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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최문식, “90년대를 수놓았던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


2004년 1월 19일 KFA 홈페이지 기사...


98시즌이 끝난 뒤 최문식은 전남으로의 이적을 결심했고, 이 결정은 많은 포항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대부고를 졸업해 1989년 포항에 입단한 최문식은 줄곧 포항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고, 일부 팬들은 “포항 경기도 경기이지만, 최문식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운동장을 찾는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제가 어렸을 때 그런 꿈을 갖고 볼을 찼어요. 축구팬들에게 ‘오늘은 저 선수가 무엇을 보여줄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그럼으로써 팬들이 경기장을 찾게 만드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것 말이에요. 100%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포항에서 나름대로 그 꿈에 근접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포항은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어요. 고교 졸업하고 거의 10년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포항을 떠난다는 생각 자체를 꿈에도 하지 못했었죠. 그렇지만 저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무렵, 마침 전남에 이회택 감독님이 취임하셨고,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전화하자마자 ‘문식아, 너 전남으로 와라’고 하셨어요. 제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랬더니 ‘오라면 올 것이지 생각은 무슨 생각’  이러시는 거예요.(웃음) 이회택 감독님 말씀하는 스타일이죠.  그때 여러가지 고민이 많았는데, 감독님의 그 말 듣고 전남으로 가자고 결심했죠.”

“이 감독님은 어렸을 때 저를 발탁하셨고, 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세요. 제가 마음 놓고 플레이할 수 있고, 편하게 축구를 할 수 있었죠. 그 분 밑에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감독님에 대한 보은의 성격도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시 최문식의 전남행이 확정되자 포항팬들은 엄청난 양의 탄원서를 포항 구단과 최문식 본인에게 보냈다. 최문식도 그런 열성적인 팬들을 두고 전남으로 가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축구를 하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던 순간이에요. 팬들이 우는 모습도 봤고...저를 좋아하던 그 분들을 두고 간다는 것이 너무 힘들더군요. 그런 분들을 버리고 떠나는 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결국 99시즌부터 전남에서 뛰기 시작한 최문식은 2000시즌까지 2년 동안 65게임에 나서 11골, 8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 중 40게임을 90분 풀타임으로 뛰었으니 확실히 포항 시절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받은 셈.

그러나 99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4위팀 부산에게 졌고, 2000시즌 대한화재컵에서는 결승에서 부천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0시즌 정규리그에서도 7위의 성적으로 우승권과 멀어졌다.

“전남 시절이 오히려 풀타임을 더 많이 소화하면서 개인적으로 괜찮았던 2년이었어요. 다만 팀 전체가 순간의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죠. 그 경기만 이기면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인데, 조그마한 실수들로 매번 무너지고 그랬던 것이 안타까워요. 이회택 감독님과 다시 한번 우승을 해보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했는데, 의욕만으로는 잘 안되더군요.”

불운했던 일본 오이타 생활

2000 시즌까지 전남에서 뛰며 제 몫을 해냈던 최문식은 2001년 일본진출을 모색했다. 팀은 J2리그의 오이타 트리니타.

평소 많은 사람들이 최문식의 플레이스타일이라면 일본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었기에 그의 일본 진출은 긍정적이었다. 더군다나 J2리그라면 최문식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지 않을까라는 예상도 함께 나오곤 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J1도 아닌 J2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차피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무대였어요. 제 축구 스타일이 그 쪽과 잘 맞는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국내에서만 있었으니 해외에도 한번 나가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던 차에 마침 오이타에서 제의가 왔죠. 솔직히 2부로 간다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하긴 했었어요. 그래도 제가 대표생활도 했고, 명성도 나름대로 있었으니까요. 주위분들이나 팬들도 왜 2부로 가느냐고 많이 말씀하셨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2부나 1부나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고 봤고, 또한 2부에서 팀을 선두로 이끌어 1부로 끌어올리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었죠. 제가 팀을 이끌어서 1부로 진입시키겠다는..뭐 그런 것 말이에요.”

그러나 최문식의 이같은 계획은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저를 스카웃했던 오이타의 감독이 시즌 중 그만 두고 말았어요.  감독이 새로 왔는데 스타일이 저와 맞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출장기회도 많이 줄어들었죠. 처음 외국생활인데다 이런 일도 겪고 보니 마음고생도 많이 했어요. 거기에다가 팀 동료들의 투지나 승리에 대한 갈망이 한국 선수들에 비해 많이 부족해 실망했죠. 물론 일본 선수들도 운동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있지만,  꼭 이기겠다는 끈질긴 맛이 모자라요. 팀에 대한 애착도 부족한 것 같았고...”

“그 부분에 대해 확실히 하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았죠. 그냥 묵묵히 내 할일만 하고 그랬으면 마음고생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같은 사람은 또 그런 것은 그냥 못넘기잖아요.(웃음) 그런 부분 때문에 힘든 것도 있었고, 동료들과 맞지 않는 점도 있었습니다. 힘들어서 빨리 한국에 돌아가 볼을 차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94월드컵 당시 최문식을 지도한 바 있는 김호 감독(당시 수원 감독)이 최문식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최문식은 2001년 6월 K리그 수원으로 복귀하게 됐다.

고종수, 김진우 등의 부상으로 인해 미드필더가 필요했던 수원에서 2001년 남은 기간을 보낸 최문식은 2002년 부천과 1년 계약을 맺고 다시 한번 팀을 옮긴다. 그리고 2002년 한해 동안 28게임에 출장하며 자신의 몫은 해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최문식은 매년 팀을 옮기며 한 팀에 정착하지 못했고, 이것은 선수 본인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매번 팀을 바뀔 때마다 팀환경이나 전술, 동료들과의 호흡 등 모든 부분에서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했으며, 축구팬들에게도 ‘떠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90년대와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했다.

“생각처럼 되지 않더군요. 다른 팀에 가서 적응하려니까 힘든 면도 많았고...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 쪽으로 다가가서 더 흡수를 하고, 동화되기 위해서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 팀을 내 팀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착오였습니다. 맞지 않는 부분도 견디고 흡수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박차고 나가버린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네요.”

테크니션의 계보

1편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듯이 90년대 이후 한국 테크니션의 계보는 김병수(현 포항2군 코치)- 최문식- 윤정환(현 전북)- 고종수로 이어졌다.
그리고 묘하게도 최문식이 존경하는 선수는 1년 선배인 김병수, 윤정환이 존경하는 선배는 최문식, 고종수가 존경하는 선배는 윤정환이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같은 유형의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간의 교감이 존재했다고 표현해야할까. 자신과 흡사한 스타일을 지닌 윗 선배들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며, 후배들은 성장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들만의 스타일이 있으니까 그런 스타일로 공차는 선배를 흠모하고, ‘저 선배처럼 차야지’ 하는 마음으로 보고 배우며 자라나는 것이죠.”

최문식에게는 김병수가 바로 그런 선배였다. 불과 1년 선배이긴 하지만 최문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김병수의 플레이에 감명받았고, 그런 플레이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김병수 선배와는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팀에서 잠깐 같이 뛰었던 적을 제외하곤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선수들 간에는 어느 학교에 누가 있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당시 김병수 선배는 경신중, 경신고를 다니셨고, 저는 동대부중, 동대부고를 나왔는데,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경기를 자주 했어요.”

“그 때 당시 김병수 선배가 볼을 차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북받쳐 올라왔었죠. ‘정말 볼 끝내주게 잘찬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따라 배우기 위해 제 나름대로 연습하다 보니까 실력이 늘었어요. 제 밑에 있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저를 보고 볼을 찼겠죠. 그렇게 위로부터 아래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 같습니다.”

현대축구의 흐름 속에서 테크니션의 입지가 줄어들다.

최문식의 계보를 이었다고 할 수 있는 윤정환, 고종수는 최근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 또한 같은 유형의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이관우(대전) 역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축구의 흐름은 점점 변화되고 있으며 이제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빠르고, 부지런하고, 강한 투쟁심을 갖춘 공수겸장의 멀티 플레이어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가장 큰 격전지인 미드필드는 그 변화의 폭이 더욱 거세다. 공격적인 면에서 특화된 이들 테크니션들에게도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현대축구가 예전과는 흐름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선수들도 그런 부분을 캐치해야겠죠. 예전에는 기술이 월등하거나 체력이 월등하거나 하는 식으로 선이 확연하게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체력과 기술을 같이 겸비하지 못하면 경기에서 뛸 수가 없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앞으로 커가는 선수들이 잘 인식하고 노력해야겠죠. 이제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지만 현대축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에 대한 축구팬들의 애착, 대표팀 복귀에 대한 희망 등은 매우 컸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한국대표팀은 2002월드컵에서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강한 압박과 스피드, 전투 성향이 강한 미드필더들의 중용, 멀티 플레이어 등으로 대표되는 팀컬러를 형성했고, 월드컵 4강 신화까지 이뤘다.

월드컵 이전 유상철보다는 윤정환을 외쳤던 사람들까지도 이제는 유상철을 찾고 있다. 물론 일부 축구팬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개인적인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천재적인 테크니션이 경기를 지배하고, 창의성있는 킬패스 한방으로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그런 축구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기도 한 것이다.

“축구팬들 같은 경우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축구팬들에게는 축구를 보는 즐거움이란 것이 있고, 절로 감탄이 나오는 화려한 플레이에 대한 동경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축구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현대축구의 흐름 속에서는 화려하게 하다가 경기에서 지는 것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죠.”

“아마 일반 축구팬들도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된다면 화려한 선수보다는 화려하진 않지만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더 중요하게 인식될 겁니다. 이제 인식이 변해야겠지요. 선수도, 축구팬들도...”

항상 갖고 있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

최문식의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항상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최문식의 재능이라면, 그의 능력이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를 점할 수도 있을텐데라는 안타까움 말이다.

사실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축구팬이라면 최문식의 100%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최문식의 팬들은 여전히 그의 축구를 좋아했고, 끝까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최문식의 공식 팬클럽인 ‘테크니션’의 멤버 대부분은 포항 서포터들이다. 이 팬클럽이 공식적으로 개설된 시기가 최문식이 포항을 떠나 전남으로 이적할 무렵이었지만, 이들은 포항을 떠난 최문식을 계속해서 성원했다. 최문식의 축구가 좋았기 때문이다.

“어느 선수든 100%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경기할 때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죠. 그러나 100%를 보여주기 위해 100% 이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저에게서 좀 더 좋은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죄송스럽네요. 더 잘했어야 했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런 모습보다는 팬들이 안타까워할만한 부분이 많아서...”

“98년에 ‘테크니션’이란 팬클럽이 생겼고, 그 이전에도 많은 포항팬들이 저를 사랑해주셨어요. 제가 그나마 좀 더 잘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힘들 때도 그 분들 때문에 힘을 얻어서 용기를 냈었고,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훈련했고, 운동장에서도 그 분들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너무나도 고마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여전히 남아있는 축구에 대한 미련

지금까지 최문식은 K리그에서 총 265게임에 출장, 47골-25도움을 기록했다. ‘30-30 클럽’에 대한 미련도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현재 나이로 볼 때 현역으로 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문식 본인도 현역복귀에 대한 열망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나중에 지나고 나면 공식 기록이 저에 대한 흔적으로 남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누구 못지않게 30-30 클럽에 대한 욕심이 있었죠. 뭐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축구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우리나라 현실도 그렇고, 제 나이도 꽤나 있는 편이어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볼을 찰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번 더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최문식은 현역복귀에 대한 이런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0이 넘은 나이에 사실상 1년여 동안 축구를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재 최문식은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기이다. 현역복귀의 기회가 올 것인가, 아니면 예전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현재로서는 공을 더 차고 싶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제가 걸어온 길이 축구의 길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어요. 과도기이죠. 축구를 더 해야 하는지, 공부를 더 해서 지도자의 길로 가야하는지, 축구쪽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하는지...고민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날지는 모르지만, 그 선택은 전적으로 최문식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최문식을 좋아했던 한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그가 축구계에 계속 남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현역복귀이든, 지도자이든 말이다.

“제 손으로 좋은 선수를 길러보고 싶다라든가, 저만의 팀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등의 생각은 있어요. 제가 공부를 하고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저에게도 축구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찾아뵐 수 있을 겁니다.”

- 끝 -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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