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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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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K리그 도움왕 홍순학, “무명에서 K리그 최고 도우미로”


홍순학...이름에서 느껴지는대로 매우 순박하고 착하고 예의바른 청년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이 선수에 대해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2004년 K리그 도움왕을 차지하며 수면 위로 떠오른 젊은 유망주..

사실 연세대 시절 순학이의 플레이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내 관심은 신동근이었고, 주장이었던 순학이의 플레이에는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었다.

어쨌든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순학이는 순수하다는 것..
어쩌면 대구라는 클럽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순수함이 유지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일반적으로 프로에 들어서는 순간, 특히 수원이나 서울 등의 돈많은 구단에 들어간 선수들의 경우 뭔가 달라지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

어쨌든 성실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순학이가 동아시아대회에서 대표팀에 선발됐을 때 정말 기뻤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후 순학이와의 통화에서 출장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나 역시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쨌든, 이제 시작일 뿐..K리그에서, 대표팀에서 질주하는 순학이를 기대해 본다..

2004년 12월 17일 KFA 홈페이지 기사...


2004 삼성하우젠 K리그 개인 타이틀을 살펴보면 일반 축구팬들에게 낯선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도움왕을 차지한 홍순학(24세, 대구 FC)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홍순학은 올 시즌 정규리그 18경기에 출장해 6개의 도움(컵 대회 포함하면 27경기-7도움)을 기록하며, 이동국(광주, 5개), 최성국(울산), 윤정환(전북), 김두현(수원), 노정윤(부산), 따바레즈(포항, 이상 4개) 등 쟁쟁한 스타들을 따돌리고 도움왕의 영광을 안았다.
무엇보다 프로 2년차에 불과한 선수가 K리그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

그러나 K리그 도움왕이란 대단한 영예에도 불구하고 홍순학을 향한 관심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 U-16 대표팀을 거친 것 이외에는 각급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소속팀 대구 FC 역시 전국적인 관심도에 있어서는 다른 클럽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
당연히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범근 축구교실을 시작으로 잠실초-배재중-배재고-연세대를 거쳐 지난 해 대구 FC에 입단한 홍순학은 첫 시즌에는 동계훈련부터 시작된 잇따른 부상으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4 시즌을 맞이해 홍순학은 자신의 기량을 서서히 꽃피우기 시작했다. 노나또, 훼이종, 진순진 등 능력 있는 공격수가 새롭게 영입되면서 이들과 홍순학간의 연계플레이가 대구 FC의 주 공격루트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특별한 슬럼프 없이 시즌 내내 꾸준한 모습으로 팀의 주축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순학은 축구팬들에게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자세를 낮춘다. 다음 시즌을 대비한 동계훈련을 통해 한 해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인상적.

아마도 내년 시즌 K리그에서도 축구팬들은 ‘홍순학’이라는 선수를 눈여겨봐야할 것이다.


- 프로 데뷔 2년 만에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축하한다.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진)순진이 형이나 노나또, 훼이종 같은 공격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선수들이 넣기 힘든 그런 볼을 올려줘도 그 선수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줬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올릴 수 있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우리 공격수들이 채워줬다.

사실 플레이오프까지 기록에 포함된다고 해서 약간 걱정하긴 했는데, 어쨌든 도움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나와 팀이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만족스럽다.

- 언제부터 도움 1위를 의식하기 시작했나?

사실 도움 3개를 했을 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4개로 도움 공동 선두에 올라서자 주위 사람들이나 코치 선생님들이 한번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선배들도 “몸상태 좋으니까 코너킥이든 뭐든 무조건 올려라”라고 농담을 하시곤 했다.(웃음)

4개째 도움이 중요했던 것이 그 경기가 우리 팀이 창단 후 울산에게 첫 승(9월 11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도움을 받아 순진이 형이 넣어서 1-0으로 승리했고, 그 골로 순진이 형은 ‘금주의 키카골’도 받았다. 우리도 후기리그 순위에서 2위인가 3위로 올라서게 됐고...

이러면서 내 도움의 가치도 올라갔다. 만약 비중이 없거나 진 경기였다면 도움 공동 1위에 올라선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 이동국, 최성국, 김두현, 윤정환, 노정윤 등 2위권을 형성했던 선수들이 대단했다.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주위에서는 도움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도움왕이 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팀이 성적이 좋고, 내가 다치지 않고 나머지 경기를 모두 소화하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했을 때 당연히 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 4개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주위에서 “도움왕 되면 한턱 쏴라”라고 했을 때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알았다. 쏘겠다”라고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나와 경쟁하는 선수들이 워낙 좋은 선수들이었고, 팀 전력도 우리보다 강한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나 같은 경우 팀 사정상 공격에 전념할 수 없고, 수비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문제도 있었고...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4개에 머무를 때 내가 5개, 6개를 기록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시즌 막판 인천전에서 어깨부상을 당하면서 이후 도움을 추가하지 못했는데, 그 경기에서 다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쉽다.

- 도움왕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가 적은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내가 부족한 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대구 FC 자체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팀은 아니고, 상위권 팀이 아니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 분발해서 기량을 발전시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팀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 이제부터는 시점을 앞으로 당겨 예전 이야기부터 해보자. 차범근 축구교실을 통해서 축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학교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했는데 빠른 것이 눈에 띄어 차범근 축구교실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서 용산구, 은평구, 강동구 등 5개구 팀이 울산으로 전지훈련 가서 대회를 했는데, 운이 좋게도 차범근 감독님이 수여하는 최우수선수상을 받게 됐다.

그러면서 차범근 감독님이 “여기는 아직 본격적인 클럽이 아니고 시험단계이니까 학교팀을 소개시켜 줄테니 거기서 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렇게 할까말까를 놓고 망설이다가 1년 뒤인 6학년 중순 쯤 잠실초등학교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했다. 그 뒤로 배재중과 배재고를 거쳤다.

처음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배재고에 들어가서는 윙백도 보고, 스토퍼도 보고 그랬다. 아무래도 중요 포지션에는 선배들이 있으니까 저학년 때 경기를 뛰기 위해서는 다른 포지션을 뛰어야 했다.

- 그렇다면 본인에게는 어느 포지션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공격형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맞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4-4-2 시스템을 많이 쓰는데, 그럴 경우에는 중앙 미드필더 2명이 특별히 공격형이나 수비형으로 나눠서 뛰지는 않기 때문에 상관없다. 대구 FC의 경우 3-5-2와 4-4-2 시스템의 변형이 많은데 3-5-2 시스템으로 갈 경우에는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 배재중, 배재고 시절을 회상해본다면.

중고 시절에는 정말 체격이 작았다. 배재중 시절에 U-16 대표팀에 뽑혔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작았다.(웃음) 당시 U-16 대표팀에는 김경일(현 대구), 이태권(현 수원), 서관수, 안홍찬 등의 선수들이 있었는데, 지금 프로에 있는 선수가 그리 많지 않아 안타깝다.

그 때는 키도 제일 작고, 드리블만 하는 스타일이어서 아시아 16세 대회에 가서도 1게임도 뛰지 못했다.  반면 배재중 동기였던 이태권은 베스트로 전경기를 뛰는 바람에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실망했다.

배재중 3학년때 (차)두리가 울산에서 전학을 왔는데, 차범근 선생님이 두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도록 내가 옆에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셨던 기억도 난다. 당시에는 두리도 나처럼 체격조건이 왜소했다. 지금이야 최고의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로 발전했지만..

- 배재고를 졸업한 뒤에는 연세대로 진학하게 됐다.

원래 고 2학년때까지만 해도 고려대에 진학할 예정이었고, 실제로 접촉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나를 스카웃하려고 했던 남대식 감독님이 고려대를 떠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연세대에 가고 싶었다. 배재고 동기인 (이)태권이와 워낙 친해 한 팀에 가기로 했었는데, 결국 같이 연세대로 진학하게 됐다.

대학 1학년 첫 대회가 실업과 프로 2군도 참가하는 전국선수권이었는데, 당시에는 스위퍼로 뛰었다. 그런데 황연석 선수한테 2골을 내주며 성남 2군에게 0-3으로 대패했고, 그 이후 김호곤 감독님이 나를 수비수로 쓰지 않았다.(웃음)

그 다음부터는 미드필드로 올라갔는데, 공격형 미드필더는 당시 U-20 대표팀에서 활약하던 (서)기복이 형과 (우)진석이 형이 맡았고, 내가 그 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봤다. 그러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 대학 강호 연세대에서 1학년부터 주전을 차지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데.

당시 형들 중에 대표선수들이 많았다. 99년 나이지리아 U-20 세계청소년선수권에 기복이 형과 진석이 형이 나가게 되어 그 자리를 커버했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형들이 복귀한 뒤에도 감독님이 내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이후 (송)종국이 형이 나가면 윙백도 보고, (김)성근(현 포항)이 형이 나가면 스토퍼도 보고 그랬다.

-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구에 입단하게 됐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사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신생팀에 들어간다는 것을 조금 꺼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4학년에 올라갈 때 1년 후배인 (조)병국이가 수원으로 조기 입단을 했고, 나와 (신)동근이가 나란히 어깨부상을 입었다. 그러면서 초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4학년 선수는 그 동안 해온 것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결국 4학년 초반에 여러 가지로 잘 풀리지 않아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상무에 가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9월 추계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내가 MVP를 받게 되면서 일본 진출 이야기까지 나오게 됐다. 그러나 일본 진출 문제가 이상하게 진행되면서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됐고, 그 상황에서 대구 FC에서 입단테스트를 받게 됐다.

입단테스트에서도 부상을 당해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박종환 감독님께서 뽑아주셔서 기회를 얻었다.

- 대구에 처음 입단한 뒤의 느낌은 어땠나?

처음에 들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다른 팀에 있었던 선배들에게 프로팀 이야기를 듣게 되니까 아무래도 다른 팀과 비교하게 됐다.
숙소라든지 구단의 지원 등 몇몇 환경적인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훈련장소나 음식 같은 부분에서는 감독님이 많이 신경을 쓰셨기 때문에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 같은 경우는 프로생활이 처음이기 때문에 더욱 불편한 것이 없었다. 다른 팀에서 왔다면 비교를 하게 될 테지만, 나로서는 주위에서 들은 것 외에는 없었으니..(웃음)

- 당시 동계훈련에서 박종환 감독이 상당히 혹독하게 훈련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견디기 힘들지는 않았나?

그 때 모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제 주위 사람들이나 선배, 특히 축구를 잘 모르는 주위 분들이 “지옥훈련을 했다면서?”하고 걱정들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웃음)
방송의 특성상 그런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지 않는가. 사실상 내가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계속 해왔던 것이고, 어떻게 보면 중고교 때가 더 힘들었다.

물론 연세대 시절과 비교하면 프로에 와서 훈련량이 많아졌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주어진 훈련시간 동안 자기가 얼마나 집중해서 그 훈련량을 채우려고 노력하느냐인 것 같다. 어느 팀 훈련이라도 자신이 집중해서 열심히 하지 않고 건성으로 한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는다.
대구도 마찬가지이다. 10분이든, 20분이든 그 훈련에 집중하는 시간에 따라 훈련의 강도가 결정되고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훈련에 오래 집중할수록 몸이나 정신이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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