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Total 276 articles, 19 pages/ current page is 5
   

 

  View Articles
Name  
   MUKTA 
File #1  
   hwangbk_030730.jpg (38.4 KB)   Download : 21
Subject  
   오이타 유소년팀 황보관 감독, “항상 연구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2003년 7월 30일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축구팬이라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통쾌한 30m 중거리슛을 성공시킨 주인공 황보관(39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스타 중 한명인 황보관은 1998년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현재 일본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 클럽의 유소년팀을 총괄하는 유소년팀 팀장을 맡고 있다.

지난 주 황보관 감독은 오이타 U-18팀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 용인 FC 및 U-17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가진 뒤 26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27일 개막하는 일본 전국 유스 선수권대회에 대비한 실전 훈련을 갖기 위해 한국을 잠시 방문한 것.

“일본에서는 전국대회에 나가는 것이 무척 어려운데 이번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그 대회에 나가려면 각 지역별로 열리는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해야 하죠. 우리팀의 경우 규슈 지역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본선 대회는 27일부터 J빌리지에서 열리는데 그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사실 한국인이 일본 프로클럽의 지도자로 활동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국 지도자 또는 남미나 유럽 출신의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본에서 한국인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내줬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보관 감독과 일본 오이타 클럽과의 인연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깊다. 프로축구팀 유공(현 부천SK)에서 활약하던 황보관 감독은 1995년 12월에 일본 오이타 트리니타에 입단했다. 이후 1998년 3월 은퇴할 때까지 오이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고, 이것이 훗날 오이타에서 지도자 생활을 걷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현역 은퇴 이후 보다 나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 또한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지도자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축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1998년에 은퇴하자마자 잉글랜드의 명문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1년간 유학하며 선진축구를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인터내셔널 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죠.”

“이후에도 일본에서 지도자 교육을 조금 받았고, 한국에서 처음 지도자 자격증 제도가 시행되면서 축구협회와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주관하는 지도자 자격증 C,B,A 코스를 모두 이수했습니다. 그리고 AFC에서 주관하는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도 이수했죠.”

이 과정에서 황보관 감독은 1999년 당시 조영증 U-20 대표팀 감독(현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의 요청으로 나이지리아 U-20 세계선수권에 트레이너로서 참가했으며, 이후 오이타의 요청에 의해 1군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느냐, 일본으로 건너가느냐를 놓고 고민하던 황보관 감독은 결국 일본행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역시 배우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다.

“축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고, 일본행 이외에도 여러 방향을 생각할 수 있었죠. 그러나 일단 일본의 경우 축구에 대한 자료들이 방대했고, 선수단 운영 같은 부분도 매력이 있었어요. 좀 더 조직적인 축구를 배워보자, 축구 외에 구단운영이나 다양한 부분들을 배워보자라는 생각으로 결국 오이타 행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한국인을 지도자로 뽑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오이타 측에서 돈을 주고 지도자를 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프로페셔널을 원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일단 제가 오랜 기간 일본에서 활동하며 그 사회에 적응이 됐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겠죠. 그리고 제가 선수생활을 할 때부터 단장님이라든지 사장님, 코칭스태프 등과 토론을 많이 했는데, 그런 토론 속에서 제가 말했던 의견이나 생각 등을 그 분들이 많이 수긍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이타 1군 코치로 활동을 시작한 황보관 감독은 2001년부터 오이타 유소년팀을 총괄하는 유소년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오이타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유망주들을 조련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

“현재 오이타 팀에만 선수가 600명 정도 소속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피라밋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는데, 피라밋의 꼭대기에는 프로 1군팀이 있습니다. 그 밑에 2군팀이 있고, 그 아래로 U-18팀, U-15팀, U-12팀, 그리고 유치원생들로 구성된 팀도 있죠. 오이타의 경우 유소년 전담 지도자들만 10여명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본 축구클럽들의 이러한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은 한국에게 있어서는 큰 위협이었고,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이후 한.일간 유소년 축구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은 사실이었다.
다행히 한국 역시 2000년을 시점으로 축구협회 차원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발족시켰고, 최근 유소년간의 대결에서는 한국이 절대적 우위를 되찾았다.

그러나 사실 축구협회 차원에서 유소년을 육성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유소년 육성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각 프로구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연령별 유소년팀들을 구성, 체계적으로 선수를 육성,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 유소년 축구를 보면 굉장히 발전했어요.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고.. 2000년 무렵부터 유소년 육성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이제 조금씩 조금씩 결실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체제를 좀 더 발전시키고, 프로팀들도 적극적으로 유소년 육성에 나선다면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나라 축구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지도자 교육과 유소년 축구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잘 굴러가면 국가대표팀도, 한국축구도 저절로 성장하기 마련이죠.”

덧붙여 한일 양국의 축구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황보관 감독은 “일단 한국 유소년들은 크고 스피드가 뛰어나죠. 반면 일본 유소년의 경우 기본기가 탄탄하고 조직적인 축구에 익숙합니다. 한국의 경우 서서히 유소년 육성의 틀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고, 일본의 경우는 최근 엘리트 축구를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이야 예전부터 엘리트 축구는 자연스럽게 가동되어 왔잖습니까. 이처럼 서로 자극받고, 서로간의 발전을 도모하는 경쟁은 양국 축구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현상이죠”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얼마 전 부천의 새 감독 영입을 놓고 여러 축구지도자들이 언급된 가운데 황보관 감독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부천의 전신인 유공 출신인데다가 연구하는 지도자로서의 참신한 이미지, 일본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는 점 등이 그의 장점으로 부각됐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황보관 감독이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복귀할 것인지의 여부도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제가 감독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전혀 몰랐어요. 아마 누군가 저를 추천한 것 같은데, 추천한 분께는 고맙습니다.(웃음)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와야겠죠. 그 시점이 언제쯤 될지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네요. 프로 1군팀에 대한 욕심도 있는데, 현재 그것과 관련되어 오이타와 이야기가 오가는 부분도 있고 해서 당분간은 오이타 팀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이제 어느덧 1990년대의 축구스타들이 지도자로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현재 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 중 홍명보(LA 갤럭시, 현역)와 김주성(KFA 소속 축구행정가로 활동, 현재 미국 유학 중)을 제외하곤 모두 축구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언제까지나 우리의 축구영웅으로만 인식되었던 선수들이 이제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야말로 축구계의 중심으로서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것이며, 황보관 감독 역시 그 중심세력 중 한명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 자신이 모르면서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일단 제 자신이 축구에 대한 이론적인 면이라든지, 다양한 부분들을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특별히 한 적이 없습니다만 일단 항상 배우고 연구하며 지도한다는 것 하나만큼은 제 확실한 신조입니다.”

“일단 고집을 갖고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는 지도자 말이죠. 앞으로의 목표를 이야기하자면 역시 언젠가는 프로팀 감독을 해보고 싶습니다. 거기서 성과를 얻는다면 해외에도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고, 모든 지도자들의 꿈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언젠가는 대표팀 감독도 한번 해보고 싶은 꿈이 있죠. 이런 꿈들을 향해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서 한발 한발 전진할 겁니다.”

-- MUKTA 상헌 --


    

 




216
 ①최문식, “90년대를 수놓았던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

MUKTA
2004/12/27 1717
215
 ①장부다, “한국 최초의 축구 디자이너에서 서울 Utd ...

MUKTA
2005/04/16 1716
214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 "선수들이 대견스러울 따름"

MUKTA
2004/08/14 1698
213
 [KFA 사람들] 경기국 이상호 부장①

MUKTA
2006/04/29 1698
212
 순천중앙초 이슬찬, “수비진을 지휘하는 꼬마 스위퍼”

MUKTA
2005/06/25 1696

 오이타 유소년팀 황보관 감독, “항상 연구하는 지도자...

MUKTA
2004/10/07 1695
210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 <2002 월드컵 준비과정>①

MUKTA
2004/08/22 1691
209
 양동현①, “반드시 바야돌리드와 정식계약 맺겠다”

MUKTA
2004/11/04 1680
208
 U-14 대표팀 주장 최진수의 일본원정기①

MUKTA
2005/09/18 1677
207
 김경일, "부상 시련을 딛고 일어서려는 불운한 천재"

MUKTA
2004/08/06 1668
206
 신동근, "화려한 선수보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될 ...

MUKTA
2004/08/06 1667
205
 김치곤, “대표팀에서 불러준다면 잘할 자신 있다”

MUKTA
2007/05/24 1660
204
 ‘포항맨’ 박태하, 친정팀으로 다시 돌아오다.

MUKTA
2005/11/20 1656
203
 ②최문식, “90년대를 수놓았던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

MUKTA
2004/12/27 1653
202
 백지훈, “U-20 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 넘본다”①

MUKTA
2006/04/30 1645
[1][2][3][4] 5 [6][7][8][9][10]..[1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Headv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