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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② 이해두 차장(3), "잊을 수 없는 94월드컵"

94월드컵 대표팀 단체사진(두번째 줄 맨 왼쪽이 이해두 차장)

2003년 2월 5일 대한축구협회 기사...


스페인전에서 드라마틱한 2 : 2 무승부를 기록하고 16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볼리비아와의 2차전을 준비했다.
볼리비아전이 열린 보스턴 역시 댈러스와 마찬가지로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됐다. 아침, 저녁이 아니면 더워서 밖에 나가지를 못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의 더위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보스턴에서의 숙소는 시내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ㅁ자형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ㅁ자형의 가운데에 풀장이 있었는데 워낙 덥다보니 선수들은 밥만 먹고 나면 수영장에 들어가 살 곤 했다. 선수들로서는 정말 더위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훈련을 하고 나면 완전 파김치가 되었고 컨디션 조절 때문에 에어컨도 많이 틀지도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팀을 추스리고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느라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뛰어다녀야 했다.  결국 볼리비아전을 위해 폭스보로 경기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지원 스태프라고는 나와 가삼현 국장님 2명이 전부였는데 대표팀의 뒷바라지를 혼자 하려다보니 결국 오버페이스를 했고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탈진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볼리비아전과 독일전을 보지 못하고 6월 24일 한국으로 급송됐다. 나중에 (김)주성이에게 내가 쓰러졌을 때의 상황을 들었는데, 내가 차 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부르더니 갑자기 쓰러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기억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한국으로 급송됐고 김포공항에는 당시 김정남 전무님과 친형, 동생이 나와있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여서 김 전무님에게 "전무님, 미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김 전무님께서 "정신차려 이 사람아, 여기 서울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보니까 한강이 보였다. 그 때 생각한 것은 '이상하다. 여기에 왜 한강이 있지?'

결국 볼리비아전은 보지 못했고, 독일전은 병상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 독일에게 선전 끝에 2 : 3으로 지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있었으면 좀 더 뒷바라지를 잘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가지 에피소드를 덧붙이자면 내가 한국으로 급송되어 도착하던 날, 첫째 아들 건이가 태어났다. 아내의 마음 고생, 몸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지금도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뿐이다.  
원래 첫째가 태어나면 한국이 8강에 진출하길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팔강으로 짓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니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건강할 건(健)으로 이름을 지었다.

독일전이 열린 날이 6월 25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2002 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도 같은 날이었다. 생일선물로 아들과 함께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를 보면서 아들에게 94 미국 월드컵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월드컵 대표팀도 비상

내가 한국으로 급송되는 사이 대표팀 역시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팀의 온갖 업무를 담당하던 살림꾼이 사라져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 마침 서동필 현 경기국장님을 비롯한 몇몇 분이 프로축구연맹 임원들과 같이 월드컵을 참관하러 왔고 경기국 박병두 대리(지금은 퇴사) 역시 미국에 왔었다. 그런데 서 국장님과는 연락이 됐는데 박 대리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서 국장님에게 주무를 부탁하기에는 연배나 여러 문제가 있어서 박 대리를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아 고심했는데 다행히 간신히 연락이 닿아 후임으로 박 대리가 임명됐다. 이후 박 대리가 일을 잘 마무리하며 별 문제 없이 끝나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호흡을 맞추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의 곤란을 겪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에 돌아온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이 면회를 와서 걱정 많이 했다며 위로해줬고 특히 가삼현 국장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가 국장님은 나를 보고 "건강이 최고다, 혹사를 시켜 미안하다"라며 위로해 주시며 앞으로 업무분담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결국 월드컵 이후 주무 1명으로는 도저히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표팀이 해외에 나갈때는 외부업무를 수행할 국제 행정담당 1명, 팀내 일을 담당할 주무 1명, 언론담당 1명 등 3명이 팀을 짜서 움직이게 됐다.

지용을 겸비했던 김호 감독님

94 월드컵대표팀 김호 감독님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축구에 인생을 거신 분이었고 승부욕과 집념이 강하신 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장으로 보이지만 카리스마 넘치시고 승부욕이 강한 용장 타입이셨다. 한마디로 지용겸비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김호 감독님도 월드컵 경기가 임박하자 압박감이 상당히 큰 듯 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나와 박항서 트레이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월드컵이란 큰 대회에 감독으로서 참여하고, 성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난 것 같았다. 감독직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때 다시 한번 실감했다.

김호 감독님과는 이후에도 경기장에서도 자주 뵈었고, 전화통화로 가끔 안부를 여쭙곤 한다. 지난 FA컵에서도 만나 인사를 드렸는데 94월드컵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고생했다라는 말과 함께 지금 건강하게 축구협회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견스러워 하신다.

선수들 이야기

그 당시 내 방은 선수들의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 때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국내 언론 소식이나 국내 분위기 등을 알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이런저런 뉴스들이 1차로 나에게 먼저 오기 때문에 선수들은 내 방에 와서 국내 이야기나 정보를 듣기도 하고, 긴장감을 풀기도 했다.

당시 선수들 사기를 생각해서 누구한테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면 일부러 숨기고 좋은 기사만 보여주기도 하고, 전력점검이나 이런 기사들이 나오면 내 나름대로 추려서 선수들 사기 떨어뜨리지 않게 편집해서 주기도 했었다.

특히 (서)정원이나 (노)정윤이가 내방을 많이 찾았다.  정원이는 워낙 붙임성이 좋고 애교가 많아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냈다. 노정윤이는 운동장에서 워낙 열심히 뛰기 때문에 몸은 괜찮은지 이것저것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이것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홍)명보도 가끔 오곤 했다. 명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좀 무뚝뚝한 면이 있었다. 굉장히 과묵하고 선배들보다도 더 침착하고 진중한 맛이 있었다. 책임감 역시 무척 강했다.

골키퍼였던 주장 최인영은 팀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수였는데 역시 과묵한 편이었고 선수들을 침착하게 이끌어 나갔다. (구)상범이나 (박)정배 같은 선수들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일들을 잘했던 모범적인 선수들이었다.

또한 당시 팀 닥터에는 독일 레버쿠젠의 닥터였던 숄렉 씨가 담당했는데 이 분은 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우리 대표팀을 도와준 바 있다. 이외에 나웅칠 닥터나 민경두 맛사지사 등이 동행했고 일본에서도 재일교포 한 분이 지원을 와서 의료진이 풍부했다.
선수들끼리 우스개 반 진담 반으로 "여기는 종합병원이다. 각 분야별로 전문의가 다 있다. 걱정 말고 뛰자"라고 이야기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94 월드컵대표팀 주무 시절을 돌이켜보며

돌이켜보면 94 미국월드컵대표팀 주무를 맡았던 시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생과 고통을 겪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추억을 안겨줬던 시절이기도 했다.
94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도하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던 대기적을 직접 경험하며 환희에 찬 순간을 맛보기도 했으며 94월드컵 본선 1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드라마틱한 무승부를 현장에서 체험하기도 했다.

반면 과중한 업무로 인해 쓰러져 볼리비아, 독일전을 보지도 못한 채 한국으로 급송되었던 순간도 있었고 그 와중에 소중한 첫째 아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을 순간들일 것이다.

94 월드컵 이후 나는 건강을 염려해서 한동안 주무가 아닌 경기국 행정업무를 맡았으나 97년 무렵, 여자대표팀과 남자 U-20 대표팀 주무를 맡으면서 다시 주무일에 복귀했다.

4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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