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Total 276 articles, 19 pages/ current page is 5
   

 

  View Articles
Name  
   MUKTA 
File #1  
   050923byunjs1.jpg (123.7 KB)   Download : 20
Subject  
   변재섭, 시련 이겨내고 부천에서 제2의 전성기 열다②


2005년 9월 23일 KFA 인터뷰..


전북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던 변재섭은 2001년 결혼을 함으로써 포근한 안식처까지 마련했다.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전북의 버스를 운전하던 이영철 씨의 딸이었다는 점과 국내 최초로 경기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점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2군 버스를 운전하시던 분이 아내의 사촌오빠였어요. 같이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저를 좋게 봤는지 소개해 주시더라구요.(웃음) 당시만 해도 이영철 반장님의 따님인 줄은 몰랐었죠.(웃음) 나중에 알게 되면서 조심조심 만났어요. 1년 넘게 그렇게 지냈는데 혹시 알게 되면 싫어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랬죠.”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영철 씨 역시 평소 성실하게 축구에 전념하던 변재섭을 좋게 보고 있었고, 무엇보다 워낙 축구를 좋아하는 분이었기에 축구선수 사위를 오히려 반기며 좋아했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변재섭은 결혼식을 시즌 중에 전주 종합운동장에서 거행하며, 또 한번의 화제를 일으켰다. 국내 최초로 축구 선수가 관중들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결혼식을 거행한 것.

“결혼 이후 행동에 더 조심했어요. 장인 어른께서도 구단에 근무하고 계셨기 때문에 제가 행동을 조금만 잘못해도 장인 어른을 욕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200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출장기회 줄어들며 위기 봉착

전북에서 안정된 위치를 누리던 변재섭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2년이었다.
최만희 감독, 남대식 감독대행에 이어 2002년 10월에 새롭게 조윤환 감독이 부임했고, 그것에 앞서 변재섭은 발목 부상으로 6개월여를 쉬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활훈련을 거쳐 1군으로 다시 올라온 상황에서 또다시 부상을 입어 몇 개월을 더 쉬는 불운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새로 부임한 조윤환 감독이 요구하는 색깔과도 충돌하면서 위기는 증폭됐다. 결국 2002시즌 7경기 출장에 그친 변재섭은 2003시즌에는 단 1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하며 축구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 때의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 못합니다.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나는 자신 있는데 출장기회는 주어지지 않고...물론 제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감독님 입장에서는 나오지 못할 만 하니까 출장시키지 않은 것이긴 해요. 그것이 선수와 감독 각각의 입장이죠. 그렇지만 2군 경기에도 출장시키지 않은 것은 조금 너무한 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 당시 제가 지적을 많이 받았던 것은 움직임이 적다, 많이 뛰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해온 축구, 저의 특징이 바로 그것이었거든요. 가장 자신 있었던 부분을 약점으로 지적받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못잡겠더라구요. 지금까지 그것 하나로 프로무대에서 버텨왔고 인정을 받았는데, 그 부분이 모자라서 출전할 수 없다고 하니...축구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래도 언젠가 기회는 올 것이라는 생각이 몸은 만들고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당시 저 말고도 팀의 간판이었던 도훈이 형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고, 불안한 마음에 우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서로 위로도 해주고..그런데 결국 감독님 권한이잖아요. 선수가 뒤에서 왈가불가할 수가 없는 것이죠.”

결국 전북에서 쫓겨난 변재섭, 방황이 시작되다.

결국 2002, 2003 두 시즌 동안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던 변재섭은 쫓겨나다시피 인천으로 트레이드됐다. 그러나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탓일까? 인천에서 적응하지 못한 변재섭은 또다시 팀을 나와야 했다. 방황은 계속됐다.

“전북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서 인천에서도 제대로 적응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다른 팀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불러주는 팀이 없더군요. 정말 막막했던 시절이었어요.”

결국 변재섭이 선택한 곳은 K2리그의 고양국민은행이었다.
소속된 곳이 없이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게임감각을 유지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는데, 마침 고양국민은행에서 제의가 있었어요. 저로서는 어떻게든 몸을 만들어 게임감각을 찾은 뒤 다음 시즌에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K2를 선택했죠.”

급박한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K리그에 대한 미련을 접고 K2리그에서부터 다시 출발하기로 결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천의 정해성 감독이 그를 찾은 것. 결국 변재섭은 고양국민은행에 입단한지 1주일여 만에 다시 K리그로 돌아오게 됐다. 정말 극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변재섭을 다시 불러온 정 감독은 당시를 회고하며 “부천 감독으로 오기 전부터 전북의 변재섭을 알고 있었다. 부천에 오면서 측면에서 뛸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차에 변재섭이 고양국민은행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프로에서 한번 검증된 선수이기에 우리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데려왔다”고 밝혔다.

부천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 시작

사실 변재섭이 부천에 입단할 무렵, 부천은 매각설, 해체설 등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여 있었다. 이로 인해 선수 수급에도 어려움이 많았고, 팀 사기 역시 가라앉아 있던 상황. 그러나 변재섭으로서는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당시 제 입장에서는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어요. K2리그로 내려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로에서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죠. 부천에 대한 여러 소문도 다 알고 왔어요. 그래도 프로에 와서 기회를 잡아 좋은 모습을 보이면 또 다른 기회도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죠.”

“또 감독님이 워낙 카리스마가 있으시다 보니까 분위기가 흐트러져 있어도 금방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준비가 됐잖아요. 여기에 팀 사정도 안정되면서 선수들의 불안감도 없어졌죠. 저로서는 모든 게 잘 풀린 셈이에요.(웃음)”

정해성 감독의 부름으로 다시 K리그에 복귀한 변재섭이었지만, 초반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초반에 몇 차례 출장기회를 잡았던 변재섭은 종아리 근육 파열이라는 암초를 만나 2달여 동안 재활에 몰두해야 했던 것.

“몸이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하셨는데, 그런 기회에도 불구하고 몇 경기 뛰지 않고 부상을 당하고 말았죠. 그 때는 정말 이제 포기해야하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도 일단 시즌이 끝나지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독한 마음을 먹었고, 무엇보다 어려울 때 불러주신 감독님을 생각해서라도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습니다. 다행히 이후에는 부상 없이 FA컵까지 무사히 마쳤고, 올 시즌에도 큰 부상 없이 순조롭게 지내고 있죠.”

최고의 카리스마 정해성 감독

변재섭이 예전에 외부에서 바라본 부천은 자율축구였다.
외부에서 바라볼 때, 그리고 부천에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천은 자유로운 생활과 운동을 통해 정말 프로 생활을 즐기면서 하는 팀인 것 같았다는 것이 변재섭의 증언.

그러나 그것은 예전의 전통이었고, 요 근래 몇 년 동안의 침체로 인해 팀 전체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물론 팀이 침체되어 의욕상실과 함께 무기력했던 시절에도 나름대로는 자유로웠던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행히 이런 패배의식과 무기력함은 정해성 감독의 부임과 함께 변화를 맞이했다.
2004시즌은 그 시작이었고, 올해 2005시즌은 결과물이 서서히 나오고 있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해부터 정 감독님으로 바뀌셨는데, 훈련강도가 엄청났어요.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아마추어 시절에도 이것보다 힘들지는 않았다는 것이었죠.(웃음) 그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결국 올 시즌에서야 지난 해에 감독님이 왜 그렇게 강도 높은 훈련을 했는지 느끼고 있어요. 올해는 어느 정도 팀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작년 만큼은 아니죠.”

“개인적으로 정 감독님은 제가 겪은 감독님들 중에 가장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에요. 운동장에서는 정말 호랑이시죠.(웃음) 그래도 사생활에서는 형님 모드로 바뀌세요. 먼저 농담도 거시고...(웃음)”

2004 FA컵,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

2004년 하나은행 FA컵은 변재섭과 부천에게는 잊을 수 없는 대회이다.
정해성 감독의 부임으로 분위기 쇄신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2%로 인해 정규리그 최하위, 컵대회 11위에 그친 부천이었기에 2004년의 대미를 장식한 FA컵에서의 준우승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이 대회를 통해 얻은 자신감은 올 시즌 부천이 대도약을 하는 데도 큰 힘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회라는 것이 자주 오는 것은 아닌데, 그 대회에서는 대진운도 따랐고 강팀들이 초반에 탈락하면서 좋은 기회를 잡았어요. 결승전에 부산이 올라왔다고 했을 때는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감을 갖고 경기를 했는데, 골운이 너무 안따라줬어요.(웃음) 좋은 기회였는데 승부차기까지 가서 지고 말았죠.”

“정규리그에서 꼴찌를 했던 우리가 FA컵 결승까지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다, 운이 좋았다라고만 이야기했어요. 내년 시즌 되면 또 밑바닥에 있을거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많았구요. 그런 소리를 정말 듣기 싫었어요. 더 이를 악물고 동계훈련을 준비했고, 감독님의 축구가 확실히 정착되면서 올 시즌에는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죠. 험담을 했던 사람들에게 제대로 복수를 한 셈이죠.(웃음)”

부천의 상승세와 더불어 변재섭 본인에게도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가 찾아왔다.
포지션 자체도 측면 미드필더가 아닌 윙백으로 내려가면서 수비에 대한 부담이 주어졌고, 플레이 스타일 역시 예전의 거침없이 뛰고 돌파하는 스타일에서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로 서서히 발전해나간 것.

“신인 때나 초창기 때는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많이 뛰고, 돌파하고, 부딪치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30대에 접어들면서 스타일이 조금씩 바뀌었죠. 부상을 자주 당하다보니까 바뀌게 되더군요. 볼을 많이 갖고 있다보면 아무래도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를 받고, 부딪치는 상황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부상도 많이 당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팀 동료를 이용해 주고 빠지고, 움직이는 이런 스타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에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 안배도 필요하게 됐죠. 드리블을 많이 하고 몸싸움을 하다보면 체력이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플레이 하다보니 자연히 주고 빠지고 패스하는 그런 스타일로 가게 되더군요. 자연히 체력소모도 적어지고, 부상도 적어졌습니다. 또한 감독님 역시 드리블이 많은 스타일보다는 패스에 이은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기도 하구요.”

“이런 변화에는 윙백으로의 전환도 어느 정도 영향은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측면 미드필더와 비슷하긴 한데, 수비적 부담이 더 커지잖아요. 더군다나 우리 팀이 3-5-2 시스템을 즐겨 쓰기 때문에 윙백의 체력부담이 크죠. 만약 제가 프로 초창기 시절처럼 무작정 뛰어다니기만 한다면 이렇게 못해요.(웃음)”

“또한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패스 플레이를 많이 하게 되면 체력 소모도 적어지기 때문에 충분히 게임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논점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한 가지 더 말하자면 1주일에 2경기 하는 것은 솔직히 조금 무리가 있어요. 2주에 3경기 정도면 상관없는데, 매주 2경기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죠. 그래서 요즘 같은 휴식기는 꿀맛 같아요.(웃음)”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는 변재섭 혼자만은 아니었다.
부천 선수들 전체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비, 미드필드, 공격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에서 가해지는 강력한 압박. 골키퍼를 제외한 10명 전원이 엄청난 활동량과 투쟁심으로 상대를 공략해 당황케 만들었고, 이것은 부천 축구가 다이내믹해지고,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후배들이 대견스러워요. 경기장에만 들어오면 모두 반 미쳐서 뛰어다니거든요.(웃음) 예전 전북 시절과 비교해도 확실히 달라요. 전북 후배들을 보면 대부분 좋은 대우를 받고 입단한 선수가 많죠. 그러다보니 훈련이나 임하는 자세 등이 조금 약한 면도 있어요.”

“반면 여기 후배들은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올라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밑바닥 생활의 고통을 알아요. 더 이상 내려가면 안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모두 정말 죽을 각오로 운동을 해요. 정말 열심히 하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엄청난 압박을 하긴 하지만, 효율적이라는 거에요. 혼자서 그렇게 뛰어다닌다면 부담이 크죠. 그러나 지역별로 부분적으로 협력해서 압박을 하고, 반대쪽 선수들은 자연히 안으로 당겨주고 이런 식으로 압박을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어요. 물론 체력적인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90분을 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에요.”

부천 그리고 변재섭, 함께 새로운 도약을 노린다.

최근 부천은 구단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동안 팀 매각설과 해체설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매각이나 해체에 대한 논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부천 구단의 설명.

아직까지는 예전의 부천 팬들을 경기장으로 다시 불러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근의 상승세와 좋은 경기력을 계속 유지한다면 멀어졌던 부천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팀이 안정화되었다는 것은 선수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 지금까지 마음속에 한 가닥 불안한 마음을 내재하고 있던 선수들은 다른 걱정 없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변재섭 역시 마찬가지.

다만 관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변재섭의 표정에서는 짙은 아쉬움이 나타났다.

“최근 성적이 좋으면서 팬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기대를 갖고 경기장에 들어섰다가 조금 허무할 때도 있고 그래요. 아직도 관중이 많이 적은 편이거든요.”

“선수들은 관중이 많은 경기장에서 뛰면 평소에 못하는 플레이도 하고 그래요. 선수가 활기가 넘치니 경기 자체도 활기가 넘치고, 자연히 선수도 즐겁고 관중도 재미있지 않겠어요?”

“후기리그에서 좋은 성과 얻고 있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은 다 하려고 해요. 그래야 이렇게 잘나가고 있는데 왜 경기장을 찾아주시지 않습니까라고 큰 소리도 칠 수 있지 않겠어요?(웃음) 여기서 또 한계를 못 넘고 처지게 되면 할 말이 없어지잖아요. 지금부터 한 게임, 한 게임 준비를 잘해야죠.”

시즌 초 부천의 정해성 감독과 선수들이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을 때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축구팬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어느덧 부천은 현재 후기리그 1위와 통합성적 3위의 호성적으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다.

변재섭 역시 주장으로서, 부동의 오른쪽 윙백으로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변재섭을 ‘한 때 전북에서 잘나가던 선수였으나 이제는 별 볼일 없는 선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기 위해 매 경기 활발한 오버래핑을 펼칠 것이고, 크로스를 올릴 것이고, 상대 측면 공격수를 마크할 것이다. 어느덧 30을 넘어섰기에 큰 욕심도 없다. 다만 한 해, 한 해 최선을 다해 될 수 있는 한 오래 피치에 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전 국민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국구 스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영광과 좌절을 함께 맛보며 묵묵히 걸어왔던 변재섭의 축구 인생, 그 나머지 부분이 어떻게 전개될지 함께 지켜보는 것도 축구팬으로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저 뿐 아니라 모든 선수, 코칭 스태프가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뛰고 있어요. 그 목표가 달성된다면 다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죠.”

“개인적인 목표요? 그냥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제 몸이 따라줘야 하는 거잖아요. 또 감독님 스타일에도 맞춰야 하고...요즘은 몸관리 잘하면 35-36세 정도까지는 하는 추세잖아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경기장에 서고 싶어요.”


-- MUKTA 상헌 --


    

 




216
 송한복, "선진축구로 무장한 차세대 수비수"

MUKTA
2004/08/06 1536
215
 선문대 조긍연 감독 - 80년대말 K리그를 풍미했던 털...

MUKTA
2006/04/30 1762
214
 서기복, "상무 미드필드를 책임지는 사령탑"

MUKTA
2004/08/22 1925
213
 상무 이강조 감독, “전력 차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

MUKTA
2004/09/18 1044
212
 부상에서 복귀한 안태은, “나이지리아전 출격 준비 완...

MUKTA
2006/04/30 1296

 변재섭, 시련 이겨내고 부천에서 제2의 전성기 열다②

MUKTA
2007/01/28 1516
210
 변재섭, 시련 이겨내고 부천에서 제2의 전성기 열다①

MUKTA
2007/01/28 1493
209
 백지훈, “U-20 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 넘본다”②

MUKTA
2006/04/30 976
208
 백지훈, “U-20 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 넘본다”①

MUKTA
2006/04/30 1637
207
 박지성, “남은 경기 3전 전승으로 월드컵 본선 결정...

MUKTA
2005/12/03 1248
206
 박종환 감독, “내가, 40년이야”②

MUKTA
2006/04/29 1124
205
 박종환 감독, “내가, 40년이야”①

MUKTA
2006/04/29 2074
204
 박병규, "다재다능한 수비의 살림꾼"

MUKTA
2004/08/06 1563
203
 덴소컵 참가 이길훈, 공격수로 깜짝 변신해 팀 승리 ...

MUKTA
2007/08/08 1579
202
 대회 MVP 박병규, “고려대 수비라인을 이끄는 중추...

MUKTA
2005/02/10 1582
[1][2][3][4] 5 [6][7][8][9][10]..[1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Headv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