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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② 이해두 차장(2), "월드컵 본선준비와 스페인전"

94월드컵 스페인전 경기모습

2003년 2월 3일 대한축구협회 기사...


94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극적으로 통과한 뒤 우리는 마산, 창원, 제주 등 훈련여건이 좋은 곳을 돌며 강화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제주훈련에서는 한라산 등반만 4번을 했는데 전부 다른 코스로 등정했다. 김호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축구에서도 한가지 스타일의 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상을 가더라도 여러 코스로 공략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훈련에 굉장히 만족했고 정신무장을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또한 그 때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선수들의 성취감과 승부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은 많은 효과를 봤다.

국내에서의 훈련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는 94 미국월드컵에 대한 현지적응을 위해 2월에 LA 전지훈련을 떠났다. LA 훈련에서는 개인적으로 홍명보가 특히 생각난다. 당시 홍명보는 현재 부인인 조수미 씨(당시 LA 거주)와 열애 중이었는데 전지훈련을 통해 나를 비롯해 대표팀 선수들은 이들의 관계를 눈치챈 바 있다.

비운의 선수 정재권, 분위기 메이커 이기범, 정종선

(정)재권이는 김호 감독님에게 가장 꾸중을 많이 들은 선수였다. 스피드가 탁월한데다 의욕적이고 개인 훈련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선수였는데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았다. 김호 감독님은 재권이에게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부상이 없어야 되는데 너는 왜 이렇게 부상을 많이 당하냐?"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김 감독님은 훈련 및 평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재권이를 비롯해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해 뛰어라. 부상을 당해도 월드컵에 꼭 데려가겠다"라고 독려하셨다. 그러나 결국 재권이는 부상으로 인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김 감독님은 "재권이가 예선에서 정말 공을 많이 세운 선수인데 월드컵 본선에 불가피하게 데려가지 못하니 격려금이라도 줄 수 없겠냐"라고 축구협회에 부탁했고 다행히 정재권에게는 격려금이 지급됐다.

(이)기범이는 월드컵 예선기간 동안 팀 내 최고의 분위기메이커였다. 갖은 익살로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월드컵 최종엔트리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기범이의 뒤를 이어 (정)종선이가 최고의 분위기메이커로 자리잡았다.

얼굴이 워낙 새까매서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 사람으로 종종 오해받던 종선이와 나는 친해서 서로 농담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언젠가 이런 농담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종선아, 외국 사람들이 이야기하길 너보고 용병선수인데 어떻게 한국대표로 뛸 수 있느냐라고 그러더라. 어찌해야 되냐?"라고 말하자 종선이 왈 "제가 용병으로 와도 한국인의 피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없습니다."

종선이가 아시아 최종예선 이라크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해서 마음고생도 컸는데 선수생활 잘 마무리하고 현재는 언남고 감독으로 전국대회 우승도 하는 등 지도자의 길을 잘 걷고 있어 흐뭇하다.

전국대회 우승했을 때 축하전화를 했더니 "아, 형님. 반갑습니다"라고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로 반겨주는걸 보니까 나 역시 반가웠다. 종선이가 얼굴은 조금 험악(?)하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정이 많은 친구였다.

94월드컵 대표팀 주무를 포기하려 하다.

사실 아시아 최종예선 끝나고 94월드컵을 준비하고 출전했던 그 시기는 내가 주무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다. 당시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임신중독증에 걸려 있어 몸이 좋지 않았다.

도저히 그 상태로 아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가기 괴로워서 축구협회에 "이번 월드컵 대표팀 주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파견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김상진 부회장님과 당시 김정남 전무님, 가삼현 국제국장님(당시 국제부장)이 나를 부르시더니 "부인을 돌볼 수 있는 아줌마를 집에 보내줄테니 미국에 가라. 김호 감독이나 코칭 스태프가 자네가 꼭 같이 가주기를 바라더라. 2년여간 호흡을 맞춰왔는데 지금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 김 감독이나 코칭스태프의 의견이었다"라고 말하셨다.

결국 임신한 아내를 두고 대표팀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월드컵 본선경기를 앞둔 선수단 분위기

월드컵 본선경기를 앞둔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는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선배들로부터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주눅이 들어있었고 신경도 매우 날카로웠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 역시 식사, 운동장, 차량, 유니폼, 세탁, 잠자리 등에 한치의 착오도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다. 호텔 내 지배인을 불러서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선수 및 코칭스태프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짐이었고 혼자 하기에 힘들었던 일이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까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또한 나와 박항서 트레이너는 김호 감독님의 부름을 많이 받기도 했다. 감독님 역시 스스로 불안해하고 계셨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불러서 2-3시간씩 불안사항이나 힘든 점을 이야기하시곤 했다.

당시 박항서 트레이너와 나는 같은 방을 썼는데 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서로 받지 않으려고 자는 척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일정이 워낙 빡빡했기 때문에 박 트레이너나 나 역시 매우 피곤한 상황이라 감독님의 2-3시간 이야기를 듣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자 감독님께서 직접 내려오시기도 했다. 전화를 왜 아무도 받지 않느냐고 그러시면서...

94월드컵 본선 스페인과의 첫 경기 - 극적인 무승부

스페인과의 1차전이 열렸던 댈러스나 2,3차전이 열렸던 보스턴이나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적인 무더위였다. 그런 더위는 살아 생전 처음 봤다. 경기장의 선수 라커룸은 에어컨 장치가 잘 되어 있고 냉장고나 아이스박스 시설도 잘 되어 있었지만 라커룸 있다가 밖에 나가면 안경이 뿌여질 정도였다.

우리가 댈러스에서 묵었던 숙소는 3층 건물이었는데 제주도 파라다이스 호텔과 비슷했다. 스페인전을 앞둔 대표팀에게 여러 곳에서 격려전화가 쇄도했다. 대통령 비서실에서도 전화가 와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김호 감독님과 통화해 격려를 하기도 했다.

모든 감독들이 그러하듯이 김호 감독님도 첫 경기를 무척 중요시하셨고 이로 인해 경기 전 선수들에게나, 나에게나 주문상황도 많았고 신경도 매우 날카로운 상태였다. 장외에서 압박을 많이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교민들이나 대사관 직원 등의 전화는 집중력 유지를 위해 모두 내가 중간에 차단해야 했다.

스페인전에서 나는 가삼현 국장님과 함께 벤치가 아닌 일반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벤치에는 팀 닥터가 앉아야 했고 또한 김호 감독님이 이용수 교수(당시 대표팀 미디어 오피서로 활동)를 벤치에 앉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가삼현 국장님과 함께 연신 담배를 피워가며 경기를 지켜봤고 선수들은 댈러스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전반 내내 선전을 펼치며 강호 스페인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전반 25분에는 스페인의 수비수 나달이 고정운을 뒤에서 밀치며 퇴장을 당해 11:10의 숫적 우위까지 지니게 됐다. 전반을 마치고 후반에 들어선 선수들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고 공세를 계속했다.

그러나 후반 6분 수비진영에서 볼을 몰고 나오던 신홍기가 공을 빼앗기며 순식간에 위기상황을 맞이했고 결국 살리나스에게 1골을 내주고 말았다. 선수들의 당황한 기색이 관중석까지 보였고 결국 5분 뒤 고이고체아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후반 초반 한순간의 난조로 2점을 빼앗긴 것은 막대한 손실이었다. 선수들의 국제대회경험이 부족해 순간적으로 냉정함을 잃고 당황했던 것이 실점의 큰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선수들이 빨리 냉정을 되찾아 분위기를 수습했고 공세를 취했다. 수비 위주의 소극적인 자세로 나선 스페인을 맞아 우리는 쉴새 없이 맹공을 퍼부었고, 결국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골로 연결되며 1골을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불과 5분. 나는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며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고 후반 44분 홍명보의 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극적인 2-2 동점골을 뽑아내며 경기장을 열광케 했다. 나 역시도 옆에 있던 가 국장님을 얼싸안고 이 감동의 순간을 만끽했다.

경기 자체는 극적인 2-2 무승부로 마감되며 좋은 경기를 펼쳤지만, 돌이켜 보면 전반 상대 수비수 나달이 퇴장 당해 숫적 우위가 있었고 경기 분위기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게임이라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전에 이어 2차전 볼리비아전을 앞두고 큰 사건이 발생했다.

3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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