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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규, "다재다능한 수비의 살림꾼"

다재다능한 수비수 박병규/MUKTA

2002년 2월 19일 기사...


 '고려대 수비의 핵' 박병규(19)는 자신의 주 포지션인 스위퍼를 비롯해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백 등 수비의 전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만능 플레이어이다.

 비록 177cm, 71kg으로 수비수로서는 다소 왜소한 체격이긴 하지만 탁월한 위치선정과 볼에 대한 센스를 바탕으로 영리하게 수비를 이끌어 가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후방에서 전방으로 연결시켜주는 예리한 패스 역시 박병규를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렇게 박병규의 특성을 나열하다보면 연상되는 선수가 있을 것이다. 바로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로 추앙받고 있는 홍명보. 포지션과 스타일상의 유사점 때문인지 박병규는 축구인들 사이에서 '제 2의 홍명보'로 불리웠으며 2001년 고려대에 입학하면서 홍명보를 상징하는 등번호인 20번을 부여받기도 했다.

 박병규를 지도하고 있는 고려대의 조민국 감독 역시 "수비수로서 경기의 흐름을 굉장히 잘 읽는 선수이다. 또한 다른 수비수들에 비해 패싱력이 월등해 전방으로 연결시켜주는 패스가 매우 예리하다. 워낙 눈치가 빠르고 한 템포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기 때문에 신체조건이 다소 작은 것을 충분히 커버한다. 몸관리 잘하고 스피드만 좀 보완한다면 오랜 기간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선수"라고 평가했다.

 박병규 본인은 주위의 이런 기대에 대해 "저야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 좋죠.(웃음) 그렇지만 홍명보 선배님이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실런지..(웃음)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수비수이신데 말이죠. 아무튼 열심히 노력해야죠"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박병규가 처음 축구를 시작한 것은 인천 석남서초등학교 4학년. 시작한 계기가 특이하다.

 "코치선생님이 무척 재미있는 분이셨어요. 그리고 돈도 안 들고 먹을 것도 많이 주고 유니폼 같은 것도 잘 나온다고 해서 입부했죠.(웃음) 특별활동 성격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직업이 되버렸네요.(웃음)"

 4학년 첫 대회에서 골키퍼를 봤던 박병규는 5학년 초 미드필더를 잠시 보다가 5학년 말부터 제물포중과 부평고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수비수로, 그 중에서도 주로 스위퍼로 활약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수비수들이 공격수나 미드필더로 뛰다가 수비로 전환하는데 반해 줄곧 수비수로 뛴 전문수비수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포지션이 재밌어요. 여기서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도 있구요. 그렇지만 요새 들어 스위퍼라는 자리가 없어지는 추세라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센터백이나 윙백,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고 있죠. 아직까지는 스위퍼 자리가 익숙하지만 다른 포지션도 괜찮아요. 현재는 상대팀에 따라 포지션이 달라져요. 상대팀의 공격력이 좋을 경우 스위퍼 포지션에서 리베로 역할을 수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보다 전진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죠."

 조민국 감독 또한 "병규는 어느 포지션에서도 제 몫을 해주는 선수"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대성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패싱력이 뛰어나고 경기흐름을 읽는 눈이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현대축구에 있어서 멀티 플레이어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박병규에 대한 기대도 크다.

 부평고 시절 1년 선배인 이천수, 최태욱, 박용호와 동기 김정우, 이성규 등과 함께 부평고 전성시대를 열었던 박병규는 호화군단 고려대에서 1학년으로 당당히 주전자리를 차지하는 한편 U-19 대표팀과 현 올림픽 상비군에서 활약하는 등 차세대 기대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박병규의 이런 재능은 급기야 일본 J리그팀들의 관심을 끌었고 적극적인 영입에 나서는 구단도 있었다. 2001년 12월에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렸던 한·일 양국 사립대학간의 친선경기가 그 계기였다. 당시 고려대와 와세다대 혼성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박병규는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연세대·게이오대 혼성팀을 6-0으로 이기는데 일조했었다.

 "솔직히 아버님과 신문에서 들었던 것이 전부예요. 아직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고 갈지 안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만약 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가고 싶어요. 축구환경이나 여러 면에서 좋기 때문이죠.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일찍 프로무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

 아마도 2001 FA컵 성남과의 경기를 비롯한 프로팀들과의 경기를 통해 박병규는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수준차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프로에서, 보다 좋은 축구 환경에서 수준높은 선수들과의 경쟁을 벌인다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솔직히 우리나 프로선배들이나 능력의 차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프로와 아마추어간에 확연한 수준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도 프로무대에서 같이 뛰고 부딪친다면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경험, 파워, 여유로운 경기운영...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여러 개 뭉쳐서 차이가 커진 것 같아요. 저도 프로에 간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축구에 인생을 걸었는데 6-7살 때부터 잔디에서 운동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늘 해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잔디구장에서 마음껏 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일 아쉬운 것은 사용할 수 있는 잔디구장이 있는데도 잔디 망가진다고 빌려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에요. 없다면 모를까 있는데도 쓸 수 없다니 속이 뒤집어지죠.(웃음) 프로는 그런 면에서는 아쉬울 게 없겠죠."

 수비수와 미드필더로서 다재다능함을 과시하는 박병규에게도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존재한다. 스피드가 다소 떨어지고 볼을 오래 끄는 경향이 있다는 것. 특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게임 중에 가끔 볼을 끌다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가끔 나타나곤 했다. 결국 이러한 습관은 박병규 본인에게 가장 기억하기 싫은 경기로 남은 2000년 9월 한일 청소년대표전 실점의 빌미가 됐다.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이 경기는 양팀이 1-1로 비겼었다.

 "어휴..아직도 그 때 시합 이야기가 나오면 고통스러워요.(웃음) 일본팀의 패스를 끊어서 치고 나오다가 인터셉트를 당해 결국 골을 허용했어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경기죠. 제 잘못된 습관들과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습관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진 않겠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니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실 이 무렵은 박병규에게 있어서 슬럼프 기간이었다. 한일전에서의 수비실수는 그에게 정신적인 부담감을 안겨줬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발목 부상까지 입은 상황이었다. 결국 U-19 대표팀 부동의 스위퍼였던 박병규는 정작 2000년 11월 테헤란에서 열렸던 제 32회 U-19 청소년선수권에서는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안타까웠죠. 정신적인 슬럼프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좋지 않았었지만 이란에 가서는 몸도 회복됐고 경기에 나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무엇보다 팀이 세계대회 출전에 실패했던 것이 아쉬워요. 조영증 감독님께도 미안했구요."

 그러나 고려대에 입학한 박병규는 대학새내기임에도 불구하고 호화멤버 고려대의 수비를 책임지며 예전 기량을 완전히 회복했음을 증명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오른쪽 발목부상이 지금도 완치상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박병규 본인은 "발목수술을 하려다가 말았어요.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축구선수에게 있어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데다가 수술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보다 정밀한 검사와 진단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해야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우선 작년에 험멜코리아배 추계연맹전과 고연전에서 연세대에 패한 복수전을 꼭 하고 싶어요. 또한 주위에서 고려대의 멤버가 화려하다고들 말하는데 거기에 걸맞게 우승컵도 여러 개 가져오고 싶구요. 저도 분명 우리 팀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보다 팀웍을 다듬어서 목표를 이룰 겁니다."

 "좀 더 멀리보자면 일단 2004올림픽이 우선입니다. 올림픽 예선이 시작되는 2003년까지 상비군체제로 운영될텐데 언제 짤릴지 모르는 일이에요.(웃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죠. 긴장이 풀리는 순간 상비군 명단에서 빨간 줄이 그어질 거예요.(웃음) 올림픽은 한번밖에 없는 기회이니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할 겁니다. 2006년 월드컵은 그 이후에 생각할 문제이구요."

 촉망받는 차세대 수비수 박병규가 과연 '제 2의 홍명보'라는 딱지를 떼고 도약할 수 있을지, 또한 유상철과 송종국의 뒤를 이을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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