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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서형욱, "축구 매니아에서 시작해 기자, 해설위원까지"


2003년 3월 14일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기사..


현 MBC 축구해설위원인 서형욱씨(28)는 축구계에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축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계에 입문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입문한 것이 아니라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이 자리에까지 오르게된 보기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축구계에 뛰어들려면 언론사 시험을 통해 기자가 되거나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는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인터넷 축구 웹진을 거쳐 신문사 기자, 그리고 축구해설위원의 영역까지 진출했다. 그야말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축구팬이었던 서형욱씨는 98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계기로 본격적인 축구 매니아가 되었고, 이후 PC 통신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의 시삽으로 활동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국내 최초의 해외축구 웹진 <토탈사커>를 만들었고, 이 웹진은 해외축구 소식에 목말라했던 많은 축구팬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토탈사커를 통해 역량을 키운 서형욱씨는 SBS 축구채널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해설을 맡으며 방송계에 데뷔했으며 이후 메이저 스포츠紙인 굿데이에 입사, 축구기자로서 활동했다. 현재는 굿데이를 퇴사, MBC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등 축구계 일선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서형욱씨가 직접 밝히는 '축구 매니아에서 시작해 스포츠지 기자, TV 해설위원까지의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겪었던 애로사항' 등에 관한 인터뷰이다.


-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에는 일반적인 축구팬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축구팬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축구에 빠지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98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예선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였고 월드컵 예선에 최초로 홈 & 어웨이 방식으로 열렸는데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것이다.

- PC 통신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를 통해 본격적인 축구 매니아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안다.

위에서 밝혔듯이 98월드컵 아시아예선 이후부터 관심을 갖고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98월드컵이 끝난 뒤인 98년 말에 PC 통신 나우누리의 모임 만들기라는 코너에 유럽축구 동호회를 만들자는 제의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재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동호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글이 있어 참여하게 됐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였는데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운영진으로 참여, 체계적으로 회원들을 모았다.

나와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신기한 생각도 들었고,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가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되었다. 그 전에는 좋아하는 선수나 팀을 위주로 챙겨보곤 했는데 그 때부터는 전체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 유럽 4대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으니까 자주 만나서 축구 이야기하고, 공도 직접 차고 그러다 보니 더욱 축구에 빠지기 시작했다.

-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

유럽축구 동호회를 만들고 나서 처음 느꼈던 것은 나는 축구 매니아가 아니었구나라는 것이었다.(웃음) 일반인들이 볼 때는 내가 축구 매니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임에 나가보니까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더라.(웃음)

나 같은 경우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관심을 갖고 있는데 반해 특정팀이나 선수를 집중적으로 좋아하는 회원들의 경우 그 팀의 정말 세세하고 전문적인 부분까지도 꿰차고 있었다.

초창기 에피소드를 하나 말해본다면 처음에 정기모임을 갖는데 1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전략을 구상한 것이 여자 회원 하나를 운영진에 임명해서 무조건 나오게 했고 이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랬더니 다음 정기모임에는 30명이 나오더라.(웃음)

이 동호회를 통해 느낀 부분이나 의의를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뭔가 사람들이 모여서 '나만 이것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라는 것.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 보람이 있다.

이 동호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축구 웹진이나 이런 쪽으로 많이 진출도 했고, 무엇보다 흩어졌던 해외축구 매니아들을 뭉치게 해서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 그 당시에도 축구 쪽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나?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그래서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했던 것이고. PD나 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운 좋게 일이 잘 풀려서 자연스럽게 축구 쪽에서 일을 하게 됐다.

- 국내 최초의 해외축구 웹진 <토탈사커>를 만들었는데,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을 이야기해달라.

당시 우리 동호회에서 활동하시던 분 중 한 명이 스포츠러브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 회사 사장님이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분이셨는데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가 활발한 활동을 보이자 동호회 자체를 스포츠러브 내로 옮겨서 운영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의하셨다. 그 때 마침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해외축구 전문 웹진을 만들어보는 것이어서 제의를 했고 그 쪽에서도 해보자고 해서 1999년 12월부터 시작했다.

시작해보니 반응이 괜찮았고 스포츠러브에서도 제대로 해보자고 제의해서 2000년 2월에 본격적으로 웹진을 운영했다. 당시 유럽축구 동호회 출신인 소순배씨와 신우식씨, 그리고 내가 웹진을 꾸려나갔고 객원 필진들도 몇 명 가세했었다.

나 같은 경우 2000년도 학기를 휴학하고 약 9개월 정도 토탈사커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그 당시는 해외축구 웹진이란 것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내 개인적으로도 얻은 것도 많았고 훗날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되었던 시절이다.

- 그렇다면 토탈사커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뭐 언젠가 누가 했어도 했겠지만 최초로 해외축구를 전문으로 하는 웹진이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동호회 출신의 축구 매니아들이 모여 동호회 스타일의 글쓰기를 선보였다는 점, 즉 기사체가 아니라 주관적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해외축구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토탈사커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되었고, 흩어져 있던 매니아들의 관심을 모이게 해서 층이 넓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결국 이후 다른 사이트들이 나오게 한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시간이 지나면서 토탈사커 필진들이 점점 떠나갔고, 본인도 떠나게 되면서 사실상 문을 닫게 됐는데.

나는 일단 들어갈 때 그 쪽 직원으로 들어갔으니까 소정의 급여를 받았었고, 글쓰시는 분들께도 원고료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그 사이트가 돈을 버는 사이트가 아니었고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급여나 원고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계속 글을 부탁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나와 소순배씨 정도만이 글을 쓰는 상태였다.

이후 내가 굿데이에 입사하게 되면서 관리를 못하게 되니까 사이트는 거의 정지상태였고, 회사쪽에서도 급여를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기존 필진들도 모두 나오고 하면서 토탈사커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 토탈사커를 나와 스포츠紙 굿데이에 들어갔는데.

4학년 들어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새로운 스포츠 신문이 창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굿데이에 원서를 내 공채로 입사했다. 이전 경력들이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

- 일반적인 코스와는 달리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웹진을 통해 굿데이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질감 같은 것은 없었나?

이질감 같은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조직에 들어가면 내가 가장 막내가 되기 때문에 순응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당시 공채를 뽑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언론사 시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었다.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서류통과한 사람들끼리 모아놓고 직접 취재를 시켜서 선발했다. 당시 들어온 사람 중에는 나 말고도 이런저런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축구부 역시 분위기도 좋았고, 내 경력들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줬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일부에서는 내가 웹진 출신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쪽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인터넷 뒤져서 기사 쓰라고 월급 주는 것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웹진에서야 여건이 안되어서 그랬지만 여기에선 현장취재를 위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나에 대한 선입견을 약간 가지고 있는 듯 해서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 밖에서 본 스포츠紙와 안에서 직접 겪은 스포츠紙는 또 달랐을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스포츠지든 일간지든 목표는 특종이다. 특히 스포츠지는 1면 경쟁이 치열하다. 일간지의 경우 배달이 판매부수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스포츠지는 판매량의 절대적인 부분을 가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 손에 집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기사가 나오게 된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신입으로 들어가 스포츠지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도 그런 분위기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편집회의가 있으면 나 역시도 약간 부풀릴 수 있는 아이템을 제시하게 되곤 했으니까.

왜냐하면 회사 안에서 쓰는 아이템이 있고, 쓰지 않고 버리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회사가 원하는 아이템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 역시 기존의 패턴에 따르는 기사를 쓰고 아이템을 만들게 되었다. 외부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든 간에 내부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그 시스템에 동화되는 것이 있다. 그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들어가든 스포츠지의 시스템을 크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 그 과정에서 마음고생도 컸을텐데.

사실 스포츠지에 합류했다는 것은 그런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고, 어차피 들어갔으면 인정을 받아야하지 않겠나. 특히 신입 시절에는 자신도 모르게 순응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6개월 정도 별다른 생각 없이 열심히 하고, 가라는데 가고, 쓰라는 것을 썼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다른 부서는 모르겠지만 축구부는 민주적이었다. 내가 생각해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이 지켜졌고, 특별한 불만 없이 만족스럽게 생활했다.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웃음)

그런데 월드컵을 거치고 축구붐이 일어나면서 다른 스포츠지와 경쟁이 붙어서 그런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았다. 스포츠지 전체가 김남일의 사생활, 송종국의 열애설 등 축구 외적인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났던 것은 설기현 기사 때문이었다. 포커스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잡혔든 어쨌든 간에 언론은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되는데 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나는 터키의 갈라타사라이가 설기현에게 영입제의를 했다는 정보를 얻어 데스크에 이야기를 했더니 설기현에게 확인해보고 기사를 쓰라고 했다. 설기현과 전화통화를 했고 설기현은 "그런 이야기를 벨기에 신문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이미 팀에서 거부한 것으로 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기사를 썼는데 다음날 신문을 보니 1면 메인에 '설기현, 터키 간다'라는 제목과 함께 내 이름으로 기사가 올라가 있었다. 기사내용엔 설기현이 터키 간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는데 제목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기사내용은 위에서도 함부로 고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문투를 바꿀 수는 있어도 내용 자체는 고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는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제목만 기억하니 졸지에 나는 '뻥기사를 쓴 기자'가 되어 있었다. 항의메일도 많이 왔었다.(웃음)

물론 이런 부분들이 문제라는 것을 스포츠지 사람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알아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고, 그런 입장에 대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 그런 문제들이 굿데이를 퇴사하게된 이유였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부분들이 내가 퇴사하게 된 이유는 아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월드컵 당시 TV 해설 등의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고, 잉글랜드 유학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내 자신이 보다 충실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또한 일을 하다보니 애초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없어질 것 같았다. 더 있으면 내가 하고 싶어했던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남아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스스로 여러 생각을 했지만 회사 사람들과는 그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갑자기 떠난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축구부 사람들과는 아직까지도 계속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기 때문에 굿데이 기자 생활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은 없다.

-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람있었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행복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직업이 됨으로써 잃는 부분도 있다.

내가 쓴 기사가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줬을 때의 만족감, 평소 동경하고 좋아했던 선수들과 직접 만나고, 인터뷰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보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축구계의 뒷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웃음)

다만 일로써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축구 자체를 편하게 즐길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경기를 끝까지 음미하면서 보고 싶은데 경기 도중에도 취재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야하고, 경기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내려가서 취재를 해야하는 등...

- 선수 중에는 특별히 차두리와 친하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차두리 선수는 KBS 최승돈 아나운서의 소개로 알게됐다. 2001년도에 최승돈 아나운서가 축구 관련 책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책 안에 들어갈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와 KBS 이재후, 최승돈 아나운서, 차두리, 이천수 5명이 만났었다.

다른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난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다.(웃음) 그러다가 문득 두리가 해외축구를 좋아한다고 그랬던 것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서로 말이 술술 나왔다. 두리도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국내에 해외축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둘이서 바이에른 뮌헨이 어떻고, 이런저런 축구 이야기를 신나게 나눴다. 당시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둘이 한참 해외축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천수가 끼어들더니 "두리형이 해외축구 정말 많이 알아요. 베컴 성이 데이빗이란 것도 안다니까요"라고 말해서 좌중을 웃긴 바 있다.(웃음)

서로 연락처 교환하고 나중에 명동에서 만나 갈비도 뜯고 그랬다. 당시 두리가 무명시절이었던 터라 만날 때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좋았다.(웃음)

그 뒤에 두리가 코스타리카전에 골을 넣고 월드컵에도 출전하고 그러면서 유명세를 타자 회사에서는 내가 두리와 연락이 되는 것을 아니까 압박이 들어오기도 했다.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과 일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 능력 있는 기자들은 그것을 잘 조절한다. 그러나 난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남들이 다 쓰는 기사밖에 쓰지 않았다.

두리가 A매치 첫 골을 터트렸던 코스타리카전은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경기였다. 두리는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에 내려온 나를 보더니 포옹을 하면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기자생활하기를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사소하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이야말로 기자생활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스타일이 아니고, 안면은 없지만 기자라는 신분을 내세워 선수들과 인터뷰하고 그러는 서글서글한 성격이 아니라 사적으로 친한 선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두리가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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