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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재섭, 시련 이겨내고 부천에서 제2의 전성기 열다①

2005년 9월 21일 KFA 인터뷰..


4라운드를 마친 2005 삼성 하우젠 K리그 후기리그에서 단연 돋보이는 팀은 바로 부천SK이다.

올 시즌 초부터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였던 부천은 후기리그 들어 3승 1무의 호조 속에 단독 선두를 질주하며, 축구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당초 하위권으로 분류되던 부천이 이런 결과를 낼 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

정해성 감독의 강한 조련과 함께 팀원 전체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톱니바퀴와도 같은 조직력과 정신력이 가미되면서 부천은 그 누구도 호락호락하게 여길 수 없는 끈끈한 팀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변재섭(30세)은 이와 같은 부천의 톱니바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구성요소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선수.
후기리그 들어 새롭게 주장을 맡으며 팀을 이끌고 있는 변재섭은 예전 주 포지션이었던 측면 미드필더나 윙포워드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며, 팀의 주축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부천 정해성 감독 역시 “굉장히 성실하고 리더쉽이 있으며, 자기 역할에 충실해 팀에 큰 도움이 되는 선수이다. 원래 앞 선에서 활약했던 선수인지라 수비 쪽에서는 조금 보완할 점이 있지만, 공격적으로는 충분히 만족한다. 현재로서는 충분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만족스럽다”며 변재섭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변재섭 역시 전북에서의 암울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에 대한 기쁨이 남다르다. 2002년과 2003년, 전북에서 거의 출장기회를 잡지 못한 채 방황을 겪어야 했던 변재섭은 부천에서의 새로운 도전으로 다시 부활했다.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다시 올라온 것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더군다나 후기리그부터는 주장을 맡아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는데, 변재섭 본인으로서는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맡는 주장이라고.
내성적인 성격인 변재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직책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격이 꼼꼼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챙기는 편인 그에게는 잘 맞는 부분도 있었다.

“작년에 이적하면서 부천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많이 젖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 자신도 늦게 합류한데다가 부상도 있어서 적응이 어려웠죠. 팀 성적도 좋지 않았고..그래도 감독님께서 워낙 카리스마가 있으시니까 팀 체질이 서서히 변하는 느낌을 받았고, 감독님의 전술이나 축구에 적응하는 것이 보였어요. 그 결과물이 올 시즌에 나오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후기리그부터 주장을 맡게 되어 책임이 더 막중해졌습니다. 전 주장이었던 김정수 선수와는 동기인데, 부상이 길어져 경기에 나오지 못했어요. 결국 경기장에서 팀의 중심 역할을 해줄 주장이 없으니까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 감독님 생각이셨고, 본의 아니게 주장까지 하게 됐죠. 부담은 있었지만 후기리그에서 무패행진으로 선두를 달리고 그러니까 분위기도 좋고 할 맛도 나네요.(웃음)”

초등학교 시절, 여러 운동을 전전하다 축구에 정착하다.

변재섭이 축구를 시작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있었던 변재섭이 처음 시작했던 운동은 수영. 그러나 너무 힘든 나머지 1년여 만에 수영을 포기한 그가 다음으로 도전한 종목은 육상. 그의 빠른 스피드를 탐낸 당연한 결과. 그러나 그것 역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수영과 육상 모두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중간에 포기했는데, 학교에서 축구부를 창단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부모님이 극구 반대하시더라구요. 수영도 포기하고, 육상도 포기한 녀석이 또 무슨 운동을 하겠느냐는 말씀이셨어요.(웃음)”

그렇지만 축구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이 있었던 것일까.
부모님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련하고 있는 축구부를 밖에서 볼 때마다 변재섭의 마음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졌다. 결국 그는 부모님 몰래 축구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축구에는 끌리는 게 있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는 길에 축구부 애들이 훈련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집에 못가고 계속 쳐다보고 있고 그랬죠. 결국에는 몰래 축구부에 가입했고, 1년 정도 부모님에게 밝히지 않고 축구부 생활을 했어요.(웃음) 축구도 수영이나 육상 못지않게 힘들었는데도 이상하게 축구는 견딜 수 있겠더라고요.”

잊지 못할 청소년대표팀 시절

변재섭의 아마추어 시절을 놓고 볼 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시기는 1994년 U-19 청소년대표팀 시절이다.

대표팀 경력이 그다지 많지 않는 변재섭으로서는 1994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U-19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했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당시 안정환, 박성배, 서동원, 이상헌, 주영호, 정상남 등과 함께 출전했던 변재섭은 태국과의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쿠웨이트-바레인과 연속해서 비긴 후에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약한 팀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통과가 힘들다는 식의 비관적인 기사들만 나왔고, 더군다나 당시 94 월드컵이 끝난 직후라 별다른 관심도 받지 못했죠. 그런 상황에서 첫 경기가 태국이었는데, 당시 우승후보 중 하나였거든요. 그 경기를 3-1로 이기고, 저 역시 골을 하나 넣으면서 선수들이 조금 나태해졌던 것 같아요.”

“우리가 약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느슨해졌고, 결국 이겨야 하는 팀들에게 비기고 말았어요. 그리고 마지막 일본전에서 무조건 이겨야했지만 패하고 말았죠. 그 때가 한일전이란 것을 처음 해본 거였는데, 져서 아쉬움도 많이 남아요. 그러나 막상 부딪쳐 본 일본은 기본기 같은 부분에서 우리보다 낫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구요. 곧 아시아 정상권으로 올라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특히 당시 상대했던 나카타 히데토시는 기본기가 매우 탄탄해서 인상 깊었는데 결국 세계적 스타가 되더군요.”

무엇보다 변재섭이 아쉬웠던 것은 모든 이의 무관심이었다.
언론에서는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탈락을 기정사실화했고, 축구협회의 지원 역시 요즘과는 달리 부실했다.

“아시아 통과가 힘들다는 기사를 출국하기 전부터 접했어요. 그리고 대회가 끝난 뒤에는 탈락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왔고...어린 마음에 상처가 됐죠. 그리고 나중에 현지에서 훈련할 때도 우리는 거의 맨땅에서 훈련을 했어요. 그런데 일본이나 다른 팀들은 잔디가 잘 가꿔진 주경기장이나 보조구장에서 훈련을 하더라구요. 알고 보니 그 팀들 역시도 우리와 같은 운동장이었는데, 돈을 써서 좋은 구장을 얻었더군요. 그런 차이도 있었죠.”

연고지명으로 전북에 입단

마산공고와 전주대를 거치면서 변재섭은 스피드와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탑 클래스의 윙어로 자리 잡았다. 170cm의 왜소한 체구는 변재섭에게 큰 핸디캡이었고, 이것을 극복할 방법은 역시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부지런한 움직임 뿐이었다.

“작은 체구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많이 뛰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파워를 기르는 방법 밖에 없더라구요. 단점을 장점으로 커버하기 위해서는 내 스피드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고,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뛰어야 했어요.”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변재섭은 쉐도우 스트라이커나 측면 미드필더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이것을 눈여겨본 전북은 1997년 드래프트의 연고 지명 선수로 변재섭을 지목했다. 프로 입성에 성공한 것이었다.

전북 입단 이후 변재섭은 동계훈련에서 당시 최만희 감독(현 수원 2군 감독)의 눈에 띄었고,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장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결국 변재섭은 26게임에 출장해 2골-2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처음 프로무대를 밟고 느꼈던 것은 프로의 세계는 정말 냉정하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동계훈련이나 해외전지훈련에서 게임을 뛸 때에는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막상 개막전에 나가니 그게 아니었어요. 수비수들이 달라붙는데, 절대 편하게 볼을 차게 만들지 않더군요.”

“첫 경기를 완전히 망치면서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계속 믿어주시고 기용해 주시더라구요. 그렇게 믿어주시다 보니까 점점 내 플레이를 하게 됐고, 자신감을 찾으면서 기회도 더 많이 얻게 되었죠.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26게임이나 뛰었더군요.”

그리고 힘들었던 데뷔 초기 시절.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한 선배의 존재는 그에게 크나큰 힘이 되었다. 바로 김도훈이었다. 김도훈과 같은 팀에 있었던 후배들이 한결같이 최고의 선배로 꼽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 그리고 프로 선수로서의 매력은 단연 돋보인다. 변재섭 역시 김도훈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힘들었던 시절, 도훈이 형의 존재는 큰 힘이 됐죠. 워낙 경험이 많으신 형이고, 다정다감하신 분이세요. 프로 데뷔 경기를 실패하고 낙심해 있는 저를 찾아와 격려도 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셨죠. 그 외에 숙소 생활이나 여러 잡다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써주셔서 프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1999년 도움왕에 등극하며 만개하다.

점점 상승곡선을 그리던 변재섭이 활짝 만개했던 것은 1999년이었다.
99시즌에 변재섭은 25경기에 출장, 8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첫 개인 타이틀을 따내는 기쁨을 맛봤다. 특히 막판까지 치열했던 도움 레이스에서 승리했던 것이라 그 기쁨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막판까지 비탈리(당시 수원), 안정환, 마니치(이상 당시 부산), 김종현(당시 전남), 곽경근(당시 부천)이 7개로 바짝 따라붙었고, 더군다나 이 선수들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출장기회를 더 얻게 된 것. 특히 비탈리와 안정환은 팀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한데다가 출전 횟수에서도 변재섭보다 작아 자칫하면 최후의 순간에 도움왕 타이틀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챔피언 결정전이 끝나고 시상식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장을 갔어요. 그런데 비탈리나 안정환 중에 누구라도 도움 하나만 기록하면 도움왕에 오르게 됐었거든요. 경기 내내 조마조마했죠.(웃음) 자칫하면 거기까지 가서 헛걸음하고 내려올 상황이었거든요. 다행히 아무도 도움을 기록하지 못하고, 제가 도움왕 트로피를 받고 기분 좋게 내려올 수 있었죠.”

“처음 시작할 때는 큰 기대도 없었고,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하나 하나 도움을 기록하다 보니까 감독님이나 주위에서도 많이 도와줬고, 특히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 전담 키커로도 많이 써주는 등 배려가 있었죠. 구단 차원에서도 당시 팀에 타이틀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욕심도 있었을 거예요.”

변재섭-김도훈-박성배 공격 트리오의 결성

2000년대 초반 전북을 기억한다면 변재섭-김도훈-박성배로 이어지는 공격 트리오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여기에 2000년 신인왕이었던 양현정까지 포함한 4인의 공격력은 리그 최고를 다툴 만 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개성이 제각각이었고, 이것이 각자의 단점을 보완해주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이들이 상대 수비에게 두려움을 줬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

“각자의 개성들이 전부 달랐어요. 그게 합쳐지면서 좋은 결과물로 나왔죠. 도훈이 형은 골 결정력이 워낙 좋잖아요. 문전 앞에서 골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으시죠. 여기에 성배는 골 결정력도 괜찮은데다가 파워와 스피드가 탁월했어요. 여기에 저도 스피드가 있고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니니까 호흡이 좋았죠.”

“제가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면 성배가 2-3명을 끌고 들어가 주고, 중앙에서 도훈이 형이 결정해주는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잘 맞아떨어졌어요.(웃음)”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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