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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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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은퇴 앞둔 김영주 국제심판, "성실하고 진실한, 원칙을 지키는 판정이 중요"

2002년 12월 16일 대한축구협회 기사..


- 수많은 국제경기에서 심판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큰 경기를 많이 봤는데 그 중에서도 멕시코 아즈테카 구장에서 열렸던 멕시코와 미국의 2차례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번째는 1999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에서 두 팀이 붙었던 경기이고, 두번째는 2002 월드컵 북중미 예선 경기였다. 두 경기 모두 13만여명의 대관중이 운집했다. 방송에서만 보던 전설적인 경기장에서 대관중이 모인 곳에서 심판을 봤으니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가장 큰 기회를 가져다준 경기는 1996년 아시안컵 3-4위전과 1997년 U-20 세계선수권 아르헨티나와 아일랜드간의 준결승전이었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리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경기 외적 상황으로 인해 내가 궁지에 몰렸던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떳떳하다고 생각한다.

- 앞에서도 잠깐 언급됐는데 멕시코 아즈테카 구장의 예처럼 홈팬들의 압력이 심판 판정에 있어 어려움을 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내가 이 경기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는 나 자신만이 그 키를 갖고 있다. 당시 미국은 2002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됐고 멕시코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더군다나 감독이 바뀌고 난 뒤 가진 첫 경기이기도 했다.

멕시코 언론에서는 경기가 열리기도 전부터 심판에 대해 계속 언급하고 예전에 내가 주심을 봤던 경기들을 분석하고 난리였다. 심판만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있어 심판의 위치, 움직임 이런 것까지 전부 분석해 방송을 했다. 정말 대단한 나라인 것이 경기시작 5시간 전부터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경기장은 13만 관중으로 꽉 들어차 있고.

그런 상황에서 경기장 안에 들어가는데 마음은 의외로 편했다. 당시 코데샬 멘데즈 북중미연맹 심판위원장이 오셨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스터 김, 멕시코가 져도 괜찮다. 단, 당신이 비난을 받는 경우는 멕시코든 미국이든 어느 한 팀을 봐주었을 때다. 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경기를 운영해라."
그 소리를 듣고 경기장에 들어가는데 무엇이 두려웠겠나. 걸리면 카드를 뽑는다는 생각을 갖고 소신 있게 경기를 운영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이것이 있으면 어느 압력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다.

- 1996년 광양에서 열린 전남-부산전때 오심 문제로 한동안 국내프로축구계를 떠났는데.

그 때 부산 대우가 2무 8패를 기록하고 있어 1승이 절박한 상황이었다. 부산이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전용구장임에도 부산 선수들이 볼이 나가도 볼을 줍지 않고 이 선수가 가다가 다른 선수가 가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나는 이런 행위들에 대해 인저리타임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5분 30초의 추가시간을 적용하기로 작정했다. 당시 부산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지연행위 자체가 상당히 질적으로 나빴던 상황이었고 주심으로선 그것을 전부 적용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후반 44분 부산의 샤샤가 노상래에게 태클을 했고 나는 퇴장을 줬다. 사실 단번에 퇴장을 줘도 할 말 없는 파울이었는데 당시 샤샤가 경고 1개가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퇴장이니까 경고를 뽑고 경고 2회로 퇴장을 줬다.

그 볼을 전남이 프리킥 했는데 부산이 인터셉트해서 역습을 시도했다. 정재권이 혼자 있었는데 손으로 볼을 쳤다. 내가 휘슬을 불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볼을 치고 나가다가 관중석으로 차버려서 경고를 줬다. 그 상황이 1분 사이에 순식간에 진행됐다.

아무튼 상황이 정리되고 시간이 지나 인저리 타임 2분이 흘렀다. 전남 김도근의 헤딩패스를 받은 노상래가 치고 들어가는데 부산 골키퍼가 나와서 태클을 했고 나는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그 때 부산 벤치에서 선수들을 경기장 밖으로 불러냈고, 나는 부산팀 주장 하석주를 불러 "1분을 줄테니 그 때까지 안나오면 너희들 몰수패로 경기 끝낸다"라고 이야기했다. 부산 선수들이 다시 나왔고 전남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1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화가난 부산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경기장으로 달려나왔고,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경기장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계속 거기 있으면 볼썽사나워질 것 같았다. 심판이 멱살 잡히고 이러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한 것이지 용기가 없어서 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 상황이 닥친다면 똑같이 페널티킥을 불 수 있는 자신이 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전남팬들이 부산 선수들에게 물병을 던졌고 그것을 부산 외국인 선수 하나가 다시 관중석에 던져 관중이 다쳤다. 관중들은 더욱 화가 나서 부산 버스 위에 올라가 사과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2시간이 넘게 선수와 심판은 경기장 안에 갇혔다. 결국 부산 선수들은 다른 버스를 타고 갔고 나는 경기 비디오를 전남 측에 요청했다.

다음 날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나는 상벌위원회에 나가 비디오를 내놓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옷을 벗겠다. 심판 그만두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상벌위원회는 나에게 1게임 정지를 내렸다.
이해가 안되어 다시 상벌위원회에 들어가서 내가 1게임을 쉬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상벌위에서는 선수가 벌금 320만원, 감독이 4게임 출장정지, 선수들이 2게임 출장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것과 심판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고 따졌다. "내가 오심을 한 것이라면 똑같이 제재해라. 그 사람들이 제재받는다고 왜 심판이 제재를 받아야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은 오히려 심판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더 경기를 배정해야 한다.

그래서 "저 심판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언론에서는 계속 이 사건을 다뤘고 나는 그후 14일 동안 집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아내는 울면서 심판을 그만두라고 했다. 사실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고 축구심판을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서 아내 몰래 2박 3일 동안 강릉에 내려갔다. 현실도피이기는 하지만 정리를 좀 해야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지금까지 진짜 고생해서 해왔던,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수모를 다 참고 가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다시 마음먹었다.
그 사건이 나에게 있어 심판으로서는 큰 전환점이었다.

몇년전 차경복 감독님이 전북팀 감독으로 있을때다.  차경복 감독님이 유명한 심판 출신이라 대부분의 후배 심판들이 차 감독님을 어려워했다.  
어느날 전북 경기에서 내가 주심을 봤는데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전북팀이 명백한 반칙을 하길래 두번 연속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경기 막바지에 한팀에 두번 연속 페널티를 선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당연히 전북 벤치에서 난리가 나고 차경복 감독님도 엄청나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페널티킥은 페널티킥이라고 생각했기에 원칙대로 집행했다.
나중에 차경복 감독님이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되셨는데 나를 부르더니 그때 경기를 이야기하면서 "솔직히 심판은 영주 너처럼 봐야 된다"며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차경복 감독님도 당시는 감독 입장이었으니까 항의는 했겠지만 판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셨던 것이다.

- 국내 프로리그를 떠나면서 국제무대에서 더 활발히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그것으로 인해 더 어려웠다. 외국에 나가면 다른 나라 심판들이 "K리그 심판을 보느냐?"라고 묻는데 국내 리그 심판은 보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국제심판이 자국 프로리그를 보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질문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점이 많았다.

- 국내 프로축구가 다른 국제경기, 대회보다 심판문제 등이 더 많은 편인가?

많은 편이다.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심판 교환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올해 K리그 막바지에 독일 심판을 도입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 비난도 있는데 앞으로도 외국인 심판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다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1-2명 정도는 주요 경기에 서로 교환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뿐 아니라 외국의 경우를 봐도 심판들에 대한 투자여력이 없어서인지, 돈이 아깝다고 느껴서 그런 것인지 투자가 많지 않다. 그런 부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

- 국내축구계에서 심판문제가 계속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우선 선후배 관계를 들 수 있다. 외국에는 선후배 관계가 없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 일본 등에선 나이, 학연, 지연 등이 작용한 면이 있다.

보통 감독들이 심판보다 나이가 많다. 감독은 심판에게 "야! 이 XX야, 나이도 어린 게 심판 본다고 그러냐. 임마, 심판 똑바로 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도 감독의 행동을 보고 심판을 만만하게 여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강경하게 대처한다. 얼마전 전북의 조윤환 감독이 물통을 걷어차길래 퇴장시켰다. 사실 국내심판들의 경우 이런 것으로 퇴장까지 주기는 힘들고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한번쯤 이럴 필요가 있다. 감독들도 구역 안에서는 책임감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심판 판정문제에 대한 의혹을 없애기 위해 심판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관중이나 축구 매니아들, 언론에서도 신중히 생각해줘야 한다. 우리도 신이 아닌 이상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무조건 고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기사를 쓰고 이야기를 하면 사태가 더욱 커질 뿐이다.

- 국내 심판의 자질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국내 심판들의 자질은 높은 편이라고 본다. 심판의 실력에는 왕도가 있을 수 없고 자기 관리와 경기운영을 해나가는 방법은 본인들이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마다 성향이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상황을 놓고 어떤 심판은 파울을 불 수 있고 다른 심판의 경우는 불지 않을 수도 있다. 왜 불어야 하는가를 가지고 본인들이 열심히 연구하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때까지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자질이 높다고 생각한다.

- AFC 주관 경기들을 보면 경기운영이나 여러 면에서 아시아 심판들의 수준이 다소 낮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음..그것은 습관, 생활의 차이라고 본다.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념하고 그 쪽 사람들의 관념하고 조금 틀리다. 우리가 볼 때에는 분명히 파울인데 그 쪽에서는 파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습관, 생활에서 오는 차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최근 5년 사이에 아시아 심판들의 수준이 상당히 발전했다는 것이다. 일부 심판들의 경우는 유럽 어느 심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얼마 전 유럽축구연맹(UEFA)의 심판 관계자도 나를 유럽 쪽에 보여주고 싶다며 칭찬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권종철, 김태영, 이기영, 배재용 이 4명의 심판이 앞으로 각축전을 벌일 것 같다.

- 심판의 성향이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 심판들도 나라에 따라서 운영방식이 조금씩 틀리다. 예를 들어 유럽 심판들은 상당히 여유로운 부분이 있다. 어떻게 보면 늘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만큼 천천히 느긋하게 처리한다.
반면 아시아 심판들은 좀 더 서두르는 편이다.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지금은 서로가 비교하면서 고쳐나가는 중이다. 아시아 심판들은 좀 더 차분하게, 유럽 심판들은 좀 더 빨리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서로 고쳐나가고 있다.

또한 일본과 한국도 차이가 있다. 일본 심판들은 완전히 심판 교재대로 건드리면 파울을 부는 경향이 있는 반면, 한국은 몸싸움이 있어도 조금 더 융통성있게 경기를 진행시키는 편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앞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받아들여 정리해서 심판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 심판으로 총 몇 게임 정도를 치렀나?

국제시합을 170경기 정도 치른 것 같고 국내경기까지 합치면 1천 경기가 넘지 않겠나 생각한다. 예전에는 하루에 7경기까지 본 기억이 난다. 1990년이었는데 심판이 없어서 4명이 그 경기를 다 치렀다.(웃음)

사실 이런 것을 모두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명예때문이었다. 일단 심판은 명예다. 내 기록이 축구협회 기록에 남는다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둔다. 사실 심판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바닥이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내 명함에 대한축구협회 심판이라는 것을 새겨 상대에게 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 심판으로서 갖춰야할 덕목을 꼽는다면?

심판들은 사실 아직까지 덕목이란 소리를 듣기는 좀 이르다. 경기장을 가면 각종 욕을 얻어먹으니까 말이다.(웃음)

심판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려면 성실하고 진실한 면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그 심판이 판정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실수했다고 생각하지 돈을 먹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된다. 성실하고 진실된 면,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소신있는 판정이 중요하다.

-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심판상은?

먼저 일본의 다카다 시조라고 현 일본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있다. 1980년대 중반 '스마일 심판'으로 알려졌었다. 부드럽고 친절하면서 경기를 온화하게 끌어가는 스타일이다. 이 사람의 심판법이 나에게 가져다준 이미지가 크다.

또 한 명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서독-아르헨티나전 주심을 봤던 코데샬 멘데즈 전 북중미연맹 심판위원장이다. 그 때 보여줬던 용기, 체력의 기민성은 대단했다. 견고하고 딱딱하게 경기를 진행시키며 적시적소에 줄 것은 다 주는 스타일이다.

이 두 심판의 스타일은 대조적인데 이것을 조화시킨다면 완벽한 심판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명 모두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분들이다.

- 후배 심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으로 심판들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FIFA나 AFC에서 요구하는 사항도 많고 이제는 월드컵을 치른 나라이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진정한, 참다운 심판이 되려면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금품수수 같은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차라리 어려우면 심판을 보지 말아라. 절대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된다.

- 심판계를 대표해서 축구팬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경기를 봄에 있어서 심판의 판정만을 논하지 말고 그 경기가 심판 판정으로 인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려달라.

축구협회 경기부나 국제부에서도 요청이 있었는데 후배 심판들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15년간 심판생활을 해왔고 축구협회에서 심판 분야에 대해 요청하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갚아야할 의무였기 때문에 은혜를 갚고 싶다.

* 김영주 심판 참가 주요 대회

1996년 아시안컵(UAE)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1997년 U-20 세계선수권(말레이시아)
1997년 중국 FA컵 결승전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998년 J리그
1998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199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멕시코)
1999년 K리그
2000년 북중미 골드컵
2000년 중국 프로축구
2000년 이란 프로축구 결승전
2001년 월드컵 북중미 최종예선
2001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002년 월드컵 주심(브라질-터키전)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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