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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신무광 기자, “한국축구와 함께 해온 일본 최고의 한국축구전문가”

미즈노상 수상작인 '히딩크 코리아의 진실' 표지

2003년 4월 5일 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 처음 한국축구취재를 시작했던 97년은 일본 내에서는 한국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던 시절로 기억하는데, 직접 겪은 일본 내 반응은 어떠했나?

사실 그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기억이 있다.  당시 한일전을 하면 일본 기자들이 다가와 농담조로 “신무광씨, 이기는 것은 우리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한국이 이겼을 경우에도 일본 기자들은 “그래요, 다음이 있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실력으로는 충분히 이긴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99년 9월 7일 도쿄에서 열렸던 올림픽대표팀간의 친선경기였다. 당시 한국은 1-4의 참패를 기록했는데, 일본 기자들이 경기 후 야릇한 표정으로 “신무광씨, 괜찮아요? 힘내세요”라고 이야기하더라.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나.(웃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한국이 조예선에서 탈락해 애들레이드를 떠나는 날과 일본이 8강에 진출해 애들레이드에 도착하는 날이 같았다. 공항에서 일본 기자들을 몇 명 만났는데 “어, 이제 가요?”라고 이야기하는데 씁쓸했다.

가장 화났던 기억은 2000년 아시안컵이었다. 당시 한국은 사우디에게 패해 3/4위전으로 밀려나 결국 3위를 차지했었고,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었다. 현장에서 일본 기자들은 나를 보고 “신무광씨, 괜찮아요? 힘내세요. 우승해보니 좋네요”라고 말을 건네곤 했다.

아마 지금이라면 서로 입장이 바뀌었을 것이다.(웃음)

- 97년의 한국축구와 지금의 한국축구를 비교한다면 어떤 변화가 있는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드웨어의 변화이다.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당시 서울 조계사 근처에 있던 대한축구협회 건물을 방문했을 때 정말 당황했었다. 처음 본 대한축구협회 건물은 ‘과연 이것이 월드컵에 5회 출전했던 나라의 협회 건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름했었다.(웃음)

그 이후 현장에 가서도 맨땅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 강압적인 합숙훈련을 하는 어린 선수들, 승부에만 치중하는 학원축구, 지도자 수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축구환경, 포항과 광양에만 존재하는 축구전용구장 등등...

과연 이것이 월드컵 통산 5회 출전에 86년부터 4회 연속 진출하고 있는 나라의 축구환경인가, 어떻게 나갈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었다.

이런 부분들을 확실히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일본에서 한국축구의 문제점, 지적해야할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썼다. 그것이 현실 아닌가.

그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정말 많이 바뀌었다. 대한축구협회의 건물도 훌륭하게 바뀌었고(웃음), 직원도 많아져 지원체계도 훨씬 좋아졌다. 또한 월드컵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장들이 들어섰고, 그 밖에도 많은 시설을 갖췄고 언론의 관심도 커졌다. 축구시장 자체도 한국인들은 작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커졌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확실하게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큰 변화이다. 98 프랑스 월드컵 당시에도 현장취재를 했지만 그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들이 자신감에 차 있다.

일본이 93년 J리그 출범이후 2002년까지 10년 동안 급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역시 많은 발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축구계나 언론에서는 국제대회에서 고배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하드웨어 요건이 안되니까..’라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앞으로 한국축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인드이다.

어떤 마인드를 갖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갈 것인가, 계획을 세워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팬들은 장기계획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금 이 시점에서의 문제점들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바꾸고 개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 한일 축구를 모두 접한 사람으로서 한국축구와 일본축구를 비교해 본다면.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스타일에서는 많이 다르다. 일단 일본축구는 세밀하고 깔끔하게 패스를 연결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미학을 갖고 있다. 선수들도 그런 플레이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고 팬들도 그것을 원하고 그것이 좋은 축구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역시 1:1이다. 1:1 돌파와 수비, 즉 1:1 대결에 큰 흥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팬들 역시 1:1 대결에 매우 기뻐하고.

선수들의 마인드를 살펴봐도 사뭇 다르다.

예전에 홍명보 선수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나 역시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선수들은 누군가를 위해 뛸 줄 알고 희생할 줄 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이기도 하고, 형제이기도 하고, 팀 동료이기도 하고, 크게 봤을 때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 선수들은 그 부분에 있어 다소 약하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자라는 것은 한국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자 미덕이다. 이것이 결국 월드컵 4강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 선수들은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 뛴다는 생각이 강하다. 아무래도 자라온 과정 등이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봤겠지만 한일 양국의 축구를 서로 합쳐서 나누기 2를 한다면 가장 좋은 축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어쨌든 서로 다른 스타일이니까 대결하면 재미있는 것이고, 서로 라이벌로 견제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스파르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대조적인 국가관 및 운영체계를 갖고 있었고, 서로에 대해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축구는 일본축구가 투자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분발해 발전할 수 있었고, 일본 역시 한국축구에게 이기지 못했던 몇십년의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의 발전이 있었다. 서로가 있었기에 양국 모두 발전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 이번 월드컵이 한일 양국, 그리고 본인에게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면.

2002 월드컵을 통해 한일 양국, 그리고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 그리고 나 자신의 인생이 확실히 달라졌다.

나 같은 경우 공동개최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내 나라에서 일도 하지 못하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재일교포로서 자기 자신에게 한계를 긋고 살았을 텐데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졌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축구를 취재한지도 횟수로 6년이 됐는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4강에까지 진출한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과정들을 빠짐없이 취재한 것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 기쁨을 느낀다.

한일 양국을 놓고 봤을 때는 아직까지도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월드컵 공동개최 이전의 좋지 않았던 관계, 역사적 관계, 서로에 대한 불신 등이 많이 완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월드컵 이전에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잘못된 인상조차도 말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싫어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월드컵을 통해 서로에게 많이 다가갔고, 서로의 진짜 모습도 많이 봤을 것이다. 이제까지 오해했던 부분도 알았을 것이고, 몰랐던 부분도 알았을 것이다. 어쨌든 일본인들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다시 새로운 역사,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50년 동안 서로가 반목하고 서로에 대해 모른 채 지냈는데, 앞으로 어떤 50년을 만들어 나갈지 기자로서, 재일교포로서 관심이 많다.

- 일부 일본 축구팬들은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는데.

물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기자는 “이것은 월드컵이 아니다. 정몽준컵이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나로서는 화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하는 것은 기린컵 아닌가.(웃음)

일본과 맞붙은 나라들도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터키...기린컵에 나올 만한 나라들이지 않나.(웃음) * 기린컵은 일본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대회의 명칭(편집자 주)

반면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과 맞붙었다. 상대의 면면이 그야말로 월드컵이지 않은가.(웃음)

그러나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명망 높은 축구기자들은 한국축구의 경기력, 전술, 힘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또한 일반 축구팬들도 한국팀의 열심히 하는 모습, 투쟁력, 기술력, 선수들의 재능 등에 감동을 받았다. 어떤 팬들은 축구를 보면서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사실 일본 내에 한국축구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면 내가 미즈노상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이 한국축구에 감동했기 때문에 내가 수상할 수 있었다.

예전에 어떤 기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월드컵이란 강한 팀이 강자가 아니다. 이긴 팀이 강자이다. 명성이 높은 팀이 강자가 아니라 이긴 팀이 강자이다.”

바로 지금의 한국이 그렇다.

앞으로 한국이 계속 강자가 되는 것에 대해 일본인들의 감정은 복잡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한일전에서 일본이 이기면 “우리는 월드컵 4강을 넘었다”라고 기뻐할 것이다.(웃음)

- 지금까지 한국축구를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

3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98년 10월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렸던 U-19 아시아청소년선수권 결승전이 끝난 그날 밤의 일이다. 당시 한국은 이동국의 2골로 일본을 꺾고 우승했었다.

결승전이 끝난 밤에 치앙마이 호텔에서 이동국의 객실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동국의 방에 일본선수들이 있는 것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가봤는데 나보고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그 후에 오노, 이나모토 같은 일본 선수들이 모여들고, 김은중, 정용훈 등의 한국 선수들도 모여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일 축구를 짊어지고 갈 라이벌들이 19세 청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관심 있는 유행, 이상형의 여자, 역사관 등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 역사적인 상황에서 통역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람이 있었고, 이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인도 알고, 일본인도 알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을 일본인들에게 알려주고, 일본의 현실을 한국인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어쨌든 이들의 대화는 밤 12시부터 새벽 5시경까지 이어졌다.(웃음) 나로서는 내 갈 길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던 사건이었다.

두 번째로는 역시 한국축구를 취재를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축구협회 송기룡 차장과 붉은악마 등 언제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사실 한국축구의 현장을 다닐 때마다 부정적인 부분도 많이 봤다. 물론 문제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은 어떻게든 해보자는 의욕이 강한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로는 역시 월드컵의 순간들이었다.(웃음) 폴란드전을 통해 월드컵 첫 승을 확정지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었다. 또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이 확정됐을 때는 기쁨의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국경기가 있을 때마다 붉은 색 셔츠를 입곤 했다. 아시안컵에서 패할 때도, 시드니 올림픽에서 예선탈락했을 때도 그 셔츠를 입었고, 월드컵 첫 승을 거둘 때도 입었었다. 포르투갈전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했을 때 ‘이제 이 셔츠는 입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 매번 절박한 심정으로 한국축구를 봤다면 이제부터는 즐기는 심정으로, 선수들을 믿고 마음껏 즐겨보자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전은 정말 이런 마음으로 경기를 봤다.

개인적으로 97년 이후 50여회 정도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에 2-3일간 머물렀던 것이 1주일이 넘게 체류하기도 하는 등 점점 늘어났다. 또한 처음에 2달에 1번 정도 방문했던 것이 1달에 1번이 되기도 했다.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레바논, 독일,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호주, 미국 등등...한국대표팀을 따라 내가 돌아다녔던 곳들이다. (벨기에는 설기현 인터뷰 때문에 방문)

돌이켜보면 재미있던 시간들이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 예전에 비해 J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상급 한국 선수들이 줄어들었다.

지금 현재로선 줄어들었지만 앞으로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처음 노정윤이나 고정운, 홍명보가 왔을 때는 양국의 역사적 배경 등으로 인해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상황이라 한일 양국에서 크게 보도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매년 새로운 선수들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아, 누가 왔구나, 누가 갔구나’ 정도로 인식이 될 뿐이다. 교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좋은 선수들이 일본이 아닌 유럽으로 많이 진출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J리그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 고종수 같은 선수들을 보면 시대의 흐름도 느낀다. 두 선수의 경우 98년 K리그 붐이 일어날 때 인기 최고를 달리던 선수들인데 지금 J리그에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당시 J리그는 절대 가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한 경우도 있고 말이다.(웃음)

- 이 밖에 현재 J리그에는 김근철(벨마레)이나 오장은(FC도쿄), 김성길(오이타)과 같은 청소년 연령대의 선수들도 있다.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들이 어린 나이에도 J리그에서 스카웃을 했다는 것은 일단 가능성은 있는 선수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어린 선수들인 만큼 일본에서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습득하느냐, 일본에 얼마나 적응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외국인 선수, 즉 용병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용병은 결국 팀 결과에 따라 계약이 연장되느냐, 해고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투철한 용병의식이 필요하다.

사실 같은 실력을 갖고 있다면 자국 선수를 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이들은 일본 선수들이 갖고 있지 못한 무엇인가를 갖춰야 한다. 일본 선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실력을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다. 노정윤이나 홍명보, 유상철 같은 선배들은 그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현재 한일 양국은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로 나아가려 한다. 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한일 양국이 아시아 축구를 이끌어주기를 원하고 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일단 한국과 일본 이외에 중국의 가능성도 높게 평가한다. 중국은 시장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일 세 나라가 서로의 교류를 확대해 나간다면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쟁도 심해지고, 그 경쟁 속에서 자연히 한중일 세 나라의 레벨도 높아질 것이다.

현재 일본 같은 경우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과 경쟁하려고 하지만 여건이 맞지 않는다. 일단 거리 자체가 워낙 멀기 때문에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동아시아권에서 더욱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이 지역 자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 유럽과의 격차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한일 양국 모두 경쟁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면서 경쟁을 더 활발히 펼치는 것이 한국축구와 일본축구의 발전, 나아가 동아시아권, 더 나아가 아시아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 한국축구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보다 축구팬들은 한국축구에 대한 장기적인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2006년에도 또다시”, “다시 한번 꿈은 이루어진다”,“2006년에도 다시 광화문에 나와 열광하겠다”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이것은 중요하고 선수들 역시 그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2002 월드컵에서의 그 감동, 그 열광을 체험하고 싶다면 지속적으로 한국축구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4년에 한번 월드컵에서만 감동을 달라, 흥분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항상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들도 언제나 그들을 지켜보고, 문제점 있으면 지적해주고, 성원도 보내줘야 한다. 물론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2002년 월드컵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을 막 마쳤기 때문에 아직까지 특별한 계획은 없다. 2002년을 위해 96년부터 계속 해왔던 것이고, 그것이 미즈노상을 통해 평가받아 만족스럽다.

사실 6년여를 준비했던 대회이니만큼 월드컵 이후 허탈감도 컸다.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올라갔고, 나머지는 떨어지는 것만 남았다는 것도 그렇고.(웃음)

거기에다 지난 3월 5일 친동생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숨질 당시 설기현과 벨기에에서 인터뷰 중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흐르면서 이제는 이 일을 그만둬야지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가족에 신경을 써야한다라는 생각과 내 할 일은 이제 다 했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동생 장례식을 다 마치고 나서 수상소식을 전해 들었다. 만약 이것이 동생이 내게 준 것이라면 계속 이 일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능하다면 한국축구를 계속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직 머리 속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모험을 끝마쳤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자만하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정진하겠다는 것이다.

- 장시간의 인터뷰 감사드린다.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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