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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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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K리그의 거인’ 신태용, 13년간의 전설을 마감하다.


인터뷰 하던 중에..서포터들의 1인 시위에 대해 물었을 때...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던 신태용의 눈가에 물기가 보이더라..
대스타인데도 왜 그 모습이 그렇게 슬프게 보이던지..쩝..
K리그의 전설이었던 신태용 선수의 은퇴 인터뷰...

2005년 3월 24일 인터뷰...


1983년 첫 시즌을 시작해서 어느덧 23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K리그.
그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스타들이 나타났고, 또 사라지곤 했다. 2005년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우리는 K리그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스타를 잃게 됐다.

1992년 K리그에 데뷔한 이래 13년간 성남일화에서 활약하며, ‘성남의 영원한 주장’이자 ‘K리그의 전설’로 팬들에게 각인됐던 신태용(35세)이 은퇴를 선언한 것.

통산 401경기 출장(통산 1위)-99골(통산 5위)-68도움(통산 1위)에, 2003년 최초이자 아직까지도 유일한 ‘60-60클럽’달성까지 K리그에서 신태용이 거둔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기에 성남에서 K리그 우승 6회, 컵대회 우승 3회, FA컵 1회, 수퍼컵 1회, 아시아클럽선수권 1회, 아시아 수퍼컵 1회, 아프로-아시아 클럽컵 1회, A3챔피언스컵 1회 등 수많은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신인왕을 비롯해 MVP 2회, 득점왕 1회와 함께 K리그 베스트11에도 역대 최다인 9회나 선정되는 등 K리그를 논할 때 ‘신태용’을 빼고 논할 수 없을 정도의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뽐내던 신태용도 시간이 흘러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2004년 후반기부터는 선발멤버에서 제외되어 교체멤버로 뛰는 등 예전과 같은 지배력을 선보이지는 못해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신태용의 갑작스런 은퇴가 팬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신태용이 여전히 ‘성남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과 여전히 팬들은 그가 1-2년 정도는 더 뛰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

여러 우여곡절 끝에 K리그 은퇴와 함께 호주의 퀸즐랜드 로어행을 결정한 신태용은 그 곳에서 2년 정도 선수 생활을 하며, 새로운 도전을 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축구의 본산인 잉글랜드로 가서 공부를 더 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13년간 변함없이 사랑을 나눠준 팬들, 무엇보다 은퇴 발표 후 1인 시위까지 하며 ‘신태용’을 위해 몸을 던졌던 팬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신태용은 K리그와 작별을 고했다. 다음은 지난 3월 15일 가진 신태용과의 고별 인터뷰.
(* 신태용 선수와의 인터뷰는 본 홈페이지 2003년 2월에도 3회에 걸쳐 게재된 적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Untitled Document-> 예전 인터뷰로 바로가기. )


- 이제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K리그 은퇴 및 호주진출로 가닥이 잡혔다. 현재 심경이 궁금하다.

정들었던 K리그 13년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는 새로운 도전의 길을 가기 위해 호주로 가게 됐다. 일단 국내 프로생활을 마감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쉽다.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고, 시원섭섭하기도 하고...그렇다.

- K리그 은퇴에 대해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성남 서포터 사이에서는 릴레이로 은퇴를 반대하는 1인 시위까지 했다. 마음이 더 아팠을 것 같다.

너무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신태용’이란 한 사람을 위해서 혹독한 한 겨울에, 자신들의 일까지 팽개치며 하루 월차를 내고 1인 시위를 해줬다는 것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가슴 벅차고, 가슴 속에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맺히곤 한다. 그 분들의 고마움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너무 고맙다.

- K리그 은퇴에서 호주진출까지의 과정이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는가?

가장 컸던 것은 아무래도 나이는 많은 반면 연봉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영을 해야 하는 구단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프로세계는 냉정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것을 이해하면서도 너무 냉정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처음엔 직접 구단으로부터 제외 통보를 받지도 못했다. “구단에서는 태용이를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얼핏 얼핏 흘러지나가면서 듣기는 했지만, 나에게 직접적인 통보는 안해줬다. 그러다가 12월말 경에서야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암담했던 것이 사실이다.

- 사실 기량으로 봤을 때 아직 K리그에서 뛸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남 외에 다른 구단에서라도 뛰고 싶다는 유혹은 느끼지 못했나?

물론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따지면 다른 팀에 가서 통산 100골, 70-70클럽 이런 기록을 세우고 보란 듯이 은퇴하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신태용’ 한 사람 때문에 월차까지 내면서 1인 시위하고 그랬던 분들을 봤을 때 내가 이렇게 성남을 버리고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성남 서포터 분들이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다른 팀으로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시위해주시는 그 모습이 너무 고마웠고, 그 분들이 비록 수천, 수만명이 아닌 열 몇명 뿐이었지만 그 분들을 버리고 가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 지난 시즌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지난 시즌에는 예전과는 달리 수비형 미드필더의 성격이 강했다. 활동량에선 예전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최소한의 동선으로 노련하게 경기를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았다.

우리 팀에서 김상식 선수가 군대에 간 이후 그 자리가 항상 취약한 포지션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나이가 있다보니까 경기를 보는 눈이 후배들보다 낫다고 차경복 감독님이 판단하셔서 “공격을 조금 자제하고, 중간에서 수비하고 리딩을 해줘라”고 주문을 하셨다.

여기에 두두 선수가 들어오면서 나와 포지션이 겹치다보니까 더 좋게 팀에 활용하기 위해서 내가 수비 쪽으로 많이 내려오게 됐다. 축구팬들은 “신태용이도 나이 먹으니까 밑으로 내려가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주문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지, 체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력과 구력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도 대접을 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가 수비형 미드필더 쪽으로 옮기면서 익숙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실수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중앙에서 공수를 조율해주면서 좋게 이끌었던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 것은 조금 아쉽다.

- 지난해 10월 이후부터는 선발멤버가 아니라 주로 교체멤버로 나왔다. 성남을 상징하는 선수로서 어떻게 보면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수도 있는데.

벤치 멤버라는 것을 처음 겪어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고, 그 상황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서 ‘아, 이게 인생살이구나. 그래 예전의 신태용이 아니라 지금의 신태용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차경복 감독님과는 정말 돈독한 사이인데, 감독님께서 나에게 직접 찾아와 등을 두드려주시면서 “진짜 미안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감독님, 저는 괜찮습니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전술적인 것은 감독님이 책임지셔야 하는 부분이니까 개의치 마시고 추구하시는 방향으로 가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항상 베스트로 게임을 뛴다는 것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베테랑으로서 은퇴해야한다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 성남에서는 ‘신태용’이란 이름이 단순한 선수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것이 오히려 팀이나 본인에게 부담이 된 거 같지는 않은지?

주위 분들도 그런 말씀들을 하신다. “신태용이 성남을 이끌고 6번 우승시키면서 구단 내에서는 코칭스태프보다 더 파워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었는데,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선수는 선수일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 대신 내가 한 선수로서, 팀원 중 한명으로서,  또 주장으로서 코칭스태프를 보필해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거기에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이 있다보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13년 동안 한 팀에만 있으면서 여러 좋은 상들도 받고, 주장으로도 오래 활동하고 그러다보니 ‘성남하면 신태용’이라고 다들 생각하셔서 그렇게 된 것 같다.

- 성남 경기에서 본인의 모습에 자주 보이지 않자 성남 팬들이 “신태용!”을 연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다.

일단 기분은 정말 좋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리고 저 분들이 나를 이렇게 응원하는데, 내가 경기장에 들어가면 플레이로 그만큼 보답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더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신태용! 신태용!”하다가 “야 이 XX야! 들어가라”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웃음)

어쨌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는 기쁘다. 누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은 진짜 기분 좋은 일이다.

- 흔히 성남 팬들은 “신 주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장완장은 몇 년이나 찬 거 같나?

음..정말 오랜 기간 주장완장을 찬 것 같다. 입단 후 3-4년차부터 주장 완장을 차기 시작했는데, 그 때는 계속 달았던 것은 아니고 달았다가 대표팀에 나가면 선배님들에게 드리고, 다시 달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7-8년 전부터는 꾸준히 계속 달았다. 주장 완장이 없으면 뭔가 허전할 정도가 됐다.(웃음)
이상하게 내 성격상 주장완장을 달고 경기할 때 더 힘이 나는 것 같다.

- 초창기에는 선배들이 많아서 팀의 주장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일단 나는 경기장에 들어가면 리드를 해야 한다. 성격상도 그렇고, 포지션 상으로도 그렇다.
또 경기장 들어가서는 조금 죄송스럽긴 하지만 선배님들에게도 “형, 이렇게 해야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린다. 성격상 어쩔 수 없다.(웃음)

이런 것들로 인해 선배님들의 오해를 산적도 있었다. 팀이 이기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떤 선배들은 오해해서 “후배 놈이 건방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게 아니었구나 오해를 풀기도 하고...

-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팀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주장으로서의 카리스마 말이다.(웃음)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입단할 때부터 경기를 뛰고, 팀의 주축으로 활동했지만 그 당시에는 고정운, 이상윤, 하성준 선배, 사리체프 등 여러 선수들이 있어 내가 팀을 이끄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후 특별한 슬럼프 없이 꾸준히, 오랜 기간을 뛰다 보니까 지금 위치까지 오게 된 것 같다.

- 입단 초기부터 주장완장도 차고...그러고 보면 예전에 박종환 감독이 무척 예뻐하셨을 것 같다.(웃음)

알다시피 박 감독님께서 어느 한 선수를 예뻐하시거나 그것을 표현하고 그러시는 분은 아니지 않나. 그냥 볼 잘 차고, 열심히 하고 그런 선수들을 좋아하시는 거다. 그 분은 운동장에서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좋아하니까...
나 역시 일단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런 점 때문에 나를 좋아하시지 않았나 싶다.

- 서서히 비슷한 연령대의 선수들이 은퇴를 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주위 동기들끼리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의견교환 같은 것도 있을 것 같다.

대학교 88학번들이 모인 88동기회가 있다. 한 40명 정도 되는데 내가 프로은퇴하면서 모든 회원들이 현역에서 은퇴하게 됐다. 그 모임이 1년에 2-3번 있는데 나가보면 전부 학교 지도자로 있더라. 프로생활은 내가 오래했지만, 지도자로서는 나보다 훨씬 선배들이기 때문에 많이 조언해주고 그런다. 아직까지는 내 갈 길이 확실히 정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미지수다.

그리고 서정원이 동갑인데 얼마 전 오스트리아로 갔고, 이제 현역으로 남은 건 후배인 노정윤, 김도훈, 김병지, 김태영 이 정도인 것 같다.(웃음) 은퇴 결정 후 연락 와서 위로도 해주고 그랬다.

- 유독 한국에서는 팀의 레전드급 선수들의 마지막 축구인생이 항상 구단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쓸쓸한 퇴장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도 솔직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너무 아쉽다. 선수에 대해서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주고, 베풀 것은 베풀어주고 그래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마케팅 정책 부재라고 생각한다. 명문구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팀에 큰 영향을 끼친 선수에 대해 대접을 해줘야만 그것이 모태가 되어 이 다음에도 다른 좋은 선수들이 나와도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프로축구단이 공통적으로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과 관련 있다고 본다. K리그를 누비던 스타들이 시간이 지나면 팬들에게 그냥 잊혀져버린다. 잊혀지기 전에 한 번 더 각인시켜줘서 이들의 마지막이 팬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세월이 지나 그 팀의 전설적인 OB선수들이 모여 행사도 하고 자선경기도 할수 있다. 그럴 때 팬들이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것이고...

-> 2편에 계속...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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