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Total 276 articles, 19 pages/ current page is 1
   

 

  View Articles
Name  
   MUKTA 
File #1  
   jip.jpg (217.0 KB)   Download : 35
Link #1  
   http://www.kfa.or.kr/news/news_kdream_content.asp?idx=2&content_id=1&block=0&gotopage=3
Subject  
   권집, "독일행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축구 도전"

이 인터뷰는 내가 처음으로 했던 선수 인터뷰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당시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선수의 인터뷰였던지라 더욱 뜻깊었다고 할까...

그 당시 찍었던 사진이 일명 'MUKTA의 저주'라고 불릴 정도의 열악한 사진이었기에 훗날 올림픽대표팀 시절 믹스트존에서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다..-_-;
----------------------------------------------------------------------

2001년 10월 현재. 모든 축구팬들의 관심은 2002년 열릴 한일월드컵에 집중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해 2002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어떤 경기를 보여줄 것인가? 어떤 성적을 올릴 것인가?'의 여부가 가장 큰 관심거리일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2006년을 준비하는 유망주>를 다룬다는 것은 "2002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2006년은 무슨 2006년"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월드컵은 어김없이 4년마다 찾아온다. 2002 월드컵이 끝나도 축구는 계속되고 월드컵 또한 계속된다. 한국대표팀 역시 2006년, 2010년...계속해서 월드컵 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최근 한국축구 전반에 관한 걱정이 팽배해 있고, 특히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분명 한국축구의 환경은 개선의 여지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혜성'처럼 빛나는 젊은 유망주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으며 그 선수들은 한국축구를,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로 끌어 올릴 만한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2006년을 준비하는 유망주>는 2006년에 국한되지 않고 5년 후, 10년 후 한국축구를 이끌어나갈 만한 재목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스타트를 끊을 선수는 동북고의 권집이다.(편집자주)


2000년 5월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던 U-16 아시아청소년선수권 7조 예선 중국전, 등번호 8번을 달고 주장완장을 찬 왼발잡이 선수가 탁월한 플레이메이킹을 선보이며 미드필드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올해 5월 진주에서 열렸던 문화관광부장관배 대회에서 10번 유니폼에 주장완장을 찬 한명의 왼발잡이 선수가 경기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 또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시점을 즈음하여 PC통신상에서, 인터넷 상에서 한 명의 고등학교 선수가 '한국축구를 구원해줄 구세주'로 불리우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동북고 3학년 권집이었다.

181cm, 70kg의 좋은 체격, 볼을 잡는 순간 이미 그라운드 전체를 파악하고 요소요소에 정확히 연결해주는 폭넓은 시야와 패싱력, 왼발킥의 정교함, 절대 볼을 뺏기지 않는 키핑력과 왼발을 이용한 드리블, 팀원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정신적인 성숙함까지, 권집은 플레이메이커가 갖춰야할 거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청소년 대표팀 감독시절 권집을 지도했던 조영증 감독과 권집의 에이전트인 김정호씨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이다. 유럽무대에 어울리는 선수"라는 극찬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만큼 권집은 그 또래 선수들의 수준을 이미 초월한 선수이다.

에이전트 김정호씨는 권집에 대해 "올해 5월 열린 문화관광부장관배를 통해 권집이를 처음 봤어요. 그 때 생각했지. '얘는 한번 작심하고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볼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다.' 당장 찾아가서 에이전트 계약을 맺자고 했지. 내가 에이전트 생활 중 가장 심혈을 기울여 계약한 선수예요"라며 권집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어린 시절 울산에서 자랐던 권집은 울산 동부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수업 시간에 축구를 하던 그를 유심히 지켜본 배수현 감독에 의해 축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권집의 부모님은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처음 집이가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었어요. 감독 선생님을 찾아가서 '우리 애는 축구할 애가 아니다. 그러니 포기하라.' 그리고 5학년때 서울 중화초등학교로 전학하게 됐는데 학교에 갔다온 집이가 이러더군요. '학교에 축구부가 있는데, 감독 선생님이 동부초등학교 배수현 선생님이예요.' 운명이었나봐요." 그 당시를 회고하며 권집의 아버지 권도근씨는 웃음을 지었다

운명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권집은 처음에는 왼발잡이라는 특성 때문에 레프트윙으로 뛰다 동북중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중앙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를 맡게 됐다.

"6학년때까지 레프트윙으로 뛰었어요. 중학교 진학할 때 되니까 중앙에서 뛰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동북중 이규준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중앙 미드필더로 세워주면 동북중 가겠습니다' 라고 말이죠. 다행히도 이규준 감독님께서도 저를 중앙으로 기용하는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더라구요. 플레이메이커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가 저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거 같아요."

본격적으로 축구의 재미에 빠져든 권집은 동북중·동북고를 거치면서 기량을 인정받으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2000년에 열린 U-16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는 대표팀의 플레이메이커 겸 주장을 맡게된다. 그러나 역대최강이라고까지 불리우며 개개인의 능력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줬던 청소년 대표팀은 아시아 7조 예선에서 중국과 2-2로 비기며 골득실차에서 밀려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정말 아쉬운 경기였어요. 실력면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는데...초반에 어이없이 골을 허용한데다가 우리 선수들의 정신상태도 좀 풀린 상태였어요. 조영증 감독님께선 절대로 선수들을 혼내지 않으시는 분이셨거든요. 그걸 선수들이 좀 잘못 받아들인거죠. 잘 추스려서 경기에 임했어야 하는데..."

그 대회를 무척 아쉬워하는 권집은 U-16대회가 끝난 후 조영증감독의 추천으로 U-19 청소년대표팀 훈련에 테스트멤버로 합류했다. 한 해 한 해가 다른 그 또래 선수들에게는 무척 파격적인 일이었다.

"처음에 훈련에 참가했을 때는 떨리고 겁나고 그랬어요. 그런데 훈련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무슨 이유인지 2주정도 훈련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말이죠."

축구에 있어서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권집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것은 한국 학원축구의 문제점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합숙생활과 선후배 관계였어요. 주말에만 잠시 집에 가고 거의 1년 내내 합숙을 하는데 정말 힘들더라구요. 거기다가 선후배관계도...특히 1학년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축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선후배 관계 같은 것은 우리 바로 윗선배들 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했고, 제가 주장이 된 뒤에도 바꿀려고 많이 노력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대회 나가서 힘든 점은 일단 체력이죠. 예선전때까지는 괜찮은데, 준결승이나 결승 정도까지 가면 정말 힘들어요. 경기가 거의 매일 있다보니 후반전 되면 쥐가 나기도 하고...5월에 우승했을때도 쥐도 나고 힘들었죠. 그 당시 동북고가 한번도 우승을 못했던 때라 죽기살기로 뛰었어요. 정말 힘들었죠."

사실 5월 문화관광부장관배에 우승했을 당시 권집은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한국 학원축구팀의 에이스가 대부분 그러하듯 상대팀의 집중 견제와 경기 스케줄의 혹사로 인해 크고 작은 잔부상을 지니고 있는 상태였고, 무엇보다 발목인대가 심각할 정도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작년 11월경부터 몸이 안좋다는게 느껴지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한 건지는 몰랐어요. 병원에 가봐도 별 이상 없다고 그랬었거든요. 올 5월 결승전 뛸 당시는 앞뒤로는 움직임이 가능한데, 좌우로는 힘들 정도의 상태였어요. 나중에 김정호 선생님께서 독일로 데려가셔서 진단을 받아봤더니 발목 인대가 거의 치명적일 정도로 늘어난 상태였다고 하더라구요."

다행히 독일 레버쿠젠팀의 주치의 토마스 파이퍼 박사의 집도로 발목 인대 수술을 받았고, 그 참에 크고 작은 잔부상까지 모두 치료를 해 정상적인 몸을 되찾았다. 권집 자신은 3학년때 이런 수술을 받아 학교 측에 미안하고 자신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보다 먼 미래를 내다봤을때 이것은 분명 크나큰 행운이다.

고등학교때, 혹은 대학교때 입은 크고 작은 부상들로 인해 막상 프로무대에 뛰어든 후 자기 재능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부상에 신음하며 사라져간 선수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그런 면에서 모든 부상을 말끔히 치료하고 완벽한 몸으로 본격적인 프로무대를 준비하는 권집은 분명 행운아이다. 수술 이후에도 정해진 재활 트레이닝 메뉴에 의해 꾸준히 몸 만들기를 해온 권집은 며칠전부터 축구화를 신고 공을 만지기 시작했다.

"현재 몸컨디션은 60% 정도예요. 학교 근처 산을 오르면서 몸만들기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제 약점을 말할 때 적극성이 부족하고 몸싸움이 좀 약하다고 이야기 하잖아요. 저도 느껴왔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했어요. 근육도 많이 붙었죠. 보다 적극적이고 파워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확실히 작년에 봤던 호리호리한 모습의 권집이 아니었다. 묵직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체격이 단단해졌다. 아직 본격적인 훈련을 하지 않은 상태라 정상체중보다 약간 많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것도 정상훈련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내년 봄 졸업하는 대어급 고교선수들의 진로가 확정된 지금, 권집의 진로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여러 가지 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권집의 의지는 단호하다. 바로 독일로의 진출.

사실 권집에게는 이전부터 해외클럽으로 진출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브라질,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몇몇 클럽에서 권집의 재능을 높이 사 스카웃하려 했으나 당시 권집의 부모는 믿을만한 사람도 없이 혼자 해외에 보내기도 두려웠고, 또한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한국에 있기를 원했던 터라 이뤄지지 않았다.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연·고대 가고 프로팀에 들어가고 대표팀에 뽑히고...이러면 좋겠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해외원정을 다니다보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구요. 작년에 청소년대표팀 훈련으로 한 달 정도 브라질을 갔다왔었거든요. 우리가 훈련갔었던 크루제이로팀의 경기를 비롯, 프로경기도 많이 봤는데 경기장 분위기가 정말 대단했었어요. 정말 그런 분위기에서 한번 뛰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우리 나이 또래의 클럽애들과도 연습경기를 많이 가졌는데요. 우리는 대표팀이고 걔네들은 클럽팀 애들인데 정말 잘하더라구요.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올 봄에는 사실 방황도 많이 했어요. '보다 높은 레벨의 축구에 도전해보고 싶다' 뭐 이런 생각때문이죠. 학교를 자퇴할 생각까지 했었어요. 다행히 부모님과 주위분들의 만류로 포기했지만요. 그 무렵 김정호 선생님을 만나 독일에 치료하러 갔고, 거기서 독일의 축구환경을 보니 한국에서 뛸 마음이 생기질 않더라구요. 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다 높은 레벨의 축구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찼었어요. 최태길 감독님께도 죄송스럽고 저에게 관심을 가져준 여러 대학팀과 프로팀, 특히 안양LG구단 같은 경우 학교에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전 정말 독일에서 제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보다 높은 레벨의 축구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권집의 갈망이 얼마나 큰지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권집의 부모님과 김정호 에이전트 또한 "안양측이 워낙 적극적으로 집이를 원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양으로 일단 보냈다가 해외로 진출시킬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집이의 뜻이 워낙 확고해 집이의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라며 권집의 선진축구에 대한 갈망을 대변했다.

"아마 레버쿠젠이나 쾰른팀으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일단 독일에서 자리를 잡는게 최우선 목표예요. 그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나 AS로마 같은 팀으로 진출하고 싶어요. 물론 국가대표에 뽑혀 2006년 월드컵에도 나가야죠. 더군다나 독일에서 열리는 대회잖아요."

이제 내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권집은 그렇게 원하던 높은 레벨의 축구에 도전하기 위해 독일로 간다. 아마도 지금의 도전적인 정신과 그의 재능이라면 그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집의 성장은 한국축구에 있어서도 크나큰 자산이 될 것이다.

"독일 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력 이외에도 항상 성실하고 겸손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할께요.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봐 주세요."

-- MUKTA 상헌 --


    

 




276
 이 곳은...

MUKTA
2004/08/05 1071

 권집, "독일행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축구 도전"

MUKTA
2004/08/05 1643
274
 조병국, "제공권과 파워가 좋은 차세대 수비수"

MUKTA
2004/08/05 1405
273
 이천수, "2년 안에 나카타를 뛰어넘겠다."

MUKTA
2004/08/05 1139
272
 차두리,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본받고 싶다...

MUKTA
2004/08/05 1374
271
 황선홍·유상철, "우리 꿈은 16강 진출"

MUKTA
2004/08/05 1426
270
 U-19 대표팀 박성화 감독, "수비조직력과 투쟁심 강...

MUKTA
2004/08/05 1077
269
 <브람 칼럼> "이번 U-14팀, 매우 기대되는 팀"

MUKTA
2004/08/05 1233
268
 <브람 칼럼> "U-14대회 우승을 돌아보며"

MUKTA
2004/08/05 1169
267
 <실바 칼럼> "어린 선수들이 자유롭게 축구를 할 수 ...

MUKTA
2004/08/05 1073
266
 K리그 최고 수비수 산토스, “팬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MUKTA
2004/08/05 1081
265
 남익경, “미래의 포항공격을 책임질 영건”

MUKTA
2004/08/05 2813
264
 김근철, "J리그 벽을 넘어 세계로"

MUKTA
2004/08/05 1487
263
 김준· 이강진, "U-16팀에서 활약중인 차세대 수원의...

MUKTA
2004/08/05 1598
262
 김진우, "부상에서 돌아온 팀의 숨은 살림꾼"

MUKTA
2004/08/05 1126
1 [2][3][4][5][6][7][8][9][10]..[19]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Headv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