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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부상 시련을 딛고 일어서려는 불운한 천재"

재기에 힘쓰고 있는 김경일/MUKTA

2002년 1월 25일 기사...
결국 화려하게 재기하지 못했던 김경일..부활해주길 기대했었는데 쉽지는 않았나보다..요즘 축구교실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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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을 준비하는 유망주> 코너에 김경일을 소개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과연 이것이 어울리는 선택인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김경일에 대한 축구팬들의 평가는 '한 때 최고의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사라져버린 선수'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고교 2학년 시절인 97년 광양제철고를 전국선수권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차지, 축구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김경일은 98년에도 KBS배 MVP를 차지하며 초고교급 미드필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볼배급과 볼 키핑력, 슈팅력 등 플레이메이커가 갖고 있어야 할 요소들을 모두 갖췄으며 여기에 덧붙여 180cm, 71kg의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수비력까지 겸비, 그 동안 한국축구가 갖지 못했던 한 단계 진화된 플레이메이커로 각광받았었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지리라 기대했던 김경일은 거듭된 부상의 악몽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불과 3년 전인 1999년 당시 고졸 최고의 대우를 받고 전남에 입단할 때만 해도 '초고교급 플레이메이커', '고종수를 능가하는 재목'이란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프로무대에 데뷔했으나 이후 3년 동안 피로골절과 무릎부상으로 5번이나 수술을 받으며 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던 것.

 "입단 첫해인 1999년 처음 왼쪽 발목에 피로골절이 왔어요. 결국 거의 1년을 쉬었죠. 그 뒤로도 크고 작은 부상에 계속 시달렸어요. 무릎부상도 당했구요. 피로골절과 무릎 때문에 수술만 5번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지난 해 9월에 삼성의료원에서 무릎수술을 받았죠. 여러 번 다쳤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져서 이번에는 회복기간을 4개월 정도로 길게 잡았어요. 현재 몸상태는 정상입니다. 재활훈련을 충실히 하고 있고 전지훈련에서는 정상훈련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토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경일로서는 계속되는 부상의 악몽이 지긋지긋할 만도 하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한 고통과 마음고생을 이야기하는 김경일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처음 피로골절이 왔을 때는 '너무 앞만 보고 왔으니 좀 쉬라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쉬었어요. 그런데 부상이 재발하고 또 재발했을 때는...특히 2000년 호주 전지훈련 도중에 다쳐서 귀국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 상황을 돌이켜보니 눈물이 저절로 떨어지더라구요. 왜 나한테만 이런 고통이 오는 건지 납득하기가 힘들었죠. 그 당시 술도 먹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다행히 여자친구가 힘들 때 옆에서 조언해주고 꾸짖어주고 위로해줘서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그 시기 때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정말 엉망이 됐을 거예요. 어린 나이에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고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좋아질 것 같아요."

 "처음 피로골절 때문에 1년 가까이 쉬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생각이 많이 틀려졌음을 알 수 있어요. 그 때 당시는 내 몸이 다쳤다는 걱정보다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면 어떻하나라는 걱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1년, 2년 지나가면서 다치고, 또 다치고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어지고 내가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내가 완전히 회복되어서 축구를 제대로 하게되면 사람들이 다시 김경일이란 존재를 알아주겠죠. 아쉽다는 생각보다 지금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에요."

 김경일을 괴롭혔던 것은 부상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냉소적인 시선이다. 차라리 대학에나 들어가지 괜히 프로팀으로 갔다라든가 고졸출신 프로선수의 실패사례로 자신을 꼽는 것이 김경일에게는 상당한 심적 고통으로 다가온 듯 싶었다.

 "결과적으로 프로에 와서 한 것이 없고 부상만 당했으니까 프로행을 택한 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입은 피로골절이란 것이 중고등학교때 무리를 했기 때문에 왔던 것이에요. 대학을 갔다면 더욱 무리를 했을테니 결국 부상을 당했을 것이고, 무릎부상 역시 인조잔디를 비롯한 열악한 그라운드 사정에서 뛰게된다면 더 악화됐을 거예요. 대학에서 3년을 쉬었다면 이제 4학년이 되는데 과연 제가 어떻게 되어 있었을지 생각하면 회의적이에요. 그리고 대학팀에서 프로팀이 해주는 것만큼 충실하게 수술 및 재활훈련을 시켜줄 수 있을까요? 일단 프로라는 곳에 와서 3년을 지낸 동안 경기에는 많이 뛰지 못했어도 보고 느낀 것이 많아요. 저보다 훌륭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옆에서 보게되고 같이 플레이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말이죠. 대학 3년보다는 프로 3년이 더 값지다고 생각해요. 후회는 없어요."

 "그리고 한가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어린 나이에 프로에 왔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자만심으로 바뀌면 안된다는 거예요. 자기 절제가 필요해요. 좋은 것은 무조건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잘하는데 왜 게임 못 뛰게 하냐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돼요. 프로선배들 모두 축구에 있어서 한가닥 하는 선수들이고 갓 고교 졸업한 선수들보다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은 선수들이거든요. 남들보다 일찍 몸관리를 시작하는 거니까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해나갔으면 해요. 물론 구단에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나름대로의 기회를 좀 더 줘야 하구요. 고교졸업하고 갓 들어온 선수들이 지금 당장 고참선배들보다 잘하겠어요? 자꾸 기회를 줘야 성장하죠. 안양의 최태욱 같은 선수 봐요. 프로 들어와서 꾸준히 기용되더니 일취월장했잖아요."

 장흥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이래 줄곧 미드필더로 활약해온 김경일은 광양제철고에 진학하면서 금호고 시절 윤정환과 고종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들을 키워왔던 기영옥 감독을 만나 축구에 눈을 떴다. 김경일 자신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주저없이 기영옥 감독을 꼽았다. 그리고 1999년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U-20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대표팀의 주전 플레이메이커로 기용되며 투톱 이동국, 김은중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비록 청소년대표팀은 예선탈락하고 말았지만 이 때가 김경일 본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때가 지금까지의 제 축구인생에서 황금기였죠.(웃음) 뭐 앞으로 축구할 날이 많이 남았으니 더 좋은 시기가 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그 당시에는 주위에서도 많이 인정해줬고 축구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그 덕분에 실력도 하루하루 늘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처음으로 뭐든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해야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었죠. 아쉬웠던 것은 우루과이전에서 제 슛이 골대 맞고 나왔던 거예요. 그 때 그것만 들어갔어도 16강에 진출하는 건데..."

 그 당시 이야기를 하는 김경일의 표정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당시 김경일은 서기복, 김건형 등과 함께 미드필드를 형성하며 게임조율을 맡았었다.

 "(이)동국이형은 일단 움직임이 크고 패스를 줄 때 믿음이 가요. 듬직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요? 볼 잡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동국이형이었죠. (김)은중이형은 체격이 컸음에도 유연했어요. 동국이형과는 축구스타일이 조금 틀리죠. 동국이형이 스케일 큰 전형적인 스트라이커 스타일이라면 은중이형은 오밀조밀하고 세밀하게 하는 편이었어요. 그리고 사이드에서는 (설)기현이형이 휘젓고 다녔죠. 아무튼 미드필드에서 경기 풀어나가기가 편했어요. 우리 실력만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으면 16강 진출에 성공했을텐데 아쉬워요."

 "지금 다시 가게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왜 그렇게 떨리고 힘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제 장점으로 흔히 넓은 시야를 꼽곤 하는데 그 때는 바로 눈앞밖에 안보였어요.(웃음) 경험이란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덧 2002년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1999년 당시 김경일을 두고 2002월드컵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주로 꼽곤 했었다. 아쉽게도 그 당시 축구팬들이 김경일에게서 느꼈던 한 단계 진화된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대감은 단지 기대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김경일은 이제 겨우 22살이다. 아직 2006월드컵까지는 4년의 시간이 남아있고 그 기간은 예전 김경일의 모습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저는 원래 새해가 되면 소원 빌고 기도하고..이런 거 한번도 안해봤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새해에 기도라는 것을 했어요.(웃음) 올해는 제발 다치지 않게 해달라구요.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으니 다치지 않고 한 시즌을 소화하게만 해달라고 말이에요."

 "좋아질 거예요. 나름대로 프로에 다 적응했고 올해 코칭스태프에 변화가 오면서 팀의 분위기도 좋아요. 3년 동안 중간 중간 뛰긴 했지만 사실 3년 쉬었던 거나 다름없죠. 3년 전의 내 몸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많이 노력할 거고 힘들었던 것은 다 잊을 거예요. 힘들었던 최근 3년의 시간보다 앞으로 축구할 시간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예전의 제 기량을 찾을 수 있을 테고 국가대표로도 다시 뽑힐 날이 오겠죠."

 무엇보다 더 이상 부상의 고통이 그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경일의 플레이에서 가능성을 엿봤고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한 팬으로서, 그리고 김경일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그의 고민과 아픔을 엿보았던 사람으로서 그가 이제 더 이상은 부상의 고통 없이 예전 청소년대표팀 시절처럼 즐겁게 축구를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2006월드컵도 김경일의 눈앞에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어린 나이에 힘든 시련을 겪은 그이기에 앞으로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의 축구에 대한 재능과 감각을 다시 한번 꽃피우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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