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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석, "아시아가 인정한 차세대 수문장"


2002년 12월 28일 대한축구협회 기사..


지난 9월 UAE에서 열린 제 10회 U-17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은 16년만에 정상을 탈환하며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대회 기간 내내 발군의 활약으로 한국의 골문을 지킨 골키퍼 차기석(16, 서울체고)은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선정한 대회 MVP와 베스트 11에 뽑히며 아시아 전역에 그 명성을 떨쳤다.

사실 그 동안 한국축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항상 거론되었던 것이 바로 골키퍼이다. 중요한 국제대회마다 우리는 항상 골키퍼 불안으로 고민해야 했다. 팀 전력의 50%를 차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축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포지션이 골키퍼이고 보면 그 동안 한국은 치명적인 약점을 내부에 지닌 채 국제무대에 도전해 왔던 것이다.

지난 2002월드컵을 돌아보자. 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독일이 결승까지 진출한 데는 '철벽 수문장' 올리버 칸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또한 매번 조 예선에서 탈락했던 한국이 4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골키퍼 이운재가 침착하게 골문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좋은 골키퍼 하나는 팀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운재의 뒤를 이을 차세대 수문장을 육성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청소년 레벨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골키퍼들이 다수 출현,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U-20 대표팀의 김영광과 염동균(이상 전남)은 이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아왔고 오늘 소개할 차기석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현재 서울체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차기석은 일단 골키퍼로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졌다. 189cm, 79kg의 균형 잡힌 몸은 차기석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더군다나 키는 아직도 크고 있는 중이어서 190cm대는 쉽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U-17 대표팀의 GK코치인 김범수 코치는 차기석에 대해 "신체조건이 탁월하고 안정감이 있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보여준 모습은 거의 완벽했다. 지금 연령대에서는 최고"라며 "관리만 잘한다면 앞으로 한국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할 재목"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김 코치는 "다만 자신감이 넘쳐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조심해야할 부분"이라며 "하체 힘이 다소 부족해 점프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면 외국진출도 가능할 만한 선수"라고 밝혔다.

차기석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 축구명문인 포철동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차기석은 그 당시부터 체격조건이 좋았고 이것을 눈여겨봤던 포철동초교 축구부 감독에게 축구부 입단을 권유받게 됐다.

"축구를 워낙 좋아했었기 때문에 감독님께 권유를 받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했죠. 처음 테스트는 공격수로 받았는데 너무 느리다고 골키퍼를 보라고 그러시더군요.(웃음) 사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많이 말리셨어요. 골키퍼는 하지 말라고. 그래도 볼을 잡다보니까 재미있어 계속 하겠다고 그랬죠."

운동장을 뒹굴며 골키퍼의 기초를 배웠던 처음 3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하는 차기석은 지금은 골키퍼라는 포지션에 100%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포지션에 100% 만족하고 있고 현재 아시아선수권 MVP이자 전도유망한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차기석이지만 축구 인생이 계속해서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포철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포철중에 입학한 차기석은 중학교 2학년 무렵 축구를 포기할까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당시 몸상태도 좋지 않았고 슬럼프가 무척 오래 갔어요. 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겨울부터 줄곧 유소년 상비군에 뽑혔는데 거기에서도 탈락했죠. 그 때를 즈음해서 신장에 염증이 생겨 2달 반 동안 운동을 쉬기도 했어요. 이 무렵 정말 축구를 포기할까 생각했었죠."

"그런 와중에 경신중 이희철 감독님께서 다시 한번 해보자고 권유하셨어요. 저도 서울로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결심했고 결국 경신중에 들어갔죠."

포철중에서 경신중으로 전학한 뒤 차기석은 지금까지의 슬럼프를 만회하려는 듯 연습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결국 중학교 3학년 여름부터 다시 유소년 상비군에 선발되며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았다. 이 때부터 현재까지 차기석은 줄곧 대표팀 골키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듯 축구인생에 큰 전환을 가져왔던 중학교 3학년 시절 차기석 개인으로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열린 탐라기 대회에 참가했던 차기석은 비록 팀은 16강에서 탈락했으나 골키퍼로서 3골을 터트리는 기염을 토한 것.

"팀이 16강에서 떨어져 아쉬움이 많았던 대회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억에 남는 대회였어요. 3골이나 넣었으니까요. 3골이 모두 페널티킥이긴 하지만 말이죠.(웃음) 감독님이 저보고 차라고 하시더라구요."

"사실 가장 아쉬웠던 경기도 중 3때 경기였어요. 중 3때 저희가 성적을 전혀 내지 못했었는데 서울시장기에서 결승에 진출했죠. 결승전에서 중동중과 만났는데 너무 어이없게 졌어요. 제가 긴장해서 골을 쉽게 허용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당시 중동중에는 U-17 대표팀에서 같이 뛰고 있는 (강)진욱이, (이)강진이 등이 있었죠."

2002년 경신중을 졸업하고 서울체고에 진학한 차기석은 9월에 열리는 U-17 아시아선수권을 대비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U-17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다. (사실상 U-16 대표팀. U-17 세계선수권이 2003년에 열리므로 2002년 아시아대회에는 U-16 선수들까지 참가할 수 있다.)

U-17 대표팀 소집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께 했던 차기석은 팀 전체, 그리고 본인 자신도 변화하고 발전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일단 처음 소집됐을 때는 서로간에 그다지 라이벌 의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내가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더욱 분발하고, 그것을 보고 다른 애들도 더 열심히 하고...팀 전체가 그런 경쟁을 통해 발전했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경기 중에도 서로 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윤덕여 감독님께서 항상 그 부분을 강조하셔서 이제는 경기 중에 서로 말을 많이 하면서 플레이를 해요. 또 서로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이것은 무척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경기 중 팀원간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 팀원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서로를 도와주고 받쳐주고, 결국 팀 전체가 탄탄한 조직력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골키퍼인 차기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골키퍼와 수비라인간의 의사소통과 호흡이 어느 정도 맞느냐는 것은 수비 조직력에 있어 무척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차기석의 성격이 다소 내성적인 편이라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힘든 부분도 있었죠. 제가 나서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감독님이나 김범수 코치님께서 좀 더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하라는 것과 수비진에 말을 많이 해주라는 말씀을 계속 하셨어요. 의도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죠."

"중앙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이)강진이, (강)진욱이 등과 사생활에서도 친하니까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평상시에도 서로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상황에선 이렇게 저 상황에선 저렇게 하자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경기 전에도 그렇고 경기 중에도 서로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죠."

사실 U-17 아시아선수권을 위해 UAE로 떠나기 전, 코칭스태프는 차기석에 대해서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고 한다. 연습게임에서 순간적인 실책성 플레이를 자주 연출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려는 아시아선수권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차기석은 결승전까지 6게임을 통해 신들린 듯한 선방을 여러 차례 선보이며 한국이 우승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연습게임에서는 모르겠는데 대회에 들어간 뒤에는 집중력이 더 높아졌어요. 중요한 대회이다보니 연습게임보다 마음 속 준비와 각오도 단단히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많이 하고 그랬거든요."

"대회가 열렸던 UAE 날씨가 워낙 더웠고 음식도 맞지 않아 고생 많이 했죠. 심지어 8강전을 위해 아부다비로 버스로 이동할 때는 에어컨이 고장나 전부 웃통을 벗고 견뎠던 일도 있어요.(웃음) 그래도 우승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축구를 시작한 이래 우승한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었거든요. 너무 좋았다는 말밖에 못하겠어요. 그리고 MVP는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얼떨떨하기도 해요. 물론 받아서 좋죠."

그렇다면 차기석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차기석은 예선 2차전 예멘과의 경기와 결승전 승부차기 순간을 꼽았다. 특히 예멘과의 예선전은 경험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경기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어린 선수들에게는 말이다.

차기석을 비롯한 U-17 대표팀 선수들은 사실상 공식 국제경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고 예멘전은 경기 자체의 어려움 이외에도 경기 외적으로 관중석을 온통 뒤덮은 예멘 응원단의 하얀 물결에 선수들이 압도당했던 경기이기도 했다.(U-17 대표팀의 공식 국제경기는 아시아선수권 1차예선 3경기가 있었으나 이것은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등 국제경기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기들이었음.)

"예선 2차전 예멘과의 경기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든 경기였어요. 상대팀 전력을 잘 모르는 상태였고 무엇보다 관중석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응원단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경기를 갖는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전반에 계속 밀렸죠. 후반이 되니까 좀 진정이 되고 감독님도 독려하셔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했던 순간은 정말 긴장되더라구요. 어떻게든 한 개만 막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제가 막진 못했지만 다행히도 그 쪽에서 한 명이 실축을 했죠. 마지막에 (이)상용이형이 골을 넣고 우승이 결정됐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들었어요. 그냥 좋다, 너무 좋다라는 생각만 들었죠."

지금 차기석의 나이 16세.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모하는 시점이다. 골키퍼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과감성과 냉정함이라고 꼽는 차기석은 자신의 우상인 이운재(수원)와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골키퍼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운재 선배님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카시야스 골키퍼의 경우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월드컵도 보고 그 전 레알 마드리드 경기도 많이 봤는데 어린 나이에도 큰 경기에서 그렇게 자신있게 한다는 것이 제가 배울 점인 것 같아요. 케이블 TV를 통해 해외축구를 많이 보고 있는데 배울 점이 많아요. 진정한 축구를 보는 듯 해요."

그렇다면 차기석이 생각하는 골키퍼로서 가장 까다로운 공격수 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어차피 골키퍼는 골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골을 넣기 위해 존재하는 공격수와는 상충되는 부분이다. 차기석이 생각하는 까다로운 스타일의 공격수 역시 어차피 본인이 넘어서야 할 벽이다.

"골키퍼의 입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스타일의 공격수를 꼽자면 또래 선수 중에는 (한)동원이를 꼽을 수 있어요. 체격조건이 좋고 파워가 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골키퍼나 수비수의 타이밍을 뺏는 슈팅에 무척 능해요. 그런 스타일의 공격수가 가장 힘들어요. 뭐 극복해야할 일이죠. 연구하고 노력해서 타이밍을 뺏기지 않도록 해야죠."

이제 차기석에게도 아시아 무대를 넘어 세계무대로 나가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2003년 8월, 차기석은 U-17 대표팀과 함께 더 높은 무대를 향해 도전한다. 핀란드에서 열리는 U-17 세계선수권을 통해 보다 수준 높은 상대들과의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아시아선수권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성숙해진 바 있는 차기석으로서는 세계선수권에의 도전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일단은 선발전이 많으니까 대표팀에 선발되는 것이 급선무이죠. 가게 된다면 경기에서 뛰고 싶고, 다른 나라 애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요. 사람들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할 수 있다면 우승까지 차지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싶어요."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언젠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고 싶어요. 케이블 TV를 통해본 잉글랜드리그는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물론 골키퍼가 해외에 진출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 곳에서 최고가 되고 싶고, 나아가 세계 최고 골키퍼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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