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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7년 만에 K리그 복귀한 이장수 감독, “감독은 성적으로 말할 뿐”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던 지도자...

2004년 4월 21일 KFA 홈페이지 기사...


지난 1996년 12월을 끝으로 천안 일화(현 성남 일화) 감독직을 물러났던 이장수 감독이 7년여 만에 K리그에 복귀했다.

1997년 브라질 유학을 거쳐 1998년 중국 충칭(중경)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장수 감독은 2001년까지 4년동안 팀을 맡으며, 특유의 카리스마와 친화력으로 하위권에서 맴돌던 충칭팀을 리그 정상급으로 발돋음시켰다.

특히 2000년에는 팀을 FA컵 우승으로 이끌며 그 해 ‘중국 프로축구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고, 충칭팬들에게 ‘충칭의 별’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기도 했다.

2002년 칭따오로 팀을 옮긴 이후에도 그 해 FA컵에서 우승하는 등 지도력을 발휘, 감독 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중국 프로리그에서 성공적인 감독생활을 유지했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던 중국생활을 뒤로 한 채 2004년 이장수 감독은 K리그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고 그 파트너는 전남이었다.
항상 가능성은 있었으나 우승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던 전남은 정글과도 같은 중국 프로축구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이 감독의 영입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성공했던 것.

훈련장에서 만난 이장수 감독은 특유의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주전과 비주전의 구별은 있을 수 없다. 그 어떤 스타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으며, 주전의 기준은 오직 컨디션이 좋으냐, 나쁘냐의 여부일 뿐”이라고 일갈하며 팀의 체질개선에 힘쓰고 있다.

선수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훈련강도가 높아졌다고 힘들어하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묵묵히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 감독은 선수들을 강하게 휘어잡으면서도 간간이 농담을 던지며 훈련장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또한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크게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거는 등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오랜 외국생활을 했던 그이기에 외국생활의 어려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

올 시즌 이장수 감독의 목표는 우승이다. “모든 감독의 목표는 우승이며,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감독은 성적으로 말할 뿐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내 자신이 보따리를 싸서 떠나겠다”는 이 감독의 말에서 승부에 대한 강한 투지를 읽을 수 있다.

다음은 광양에서 가진 이장수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 리그 개막하고 이제 3게임을 치렀다.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는데.

리그 초반이기 때문에 아직은 어떻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가 시즌 개막하기 전에 이야기했듯이 전력이 평준화되어 6-7개팀이 비슷비슷한 전력을 보여줄 것 같다. 어느 팀이 우승할지 쉽게 점치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시즌 판도가 그렇게 갈 것 같다.

- 지난 1996년 12월에 천안 일화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7년여만의 K리그 복귀인데, 부담도 클 것 같다.

사실 부담감은 별로 없다. 중국에 있을 때도 빙판 위에 서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극성스러운 환경에서 감독을 했기 때문이다.(웃음) 물론 압력이나 부담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크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감독이란 직업이 하다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그만둬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프로의 생리이다. 담담하게 생각하고 있다.

- 중국에서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했고, 대우 면에서도 특급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 복귀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사실 올 한해는 쉴 생각이었는데, 사람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는 것 같다.(웃음) 중국에서 6년 동안 있으면서 어려운 고비가 상당히 많았다. 그 고비들을 운 좋게 잘 넘겼지만, 이 정도 시점에서 모두가 좋을 때 떠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도 나을 것 같았다.
상황이 좋을 때 떠나는 것이 다음에 다시 중국에 진출할 때를 대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6년 동안 중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쉬면서 유럽 연수 등으로 재충전을 하려고 했다. 그 상황에서 몇몇 팀에서 감독 제의를 했고, 특히 전남에서는 이회택 감독님까지 요청을 해오시는 등 적극적이었다. 결국 전남 팀을 맡게 됐는데, 시기가 늦어져 12월말에야 최종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 오랜 기간 중국에서 활동했는데, 이 감독을 그렇게 오랫동안 중국에 머물게 했던 요인은 무엇이었나?

특별한 이유란 것은 없다. 요리사는 어디에 가서도 요리사로서 살아야하듯이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중국에서 감독을 하나 한국에서 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이 앞으로를 위해서도 더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중간에 한국의 팀들로부터 제의가 있긴 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었다.

- ‘충칭의 별’이라고 불릴 정도로 충칭에서는 영웅이었지만, 중간에 칭따오로 팀을 옮기게 됐다. 개인적으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 역시 충칭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처음 팀을 맡은 1998년 이후 충칭팀은 재정난에 허덕였고, 매 시즌이 끝날 때마다 팀의 주전 선수 1-2명을 팔아서 구단 운영비로 충원하곤 했다.

결국 2000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재정난이 심각해져 구단을 리판 그룹에 매각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리판 그룹은 내가 감독으로 남아 있는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나는 새로 인수한 구단주와 만나서 외국인선수를 비롯한 선수영입문제, 구단 전체적인 운영방안 등에 대한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부탁한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승낙할 줄 알았고, 실제로 구단에서는 허락했다.

그래서 2001년에 계약을 맺었는데, 그 이후 내가 내걸었던 조건들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구단과 그 문제로 계속 마찰이 있었고,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팀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시즌이 끝나는 대로 팀을 떠났던 것이다.

- 중국축구와 한국축구를 모두 경험했는데, 서로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역시 첫 번째 차이점은 행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현재 1,2,3부리그까지 구성되어 있어 서로 업다운제를 하고 있고, 이것이 중국축구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느 팀이 우승하느냐 뿐 아니라 어느 팀이 강등되느냐에 대한 관심도 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팬들의 관심이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업다운제가 없다 보니까 우승팀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팬들의 관심도 오직 그것에만 쏠려있다. 그러다보니 시즌 막바지에 우승팀이 사실상 결정되고 나면 다른 경기들은 흥미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축구 자체적인 것만을 놓고 보면 일단 한국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다. 한국 선수들은 어려운 여건이나 상황을 이겨내는 정신력과 성실성, 경기에 임하는 태도 등에서 중국 선수들에 비해 훨씬 훌륭하다.

아직 몇 게임밖에 치르진 않았지만, 예전에 감독직을 수행했던 90년대 중반과 비교한다면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나아지고 평준화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전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전남 감독에 부임한 이후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은 무엇인가?

사실 전남 감독직을 맡기로 결정한 것이 12월 말이었고,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특별히 요구하거나 작업할 부분은 없었다. 2003년 시즌이 끝난 뒤 이미 이회택 감독님과 구단이 협의해서 선수구성을 마무리했던 시점이었다.

또 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끝나야만 내가 구단에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데, 오랜 기간 한국을 떠나있었고, 팀의 장단점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 요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웃음) 무턱대고 선수를 뽑아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정확한 파악이 되어야지만 구단에 이야기하고, 구단에서도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 코칭스태프 구성을 보면 새롭게 고정운 코치를 영입한 것이 눈에 띈다.

현재 코칭스태프가 5명인데, 기존의 전남 코치진이 2명이다. 전남에 대한 장단점을 빨리 파악해야하기 때문에 이쪽에 오래있었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코치들을 선임했다. 2군에 있는 김상호 코치가 계속해서 2군을 맡게 되고, 2003년에 광양제철고 감독으로 갔던 여범규 코치를 다시 끌어올렸다.

고정운 코치는 나와 오랜 기간 같이 지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호흡 면에서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 코치의 경우 아직 지도자경험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일화 시절에는 내가 지도자였고, 고 코치는 선수였기 때문에 지도자로서의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평소에 지켜보면서 지도자로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아마 고 코치 본인도 선문대 감독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인지라 전남으로 오는 것이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2편에서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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