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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오범석, “머리와 센스, 침착함을 겸비한 차세대 수비수”


2005년 1월 14일 인터뷰...


2003 U-20 세계선수권 한달 전에 열린 수원컵에서 오범석은 3경기 중 2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오며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범석은 세계선수권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수원컵을 계기로 확실히 자신감도 생기고 컨디션도 좋았지만, 그래도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는 불안하더라구요. 발표 전날 감독님이 외박을 주셨는데, 저와 (김)진규, (이)호랑 신촌에 모여서 ‘탈락하면 어쩌나,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잘될거야’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맞이한 2003 U-20 세계선수권.
오범석은 첫 경기 독일전에서 주전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하며, 한국의 2-0 승리에 일조했다. 오범석은 김진규-김치곤-박주성(전반 초 부상으로 김치우로 교체)과 함께 4백 수비라인을 형성하며 안정된 수비력으로 독일의 측면공격을 무력화시켰고, 여기에 이은 빠른 역습으로 한국은 대어를 낚는데 성공했다.

“원래 현지 훈련과정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이)호진이 형이 계속 기용되더라구요. 그래서 마음 속으로 ‘난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래도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 훈련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독일전을 이틀 앞두고 밥 먹으러 가는데, 감독님이 발로 제 엉덩이를 툭 차시면서 ‘독일전에 뛸 수도 있으니 준비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이야기 들은 뒤부터 정말 죽도록 연습했죠.(웃음)”

“경기를 앞두고 떨리면서도 기뻤죠. 제가 세계대회에서 선발로 뛸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감독님이 현지에 가기 전부터 역습훈련을 많이 하셨는데, 그게 딱 들어맞은 경기였어요. 독일 애들이 키도 크고, 기술도 좋았지만 우리 조직력이 탄탄했다고 생각해요.”

“독일 애들 중에 빠른 선수들이 있어서 마크하는데 조금 힘든 점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적절하게 커버해주면서 큰 위기 없이 경기를 끝낼 수 있었죠. 독일전이 끝난 뒤 주위분들이 강팀을 상대로 어떻게 플레이해야하는지를 보여줬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후 파라과이, 미국에게 패했지만 16강 진출에 성공한 U-20 대표팀은 16강에서 일본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 경기는 오범석 개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추억으로 남게 된다.

오범석은 이날 경기에서 오른쪽 측면을 사실상 장악하며, 공수에서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U-20 대표팀이 최성국(현 울산)의 환상적인 골로 1-0으로 앞서나가던 후반 37분, 경기 분위기는 한국의 승리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일본은 롱패스로 한번의 공격을 노렸고, 이 볼은 오범석 쪽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충분히 걷어낼 수 있었던 그 상황에서 오범석은 순간적으로 미끄러졌고, 이것은 일본의 사카타에게 연결되어 통한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결국 U-20 대표팀은 연장 승부 끝에 일본에게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그 경기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 미칠 것 같아요.(웃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거든요. 다른 분들은 다리가 풀렸다고 그러시는데 그건 아니에요.”

“롱패스가 와서 히라야마와 진규가 헤딩경합을 했고, 저는 넘어오는 볼에 대비해 뒤로 뛰어들어가고 있었죠. 그런데 볼이 제 뒤로 왔어요. 몸을 돌려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몸을 틀다가 미끄러져 버린 거에요. 그것 때문에 포항에 돌아가서도 한동안 형들이 ‘너 때문에 졌다’라고 놀리고 그랬죠.(웃음)”

프로의 벽을 느껴야했던 포항에서의 1년 6개월

U-20 세계선수권이 열리기 전이었던 2002년 말, 오범석은 포철공고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프로로 갈 것을 결심했다. 당초 대학행을 고려했지만, 축구로 승부를 건 이상 하루빨리 프로에 뛰어드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 결국 오범석은 2003년 초, 포항에 입단한다.

“원래 집에서는 대학을 원했고, 그래서 대학결정까지 났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프로로 가는 것이 더 빠른 길 아니겠나라는 결론을 얻었죠. 어차피 축구로 승부를 볼 것이라면 일찍 경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프로행을 결심한 오범석이 가야할 방향은 한 곳이었다. 바로 포항.
포항의 유소년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포철공고를 나왔고, 더군다나 그 시절 포항의 지원으로 1년여의 브라질 유학을 다녀왔던 오범석으로서는 포항행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프로행을 결정한 후 팀에 대한 고민은 없었어요. 프로에 간다면 포항이었으니까요. 고교 시절 옆에서 계속 봐왔던 팀이고, 브라질 유학까지 보내줬었잖아요.”

프로 입단 첫해였던 2003년, 오범석은 1군 경기에서는 단 1경기 출장에 그쳤다. 고교를 막 졸업한 선수에게 프로무대는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 12월, U-20 세계선수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기량이 급상승했고, 많은 팬들은 ‘차세대 국가대표 오른쪽 윙백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당장 2004 시즌부터는 프로무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2004 시즌을 앞둔 시즌구상에서도 최순호 감독이 ‘기대하고 있는 선수’ 중 1명으로 뽑는 등 좋은 활약을 예상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1군 주전 자리는 그의 몫이 아니었고, 오범석은 전기리그 내내 1경기도 뛰지 못한 채 2군을 배회해야 했다.

“솔직히 1년차 시절에는 실력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세계대회 갔다 와서 2년차였던 2004년에는 시즌 전부터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감독님도 기대하셨구요.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경기를 뛰지 못하니까 아쉬움도 있었죠. 돌이켜보면 내가 내 스타일대로만 하려고 했지, 감독님이 원하시는 것을 잘 캐치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단짝친구인 진규와 (이)호는 1군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같이 웃고 같이 경기하고 했던 친구들은 1군에서 뛰고 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 때는 얼굴 들기가 부끄럽더라구요.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친구들에게 당당해져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 때 (백)지훈이도 전반기에 경기를 거의 못나오는 상황이어서 둘이 통화를 많이 했어요. ‘우리 어쩌냐.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니냐’라는 신세한탄도 서로 하고, ‘그래도 열심히 한번 해보자’라고 서로 격려도 많이 하고 그랬죠. 그러다가 둘 다 컵대회부터 기회를 잡기 시작했죠.”

선배 수비수들을 보고 배우며 일취월장

전기리그에서 포항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오범석에게는 큰 기회였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컵대회 및 후기리그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진 포항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유망주들을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오범석에게도 기회가 왔다.

“전기리그 때는 1군에서 훈련은 했지만,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해서 경기할 때는 2군에서 운동하고 그랬어요. 실망도 많이 했던 시기죠. 그런데 전기리그 우승 후 컵대회에는 어린 선수들을 주축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정말 죽을 각오로 준비했어요. 어느 위치에 서든 기회만 준다면 한번 해보겠다라는 각오였죠.”

“기회가 좋았어요. 전기리그 우승으로 구단에서도 부담이 없었고, 형들이 대표팀 차출이나 부상 등으로 빠지기도 했고...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도 헤매고 있었을 거에요.(웃음)”

컵대회와 후기리그를 통해 오범석은 자신의 주포지션인 오른쪽 윙백보다는 3백의 오른쪽 수비수로 많이 기용됐다. 시즌 초 브라질 전지훈련에서도 윙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주문을 받았던 그이기에 적응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초기에는 제공권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바람에 상대 공격수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마르셀-나드손이 투톱인 수원과의 경기에서는 3백의 오른쪽임에도 마르셀과 맞부딪치게 되면 이민성과 체인지, 나드손이 있는 쪽으로 옮기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제 최고 약점이 헤딩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에요. 예전부터 헤딩을 많이 안해서 그런지 진짜 못하거든요. 더구나 본격적으로 센터백을 하게 된 것이 2004년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선 상태였어요. 센터백은 윙백과는 달리 계속해서 헤딩경합이 있잖아요.”

“경기를 통해 센터백에 많이 적응됐지만, 헤딩만큼은 아직 부족해요. 그래서 경기할 때도 초기에는 힘 좋고 제공권이 좋은 공격수와 부딪치게 되면 부담이 되서 민성이 형과 위치를 바꿨어요. 서서히 적응되면서 나중에는 위치 변경 없이 그냥 제 지역에서 마킹했지만, 그래도 아직 헤딩력이 부족해요. 이번 겨울에는 죽어라고 헤딩연습을 하려구요.(웃음)”

덧붙이자면 오범석이 빠른 속도로 센터백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주위에 보고 배울만한 베테랑 수비수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타공인의 K리그 최고 수비수 산토스와 역시 K리그 최정상급 수비수 이민성, 김성근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전부 최고의 수비수들이잖아요. 산토스는 정말 신기해요. 상대가 크로스를 하면 항상 산토스가 서 있는 그 곳으로 날아가더라구요. 헤딩도 다 따내고... 어쩌면 저렇게 위치선정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죠.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먼저 끊어버리는 영리함도 대단하고...”

“민성이 형도 산토스와 비슷한 면이 있어요. 경험이 많고 상대 공격수와의 심리전도 능하세요. 볼 낙하지점도 잘 찾고, 패스의 길목도 잘 차단하시죠. 성근이 형은 파이팅이 넘치고 빠르구요. 이런 선배들과 같이 경기하고 훈련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요. 형들이 서는 위치를 보고 볼이 이쪽으로 왔을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보고 배우는 거죠.”

“특히 민성이 형은 같은 방을 쓰기도 했는데, 항상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어요. 경기 끝난 뒤에도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이렇게 했어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시고...”

스타 탄생 - 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에서의 맹활약

아마 오범석에게는 2004 K리그 플레이오프 및 챔피언결정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포항팬이나 일부 축구팬들에게만 주목받던 ‘오범석’이란 이름 석자가 전국으로 알려진 계기였고, 본인으로서도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를 놓고 다퉜던 경험은 소중한 것이었다.

“이런 중요한 무대에서 전경기-풀타임으로 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울산과의 플레이오프 전날 너무 긴장했는지 잠이 잘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예전에 박성화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더라구요. ‘수비수는 미련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셨죠.”

“그래서 경기하기 전에 일부러 더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고, 덤비지 않고 기다리며 안정감있는 플레이를 하려고 애썼어요. 그 덕분인지 그런 큰 경기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내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울산을 꺾고 올라간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오범석이 K리그 팀 중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했던 수원이었다. 그리고 투톱에는 ‘브라질 올림픽대표 출신 듀오’ 나드손과 마르셀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로도 포항의 수비진은 허점을 노출하지 않았고, 약관의 나이를 갓 지난 오범석 역시 선배들과 멋진 호흡을 이루며 완벽한 수비망을 구축했다.

“민성이 형과 코난이 골대를 맞춘 것 중에 하나만 들어갔어도 우승이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죠. 나드손과 마르셀은 모두 최고의 공격수들이지만, 플레이 스타일을 많이 파악한 상태였어요.”

“마르셀 같은 경우 힘이 좋은 선수이기 때문에 뒤에 서서 기다리는 식으로 마킹했죠. 나드손은 워낙 빠른 선수이기 때문에 돌아 뛰거나 치고 뛸 때 집중하고, 미리 지역을 선점해 기다렸죠. 나드손이 치고 뛰게 기다렸다가 미리 막아서는 형태였죠. 일단 이 두 선수에 대한 정보가 있으니까 마킹할 때마다 되새겨보고 플레이했기 때문에 특별히 까다롭지는 않았어요.”

대표발탁의 기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

K리그에서의 강한 인상 때문이었는지 오범석은 2004년 12월 말에 발표됐던 본프레레호의 LA 전지훈련에 포함됐다. 베테랑 수비수 최진철(전북)의 합류 고사로 대신 선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첫 국가대표 발탁의 기쁨.

“얼마 전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국가대표에 선발됐어요.(웃음)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시면서 ‘원래 계획보다 빨리 됐네’라며 칭찬해 주셨어요. 원래 올 상반기만 해도 1군에서 자리 잡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팀에서도 주전으로 자리 잡고, 대표팀까지 뽑히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사실 막상 선발되니까 조금 당황스럽더라구요. ‘지금의 내가 국가대표에 뽑힐 만큼 실력이 있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렇지만 이왕 뽑아주신거니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할 거에요.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고, 내 플레이를 보여줘야죠. 포항에서처럼 소중한 기회가 또 찾아온 것이니까요.”

국가대표도 대표이지만, 올 시즌 포항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 역시 오범석에게는 중요하다. 한 해 반짝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활약을 보여줘야만 인정받는 것이 프로이기 때문.

올 시즌에는 수비의 한 축이었던 이민성의 이적으로 오범석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오범석 본인은 자신의 이상적 포지션을 오른쪽 윙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꼽았지만, 어느 포지션에서 뛸지는 아무도 모른다. 파리아스 신임 감독의 성향과 전술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윙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좋아요. 윙백에서는 (강)용이 형이나 (남)영훈이 형과 경쟁해야 하는데, 둘 다 스피드가 뛰어나고 돌파력이 있어요. 매우 공격적이죠. 반면에 저는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스피드가 느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 빨라졌어요. 주위에서도 느린 편이 아니라고 그러더라구요.”

“무엇보다 저는 측면을 돌파하는 스타일의 윙백은 아니에요. 볼을 주고 나가고, 다시 받고...이런 식으로 쉽게 쉽게 볼을 차는 것을 선호해요.”

“지난 해 브라질 전지훈련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어봤는데, 그 자리도 한번 뛰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왠지 모르게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카디프)가 끌리더라구요.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면서 골도 넣고, 수비할 때도 적시적소에서 영리하게 차단을 하더라구요. 돌파 같은 것은 없지만 볼 오면 바로 주고 받고 하면서 볼을 쉽게 차는 것 같고...내 포지션이 아닌데도 괜히 끌렸어요.”

“2005 시즌에는 일단 헤딩력을 키우는 것이 당면 과제에요. 그 외에는 지금처럼 꾸준히 하고 싶어요. 지금 상황에서 헤딩력 외에는 딱히 보완해야할 부분이 생각나지는 않아요. 수비수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 꾸준히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2005년,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

2004년 오범석은 ‘명가재건’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소속팀 포항과 함께 우승 문턱까지 다가섰다. 그 때의 짜릿함을 그는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2005 시즌을 맞이해 K리그의 다른 팀들은 전력보강에 힘을 쏟고 있다. 아직 포항은 선수보강에 있어 뚜렷한 움직임은 없지만, 오범석은 자신감에 차 있다.

“지난 시즌 원래 포항은 우승전력으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결국 준우승까지 갔어요. 대형 스타 플레이어는 없었을지 몰라도 팀 조직력과 수비의 안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올해도 마찬가지에요. 작년과 같이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준다면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어요. 2004 시즌에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는데, 이번 시즌에는 꼭 한번 우승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팀에는 제 또래의 어린 선수들 중에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요. 이 선수들이 지금처럼 성장해간다면 몇 년 후에는 정말 무서운 팀이 될 거에요. 기대해 보세요.”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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