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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FA 사람들] 경기국 이상호 부장①


경기국에 계시다가 지금은 2007 U-17 세계선수권 조직위원회로 파견근무나가신 이상호 부장님..
축구계와 축구 그 자체도 훤하신 분이시다..^^

2005년 4월 12일 인터뷰...


이번 [KFA 사람들]에 소개할 경기국의 이상호 부장(54세)은 축구 현장업무에 있어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이자 아마도 국내 축구계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1992년 KFA에 입사했으니 이제 축구계에 발을 담은지도 13년째 접어들었고, 그 기간 동안 KFA 경기국에서 각종 축구대회와 행정과 관련된 많은 업무를 소화했던 베테랑.

KFA에 들어오기전에는 대한항공에서 근무를 했었던 이 부장은 당시에도 엄청난 축구광이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KFA에 들어오게 됐다. 이 부장은 대항항공 승무원 시절 대표팀이 해외원정을 나가게 되면 어떻게든 대표팀이 타는 비행기로 배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표팀과 같은 행선지로 가는 비행기를 배정받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

그리고 유럽행 비행기에 배정받는 경우에는 여유시간에 항상 유럽 축구선진국의 경기를 보고 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

“원체 축구를 좋아해서 대표팀이 나가는 현장에는 거의 따라갔었죠.  제일 많이 간 것이 태국 킹스컵이었는데, 우리 승무원들은 짧게 나갔다가 2박 3일 만에 한국에 들어오고 그러니까 한국에 오면 다시 태국행 비행기를 타고 나갔던 기억도 납니다.”

“1982년에는 스페인 월드컵이 있었는데, 스위스행 비행기에 배정받게 되었죠. 그래서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비행기 타고 바르셀로나로 가서 경기 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갈 경우 보통 몇 박을 하고 오기 때문에 독일 분데스리가도 많이 봤어요.”

이 정도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던 이 부장은 아예 축구 쪽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고, 자연히 축구협회도 고려대상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선배로서 알고 지내던 최창신 씨(전 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 전 KFA 부회장)는 이런 이 부장을 만류하곤 했다.

“최창신 씨를 선배로서 잘 알고 지냈는데, 내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분이 KFA 부회장도 했었는데, 부회장 하기 전에는 내가 축구협회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만류하셨거든요. 축구협회가 얼마나 골치 아픈데 거기 들어가려고 하냐는 것이었죠.(웃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장을 결국 축구계로 끌어들인 인물은 그렇게 만류했던 최창신 씨였다.

“어느 날 최창신 씨가 전화가 와서 축구협회에 한번 들어와 보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자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축구협회 부회장이 되셨고, 저한테 입사를 권유하신 거죠. 그 때가 92년 3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 들어오게 됐죠.”

뒤늦게 축구의 세계에 빠져들다.

사실 이상호 부장이 축구에 빠져들게 된 시기는 늦었다. 25세 이전까지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제대 후 복학하면서 조기축구회(생활체육팀)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무서울 정도로 축구에 빠져들었다.

“25세 이전까지는 정말 축구의 축자도 몰랐어요. 원래 운동은 좋아했기 때문에 제대 후 조기축구회에 나가게 됐는데, 거기서 이태호(전 대전 시티즌 감독)선수의 동생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죠. 그 친구가 자기 형이 축구를 하니까 같이 가서 보자고 했고, 그래서 같이 건국대총장배 고교축구대회를 보러 갔었습니다.”

“거기서 당시 대전상고 1학년이었던 이태호 감독을 봤는데, 3학년들 틈에서 정말 특출 나게 잘하더군요. 기술이라든지, 골문 앞에서의 감각이라든지...완전히 이태호라는 선수에게 빠져서 그 때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아졌죠.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따라가고 그랬으니까..(웃음)”

“그 이후로는 서울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는 거의 90%이상 봤어요. 이태호 감독이 고1 시절부터였으니까 1970년대 후반부터 효창운동장에서 살았다고 보면 되요.(웃음) 대한항공 승무원이었을 때는 시간 나면 갔지만, 대한항공을 나와 잠깐 개인사업을 할 때에는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었는데 아침 회의 끝나면 거의 효창에서 살았죠.”

효창운동장을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이 부장은 비디오를 통한 플레이 연구까지 하는 열성을 보였다. 정말이지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뒤늦게 축구에 제대로 빠져든 것이다.

“TV에서 중계해주는 경기는 모두 녹화해서 보고, 특히 월드컵 같은 경기는 슬로 비디오로 보면서 선수들의 동작을 연구하고, 따라하고 그랬어요. 그런 노력 때문인지 지금 내 또래에서는 선수 출신들과 경기해도 안 져요. 생활체육 쪽에서는 꽤 유명하죠.(웃음)”

“축구협회 들어와서 처음 친선축구를 하는데, 당시 문정식 부회장님이 나를 부르시면서 선수 생활했냐고 물으시더군요. 아마추어라고 하니까 어디서 배웠냐고 하시길래 비디오 보고 배웠다고 하기에도 뭐해서 그냥 배웠다고 말씀드렸던 기억도 납니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일요일에 축구를 하지 않은 적은 2%도 안 될 겁니다. 일요일에는 무조건 볼을 차야해요.(웃음) 서울 화곡본동 축구회 창단멤버로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죠. 지방에서 대회가 있을 때에도 내려가는 분들에게 축구화를 준비하라고 이야기해요. 현지에서 축구협회 임원팀 대 현지 지방축구협회 임원간 축구경기를 꼭 하거든요. 일요일에 한번씩 축구를 하면 1주일 동안의 스트레스가 다 사라집니다. 어쩌다 일요일에 볼을 차지 않으면 그 다음 주 일주일 내내 피곤하고 찜찜하더군요.(웃음)”

서정원과의 인연

효창운동장을 아지트 삼아 축구를 광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상호 부장은 자연스럽게 여러 선수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한 인연을 꼽자면 서정원과의 만남. 서정원과의 인연 역시 인적 드문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됐다.

“난 항상 효창운동장을 가면 본부석 건너편 느티나무 밑에 앉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대회에선가 며칠째 체격이 굉장히 왜소한 아이 하나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가서 축구선수냐고 물어봤죠. 그렇다고 그러기에 어디 다니냐고 물었더니 중학교를 하나 말하는데 축구부가 없는 학교였어요. 그래서 '그 학교는 축구부 없는데?'라고 하니까 그냥 빙긋 웃더라구요.”

“그런데 얘가 하루 종일 앉아서 축구를 정말 집중해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축구선수 할거냐고 물었더니 하고 싶대요.  그렇다면서 고등학교를 가야하는데 자기 형이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거제고로 가라고 주변에서 그런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당시 거제고는 유기흥 감독이 맡고 있었는데, 제가 지도력이 있는 감독이니까 네 노력 여하에 따라서 충분히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줬습니다. 일주일 정도 정원이와 효창운동장에서 라면 먹으면서 이야기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웃음)”

“1년의 세월이 지난 뒤 효창운동장에서 정원이를 다시 만났죠. 거제고 경기를 하는데, 서정원이 뒤에서 볼보이를 하고 있더군요. 절 보고 인사를 하더라구요. 볼보이 하냐고 물었더니 아직 경기는 뛰지 못한다고 그러더군요. 그 날은 그렇게 헤어졌는데, 다음 해 신문에 이렇게 났어요. ‘거제고 대어 서정원’. 그 당시까지도 이름은 모르고 있었는데, 거제고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기사를 유심히 찾아보니까 사진이 있었죠. 11초대의 준족에 대통령금배 11골로 최다득점을 했다는 기사였어요. 반갑고 대견하고 그랬죠.(웃음)”

“그러고 나서는 못 봤는데, 고3때 청소년대표도 하고 그러더군요. 난 계속 효창운동장 그 자리에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정원이가 그 자리에 오더군요. 축구 구경도 하고, 나도 볼겸 온 거였어요.(웃음) 그 왜소했던 아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연습했는지 이야기 안해도 알겠더군요.”

이후에도 이 부장과 서정원의 인연은 지속됐다. 이 부장이 처음 축구협회에 입사하자마자 맡았던 일이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팀 주무였고, 서정원은 그 당시 주장이었던 것.

“92년 3월에 협회에 들어와서 4월부터 올림픽대표팀 주무를 했는데, 훈련장소인 대전으로 내려가니 정원이가 주장이더군요. 정말 감개무량했죠. 정원이도 효창에서 라면 먹던 생각난다고 그러더군요.(웃음)”

“정원이랑은 몇 달에 한번 씩은 꼭 같이 식사하고 그랬어요. 지난 2월 17일에 정원이가 오스트리아로 떠났는데, 그 전날 만나서 식사를 했죠. 이런저런 고민 이야기도 하고..좋은 지도자가 되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KFA의 야전사령부’ 경기국의 터줏대감

이 부장은 KFA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줄곧 경기국에서 일했다. 중간에 2002월드컵을 위해 2년 6개월 가량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파견된 것을 제외하고는 부서 이동 없이 경기국에서만 일했던 것.

“당시 최창신 부회장님이 경기국으로 보내셨죠. 개인적으로 나에게 딱 맞는 부서라고 생각해요. 어느 부서도 다 괜찮지만, 축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서이기 때문이죠. 가끔씩은 다른 부서에서 한번 일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아직 경기국에서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각에 그칩니다.”

“경기국은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팀들을 이끌어나가는 부서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시대에 따라 규정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일선 팀들이 원하는 부분을 이사회를 통해 대변해줘야 하기도 하고...할 일이 많아요.”

경기국은 KFA 내에서도 현장업무가 가장 많고, 자연히 육체적으로 힘든 부서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그 경기국에서 잔뼈가 굵은 이 부장이기에 업무에 대한 소신이 확실하다.

“나는 경기국을 야전이라고 이야기해요. 심한 농담으로는 우리는 야전에 '노가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에겐 일요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대회가 일요일이라고 쉬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것이 다른 부서가 아무리 늦게까지 일해도 나는 6시만 되면 퇴근하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후배들도 일요일에 나오는 것에 대해 불평을 안해요.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있죠.”

“주로 KFA에서 주관하는 국내대회에 집중하고, A매치나 FA컵 등도 세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지방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회 기간 내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도 많아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 경기국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팀이나 지도자, 선수가 편하게 경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 원칙이죠. 항상 후배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고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축구계에서는 이런 이 부장에게 국내 축구인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축구계 일선이라 할 수 있는 경기국에서 잔뼈가 굵은 탓이다.

“사실 축구협회 안에만 있으면 바깥의 정보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요. 운동장에 나가게 되면 우선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듣게 됩니다. 본인이나 팀에 관한 정보, 규정에 관한 것을 문의하게 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축구계 전반에 관한 많은 정보를 듣게 되죠. 특히 운동장에서는 구경 오신 축구 원로분들도 접하니까 옛날 있었던 일들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네요.”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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