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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 임' 임현택 재활 트레이너, "청소년대표팀의 숨은 살림꾼"


우리의 임샘~
일명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불리우는 대표팀 지원스태프 중 한명이다..
주로 청소년대표팀에서 재활 트레이너로 활약하고 계시지..
보면 알겠지만 '리마리오'와 닮아 임마리오라는 별명도 갖고 계시지..
호탕하고 재미있고, 정도 많은 분...

2005년 5월 24일 인터뷰..


각급 청소년대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멀티 임'으로 불리우는 임현택 재활 트레이너(28세).

본 업무인 의무 관련 외에도 선수단내 온갖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해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 별명대로 임 트레이너는 팀 내에서 팔방미인 역할을 한다.

사실 재활 트레이너는 본인들이 스스로 농담처럼 이야기하듯이 '어둠의 세계'에 속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최고의 몸상태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선수들이 다쳤을 때 빨리 조치를 취해 부상 정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전면에 부각될 수는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고 끝에 재활 트레이너의 세계로 뛰어들다.

임현택 트레이너가 재활 트레이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군대 시절이었다.
고교 때까지 100m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육상으로 인생을 걸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됐다.

"대학 진학 후에도 육상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미래를 볼 때 아직 한국에서 육상을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군대에 가서 미래를 생각하다가 체육교사, 스포츠마케팅 분야, 재활 트레이너 이 세 가지로 제 진로를 압축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스포츠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당시 우리 시장이 너무 좁았고 아직 활성화가 안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다음으로 교사를 생각했는데, 당시 체육 교사를 줄인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망설였죠. 그 과정에서 스포츠 의학 쪽 트레이너들을 많이 봤는데, 저것이 제 갈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황인우 재활 트레이너와의 인연

재활 트레이너로 진로를 결정한 임 트레이너에게 대학 선배인 황인우 재활 트레이너(현 KFA 전임)의 존재는 큰 힘이 됐다. 1997년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같이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도 하고,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기도 하면서 친해졌다. 그 과정에서 임 트레이너는 이쪽 분야에 대한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인우 선배는 이미 KFA에서 U-20 대표팀을 맡고 계셨어요.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데, 그 별명 그대로 체구는 자그마하셔도 정말 강하고 지혜롭고 상황대처도 빠르신 분이시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많은 조언과 충고를 해주십니다."

"원래 생활체육학부였기 때문에 테이핑이나 스포츠 마사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1,2학년 때 배웠어요. 그리고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스포츠 의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죠."

당시에는 스포츠 의학을 따로 가르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임 트레이너는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인체해부학부터 시작해서 재활 부분, 트레이닝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군대 다녀온 후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죠.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도서관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30분을 못버텼거든요.(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일단 공부는 둘째치고 오래 앉아있는 훈련부터 했어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하다보니 1년 정도 지나니까 10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해도 별 문제가 없더군요.(웃음)"

이후에도 임 트레이너는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에 가서 스포츠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하루일과였고, 책에서 얻기 힘든 정보는 황인우 트레이너에게 직접 자문을 구하기도 하면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해나갔다. 그리고 2000년, 황 트레이너의 추천으로 KFA와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 맞이하는 실전 - 어려움의 연속

2000년 12월, 임 트레이너는 드디어 KFA에서 첫 번째 팀을 맡게 됐다.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처음 구성된 U-13 유소년상비군이 바로 그 팀. 현장경험이 전무했던 임 트레이너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테이핑이나 스포츠 마사지 같은 것은 실기경험이 많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모두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현장경험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던 순간이었어요."

"당시 남해에서 훈련을 했는데, 처음이다 보니 약품도 (황)인우 선배가 신청해줘서 보내주셨을 정도로 아무 것도 몰랐죠. 축구는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어떻게 조치를 취하고 치료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치료에 대한 이론적 바탕은 있었지만, 경험이 없다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그리고 임 트레이너는 팀과 합류한 첫 날부터 엄청난 일을 겪으며 시작해야 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순간.

"처음 맡은 날 한 선수가 훈련 중에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어요. 너무 당황스럽더군요. 차도 없었고, 남해에는 큰 병원도 없었고...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순간이었지만, 일단 응급처치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상 부위를 고정시키고, 119에 연락해서 인근 병원으로 데려간 뒤 인우 선배와 전화했죠. 상의한 끝에 비행기에 태워 서울 아산병원으로 올려보냈는데, 당시에는 어떻게 그런 조치들을 취할 수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요.(웃음) 지금도 그 과정들이 생생합니다."

'멀티 임' - 대표팀 내 모든 일들을 해내는 만능 재주꾼

기본적으로 재활 트레이너는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 한다.
현재 국가대표팀은 주무 외에도 장비 담당을 비롯해 전문화된 스태프들이 팀을 이뤄 움직이지만, 청소년대표급 이하로 내려오면 예산상의 문제로 인해 주무와 재활 트레이너가 온갖 궂은 일을 다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주로 청소년대표나 유소년대표 등을 맡았는데, 이런 팀들은 주무 혼자 모든 짐과 업무 등을 해결해야 해요. 그걸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도와주다 보니까 이런 저런 일들을 하게 된 거죠."

"특히 예전에는 지방훈련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방훈련에서는 보통 주무가 소집하는 날과 해산하는 날만 왔다가고, 나머지 기간에는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수증 챙기기, 간식 준비, 식당과 숙박 알아보기 등을 모두 챙겨야 했죠. 지금도 청소년대표팀 이하에서는 주무를 많이 도와줘야 해요. 원래대로라면 국가대표팀처럼 자기 본연의 업무만 충실히 해야 맞지만, 예산 등 여러 이유로 지금 당장은 힘드니까요. 어쨌든 주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거죠."

'멀티 임'이란 별명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얻었다.
처음 '멀티 임'이란 별명을 붙여준 이는 KFA 경기국의 배성언 씨였다. 2002년 윤덕여 감독이 이끌던 U-16 대표팀의 일원으로 UAE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했을 때 얻었던 별명.

"당시 우리 팀에는 요리사 분도 안계셨고, 스태프도 배성언 주무와 저 외에 한 분 정도 더 있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선수들이 모두 어렸던 탓에 예선을 치르면서 너무 힘들어하더군요. 그래서 윤 감독님께 선수들이 많이 피로해하는데, 예전에 내 경험 중 아쿠아로빅이 피로회복에 좋았는데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말씀 드렸었죠."

"물 속에서 에어로빅 동작처럼 유연체조를 하는 것인데, 간단하게 몇 십분만 하면 근육이 풀리고 피로회복을 할 수 있죠. 다행히 선수들이 즐겁게 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두바이 호텔에서 밥을 먹는데, 선수들이 중동음식에 너무 질려하더군요.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서 직접 김치찌개를 했어요. 대형솥으로 몇 번을 끓였죠. 다행히 모두 맛있게 먹어줘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배성언 주무가 '멀티 임'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게 된 거에요."

그러나 '멀티 임'으로 굳혀졌던 임 트레이너의 별명도 최근 큰 위협을 받게 됐다.
바로 '임마리오'의 등장 때문. 올해 초 머리를 조금 기르고 있었던 임 트레이너는 당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리마리오'를 자연스럽게 연상시켰고, 이것을 본 선수들은 '임마리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카타르대회를 앞두고 남해에서 U-20 대표팀이 모였는데, 저를 보더니 모두 리마리오와 똑같다고 그러더군요. 사실 리마리오와 이목구비나 이런 것이 비슷한 건 사실이에요. 또 제가 목소리를 흉내내면 그것도 똑같거든요.(웃음) 카타르 대회 때 (김)승용이가 골 넣은 뒤에 원래 제 앞에서 리마리오 춤을 추려고 했는데, 와서 추기에는 너무 멀어서 사이드 쪽에서 그냥 췄다고 그러더군요.(웃음)"

코칭스태프와 선수를 이어주는 중간자 역할도 수행

재활 트레이너의 또 다른 숨은 임무는 바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이다.

아무래도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칭스태프와 지도를 받는 선수들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기 마련이고, 그 벽을 없애주는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재활 트레이너. 어느 팀이든 재활 트레이너가 선수들을 만나는 장소인 치료실은 팀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명목상으로는 임원이지만 우리는 중간 입장이잖아요. 어찌됐든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는 벽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지도자들과도 벽이 없고, 선수들과도 벽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서 윤활유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선수들이 치료실 와서 치료 받으면서 여자친구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속 깊은 이야기도 하면 그 문제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돼요. 코칭스태프와도 스태프 회의나 여러 자리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고..."

기억에 남는 선수

2000년부터 각급 대표팀의 재활 트레이너로 활동해온 임 트레이너.
그의 치료를 받은 선수들도 부지기수이다. 그 중에서 임 트레이너는 양동현(현 울산)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로 꼽는다.

"동현이는 제가 처음 맡았던 U-13 유소년상비군 시절부터 봤던 선수에요. 이런저런 부상이 잦아서 치료하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죠. 동네도 같은 의정부여서 가끔 만나 이런저런 속 깊은 이야기들도 많이 나눴어요. 계속 엘리트 코스를 거쳐왔고, U-17 대표팀에서는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이번에 부상으로 도중 하차하게 됐죠. 여러 일을 겪었기 때문에 기억이 많이 납니다."

앞으로의 각오와 목표

재활 트레이너의 세계로 뛰어든지도 햇수로는 4년 5개월.
여러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후회는 없다는 것이 임 트레이너의 생각이다. 앞으로도 스포츠 의학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그 발전 속도에 뒤쳐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부하겠다는 것이 임 트레이너의 각오.

"이 길에 대해 단단히 마음먹고 뛰어들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또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억들과 지금 이 위치까지 왔던 과정들을 되새겨 나태해지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야할 과정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지난 일들을 거울 삼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죠. 개인적으로는 선수들에게 카운셀러 역할을 할 수 있게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요."

"또 스포츠 의학이 점점 발전하기 때문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공부도 열심히 해야해요. 현재 KFA 의무팀에서는 자주 모여 서로 정보교환도 하고, 세미나도 열어 공부도 하면서 발전을 도모하고 있어요. 또 선수 트레이너 협회에서도 바뀌어 가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의학들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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