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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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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지도자 길로 들어선 윤상철, “K리그 최초 100호골의 주인공”


K리그에서 득점제조기로 불리우던 윤상철 감독님..
골 넣는 곳에는 항상 위치하는 비범한 위치선정..국대에서는 활약하지 못했지만, K리그의 전설 중 한 명..

2004년 11월 3일 KFA 인터뷰..


1990년대 K리그를 주름잡았던 고감도 스트라이커 윤상철(39세).
경신중-경신고-건국대를 거쳐 1988년 럭키금성(현 FC 서울)에 입단한 윤상철은 1997년 은퇴할 때까지 10년간 총 300게임에 출장, 101골, 31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최고 골잡이’로 면모를 과시한 바 있다.

특히 K리그 최초의 300 경기 출장 및 100호골 달성은 K리그 역사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 대기록.

1990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득점왕에 등극했으며, 특히 1994년 24골은 2003년 김도훈(성남, 28골), 도도(울산), 마그노(전북, 이상 27골)가 깨기 전까지 한 시즌 최다골이기도 했다. 1993년에는 8어시스트로 도움왕에 오르기도.

윤상철은 신체조건이나 스피드, 활동범위 등에서 결코 뛰어난 스트라이커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쳤지만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
그러나 골 에어리어 안에서 골냄새를 맡는 득점감각과 슈팅 타이밍 등을 비롯한 슈팅센스에 있어서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만 했다.

마치 축구공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기라도 하듯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는 언제나 공이 있는 곳에 윤상철이 있었고, 대포알 같은 강력한 슈팅이 아닌 골키퍼의 허를 찌르듯 빈틈을 노려 툭 차 넣는 슈팅은 윤상철의 전매특허였다.

1997년 염원하던 100호골 달성과 300 경기 출장을 끝으로 K리그에서 은퇴한 뒤 호주에서의 생활을 거친 윤상철은 현재 경신고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밖에도 KFA 2급 및 1급 지도자 코스에서 진장상곤 인스트럭터를 도와 보조강사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은 파주 NFC에서 KFA 1급 지도자 코스 진행에 여념이 없는 윤상철 감독과의 인터뷰.


- 어느덧 현역에서 은퇴한지도 6년이 됐다. 최근 근황을 말해달라.

1997년에 K리그에서 은퇴한 이후 호주로 건너가 3년 정도 있었다. 2년간은 선수로 뛰었다.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2년 정도 아이들을 지도했고, 작년에 AFC 프로페셔널 코스까지 모두 이수한뒤 올해 1월 모교인 경신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최근 몇년간 경신고 축구가 침체되었기에 예전 축구 명문으로서의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며 동문들이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다. 나 역시 모교의 부활을 위해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승낙했다.

- 먼저 현역시절 옛날 이야기부터 나눠보자. 경신고-건국대를 거쳤는데, 특히 건국대 시절은 얼마전 정종덕 전 감독이 최고의 멤버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건국대 축구부가 이전에도 김재한 선배님, 김진국 선배님 등 대스타들을 간간이 배출하긴 했지만, 대학강호로써 자리매김하지는 못했었다. 프로에 진출한 선배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그런데 내가 입학한 80년대 중반부터 건국대 축구부의 성적이 많이 좋아졌다. 내가 2,3학년이었을 때는 2관왕도 하는 등 거의 매년 정상권에 진입했다. 개인적으로 기회가 와서 재학 중에 대표선수도 해보고...

이 시기에 내 바로 밑이었던 고정운을 시작으로 이상윤, 황선홍이 차례로 들어왔고, 모두 같은 방에 룸메이트로 있었다. 결국 그 방 출신들이 대표선수로서 활약하고 이름을 떨쳐서 기분이 좋았다.(웃음)

그 밑으로는 유상철이 있었고, 더 내려와서 박충균이니 이영표, 현영민 같은 후배들이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건국대 이미지를 많이 부각시켰다.

특히 (유)상철이는 나이차가 있어 대학에서 같이 뛰지는 못했지만, 이름도 같고 경신중-경신고-건국대 후배여서 인상이 깊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상철이가 중학생이었는데, 그 때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가르쳐줬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상철이는 개인 기량은 좋았지만 신체조건이 굉장히 왜소해서 상철이 부모님이 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가 지금도 꾸준히 대학축구에서 상위권을 형성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더욱이 그 시발점이 우리 동기들부터였다는 점이 더욱 기쁘고, 자부심이 있다.

- 건국대 시절 후배들에게는 어떤 스타일의 선배였는가?

글쎄..별다른 트러블은 없었다. 후배들을 나무라기보다는 같이 이야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문제점이 있으면 후배들과 상의도 많이 하고...
지금도 경신고를 맡으면서 아이들과 대화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고)정운이가 무서운 선배로 알려졌는데, 팀훈련이든 개인훈련이든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인데다 자기 주장도 강하다보니까 대충대충 하는 것을 못봐줬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던 것 같다.

- 당시 정종덕 감독은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했는데.(웃음)

카리스마가 굉장하신 분이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야단도 많이 맞았는데, 유독 나는 졸업할 때까지 야단 한번 맞은 적이 없다. 이쁘게 봐주셨던 것 같다.(웃음)

- 1988년에 럭키금성에 입단했는데, 처음 프로무대에 진입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1987년 대학 4학년때 무릎수술을 하면서 거의 경기를 뛰지 못했다. 쉬다가 1988년 드래프트에 참가했는데, 전체 1순위로 럭키금성에 지명됐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상황인지라 입단할 무렵에는 체중이 10kg이 불어있었다. 동계훈련 기간 동안 체중감량하고, 무릎치료 하는 바람에 팀훈련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몸이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시즌 개막전에 반게임 정도 뛰고, 몇 경기를 계속 결장했다.

5월 26일에야 후반에 교체 투입되었는데, 그때 내가 결승골을 터트리면서 1-0으로 승리했고 이후 계속 경기에 나서게 됐다. 첫 시즌에 결국 4골을 넣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

대학 4학년때 다친 무릎 때문에 결국 연골을 다 제거하고 프로에 왔고,  무릎은 선수생활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문제였다. 이로 인해 매년 동계훈련때마다 무리한 훈련은 가급적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학수준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기 때문에 물리치료나 재활 등에 있어서 체계적 치료가 어려웠다.

- 프로 데뷔 2년차였던 1989년 17골로 확실한 골잡이로 자리잡았고, 1990년에는 첫 득점왕까지 올랐는데.

1989년에는 17골로 득점 2위까지 했다. 사실 팀도 우승할 수 있었는데 승점 2점차로 유공(현 부천)에게 아깝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나 역시 득점왕을 노려볼 수 있었는데 조긍연 선배에게 2골차로 1위를 내줬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던 한해였다.

1990년이야 내 축구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기억에 남는 시즌이었다. 팀도 우승을 차지했고, 득점왕도 받고, 각종 시상식에서도 상을 여러 개 받았었다.

- 당시 같이 뛰었던 팀멤버들도 쟁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주축을 이뤘던 선수들은 일단 골키퍼에 차상광, 수비진에 조민국, 구상범, 미드필드진에 최순호, 이영진, 최대식, 최태진 등이 있었고, 공격진에는 최진한, 강득수 등이 포진했었다.

최진한 선배가 특히 나에게 도움을 많이 줬다. 이밖에도 1990년 도움왕에 올랐던 최대식이나 이영진 선배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

- 1990년 득점왕 이후 93년 도움왕을 차지할 때까지 다소 주춤했던 것 같은데.

1991년과 92년에 조금 좋지 않았다. 팀이 우승하고 나서 조금 느슨해진 감도 있었고, 우승멤버들도 빠져나가는 등 멤버교체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팀이 약해지고 내 개인적으로도 다소 침체된 감이 있었다. 1993년부터 팀이 안정되면서 나 역시 페이스를 되찾았다. 팀도 준우승을 차지했고, 나 역시 도움왕(8개)과 함께 득점 2위(9골)를 하는 등 만족스런 한해였다.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가 1994년에는 24골로 당시 한 시즌 최다 득점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이때도 고비가 있었는데, 초반 7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해 오랜만에 교체 멤버로 밀리기도 했었다. 오기가 생겨서 더 이를 악물고 뛰었고, 결국 시즌 최다골을 달성할 수 있었다.

- 스트라이커로서 눈을 뜨게 된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원래 대학까지는 스트라이커를 본 적이 없고,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조율도 하고, 이것저것 다했다.
그런데 무릎부상 이후 몸의 밸런스가 조금 깨지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었다. 프로 입단 이후 우리팀 미드필드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보니까 전방으로 배치되어 전문적으로 골만 노리게 됐다. 대학 시절에도 공격형 미드필더 보면서 팀 내에서 골을 제일 많이 넣었을 정도로 골감각은 있었고, 그것을 당시 럭키금성의 고재욱 감독님이 눈여겨보셨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줄곧 스트라이커로 활동하게 됐는데 1993년-94년이 되면서 무릎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경기를 보는 눈도 넓어졌다. 특히 1994년부터는 (최)용수가 우리 팀에 입단하면서 용수를 최전방에 배치하고 내가 밑에서 서포트하는 개념으로 역할이 약간 바뀌었다.
앞에 용수 같은 스트라이커가 있으니 내가 뒤에서 처져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가 있었다.

- 최용수와 1994년부터 호흡을 맞추면서 최고의 공격조합 중 하나로 평가를 받았다.

처음 용수가 입단할때부터 개인적으로 애정을 많이 쏟았다. 평소에도 그렇고, 경기 중에도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움직여라,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보여라”고 이야기하면서 많은 조언을 해줬다. 본인도 열심히 했고...

사실 동계훈련할 때만 해도 용수가 뛸 자리가 없어 보였다. 당시 이인재가 주전 공격수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개막 1주일 전에 부상을 당하면서 용수에게 기회가 왔다. 거기에다 경기장에서 자신이 열심히만 뛰어주면 뒤에서 서포트해주는 우리팀 선수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용수로서도 편했을 것이다.

1994년에 용수가 10골로 신인왕을 받았는데, 사실 골을 더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 미드필드진에서 완벽한 골찬스를 많이 제공했다.(웃음) 용수가 당시는 경험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놓친 것도 많았던 것이다.

- K리그 역사에서 가장 결정력이 뛰어난 골게터 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경기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사실 나는 용수처럼 파워와 제공권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도 아니고, 스피드도 있는 편이 아니다. 골이란 것은 힘으로 억지로 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점을 찔러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연습량도 많아야 하고 골센스가 없으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프로 입단할 때부터 골키퍼와 많은 개인훈련을 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다. 골키퍼 훈련을 시키면서 나도 골 넣는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골키퍼와의 훈련을 통해 골키퍼가 어려워하는 코스라든지 슈팅 타이밍을 파악할 수 있었고, 경기 때에도 그런 부분을 노려 많은 골을 넣었다. 이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강한 슛으로 골을 넣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 골게터는 어느 수준까지는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문전에서의 센스나 결정력을 타고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이해하고, 축구를 좋아하게 만들고, 감각을 살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유소년 시절부터 훈련시키는 것이 그런 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스트라이커가 나오지를 못하는 것 같다.

훈련의 방법을 달리해줄 필요가 있는데, 공격수나 미드필더나 수비수나 모두 똑같은 훈련을 시키다보니까 성장해도 한계가 있다. 포지션별로 특화된 훈련이 필요하다.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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