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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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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지도자 길로 들어선 윤상철, “K리그 최초 100호골의 주인공”


2004년 11월 4일 KFA 인터뷰..


- 예전 인터뷰를 보면 골키퍼 중 일화의 사리체프(현 신의손)가 특히 까다로웠다고 밝혔는데.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골키퍼들은 공격수의 모션에 많이 속는 편이었다. 그런데 사리체프가 들어오면서 혁신이 일어났고, 사리체프를 모델로 국내 골키퍼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사리체프는 공격수가 모션을 취할 때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 덩치에 골문 앞에서 모션에 속지 않고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골 넣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 골키퍼라면 골이다 싶었던 것도 사리체프에게는 많이 잡혔다. 아마 사리체프가 아니었다면 나도 더 빨리 100골을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웃음)

- K리그에서 독보적인 골게터로 자리 잡았음에도 국가대표와의 인연은 그렇지 못했다. 아쉬움도 클 것 같은데.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웃음)
외국에 나가면 우리보다 덩치도 크고, 스피드도 빠른 선수들과 맞붙게 된다. 나는 스피드가 조금 느린 편인데 그것이 요인이 된 것 같다. 사실 대학교 4학년때 무릎을 다친 이후 스피드도 떨어졌고, 스피드 강화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 점이 아쉽다.

그래도 월드컵 같은 큰 대회는 못나갔어도 주요 대회에서는 대표팀에 발탁되고 그랬다.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감독이 요구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

- 현역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가?

기본적으로 매 게임마다 내 의지대로 플레이가 된다면 기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실망스러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경기가 기억에 남기보다는 전체적인 한 시즌의 플레이가 만족스러웠느냐의 여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K리그 최초로 300게임 출장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매년 30게임씩 10년을 뛰어야한다는 이야기다. 1-2년 반짝 하고 사라지는 것은 프로로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점에 초점을 맞췄다. 프로 선수는 꾸준한 플레이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물론 힘든 과정도 많았다. 1988년 데뷔 첫해에는 무릎부상의 여파로 내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1991년과 92년처럼 다소 침체됐던 시즌도 있었다. 그리고 최다골을 넣었던 1994년 같은 경우에는 시즌 초반 극심한 골부진으로 고생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승부욕을 자극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은퇴할 때에는 내 뜻과는 상관없이 구단과 일이 진행되는 바람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3년 정도는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은퇴하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너무 아쉬웠다.

-  방금 이야기처럼 K리그에서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은퇴는 초라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때(1997년 시즌후)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이 있어 호주로 건너가 2년 동안 뛰었다.

사실 1997년 안양에서 타의로 은퇴할 때 굉장히 불만이 많았다.  몇년간은 충분히 더 뛸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100골이나 300게임 출장 같은 것보다는 매 게임 뛰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구단이나 주위에서는 그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결국 이 기록들을 달성한 이후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물론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축구를 계속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팀으로 옮기려고도 했지만, 그것도 허용이 되지 않았고, 은퇴하는 길밖에 없었다.

휴가가 끝난 뒤 선수단이 소집됐을 때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갑자기 구단에서 은퇴패를 주는데 할 말이 없었다.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후배들 다 보는 앞에서 은퇴패를 주는데, 받지도 않았다. 아무리 프로의 세계라지만 팀을 위해 10년을 뛰었던 선수를 그렇게 대접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때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결국 국내에서는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어서 호주로 건너가 2년간 더 뛰었다. 그 무렵 정말 축구인생에 대한 회의까지 느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이야기이고, 이제부터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갈 생각이다.

- 이제 은퇴 후 이야기를 해보자. 호주는 어떤 인연으로 가게 됐는가?

특별한 인연은 없었고, 영국을 비롯해 무작정 영어권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찮게 호주에 선수로 뛰면서 지도자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갔다. 그곳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털어버렸고, 마음 편하게, 즐겁게 지냈다. 가족들도 좋은 경험을 했고...

처음 2년간은 호주 프로리그에서 뛰었는데, 처음에 마르코니 팀에서 뛰다가 뉴캐슬로 옮겼다.
그 이후에는 현지 유소년 클럽을 무보수로 가르쳤다. 개인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면 3년 정도는 유소년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침 기회가 되서 클럽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정말 즐거웠다. 당시 그 클럽이 중하위권 팀이었는데, 내가 가르친 다음에 바로 우승을 차지해서 보람도 많이 느꼈다.
우승 이후 그 클럽에서 나를 정식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했는데, 당시 내가 호주에 들어갈 때 비자가 선수로 등록됐기 때문에 변경이 되지 않았다. 클럽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도 그 클럽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었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었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 무렵 비자 만기도 다 되고 해서 국내에 들어왔는데, 마침 2000 시드니올림픽 기간이어서 올림픽은 보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연기를 요청해서 올림픽 축구는 다 보고 귀국했다.

- 귀국한 이후에는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유소년들을 가르쳤는데.

사실 차범근 감독님과는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경신고 선배이신지라 프로에서 우리 팀과 경기하면 인사하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차범근 축구교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유소년 클럽의 선두주자였고, 차 감독님이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개인적으로 유소년 축구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기에 차 감독님께 배우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말씀드렸고, 차 감독님이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2년간 유소년들을 지도하면서 차 감독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5-6살 아이들을 정말 열성적으로 가르치시는 모습에 많은 것을 느꼈고, 코칭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일반 중고교팀이나 프로팀을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유소년을 가르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다보니까 내가 여기서부터 시작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마들과 즐기면서 앞으로 어느 팀을 맡든 간에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다가 2003년 1월부터 지도자 자격의 최고 코스인 AFC 프로페셔널 코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차범근 축구교실을 그만두고 준비에 들어갔다. 결국 프로페셔널 코스를 이수했고, 이전에 땄던 AFC C, B, A 코스까지 해서 모든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다.

- 최근에는 KFA의 지도자 코스 보조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진장상곤 인스트럭터를 도와 보조강사를 하고 있다. 내가 도와주는 의미도 있지만, 나 역시 옆에서 이것저것 보면서 계속해서 지도자 공부를 할 수 있기에 진장 인스트럭터가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내가 맡고 있는 팀에만 있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지 못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지도자 교육을 같이 하다보면 그런 부분을 다시 재정립하고, 훈련방법도 재정비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 현재 KFA 1급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고 있는 지도자들 중에는 같이 뛰던 선수도 있고, 선후배들도 있을텐데.

나보다 먼저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던 선배들도 계시고, 막 시작한 후배들도 있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 우리 지도자들의 지도 방법을 재정립한다면 더 좋은 지도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조강사로서 옆에서 도와주면서 모르고 계셨던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드리고, 내가 모르던 부분은 또 배우고, 이러면서 서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 보조강사로 활동하는 동안 경신고 축구부는 어떻게 지도하는가?

지금 경신고 축구부도 같이 데려왔다. 파주 NFC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웃음)
지도자들이 실기시험을 할 때 우리 선수들을 이용한다. 우리 선수들도 여기 들어와서 실기시험을 도와주면서 전술적인 부분이나 여러가지를 배운다. 어차피 실기시험 자체가 코칭법에 관한 것이니까...
내가 가르쳐야 하는 부분들을 이 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셈이다.(웃음)

- 밖에서만 보던 고교축구와 막상 감독으로 들어와서 본 고교축구는 또 다를 것 같다.

실질적으로 안에 들어가서 보니까 참 심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무엇보다 초-중학교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이 안된 상태에서 고등학교에 올라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교에서 가르쳐야할 부분 외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가르쳐야할 것까지 고교에서 다뤄야 한다.

이것은 우리 윗 단계인 대학이나 프로입장에서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이나 프로 지도자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아서 위에서도 힘들다는 이야기다.

우리 축구가 청소년 시절의 가능성에 비해 성인이 됐을때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는 것도 초,중,고등학교 때 그 연령대에 맞게 훈련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기가 탄탄한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부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가 창의성과 유연성이 없고, 틀에 박힌 축구를 하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훈련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진짜 필요하다. 현재 국내 대회가 단발성이고, 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지도자들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

- 현재 맡고 있는 경신고는 과거 축구명문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최근 조금 주춤하는 느낌이다.

사실 요즘 학원 축구도 투자가 성적을 결정짓는다. 학교나 재단에서 후원을 많이 하는 학교들은 성적이 나고, 그렇지 못한 학교들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프로에서도 중학교 선수들 스카웃에 나서면서 질서가 많이 바뀌는 바람에 좋은 선수를 확보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차라리 1부, 2부, 3부로 등급을 나눈다면 비슷한 레벨끼리 모이고, 순수 아마추어들은 아마추어대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모두 하나의 틀 안에서 부딪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선수들을 지도할 때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플레이를 할 때 자신감을 갖고 하라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플레이를 했을 때 본인이 그 플레이의 의미를 알고 하는 것인지, 잘못됐을 때는 이것이 왜 잘못됐는지를 본인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하려고 한다.

막무가내로 “이게 잘못됐다, 저게 잘못됐다. 왜 이렇게 했냐,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선수 본인이야말로 자신의 실수를 제일 먼저 안다. 실수한 사람에게 계속 뭐라고 하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칭찬을 통해, 선수가 잘한 것을 부각시켜주면서 실수를 커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축구장에서도 선수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 틀에 박혀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경기 중에는 매초마다 다른 상황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본인들이 판단해야지, 누가 대신 판단해 주겠는가. 이것은 결국 창의성과도 연관되는 문제이다.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좋은 것은 다 흡수하고 싶다.(웃음)
선수들이 나를 떠난 뒤에도 “내가 우리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이런 부분은 참 많이 배웠다”고 느낄 수 있다면 만족한다. 그런 감독이 될 수 있을지 부담스럽다.

지도자를 하기 위해 AFC 지도자 코스를 모두 이수하는 등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고, 여기에 선수 시절의 경험들을 접목시켜 나가려 한다.
이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 프로팀이나 대표팀 감독까지 도전해보고 싶다. 지도자로서 이런 욕심이 없으면 안된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

- 인터뷰 감사드린다. 원하시는 그런 지도자가 되시길 기원한다.

-- MUKTA 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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