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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훈, “U-20 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 넘본다”②


2005년 7월 23일 인터뷰...


청소년 대표팀에서 호된 신고식을 하다.

2002년 중순 U-19 대표팀의 남해훈련에 참가했던 백지훈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처음 참가하는 대표팀 훈련에는 전국의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모두 모였고, 그 긴장감과 소속팀과는 다른 레벨의 차이는 백지훈에게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정말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팀에서는 제가 항상 최고였는데, 대표팀에 오니까 전부 저보다 잘하고...박성화 감독님의 스타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다르고...결국 최건욱 감독님께 전화해서 팀으로 돌아가면 안되느냐고 묻기까지 했을 정도였죠.”

“대표팀에 들어올 때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훈련하고 연습게임을 하고 그러면 몸이 얼어서 패스 하나도 잘 안되고 그랬어요. (최)성국이 형을 비롯해 평소에 정말 잘한다고 감탄했었던 형들이 있으니까 괜히 주눅 들고 그런 거죠.”

무엇보다 팀의 에이스로서 모든 전술이 그에게 맞춰져있던 안동고와는 다르게 대표팀에서의 백지훈은 그저 1명의 미드필더로서 팀을 위한 헌신적인 플레이를 최우선적으로 요구받았다.

이것은 한국 청소년축구가 갖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백지훈 뿐 아니라 고교축구에서 날고 긴다는 최고 선수들은 하나 같이 모든 전술 시스템이 그 선수에게 최적화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기 마련이고, 이것은 즉 공격 쪽으로만 특화된다는 이야기. 현대축구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공수의 밸런스를 맞춰져야만 팀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심각한 문제인 것.

그리고 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백지훈은 U-20 대표팀의 붙박이 멤버가 되지 못한 채 들락날락해야만 했고, 결국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 합류할 수 없었다.

“소속팀에서는 수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대표팀에서는 수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었지만 수비에서는 항상 지적을 받았고, 이 점이 부족하다보니 합류했다가 탈락했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외국 전지훈련이나 이런 것은 다 따라갔는데 막상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는 나가지 못했죠.”

“계속 대표팀을 들락날락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어요. 지금까지는 저에게 수비적인 부분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수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보니 공격에만 치중했고, 자연히 제가 하는 수비가 그렇게 엉망이었는지는 잘 몰랐어요.(웃음) 대표팀에 와서야 제 수비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라고 느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전남에 입단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프로에서 미드필더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비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말이에요. 그래서 많이 신경을 썼죠.”

전남에 입단하다.

이렇듯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백지훈은 안동고를 졸업하고, 김진규와 함께 전남에 입단했다. 대학은 원하는 학교는 어디라도 갈 수 있었고, 프로팀 중에서도 몇 팀이 제의를 해온 상태에서 백지훈은 전남행을 결정했다.

“최건욱 감독님께서 물어보시더라구요. ‘대학은 어느 학교라도 갈 수 있고, 프로는 어디어디가 있는데 어떻게 할래?’라고 말이죠. 한참 고민하다가 굳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대학 가도 최종 행선지는 프로니까요.”

“또 한 가지는 당시 프로팀에서 제시한 계약금이 작은 돈이 아니었거든요. 거기에다가 진규도 같이 가는 거였고, 전남이 또 집 근처이기도 했고...모든 면에서 좋았어요.”

전남에 입단한 백지훈은 시즌 초반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2003시즌 3번째 경기부터 교체멤버로 투입된 것을 시작으로 3경기 연속 교체멤버로서 프로무대에 나선 것.
당시 전남이 젊은 선수들보다는 중견급 이상의 선수들로 경기를 치르는 것을 선호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진규와 제가 초반부터 1군 경기를 뛰자 형들이나 코치 선생님들이 전남에서 고졸 선수가 첫 해부터 이렇게 경기 뛴 적이 없었다면서 놀라워하더라구요.(웃음)”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에 대한 영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여유도 있었던 편이라 백지훈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으나 이따마르나 미셀 등 외국인 선수들이 보강되고, 1경기 1경기가 중요해지다보니 자연히 백지훈에게 주어지는 기회 역시 소멸됐다. 결국 백지훈은 2군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조금씩이나마 1군 경기도 뛰고 그러니까 좋았죠.(웃음) 그러다가 2군에 가게 되었고, 당시 많이 침체됐었어요. 2군에서 훈련하는 것 자체가 싫고 부끄럽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축구하기도 싫어지고 그랬죠.”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진규는 여전히 1군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백지훈은 주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주위에서 ‘진규는 뛰는데 너는 뭐하냐’라는 반응에서부터 ‘그런 것에 신경쓰지 말고 네 할일만 해라’라는 반응까지 다양했어요. 물론 진규는 뛰는데 나는 못 뛰는 상황에서 화가 전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그건 잠시 뿐이고, 내 친구가 1군 무대에서 게임을 뛴다니 좋았어요. 지금은 같이 못 뛰지만, 나중에는 꼭 같이 뛸 거라고 다짐했어요.”

“거기에다가 당시 2군에 김상호(현 U-15 대표팀 코치) 선생님이 계셨거든요. 그 선생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러면서 2군에서의 훈련도 재미있어졌어요. 지금도 조언 많이 해주세요. 어쨌든 그 때 포기하지 않고, 2군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2-3년차 시절에 1군에서 잘할 수 있었죠.”

새로운 청소년대표팀에서 팀의 키플레이어로 자리 잡다.

2004년 U-20 아시아선수권을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청소년대표팀이 출범했다.
그리고, 2003년 U-20 대표팀의 막내였던 백지훈은 김진규와 함께 팀의 최고참이자 주축 플레이어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지난 대표팀에서의 실패를 거울 삼아, 그리고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일단 제가 최고참이다보니까 자신감이 더 많이 생겼고, 자연히 플레이하기도 쉬웠어요. 거기에다 프로무대에서 게임을 하다 보니까 경험도 많이 늘었구요.”

“무엇보다 박성화 감독님의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죠. 박성화 감독님이라면 만약 제가 발전된 것 없이 예전처럼 플레이했을 경우 아무리 프로에서 뛴다 하더라도 분명히 탈락시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또 지난 대표팀에서는 ‘이번에 안되더라도 다음에 기회가 또 있으니까’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 대표팀은 정말 마지막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감독님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에 대해 감독님께서도 좋아졌다고 칭찬을 해주셨죠.(웃음)”

여기에 덧붙여 선수 구성이 새롭게 짜여짐에 따라 U-20 대표팀의 경기 스타일 역시 변화했고, 그 변화의 형태는 백지훈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전체적으로 특출난 선수는 없어도 기량이 고른 특징을 활용하기 위한 패싱게임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미드필드에서 세밀한 패싱을 구사하는 백지훈의 비중도 자연스레 높아진 것.

“이전 대표팀은 개개인의 능력이 특출난 선수들이 있었어요. (최)성국이 형의 개인기는 정말 환상이었고, 여기에 (정)조국이나 (김)동현이의 골 결정력 등등 개개인이 좋다 보니까 몇몇 선수를 중점적으로 활용한 경우가 많았죠. 반면 이번 팀은 고만고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기본기를 잘 갖췄고 팀 전체의 조직력이 좋았어요.”

“2004년 부산컵이나 아시아선수권, 카타르 대회 등에서 일본, 중국과 했던 경기들을 보면 정말 서로간에 호흡도 잘 맞고, 패싱게임이 제대로 된 경기들이었어요. 박 감독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템포 면에서도 상대를 압도하면서 그들보다 한 단계 위라는 느낌까지 받았죠.”

“그런데 확실히 세계대회 나가니까 템포가 우리보다 더 빠르더라구요. 좋은 경험 했죠.”

전남에서 서울로 갑작스런 트레이드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백지훈은 갑작스럽게 팀을 옮기게 됐다.
전남 이장수 감독이 서울로 부임하면서 애제자인 백지훈의 트레이드를 추진했고, 결국 백지훈은 서울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됐다.

“팀을 옮기게 되면 전부 낯선 사람들이잖아요. 선수들도 잘 모르고...제가 낯가림이 조금 있어서 그 부분에서 힘든 면은 있었어요. 그래도 감독님이나 고정운 코치님, 플라비우 피지컬 트레이너 등 전남에서 같이 생활했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다행이었죠. 그리고 생활하다 보니까 적응하고 형들과도 친해지게 되니까 이제는 괜찮아요.(웃음)”

“환경의 변화는 꽤 컸죠. 일단 광양은 워낙 소도시라 밖에 나가도 할 만한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피시방이나 당구장 이런 데만 가야 했었죠. 그런데 서울은 외부에 많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제가 더 정신 차리고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전남에서는 저녁에 할 것도 없으니까 개인운동하고 그랬는데, 여기는 유혹거리가 많으니까요. 이장수 감독님도 그게 걱정이 되셨는지 저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많이 이야기하세요. 여기서는 자기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한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그러나 서울로 팀을 옮긴 후 초반에 백지훈은 거의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장수 감독이 특별히 요청해 데려온 것을 감안하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인 만큼 초반 적응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전남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여기 와서 처음에 2군에서 경기 뛰고 그러니까 아쉬움이 많이 있었죠. 당시 (김)승용이와 거의 비슷하게 엔트리에 포함됐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했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농담 식으로 ‘이러다가 우리 둘다 U-20 대표팀에서도 탈락하겠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죠.(웃음)”

“그래도 감독님이 저를 미워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따로 불러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저는 감독님이 데려온 선수라는 입장도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 입장에서는 기존의 형들을 위주로 먼저 기용해보시는 것이 순리였어요. 또 제가 처음에 서울에 와서 경기장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었는데, 그래도 계속 뛰게 한다면 주위에서 말이 나오게 되잖아요. 이후 제가 어느 정도 역할을 보여준 뒤부터는 경기를 뛸 수 있게 됐죠.”

아쉬움이 많이 남는 U-20 세계선수권

U-20 세계선수권을 눈앞에 둔 2004년 3월.
백지훈은 소속팀 서울과 축구협회간의 차출 분쟁에 휩싸이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서울과 축구협회는 합류시기를 놓고 입장 차이를 보였고, 백지훈은 결국 수원컵을 준비하고 있던 U-20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제가 대표팀에 가고 싶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팀에 있고 싶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 일단 저는 소속팀이 서울이니까 구단의 방침을 따라야죠. 구단에서 가지 말라고 하니 못 가는 것이었구요.”

“나중에 프로경기 끝나고 단장님과 함께 U-20 대표팀 숙소로 갔었지만, 결국 합류하지는 못했어요. 박성화 감독님께서 저랑 주영이, 승용이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시더라구요. ‘기존 선수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금 너희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너희 3명에게 개인적인 감정이나 안 좋은 감정은 절대 없으니까 행여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팀에 가서 훈련 열심히 해라. 일단 너희는 구단 선수니까 구단이 시키는 대로 하고 열심히 해서 다음에 다시 보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우여곡절을 치르고 5월 최종훈련부터 U-20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 백지훈은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김진규를 대신해 주장으로써 팀을 이끌게 됐다. 그리고 맞이한 네덜란드 U-20 세계선수권.

첫 경기 스위스전을 예상치 못했던 수중전으로 치르게 된 U-20 대표팀과 백지훈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여기에 스위스 선수들의 피지컬적 우세와 안정된 볼키핑력이 더해지면서 1-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특히 선제골을 넣은 뒤 7분 만에 2골을 내준 것이 안타까운 부분.

“선제골을 먼저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방심하며 2골을 연달아 내주고 말았어요. 아쉬웠던 부분이죠. 또한 스위스 선수들의 볼 컨트롤 능력 등도 뛰어났구요.”

이어서 맞이한 나이지리아전.
이 경기는 축구팬들에게도, 그리고 백지훈 본인에게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명승부였다. 이 경기에서 0-1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던 후반 44분 박주영이 천금 같은 동점 프리킥 골을 터트렸고, 인저리 타임이 적용되던 후반 47분에는 백지훈 본인이 해결사 노릇을 하며 드라마틱했던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것.

“실점 이후에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면서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비록 주영이가 페널티킥을 놓쳤지만 충분히 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주영이가 해냈잖아요. 사실은 그것으로 승부가 끝날 줄 알았는데, 종료 직전에 제게 기회가 왔죠.”

“후반 막판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영이가 중거리슛을 시도할 때 골키퍼가 잡지 못하고 쳐낼 거라는 예측을 했어요. 타이밍이 맞게 제게 볼이 왔고, 사실 각이 없는 위치였지만 한 곳이 보였고 그 곳으로 힘껏 찼는데 골이 됐더라구요.(웃음)”

나이지리아전 극적인 승리를 뒤로 한 채 맞이한 브라질과의 최종전.
U-20 대표팀은 개인기량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고, 결국 승부는 0-2 패배였다. 결국 한국은 1승 2패를 기록, 2회 연속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쉬움이 크지만 이들이 이제 20세라는 점,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 경험은 그들에게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대회 전에 4강 이상을 목표로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예선 탈락해서 아쉬움은 커요. 브라질전 같은 경우 선제골을 너무 빨리 허용하면서 애들이 부담감을 많이 느꼈어요. 개인기나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분명 한 수 위인 것은 사실이에요.”

“다만 아쉬운 것은 0-1 상황에서 저에게 좋은 기회가 한번 왔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볼을 정확히 맞추지 못해 놓쳤던 거예요. 그 슛만 들어갔더라면 기회가 있었을텐데...어쨌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해야죠.”

결과론이지만 한국과 한 조에 속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던 브라질과 나이지리아가 모두 4강에 진출했고, 나이지리아의 경우는 결승전 상대였던 아르헨티나와 한국에게만 패했다는 사실에서 ‘죽음의 조’에 속했던 한국 U-20 대표팀이 얼마나 불운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에 대한 매력

축구를 시작한 초기부터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해온 백지훈은 고교 시절까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주로 봤었고, 그 이후로는 U-20 대표팀이나 소속팀에서 모두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는 앵커맨.
시야가 넓고, 볼처리가 빠르며, 패싱력을 갖춘 백지훈이 맡기에 적당한 역할이다. 백지훈 본인도 이 포지션에 대해 만족한다.

“중간에서 공격과 수비 모두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허리가 무너지면 모두 무너지게 되죠. 그리고 한 번씩 공격에 침투해서 상대를 흔들어 놓는다든지, 아니면 중거리슛을 시도하는 것도 매력이에요. 한 마디로 말하면 경기를 내 발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이 포지션의 최대 매력이죠.”

‘경기를 내 발로 만들어갈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몇몇 축구만화에서 묘사됐던 부분들이 퍼뜩 떠올랐다. 천재 미드필더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구상하는 축구를 동료들을 이용해 정확히 구현해내는 모습, 몇 수 앞의 경기진행을 미리 예상하고 플레이하는 모습 같은 것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현실 축구에서 구현될 수 있는 것일까.

“그 비슷한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수비라인에서 볼을 돌리면서 이렇게, 저렇게 갔다가 나한테 볼이 오면 내가 이렇게 처리하면 동료가 잘 받겠다’라는 느낌이죠. 예를 들면 4-4-2 시스템에서 (백)승민이가 왼쪽에 있고, 내가 반대편을 보고 있어도 승민이가 왼쪽 측면에서 올라오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있다가 공이 나에게 오면 승민이 쪽을 보지 않고도 바로 넘겨주면 측면에서 올라온 승민이가 받을 수 있다라는 구상 같은 게 떠올라요. 이런 게 내 구상대로 성공하면 기분이 정말 좋죠.(웃음)”

“그런데 사실 미드필드에 서면 이 정도의 생각을 하지 않고는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요. 미리 생각할 수 있어야지 미드필더로서 살아남을 수 있죠.”

동 포지션에서 백지훈이 목표로 삼고 있는 선수는 바로 김남일이다.
어찌 보면 김남일과 백지훈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 김남일은 터프한 수비력을 가장 큰 장점으로 인정받아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트이고 패싱력이 갖춰지면서 공격력을 장착시킨 케이스.

반면 백지훈은 애초에 폭넓은 시야와 패싱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가 서서히 수비력을 장착시키고 있는 케이스이다. 물론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남일이 형은 전남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많이 봐왔는데, 수비와 공격 모든 면에서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인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고, 앞으로 남일이 형과 같은 선수가 되고 싶은 게 꿈이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향해 뛴다.

이번 동아시아선수권에 선발되면서 백지훈은 생애 첫 국가대표의 영광을 안았다.
아직 국가대표 레벨에서 보여준 것이 아무 것도 없긴 하지만, 앞으로의 활약 여하에 따라 내년 독일 월드컵에 대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백지훈의 목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출장이다. 좀 더 경험을 쌓고, 소속팀에서도 확고하게 자리 잡아 대표팀의 주축멤버로서 월드컵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아직까지는 팀에서도 제 자리가 확실하지 않잖아요. 팀에서 분명한 제 자리를 갖는 것이 최고 목표에요. 일단 서울이 올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우승할 수 있게 역할을 담당하는 바람이죠.”

“나아가 2006 독일월드컵에서 뛰고 싶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부족한 점 보완해서 2008 북경올림픽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꼭 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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