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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백승철, “부상으로 선수생활 마감해야했던 불운의 캐논슈터”


2004년 11월 25일 KFA 인터뷰..


선수생명을 앗아간 그 수술을 받기 전에 백승철은 포항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불행은 여기서부터 야기되고 있었다.

원래 운동 선수의 경우 무릎에 물이 찼을 때 주사기로 물을 빼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마르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재발이 되지 않는다는 것. 물을 뺄 경우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물론 상태가 좋지 않아 자연적 치료가 부적절할 경우에는 강제로 물을 뺄 수밖에 없지만,  당시 포항의 그 병원에서는 백승철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강제로 무릎에서 물을 빼냈다는 것이다.

“수술받기 전에 포항의 병원을 다녔는데,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잠이 안와서 엉덩이나 손이나 주사바늘 자국 투성이였어요. 거기에다가 무릎 붓기가 빠져야 하는데 빠지지가 않아서 바늘을 낀 채로 1주일 정도를 생활했어요. 무릎에 넣는 바늘은 일반 바늘과 다르게 쇠바늘이거든요. 쇠바늘 낀 상태로 생활했는데..어휴...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거예요.”

결국 수도권에 있는 모병원으로 옮긴 백승철은 오히려 그 곳에서의 수술로 인해 치명타를 맞고 말았다. 수술 과정에서 외부 병균에 감염되어 무릎 전체에 문제가 생긴 것.
병원 측에서는 수술에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이미 백승철의 무릎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KFA 의무팀의 황인우 재활 트레이너는 이에 대해 “병원에서 수술에 앞서 세밀한 검사도 없이 선수를 수술대에 올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실수”라며 “선수 자신이나 팀이나 병원이나 수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 해도 다각도로 검사를 하고, 의견들을 종합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특히 병원 측에서 신중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한번의 수술일 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선수에게는 축구생명과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백승철은 그 이후 2년여간을 꼬박 재활에만 몰두해야 했다. 그 과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초기 시술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 결국 이런 사태를 야기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수술했던 병원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도 생각했어요. 병원에서도 분명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거든요. 그런데 변호사한테 문의했더니 병원하고 승부를 보려면 최소한 2년 이상은 간다고 그러더군요. 거기에 들어가는 액수도 만만찮고, 또 병원은 이런 소송에서는 쉽게 안진다고 하더라구요.”

“길게 끌고가다보면 죽는 건 우리쪽이래요. 그래도 할 거면 하라고...다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병원 측에서도 소송에 대비한다고 그러고, 해봐야 주위 사람 고생만 더 시킬 것 같았어요. 내 팔자려니 하고 그렇게 넘어갔죠.”

이 이야기를 할 때 백승철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아파오는데, 한순간에 축구선수로서의 생명을 잃은 본인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백승철은 수지 삼성병원으로 옮기면서 회복에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이어 일본으로 홀로 건너가 피나는 재활훈련을 실시했다. 어떻게든 다시 그라운드를 밟고 싶다는 생각만이 백승철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점점 복귀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드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일본에 혼자 가서 말도 안 통하는데 3개월 동안 재활을 했어요.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그것만 견뎌내면 예전의 몸을 되찾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도 안됐어요. 2년 동안 재활을 하다가 나중에는 제가 그냥 포기했어요. 1년만 더 할까도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었고, 또 조금씩이라도 진전이 있어야 희망이 있는데 그런 것도 안 보이고...”

“마지막으로 일본을 한 번 더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그 동안 썼던 돈도 한 두푼이 아니었어요. 부모님과 상의했는데 결국 포기했어요. 한국에서 혼자 잠깐 동안 재활을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2001년 겨울에 은퇴했죠.”

은퇴 후 계속된 방황

뭔가 후련하지 못한, 가슴에 응어리를 남긴 채 현역생활을 마무리해야했던 백승철은 은퇴 후 한동안 방황했다. 더 이상 축구계와는 마주치지 않겠다는 마음에 사회에 뛰어들어 이런저런 일을 해봤지만, 한 평생 축구만을 해온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은퇴했을 때는 축구 쪽은 돌아보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친구가 하던 휴대폰 사업도 같이 해보고, 도소매업쪽으로도 아는 분이 계셔서 해보고 그랬는데...힘들더라구요. 다른 것이 힘든 게 아니라 아는 것이 없잖아요. 지금까지 해온 것은 축구 하나 뿐이었는데...고객이 질문을 하면 답을 해줘야 하는데, 아는 것이 없으니까 답변도 못해주고..”

“1년 정도 그렇게 방황했어요. 이런저런 일들을 했죠. 마음이 답답하니 술도 많이 마셨죠.”
결국 자신의 전부였던 축구를 잃고 방황하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자신이 하고 있는 고기집에서 일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아버지가 고기집에 나와서 일을 배우라고 하셔서 나갔어요. 거기서 불판도 닦아보고, 궂은 일 다 했죠.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웃음)”

그 와중에 열렸던 2002 한일월드컵.
온 국민이 붉은악마가 되어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 백승철은 그 축제에 동참할 수 없었다. 아니 동참하기 싫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세계 강호들과 맞서 달리고, 부딪치고, 드리블하고, 슛하며 대등하게 싸우는 선수들이 부럽기도 하고, 무릎 때문에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자신의 현실이 야속하기도 했을 터. 그런 상황에서 그 축제를 즐길 수 없으리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말 부럽고, 배 아프고 그랬죠. 그 선수들이 너무 행복해보였어요. 나도 그렇게 뛰고 싶고...솔직히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잘할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데, 막 치고 올라가더라구요.(웃음) 저는 첫 경기만 보고 안봤어요. 괜히 마음만 아프거든요.”

“그러면서 ‘만약 내가 다치지 않고 계속 축구를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지금 생각이긴 하지만 쉽게 무너지고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여태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본다면 축구하다가 슬럼프에 빠지고, 중간에 처지고 그러지는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는거죠.”

“중간에 축구를 접었으니까 이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계속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월드컵에는 나갈 수 있었을까?’ 등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만약 계속 했으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혼자 하고..(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축구 선수가 운동장에서 뛰고, 축구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지금도 축구를 하는 친구들 중에 누가 그만둘까를 물어보면 앓는 소리한다고 쓴소리를 해줘요. 몰라서 그러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뛸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고, 지금 그만두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말해주죠.”

지도자로서 새출발하다.

그렇게 2년여간 축구를 떠나 힘든 시기를 보낸 백승철은 결국 자신의 귀착점이 축구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인이 축구를 떠나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코치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지도자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백승철에게 기회의 손길을 내민 것은 운봉공고의 문영래 감독이었다. 영등포공고 출신이었던 문 감독은 백승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코치직을 제의했던 것.

“처음에 문 감독님께 전화가 왔을 때 고민했어요. 물론 지도자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막상 전화가 오니까 또 망설여지는 거예요.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내가 이 몸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아이들과 같이 뛰어주고, 같이 호흡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요.”

결국 백승철은 고민 끝에 지도자에 도전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도 자신이 알고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축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가 2003년 4월 1일이었다.

“먼저 문 감독님께 감사드리죠. 몸도 많이 안좋은 상황이었는데, 저에게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걸을 때도 다리를 절었어요. 무릎도 다 안굽혀지고...내 딴에는 티 안낼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표시가 났나봐요. 뛸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코치를 하게 되면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뭔가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조금씩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내가 아프지 않을 정도의 킥이나 슈팅도 하고, 그러다보니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지더라구요. 예전에는 그렇게 아팠었는데...”

“지금은 슈팅이나 숏게임 할 때 간단한 시범도 보여주고 그래요. 같이 뛰면서 격렬하게 운동하지는 못해도 간단한 것들 중에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주려구요.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생판 모르는 일에 덤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고, 내가 공부만 조금 더 한다면 더 많은 지식을 넓혀갈 수 있는 분야니까요.”

이렇게 운봉공고에 둥지를 튼 백승철에게 어린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이미 완성된 성인 선수들과는 달리 자신이 가르쳐주는 것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재미를 새삼 느낀 것.

“처음에는 시대의 흐름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으로는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저 자신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직 미숙한 선수들이지만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도 있어요. 하나를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따라와요.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안했던 거죠.”

“팀전술과 함께 움직임을 가르쳐주면 그렇게 움직여요. 기특하죠. 아이들에게 개인훈련도 많이 하고, 기본기를 잘 갖추라는 말을 많이 해줘요. 기본기를 잘 갖추고 있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거든요. 아직 기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많이 시키려고 하고 있죠. 미숙해도 재미있어요. 가르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웃음)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을 하려고 하거든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역시 문영래 감독님이시죠. 저를 거둬주시고, 지도자로서는 초보인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그리고 예전 포항 시절의 박성화 감독님의 가르침도 지금 와서 큰 도움이 되요. 그 분 때문에 4백 시스템의 전술적인 부분들을 많이 배웠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되죠. 포항 시절에는 제가 어렸기 때문에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라인과 공수의 움직임 등 밀고 당기는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접목시키고 있어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하는 백승철 코치의 모습에서는 어느새 부상 이야기를 했을 때의 어두운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29세의 한창 나이에 선수가 아닌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어쨌든 ‘축구’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여전히 선수 시절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아직 지도자로서 많이 부족해요. 공부를 더 해야죠. KFA 지도자 자격증도 따야 하구요. 여전히 문 감독님께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계속 코치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워나가려구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막힐 데가 있어요. 그 부분을 뚫으려면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시간이 될 것 같아서 KFA 지도자 강습회도 이수하고 그럴 계획이에요. 그래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백승철이 가르치고 있는 선수들 중에 그를 코치가 아닌 선수로 기억하고 있는 아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작년 고3 아이들은 절반 정도는 알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나중에 집합시켜서 단체 관람하라고 하면서 98년 울산과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여줬죠. 올해 들어온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이제는 다들 알죠.”

마지막으로 2년간의 짧은 프로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저야 지금까지 기억해주시고,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죠. 사실 2년간의 프로생활이면 잊혀지기 쉬운데, 울산전이 정말 큰 파장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축구팬들에게 큰 선물 하나를 드리고 간 것 같네요.(웃음)”

“이제 은퇴한지도 꽤 되는데, 여전히 카페에 글 남겨주시는 분들 보면 너무 고맙고, 앞으로 제가 보답할 길은 지도자로서 좋은 제자들을 키워내는 거라 생각해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지도자로 보답하겠습니다.”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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