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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훈, “U-20 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 넘본다”①

역시 내가 아끼는 동생 중 하나인 지훈이..
근데 요즘 너무 많이 떠서 연락도 거의 못했다..크크..
예전에는 정말 앳되고 귀여웠는데, 이제는 장동건 삘이 나기 시작하는 듯..^^
어느덧 대표팀 멤버가 됐는데, 앞으로도 잘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

2005년 7월 22일 인터뷰..


200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U-20 세계선수권이 끝난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백지훈(20세, 서울)이다.

이미 2002년 17세의 나이로 U-19 대표팀에 선발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고, 2004년 새로운 U-20 대표팀이 구성될 때부터 부동의 플레이메이커로 맹활약하며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는 백지훈에게는 다소 뒤늦은 주목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에서는 “공격진에 박주영이 없는 것보다 미드필드진에 백지훈이 없는 것이 팀 전력에는 더 치명적”이라는 평을 할 정도로 U-20 대표팀의 미드필드를 이끌고 나갔던 선수가 바로 백지훈.

이러한 팀 기여도에 비해 그 동안 백지훈은 동료인 박주영(서울)이나 김진규(이와타) 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 아무래도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그의 포지션 특성상 묵묵히 팀의 공수조율을 비롯한 게임 리딩에 주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백지훈은 U-20 세계선수권 나이지리아전에서 드라마틱한 결승골을 터트리며,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더군다나 예전부터 ‘U-20 대표팀 최고의 꽃미남’으로 불리우며 골수 여학생 팬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던 백지훈의 미모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100% 축구로 인해 상승된 인기는 아닌지라 백지훈 본인에게도 다소 떨떠름함이 남아 있지만, 축구의 재능에 있어서 이미 검증되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다.

소속팀 FC 서울에서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며, 더군다나 얼마 전 발표된 동아시아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며 본프레레 감독의 기대도 받고 있다. 이외에도 2006년에는 23세 이하 선수들이 참가하는 아시안게임이, 2008년에도 23세 이하가 출전하는 북경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어 백지훈의 활약이 크게 기대되고 있는 상황.

특히 2008년 북경올림픽은 이번 세계선수권에 나갔던 그 선수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보다 한 단계 발전된 팀웍과 함께 백지훈의 보다 성숙한 게임 리딩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골키퍼가 하고 싶었던 초등학교 시절

어린 시절을 경남 사천에서 보냈던 백지훈에게 축구 선수로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이다. 진주의 축구명문 봉래초에서 선수선발을 위해 코치가 사천을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백지훈이 선발된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모든 선수가 그러하듯 집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다행히 축구 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큰 반대를 하지 않았고, 결국 축구를 하겠다는 백지훈의 고집이 승리했다.

"사천에서 30명 정도가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 중에서 저랑 제 친구 1명이랑 2명만 합격했죠. 그런데 축구를 하겠다고 할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공부도 곧잘 했거든요.(웃음) 아버지는 축구를 하셨기 때문에 큰 반대는 없었구요. 공부해야 한다고 계속 말리셨는데, 제가 워낙 축구를 비롯한 운동을 좋아해서 끝까지 고집을 부렸죠.(웃음)“

이렇게 해서 진주 봉래초로 전학을 간 백지훈은 특이하게도 골키퍼를 희망했다.
일반적으로 골키퍼를 기피하고 필드 플레이어를 희망하는 것에 반해 백지훈은 그 반대였던 것.

“골키퍼가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더라구요.(웃음) 그래서 골키퍼를 했는데, 초등학교 때 제 키가 엄청 작았었거든요. 그래서 골키퍼는 도저히 안된다고 해서 왼쪽 윙으로 옮겼어요. 그 다음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옮겼고, 이후로는 계속 중앙 미드필더로만 뛰었죠.”

그리고 이때부터 백지훈만의 독특한 버릇도 생겨났다. 일반적인 왼발잡이들과 달리 오른발도 능숙하게 쓰며, 왼발과 오른발이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백지훈만의 특징.

“처음에는 왼발잡이인 줄 몰랐어요. 밥 먹을 때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는 오른손을 쓰는데, 볼 가지고 하는 것은 왼발이 편해요.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보통 왼발잡이는 왼발만 쓰는 경향이 많은데, 저는 큰 구분이 없어요. 희한하게 패스-드리블은 왼발이 더 편하고, 킥은 오른발이 편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초등학교 시절의 라이벌

진주 봉래초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며 경남 일대에서 ‘천재 축구소년’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백지훈에게 축구 인생 최초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으니 바로 오범석(포항)이었다. 고교 시절 U-20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현재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지만, 초등학교 시절 이 둘은 서로를 의식하며 치열한 경쟁을 계속했다.

“범석이가 울산 옥동초였거든요. 원래 축구부가 없는 학교였는데 새로 창단됐어요. 그래서 하면 얼마나 잘하겠냐라는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웃음) 범석이 외에도 지금 울산에 있는 (이)진호도 있어서 신생팀답지 않은 전력이었어요. 당시 범석이는 10번을 단 중앙 미드필더였는데, 얼굴이 새카만 녀석이 엄청 잘하더라구요. 눈에 확 들어왔죠.(웃음) 우리 학교가 꽤 유명한 명문이었는데, 얕보다가 지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더 분발할 수 있었던 좋은 자극제였죠.”

“이밖에도 대구 반야월초에 현재 수원에 있는 (김)동현이가 있었어요. 그 시절부터 덩치가 엄청 커서 유명했죠.(웃음) 경남-경북 지역에서는 이 정도 선수들이 기억이 나네요.”

안동고에 진학하다.

봉래초를 졸업하고 진주중에 입학한 백지훈은 여전히 팀의 에이스로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로 인해 여러 축구명문고들이 백지훈을 노렸다. 최건욱 감독이 이끄는 안동고 역시 마찬가지.

“당시에 안동고가 진주로 전지훈련도 많이 왔고, 또 저희가 안동으로 전지훈련 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연습게임 같은 거를 하다보면 최건욱 감독님께서 ‘너희들, 우리 학교로 와라’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기도 했죠.”

그러나 당시 백지훈을 비롯한 진주중 선수들은 안동고행을 피하자며 굳은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안동고에 대한 인식이 훈련량이 많고, 감독도 무서운 학교로 굳어 있었기 때문.

“동기들끼리 모이면 ‘우리 안동고는 될 수 있는 한 피하자’라고 이야기하고 그랬어요.(웃음) 그런데 부모님들이랑 감독님이랑 이야기가 되어서 결국 진주중 졸업생 10명 중 저를 포함한 5명이 안동고로 가게 됐죠.(웃음)”

안동고 입학. 그리고 단짝 김진규와의 인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간 백지훈은 안동고 진학을 위해 동기들과 풍기중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리고 호랑이 감독으로 소문이 났던 안동고 최건욱 감독은 이 소문에 대한 백지훈의 걱정을 들었는지 입학 전부터 세심한 관리(?)로 백지훈을 안심시켰다. 최 감독은 풍기중을 가끔 방문해 백지훈을 비롯한 미래의 안동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이와 같은 불안을 불식(?)시켰다.

“정말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어요.(웃음) 그런데 풍기중에 있을 때부터 감독님이 가끔 오셔서 용돈도 주시고, 먹을 것도 사주시면서 잘해주시니까 그런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죠. 오히려 3학년 말쯤 되니까 빨리 안동고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요.(웃음)”

“그렇게 해서 안동고에 들어갔는데 형들도 잘해주고, 감독님도 생각했던 것처럼 엄하시지는 않았어요. 가끔 단체기합도 받고 그랬지만, 그 정도는 좋은 추억거리죠.(웃음) 저에게 좋은 약이 되기도 했구요.”

그리고 안동고 입학과 함께 영원한 단짝 김진규(이와타)와 인연을 쌓게 된 것도 백지훈의 고교 시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추억이다. 사실 처음에 김진규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풍기중 3학년 시절 경북 지역대회에서 당시 영덕 강구중에서 뛰고 있던 김진규와 처음 대면한 백지훈은 그 때의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기 전에 주위 사람들이 강구중에 엄청 무식한 애가 하나 있다. 걔랑 시합할 때는 조심하라고 그러더라구요.(웃음) 시합에서 직접 봤는데, 쟤가 우리 또래 맞냐고 생각될 정도로 컸죠.”

“들리는 이야기로는 진규도 안동고로 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눈게 저 놈이 오면 자기가 대장인 척 할 거 같다는 거였죠.(웃음) 다행히 우리 풍기중 동기들이 5명이니까 저 놈이 뭐라 하면 우리가 힘을 합치자라는 결의까지 했어요.(웃음)”

이렇듯 김진규에 대한 첫 인상이 좋지 않았던 백지훈이지만, 이들이 친해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풍기중에 있을 때부터 선배들과 자주 만났기 때문에 친했는데, 진규가 다니던 강구중은 그렇지 못했었나봐요. 어느 날 보니까 진규를 비롯한 강구중 애들이 구석에서 엄청 불쌍하게 앉아있더라구요.(웃음) 그 때부터 조금 달리 생각했는데, 지내다보니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엄청 순하고 착했어요.(웃음) 이미지와 다르게 주변도 잘 챙겨주고요.”

더군다나 백지훈과 김진규는 특출난 실력으로 인해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들과 함께 경기장에 따라나설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서로를 더욱 의지하게 되면서 자연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막내가 해야 하는 각종 잡무를 함께 하며 동병상련의 정이 싹텄고, 또 그 과정에서 어설픈 숙소이탈도 하면서 둘 만의 추억을 쌓아갔다.

“1학년 초기에 형들 시합 나가면 저랑 진규만 같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시합에 따라 나서다 보면 아무래도 막내이다 보니까 빨래도 해야 하고 그러는데, 그러면서 서로 의지하게 되고 그런 거죠.”

“둘이서 도망친 적도 있었어요. 비록 몇 시간 동안이었지만..(웃음) 설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동기들은 모두 휴가를 보내줬거든요. 그런데 저랑 진규는 형들 따라 경기에 나갔어요. 시합에서 잘 못 뛴다고 형들이 뭐라 그러는데다가 밤에 둘이서 빨래를 하고 있자니 너무 서러운 거예요.(웃음) 그래서 진규랑 도망갔죠.”

“숙소를 나오니까 막상 갈 때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게임방에 갔는데, 진규는 들여보내주면서 저는 안된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밖에 나와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2학년 형이랑 마주쳤어요. ‘니네 뭐하냐?’고 그래서 숙소로 돌아왔어요.(웃음) 숙소에서 도망친 지 몇 시간 만이었죠. 형들이나 선생님들은 우리가 도망쳤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예요.(웃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숙소 이탈이었어요.”

안동고를 고교 최강으로, 그리고 U-19 대표팀 발탁

1학년 초 형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벤치 신세였던 백지훈은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기 출장횟수를 늘리기 시작했고, 2학년부터는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백지훈은 완벽한 공수조율과 날카로운 패싱 감각을 바탕으로 팀의 키플레이어로 자리 잡았고, 3학년 시절인 2002년에는 안동고를 전국고교선수권 우승으로 이끌며 MVP의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활약은 U-19 대표팀 박성화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먼저 대표팀에 발탁되었던 김진규에 이어서 백지훈도 드디어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다.

당시 박성화 감독은 “안동고에 볼을 기가 막히게 차는 애가 있다. 이번에 경기 하는 거 보고 뽑았는데, 그 또래에서 볼 차는 센스는 최고다. 아직 피지컬적인 부분이나 수비력 등에서 문제가 있는데 한번 지켜봐야겠다”라면서 큰 기대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경남권에서는 두각을 나타냈던 백지훈이었지만, 대표팀 발탁은 이 때가 처음.
풍기중 3학년 시절 유소년상비군에 합류할 기회가 있었으나 팀 감독과 아버지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것.

“어렸을 때는 감독님이나 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하셔서 안 갔죠. 너무 어릴 때 대표팀 갔다 오고 그러면 건방져진다고 하셔서...물론 선발된 것이 영광이고 기쁜 일이긴 한데, 좀 더 큰 뒤에 가는 게 낫겠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도 그 시절에는 대표 같은 것은 잘 몰랐어요.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대표팀에 대해 의식을 하게 됐죠.”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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