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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② 이해두 차장, "월드컵의 숨은 살림꾼"

2003년 1월 28일 대한축구협회 기사...


축구팀에 있어서 주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선수단 전체를 챙겨주고 내조해주는 팀의 살림꾼 같은 역할인 것이다. 팀과 축구협회의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훈련에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챙겨줘야 하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무가 받는 육체적 어려움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일례로 이번에 소개할 이해두 경기국 차장(38, 94년 월드컵 주무)은 94 월드컵 도중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을 정도.

물론 지금은 국가대표팀 스태프의 업무 분담이 보다 다양해져 이와 같은 극단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됐지만 여전히 20-30명에 이르는 식구들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이 코너는 대표팀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해온 역대 대표팀 주무들의 추억담과 숨은 이야기들을 직접 회고하는 무대이다. 2002 월드컵에서 주무로 활약한 바 있는 김대업 대리에 이어 이번에는 94 미국 월드컵 주무로 활약한 이해두 차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94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

1991년 대한축구협회에 입사해 주무로서 가장 먼저 맡았던 팀은 당시 박상인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팀이었다.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고 1993년 호주에서 열리는 U-20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국가대표팀의 주무를 할 사람이 없다고 나에게 맡아달라는 부탁이 왔다.

결국 나는 1992년 10월 국가대표팀 주무로 자리를 옮겼고 곧바로 94 월드컵 아시아예선 준비에 들어갔다. 94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은 1993년 5월 7일부터 시작됐다. 우리는 홍콩, 바레인, 인도, 레바논과 함께 D조에 속했으며 1라운드를 레바논에서, 2라운드를 한국에서 각각 치렀다. 레바논과 한국에서 각각 한 차례씩 붙어 총 10게임을 치러 1위팀을 가리는 방식.

D조 예선 1라운드가 열렸던 레바논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 당시 레바논은 전시상황이었다. 사실 레바논에서 1차 예선을 유치한 이유도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고 레바논 공항에 도착하자 곳곳에 탱크, 장갑차가 있고 군인들이 경호를 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였다.

전쟁이 끝났다지만 아직 건물들에 탄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연습하러 갈 때도 군인들이 항상 경호를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당시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레바논 축구협회에서 팀 매니저를 찾길래 내가 갔더니 권총을 한 자루 주는 것이 아닌가. 실탄은 주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권총으로 위협을 하라는 말도 덧붙여서 말이다. 다행히 무사히 경기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지만 당시 선수들이나 스태프들도 무척 떨었던 기억이 난다.

레바논에서 가진 1차 예선 1라운드 첫 경기는 바레인이었다. 바레인을 맞이한 우리 선수들은 상당히 의욕적이긴 했으나 상대팀을 만만하게 본 경향도 있었다. 결국 바레인전에서 0-0으로 비겼고 김호 감독님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매우 화가 나셨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강하게 독려하셨고 그 이후 홈팀 레바논과의 2차전에서 하석주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한숨을 돌렸다.

이후 인도와 홍콩을 손쉽게 제압한 우리는 한국에서 열린 1차 예선 2라운드에서는 1라운드에서 고전한 바 있던 바레인에 3-0 완승을 거두는 등 파죽의 4연승을 거두며 종합전적 7승 1무, 23득점에 1실점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아시아 최종예선에 진출하게 됐다.


피를 말렸던 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 '도하의 기적'

이 무렵 정몽준 회장이 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94월드컵 최종예선에 선수들을 위해 영양사와 조리사까지 동반한 채 출발했고 여러 가지로 지원이 뒷받침되어 선수들의 사기도 좋았다.

1993년 10월에 열린 최종예선에는 우리를 비롯해 사우디 아라비아, 일본, 북한, 이란, 이라크 6개국이 진출, 풀리그로 성적을 가려 2개팀이 94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선수들이 의기투합, 팀 분위기도 좋았고 1차 예선과 달리 당시 독일에서 뛰고 있었던 김주성과 황선홍이 합류해 사기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독일에서 곧바로 건너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체력 조절이나 시차 조절에서 난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특히 김주성은 정말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당시 우리는 체력보강을 위해 게임 며칠 전부터 양고기를 먹었다. 다른 선수들은 입맛에 맞지 않은지 많이 먹지 못했지만 김주성은 끝까지 다리 하나를 혼자 억지로 다 먹었다. 어떻게든 체력을 비축해 뛰겠다는 의지였고 개인훈련도 정말 열심히 했다. 당시 독일 1부리그 보쿰에서 뛰고 있던 김주성에 대한 축구팬들의 기대가 너무나도 컸던 만큼 김주성 본인으로서도 많은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최종예선 첫 경기는 중동의 강호 이란과의 경기였다. 당초 어느 정도 고전을 예상했으나 전반 18분 박정배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하석주와 고정운이 후반에 연속골을 터트리며 3-0 완승을 거뒀다. 팀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런 분위기를 몰아 이라크와 2차전에 나섰고 비록 전반 31분 선제골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곧바로 40분에 노정윤의 도움을 받은 김판근이 동점골을 터트렸고 후반 21분에는 홍명보가 페널티킥을 성공함으로써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후반 40분 정종선의 실수를 틈타 이라크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허용, 결국 2-2로 비겼다.

3차전은 중동의 패자 사우디 아라비아였다. 우리는 전반 14분만에 신홍기의 중거리슛으로 앞서나갔으나 중동 지역 특유의 편파 판정은 계속 우리를 괴롭혔다. 그 와중에서도 1골을 지키는데 성공, 1-0으로 경기를 마감하는 듯 보였으나 경기 종료를 눈앞에 둔 후반 45분 코너킥에 이은 헤딩골을 내주며 또다시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열광한 사우디 응원단이 전부 운동장으로 뛰어내려오는 바람에 우리 선수들과 스탭들이 혼비백산하여 라커룸으로 도망치던 일이 기억난다.

경기 막판을 견디지 못한 이라크, 사우디전은 선수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트렸고 여기에 중동의 무더운 기후로 인한 체력저하로 인해 선수들은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전으로 이어졌고 후반 15분 미우라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무기력하게 패하고 말았다. 이라크, 사우디전만 제대로 마무리했으면 초반 3연승으로 손쉽게 월드컵 본선행을 손에 넣을 수 있었건만 두 경기 모두 뒷심 부족으로 비기는 바람에 결국 끝까지 속을 태워야 했던 것이다.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북한전. 우리로서는 무조건 승리한 뒤 일본과 사우디의 경기결과를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절박한 상황을 맞이한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각오가 남달랐다. "일단 최선을 다해 북한전에 승리한 뒤 하늘의 뜻에 맡기자"라는 것이 모든 선수들의 마음이었고 결국 고정운, 황선홍, 하석주의 연속골로 3-0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경기가 승리로 끝났음에도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고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것은 벤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우디가 이란을 4-3으로 꺾고 본선행이 확정지었고 일본 역시 이라크를 2-1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의 경기가 일본-이라크전보다 1-2분 정도 먼저 끝났고, 나는 혹시나해서 벤치 뒤쪽 본부석에서 중계를 하고 있는 신문선씨를 돌아봤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방송석에서 중계를 하고 있던 신문선씨가 손짓으로 2-2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벅찬 기쁨과 함께 코칭스태프에게 알려주자 모두들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운동장에서 고개를 숙이며 터벅터벅 걸어나오던 선수들도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쳤다. 나 역시 그라운드로 뛰어나갔고 걸어나오던 고정운과 맨 처음 눈빛이 마주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달려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다른 선수, 스탭들 모두 엉엉 울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 했다.  

팔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고정운과 내가 서로 껴안는 그 장면은 지금도 TV에서 한국 축구 월드컵 도전사를 방송할때 가끔 나와 그 당시를 회상하게 만든다.

본선행을 확인한 뒤 숙소에 돌아가서도 선수단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날밤 축하 행사가 열리는 호텔 리셉션장에 들어갈 때는 김호 감독님부터 선수들까지  모두 기차놀이를 하면서 들어갔다.  기적같은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의 감격을 함께 했던 것이다.  나는 직접 경기에 뛴 것도 아니고 뒷바라지에 불과했지만 너무 기뻐고 흥분돼서 그날밤 잠이 오질 않았다.  

북한팀과의 추억

아시아 최종예선을 돌이켜보면 드라마틱한 본선진출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지만 이 밖에도 북한과 남다른 인연을 쌓았다는 것도 추억거리이다. 당시 우리는 한국에서 김치를 대량으로 공수하는 등 선수들을 입맛에 많은 신경을 썼다. 북한 역시 김치를 가져오긴 했으나 그 양이 얼마되지 않아 이내 떨어져 버렸다.

북한과 우리는 같은 호텔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날 북한팀의 주무가 내게 와 "김치에 여유가 있으면 같이 좀 나눠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함흥철 단장님(작고)께 허락을 구했고 함 단장님께서 흔쾌히 승낙, 이후로 대회가 끝날 때까지 김치를 같이 나눠 먹었다.

아무래도 두 팀이 먹다보니 대회가 끝나기 전에 우리가 준비해놓은 김치가 다 떨어졌고 우리와 동행했던 영양사와 조리사가 현지에서 배추를 구해 김치를 직접 해먹었던 기억이 난다. 북한팀과의 소중한 기억이다.

주무로서 힘들었던 부분

1차 예선과 최종예선을 거치면서 주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너무나 벅차고 힘들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었고 축구협회 직원이 20여명에 불과했던 시절이라 지원인력도 전혀 없었다.

국내에 있을 때는 이런 업무 뿐 아니라 기자들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포함해서 하루에 전화만 100통씩 받는 등 모든 일이 주무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힘든 점이 많았다.

요즘에는 행정 담당, 언론담당, 장비 담당까지 있어 주무의 역할이 축소되었지만 당시까지만해도 그 모든 것을 주무가 혼자해야만 했다. 인력이 적다보니 훈련장소와 호텔 일정 등 기본적인 부분만을 조정해 놓은 뒤 국제부는 돌아가고 나 혼자 모든 일을 담당해야만 했다.

아시아 예선이 끝난 뒤 독일 전지훈련과 LA 전지훈련 등을 실시했는데 이때도 무척 힘들었다. 기후적으로도 그렇고 시내와 떨어져있어 생필품을 사와야 하는데 갈 수 있는 사람이 나 혼자 밖에 없었다. 택시를 불러서 혼자 갔다가 선수단에 필요한 그 많은 짐들을 싣고 돌아오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이것은 월드컵 본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태프는 예선보다 늘어났지만 주무의 일을 분담할 사람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94 미국월드컵 본선을 맞이한 나는 예선이나 전지훈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일의 비중과 그로 인한 압박감으로 인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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