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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무 이야기>김대업 대리(4)

유럽전훈 중 핀란드와의 경기/축구가족

2002년 10월 11일 기사...


2002년 1월부터 골드컵과 우루과이전 등 강행군을 펼친 대표팀은 잠깐 동안의 휴식 이후 유럽전지훈련에 나섰다.

처음 기착지는 스페인 라망가였다. 스페인은 개인적으로도 가고 싶었던 나라이고 더군다나 라망가는 일급 휴양지였다. 지금까지 너무 힘든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쉬고 싶다는 생각도 많았었는데 라망가에서 운동도 많이 하고 체력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월드컵대표팀이 생긴 이래 가장 좋았던 훈련 코스가 아닐까 싶다.

선수들 역시 대만족이었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훈련하기 정말 좋다", "여건만 된다면 우리 팀에도 소개하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호텔비가 너무 비싸고 훈련장과 멀고 마땅한 연습파트너를 확정짓지 않고 왔을 때 힘든 부분이 있긴 하지만 훈련제반조건이나 여러 환경들을 따져보면 자신들이 다녔던 어느 전지훈련장소보다 좋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좋은 환경과 훈련 여건 속에서 대표팀은 새롭게 무장했고 3월 13일 아프리카로 건너가 튀니지를 상대로 그 성과를 시험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알다시피 만족스럽지 못했다. 선수들의 몸상태는 전반적으로 무거웠고 뭔지 모르게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무기력하게 0-0으로 비겼다. 그 동안의 훈련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정말 아쉬웠고, '이렇게 재무장했는데도 안되는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이후 스페인으로 돌아와 계속 훈련을 실시했고 20일 핀란드와 평가전을 가졌다. 다행히도 튀니지전과는 달리 선수들의 컨디션은 많이 회복됐고 황선홍 선수가 2골을 뽑아주면서 기분 좋게 승리할 수 있었다. 황선홍 선수가 2골을 넣었을 때 '과연 황선홍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면 선수들 역시 그 때부터 플레이가 살아났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독일 보쿰에서 가졌던 터키전에서 대표팀은 완전히 살아났다. 유럽의 강호 터키를 맞이해 시종 밀리지 않는 경기를 보여주며 비긴 것이다. 그 때 느꼈던 것이 역시 감독의 지도력이란 측면이었다. 당시 훈련기간 동안 히딩크 감독은 휴가도 주는 등 선수들에게 휴식시간을 많이 줬다. 팀 내에서는 '우리가 운동하러 왔지 놀러왔나'라는 반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그래도 쉬어라, 지금까지 너무 힘들게 왔다"라며 그런 주장을 일축했다. 그래서 선수들은 골프도 치고 좋은 휴식시간을 가졌다.(웃음) 그런 부분들이 국내 지도자와 다른 부분일 수도 있겠다. 지도자마다 스타일이 다른 것이므로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다만 결과적으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으니 이런 부분들도 다 좋게 평가받는 것이리라.

국내에서의 평가전

유럽전지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대표팀은 국내에서 월드컵에 대비한 마지막 과정을 밟았다. 4월 20일 코스타리카를 시작으로 27일 중국, 5월 16일 스코틀랜드, 21일 잉글랜드, 26일 프랑스와 잇달아 경기를 가지며 경기감각과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힘썼다.

이 시기는 선수들도 그랬지만 특히 나에게 있어 서서히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 시작한 때였다. 특히 5월이 지나서는 모든 것이 오로지 월드컵에 맞춰졌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고 순전히 오기로 버텨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 속에는 '월드컵만 끝나라'라는 생각뿐이었다.(웃음)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제주도에서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가질 때 이야기이다. 당시 선수들 축구화 밑창이 얼마나 닳았는지 체크하고 있는데 한 축구화 밑창에 '16강이 보인다'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 축구화인지 알아봤더니 바로 (김)남일 축구화였다.(웃음)

그래서 남일이에게 "야, 이거 네가 썼냐?"라고 물었더니 "에이, X팔리게.."라며 쑥스러워하더라.(웃음) 그런데 경기 끝나고 남일이가 그 축구화를 제주도에 버리고 왔다는 것 아닌가. '그럴 바에야 나한테나 주지'라고 생각했으나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웃음) 남일이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모을 줄 그 당시에는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그 축구화를 그렇게 버리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웃음)

프랑스와의 재대결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의 0-5 대패 이후 약 1년여만에 프랑스와 재대결을 갖게 된 선수들은 사실 경기를 앞두고 긴장을 많이 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 지네딘 지단 등이 모두 합류한 베스트 팀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긴장도는 상당히 컸다.

그러나 다행히도 직전에 치렀던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던 탓인지 선수들 사이에 '프랑스와도 한번 해보자'라는 의식이 강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복수전이란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긴장으로 인해 몸이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력과 승부욕을 한층 더 고조시킬 수 있었고 선수들은 '이놈들 죽는다, 두 번 다시 0-5는 없다'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앙리에게 선제골을 먼저 내줬을 때도 팀 전체가 우리가 진다는 생각은 없었고 언젠가는 골이 터진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결국 (박)지성이가 1골을 만회했을 때는 '그럼 그렇지'라는 느낌이었다.(웃음) 비록 최종결과는 2-3 패배였으나 설기현이 역전골을 터트리는 등 최강 프랑스를 맞아 우리는 끝까지 선전했고 만족스런 경기를 펼쳤다.

선수들 모두 기량이 한 수 위인 프랑스 선수들을 상대로 힘겨운 경쟁을 하면서도 끝까지 막아내며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지단이나 앙리 같은 선수들의 명성에 주눅들지 않고 대등한 경쟁을 펼친 것은 월드컵을 앞둔 우리에게 큰 소득이었다.

당시 월드컵을 앞두고 강팀과 연달아 평가전을 갖는 것에 대해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선수들의 자신감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정작 선수들은 그 문제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언제까지 꽁무니를 빼고 도망만 다닐거냐. 우리 목표는 월드컵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선수들을 독려한 히딩크 감독의 마인드에 동화됐던 선수들은 '그 동안 우리 나름대로 잘 해왔으니 한번 붙어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제 체력적인 부분이나 팀웍부분에서도 완성도가 높아졌으니 이제 우리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의식이 분명 자리잡고 있었고 선수 개인의 욕심보다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식이 무척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월드컵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선수들

프랑스전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월드컵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월드컵에서 뭔가 할 것 같다고 느낌이 왔던 선수는 이을용과 김남일이었다.

을용이의 경우 줄곧 왼쪽 윙백으로 기용되다가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중앙을 보던 (이)영표가 사이드로 옮기면서 후보로 밀려 사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영표가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출장했고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멋진 도움을 기록하며 기뻐했던 것이 생각난다. 마지막 경기였던 터키전에서도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터트려 월드컵의 시작과 끝을 멋지게 장식했고 이것을 계기로 터키 진출까지 이뤘으니 성공적인 월드컵을 보낸 셈이다.

한편 남일이는 왠지 골을 넣을 것 같다는 예감이 왔었는데 아쉽게 그 예감은 틀리고 말았다.(웃음) 그러나 미드필드에서 강한 몸싸움과 근성을 보여주며 대표팀의 숨은 살림꾼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사실 남일이의 경우 1년 사이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2001년 8월 처음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유럽전지훈련에 합류, 체코와의 평가전에 출장했을 때 남일이는 미드필더로써 하지 말아야 할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며 팀의 패배에 빌미를 제공했었다. 당시 경기가 끝나고 밤에 숙소에서 남일이가 "나는 이제 대표팀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걱정했었던 것이 생각난다.(웃음) 그랬었던 남일이가 1년 사이 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이 밖에 특별히 기대했던 선수는 (차)두리였다. 히딩크 감독도 원체 좋아했지만 두리의 빠른 스피드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사실 대표팀 멤버로써 아직까지 보잘 것 없는 경력을 갖고 있던 선수이지만 그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해서 뭔가 한 건 해낸다면 축구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성격도 좋고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유럽에서의 문화습득능력도 완벽하고, 스피드와 체력적인 면, 가족의 후원, 주위의 기대 등 제대로만 성장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잠재성이 큰 선수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였다. 월드컵을 계기로 독일에 진출했으니 앞으로 기대해 볼 선수이다.

그리고 이제 1년 6개월 가량 혼신을 다해 준비해왔던 그 무대. 2002 월드컵이 개막되었고 한국은 16강 진출의 고비가 될 폴란드와 예선 1차전을 맞이하게 됐다.

다음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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