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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김대업 대리-2002월드컵 이야기

2002년 9월 9일 기사...


 2002년 6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내며 대한민국 전체를 환희와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23명의 선수들과 히딩크 감독은 신화의 주역으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업적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대표팀을 위해 묵묵히 땀을 흘려온 스태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김대업 주무 역시 바로 그들 중 하나였다.

 축구팀에 있어서 주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선수단 전체를 챙겨주고 내조해주는 팀의 살림꾼 같은 역할인 것이다. 팀과 축구협회의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훈련에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챙겨줘야 하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무가 받는 육체적 어려움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일례로 94월드컵 당시 주무였던 이해두 과장은 월드컵 도중 과도한 업무량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을 정도. 물론 지금은 국가대표팀 스태프의 업무 분담이 보다 다양해져 이와 같은 극단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됐지만 여전히 20-30명에 이르는 식구들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이 코너는 대표팀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해온 역대 대표팀 주무들의 추억담과 숨은 이야기들을 직접 회고하는 무대이다. 그 첫 번째 스타트를 끊는 인물은 바로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숨은 주역 김대업 대리이다. 당초 주무로서의 경험이 오래되고 경륜이 높은 분들부터 소개하고자 했으나 2002 월드컵에 대한 여운이 남아있는 지금 그 때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김대업 대리부터 시작하려 한다. (편집자 주)


2002 월드컵을 향한 대장정 시작

 1999년 5월 대한축구협회에 입사해서 8월부터 주무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맡았던 팀은 U-19 대표팀이었다. 1999년 8월 처음으로 팀을 맡았고 그 해 12월에는 김정훈 과장님을 대신해 올림픽대표팀을 인수인계 받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다녀오고 곧바로 아시안컵을 위해 레바논으로 갔었다.

 그 이후 허정무 감독님이 물러나시고 새롭게 2002년을 위한 월드컵 대표팀이 구성되려는 상황에서 나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그리고 내 대답은 "맡겨주시면 하고 싶다"였다. 사실 주무라는 일이 무척 힘든 일이라 결혼했거나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다. 오직 팀을 위해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자기의 생활을 영위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총각이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었고 결국 월드컵 대표팀 주무를 맡게 됐다.

 일단 나는 주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주무가 대외적인 부분보다 대내적으로 팀을 관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선수들과의 접촉이 많은데 밖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안에서는 감싸줘야 하고 선수들을 가족과 같이 대해줘야 한다. 선수들과 항상 터놓고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하고 편애 없이 모두를 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모두가 힘들어진다.

히딩크 감독과의 첫 만남과 울산 훈련

 각설하고 다시 월드컵 대표팀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처음 히딩크 감독님과 대면한 것은 2000년 12월 도쿄에서 한일전을 했을 당시였다. 첫 만남에서의 특별한 기억은 없다. 호텔 로비에서 잠시 만났고 옆에서 "이 친구가 아마 팀 매니저를 맡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히딩크 감독님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 만족하며 "너도 영어할 줄 아네..좋다" 이런 식의 장난 섞인 첫 만남이었다.

 반면 네덜란드 스태프와의 첫 느낌은 일단 체격이 커서 그런지 북유럽 사람들답다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를 조금 경계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가볍게 보여서는 안된다'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솔직히 친밀하고 화기애애한 느낌은 없었다.

 2001년 1월 울산에서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새로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간에 첫 만남이 있었다. 2002월드컵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주무의 입장에서도 내국인 감독에서 외국인 감독으로 바뀌다보니까 워밍업이 필요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님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모든 부분에 대해 자신에게 의견을 묻고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이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길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히딩크 감독님은 평소에도 'Domination(지배)'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오케스트라 단장과 축구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직업'이라며 팀에 대한 장악력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따라주기를 나에게도 요구한 것이다.

 사실 히딩크 감독님과 허정무 감독님은 두 분 모두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셨다. 가장 큰 다른 점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이점이랄까? 정서상의 이해도 차이가 있었다. 허 감독님은 식사를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히딩크 감독님보다 주무로서 대하기가 편하신 분이었다. 같은 정서를 갖고 있었기에 웃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반면 히딩크 감독님은 모든 것을 육하원칙에 의해 이해시켜야 했다. 이것이 왜 안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

 예를 들자면 행정 부분을 처리할 때도 허 감독님은 "안되면 되게 해라. 안되면 돌아가도 되지 않느냐? 네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네가 생각할 때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생각하면 그렇게 해라"라는 스타일이셨다. 반면 히딩크 감독님은 "안된다고? 그럼 내가 방법을 제시해 주겠다. 다른 방법도 알아봐라"라는 스타일이셨다.

 다시 울산훈련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첫 훈련은 모두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월드컵 체제로 간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앞으로 살아남는다'...

 선수들 모두 이런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의욕이 지나친 면도 있었다. 결국 이을용을 비롯한 몇몇 선수는 겨울임에도 무리하게 뛰다가 부상도 당했었고 긴장해서 자기 플레이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소속팀으로 돌아간 선수도 있었다. 예전 기량만 충분히 보여주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히딩크 감독님이 대학팀과의 연습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이전에는 큰 경기 아니면 단체미팅을 하지 않았는데 특이했다. 조그만 밀실에 모여서 히딩크 감독님은 "쟤네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위압감을 보여라. 우리는 국가대표팀이다. 쟤네는 한낱 대학팀에 불과하지 않느냐"라고 말씀을 하셨다. 국가대표로서의 자존심 같은 부분을 많이 강조하셨다.

월드컵대표팀의 공식 첫 대회 칼스버그 컵

 히딩크 감독님이 부임하신 후 갖는 첫 대회였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대회가 시작되면 어차피 우리 룰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회 특성에 따라 맞춰서 움직이기 때문에 주무로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였지만 훈련스케줄이 안나온다는 자체가 우리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부분이었다. 스케줄이 나온다 하더라도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준비하는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점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에 대비해서 준비를 해야하는데 갑자기 바꿔버린다든지, 우리가 어렵게 부탁해서 성사시켰던 것을 취소시킨다든지, 당연히 이렇게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갑자기 바꾼다든지 이런 부분들이 히딩크 감독님을 처음 겪는 스태프 입장에서는 무척 난감한 부분이었다.

 칼스버그컵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통역을 담당했던 전한진 과장님과 관계된 것이 하나 있다. 당시 전한진 과장님의 친척분이 홍콩에 계셔서 그 날 행정업무를 다 끝내고 전 과장님이 외출을 하셨다. 밤 11시 경 사복차림으로 모자를 쓰고 친척분을 만나러 나가는데 그 때 마침 히딩크 감독님이 커피숍에 앉아있다가 발견을 하셨다. 당시 전 과장님은 흰 모자에 선수단 단복을 입고 나갔는데 히딩크 감독님은 그것을 보고 '선수가 탈출하는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웃음)

 그래서 급히 쫓아갔지만 택시를 타고 가버려 잡지 못했고 히딩크 감독님은 좋은 본보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대표팀 초창기였으므로 선수들에게 어떤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히딩크 감독님은 옆에 있던 전한진 과장님한테 귓속말로 "선수들 중에 누가 흰 모자 쓰느냐"라고 물어봤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자 "어젯밤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도망치듯이 호텔 밖으로 나가더라. 누군지 알아야겠다"라고 대답하더란다. 그래서 전 과장님이 "어, 그거 전데요"라고 이야기하자 "어, 너였냐?" 이런 식으로 마무리됐다.(웃음)

 위에서도 밝혔듯이 대표팀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선수들을 완전히 파악하고 장악하려는 부분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다음 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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