 제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으로선 잘 판단한 것 같아요.”

K리그는 결코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다. 이미 국내 최고라는 최성국의 드리블도 결코 K리그의 내노라하는 수비수들을 쉽게 뚫지는 못할 것이다. 그 냉정하고도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최성국은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고, 그것은 U-20 대표팀에게도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이미 최성국은 개막전에서 환상적인 개인기를 뽐내며 프로 데뷔골을 기록한 바 있다.

어쩌면 세계선수권이 연기된 만큼 최성국의 기량은 성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최성국과 함께 새롭게 프로무대에 뛰어든 다른 U-20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일테고.

“세계선수권이 연기되어 허탈한 것은 있어요. 아쉬움은 있지만 더 준비해서 나갈 수 있으니 잘된 일일지도 모르죠. 독일이나 파라과이, 미국 세 팀 모두 좋은 팀들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준비만 충실히 한다면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봐요.”

“K리그에서든, 세계선수권에서든 최선을 다해 저의 진가를 보여줄 겁니다. 모든 선수들의 최종적인 꿈은 아무래도 유럽진출일테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예요. 언젠가 큰 무대에서 저를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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